최우각 사장은 “일본 거래처를 돌아보는 일상적인 출장”이라고 말
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자신이 직접 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덧
붙인다. 영업팀이 정기적으로 나가서 관리할 정도로 일본 거래처
와 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성하이텍은 공작기계를 비롯해 반도체장비와 인쇄기부품 등
기계산업 전 분야에 걸쳐 5,000여 종의 부품과 유닛을 생산한다.
올해를 기점으로 기계 완제품부터 그린에너지 분야에 이르기까지
사업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1995년 대성정공이라는 이름으로 시
작해 지방 중소기업이라는 핸디캡을 뚫고 고속 성장하고 있는 비
결은 무엇일까.
사업 시작했다 문 닫은 경험도
최 사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충북 충주에서 실업고교를 졸
업한 후 1973년부터 안양에 위치한 금성통신에서 정밀기계 제작
을 담당했다. “금성통신은 독일 지멘스와의 합작회사여서 독일의
기술을 현장에서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국기능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훈련을 받으면서 그의 기술은 한 단계 올라
섰고 정밀기기 제작 부문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자신감은 한층 높
아졌다.
그는 ‘기술력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직접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섬유기계업을 하던 손위 동서의 권유로
대구에 터를 잡고 유일정밀을 창업했다.
“기술력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품만 만들어서 납품해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오더(주문)
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업이 번창할 것이라고 기대했지요.”
그의 생각대로 사업 초기에는 순탄한 길을 걸었다. 성실성이 몸
에 밴 데다 품질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이다. 전용기, 자동화설
비를 제작하던 유일정밀은 그러나 곧바로 한계에 부딪혔다. “젊
은 나이에 경험도 부족했던 탓이죠. 설계도 동시에 해야 하는 엔
지니어링 업종이었는데 설계 인력이 빠져나가니까 속수무책이었
습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력도 컸다. “지금이야 상생(相生)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대기업 임원
이 바뀔 때마다 납품 가격을 낮추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가해
졌습니다.”
기술창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교훈을 얻은 그는 결국 빚만 지고
유일정공의 문을 닫고 말았다. 빚 갚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는 기자
의 질문에 최 사장은 “허허…” 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터였다.
월급쟁이 생활로 돌아온 그는 다시 차근차근 창업을 준비해
1995년 대성하이텍의 전신인 대성정공을 설립했다. 처음부터 국
내보다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기로 마음먹은 그가 택한 시장은
일본이었다. “일본 기업과 거래하면 선진기술을 배워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었다.
창업 후 2년 동안 일본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와 상담회에 10여
차례 참석하면서 일본 시장을 뚫는 데 힘을 쏟았다. 중소기업이 일
본 기업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코트라(KOTRA)가 주
관하는 상담회 및 일본 전시회 등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무명 중
소기업이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회사에 돌
아가서 검토해 보겠다”던 일본 기업 실무자들은 하나같이 감감 무소식이었다. 2년 동안 일본 업체의 도면을 한 장도 못 받았을 정
도로 벽이 높았다. 창업 후 15년이 지난 지금도 최 사장은 당시를
“대성하이텍 창업 이후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고 회고한다.
200여 개 일본 업체에 편지 보내
‘일본 시장을 어떻게 하면 뚫을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최 사
장은 코트라에서 발간한 디렉토리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부
품 조달 가능성이 있는 200여 개 일본 기업을 선정해 편지를 보냈
다. ‘우리 회사는 이런 회사이고, 이런 부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내
용을 써서 보내고 초초하게 기다렸다.
다행히 2곳에서 답장이 왔고 그중 한 업체로부터 3,000만 원어
치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달 반 동안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 놓
으니 검사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업체 담당자 2명이 3박 4일 동
안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대성하이텍의 부품을 검사했다. 결과는
절반 이상이 불량 판정이었다.
“당시 우리 제품의 품질 수준은 국내 대기업에서도 인정할 정
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검사가 너무 까다로웠어요.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따지고 조금이라도 요구 스펙에서 벗어나면 불량 처리를
했습니다.”
최 사장은 ‘과연 이 정도까지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있을까’ 등등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두 손 들고 싶은 마음
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
거품이 되는 것이기에 다시 도전하기로 각오를 다졌다. 밤을 새 가
며 제품을 수정한 끝에 겨우 일본 기업의 요구에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 시장을 뚫은 대성하이텍은 설립 2년 뒤부터는 일본
최대 공작기계 업체인 야마자키 마작에도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
했다. “야마자키 마작은 나고야에 위치한 기업인데 도쿄의 상담회
에서 우리 회사를 알게 돼 실사팀을 공장으로 파견했습니다.”
야마자키 마작 실사팀이 대성하이텍을 찾았을 때는 이미 일본
업체와의 거래 경험이 쌓여 있었다. 시제품 주문에 대해 납기, 품
질 등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를 통해 야마자키 마작의 신
뢰를 얻었고 거래량도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
터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2008년 수출의 날에는 2천만불탑을 수
상했고 거래하는 일본 기업도 수십여 개 사로 늘어났다.
당시 야마자키 마작에서 대성하이텍의 기술 지도와 검수를 맡
았던 마쓰오카 씨는 후에 대성하이텍 기술고문으로 아예 자리를
옮겼다. 최 사장이 일본의 정밀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영
입한 것. 마쓰오카 씨는 ‘한국에서 자리 잡은 일본 기술자’로 NHK
에 소개되기도 했다. 대성하이텍에서 일하는 일본인 기술고문은
모두 3명이다. 마쓰오카 씨는 1공장, 나머지 2명은 3공장에서 기
술 지도와 자문을 각각 맡고 있다.
“일본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40여 년간 기술 분야에서 일한 만
큼 저희가 배울 게 많은 분들이지요.”
최 사장은 일본 진출을 고려하는 업체라면 일본인 기술자를 활
용해 보라고 조언한다. 또 “일본을 비롯한 선진기술 인력을 받아
들이는 중소기업에 대해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라
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히트상품 ‘애니락’
최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발명에도 관심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라며,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발명해 내는 것보다 이를 상품화해서 성공시키기가 어려운 법”이라고 말했다. 상품화했지만 잘 팔리지 않아 접은 사업도 많다. 땀
이 차지 않는 방석, 목재 절단기, 자동차 연료절감장치 등을 개발
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만 5억 원이 넘는다. “연료절감장치를 실험
한다고 전국 도로를 헤매고 다녔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디어 상품인 ‘애니락(AnyLock)’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
했다. “2003년 한일PHP경영동우회에서 만난 기업인에게 소개를
받았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아이디어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지
요. 상품화만 잘 하면 세계적으로 히트 치겠다 싶었습니다.”
비닐팩 잠금장치인 애니락은 기존의 밀폐용기나 밀폐비닐팩과
는 전혀 다른 제품이다. 물건을 담은 비닐의 끝부분을 한 번 접어
애니락의 홈 사이에 끼워 넣기만 하면 밀폐는 물론 완전 방수가 가
능하다. 각종 서류, 휴대폰, 카메라 등을 쉽게 보관할 수 있어 생
활용품, 가정용품은 물론 산업용품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무궁
무진하다.
최 사장은 특허 이전과 로열티 협상을 끝낸 뒤 NB(뉴비즈니스)
사업부를 출범시키고 애니락 사업을 시작했다. 기계부품을 수출
한 과정과 마찬가지로 애니락 역시 해외시장부터 두드렸다.
“애니락을 들고 일본 전시회에 나갔는데, 전시회 첫날밤에 일본 총판을 원한다며 4개 회사가 호텔까지 찾아왔어요. ‘먹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온 몸이 짜릿했습니다.”
일본 시장에서 가능성을 점친 최 사장은 시카고, 홍콩, 동남아
등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에 1년에 10여 차례나 참가하면서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그러나 3~4년간 전시회를 찾아 다녔
지만 매출은 생각처럼 빨리 늘지 않았다. 상품성은 탁월했지만 새
로운 콘셉트의 제품이라 시장을 만들면서 팔아야 했기 때문이었
다. “한때는 왜 그렇게 무모한 투자를 했을까 후회를 하기도 했습
니다”라고 최 사장은 털어놨다.
2009년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애니락은 효자상품이 될 가능성
을 보여 주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수출국만 20여 개국에 달할 정
도다. 세계 2위 사료업체인 로얄케인에서 대규모 주문을 받았고,
일본 경시청에는 애니락을 이용한 접는 물통 ‘매직스’ 10만 세트를
납품했다. 조만간 미국 할인점 월마트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앞으
로 10년 이내에 애니락 70억 개를 판매해 전 세계인이 적어도 한
개 이상씩 갖게 만들겠다는 것이 최 사장의 목표다.
“부품가공기술은 세계적”
애니락에 대한 최 사장의 애정은 기계부품사업에서 얻은 자신감
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의 부품가공기술은 세계적
이며 일본 장비와 같은 수준의 장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최
사장은 자신한다. 실제로 대성하이텍과 거래하는 일본 기업들은
“믿을 만한 회사”, “고객감동을 실현시키는 회사”라는 칭찬을 아
끼지 않는다고 한다.
대성하이텍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성장을 위한 발걸
음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제3공장을 준공, 자동선반 설
비시장에 진출했다. 일본이 세계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이
시장에 대성하이텍이 국산화한 자동선반 설비로 일본 기업과 경
쟁하게 되는 셈이다. 국내 대기업 ODM(제조업체개발생산)으로
다음 달부터 국내시장 및 해외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2년 전 개
발한 초소형 고정밀 동시 5축 가공기인 ‘제로인’과 함께 완성 기계
에서 올해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9년 신설한 반도체사업부에서는 반도체장비를 국산화해 대
기업에 납품하고 있고 그린에너지 관련 부품도 일본 기업에 공급
중이다. 이 외에도 정부 과제로 태양광설비 국산화 장비를 개발 중
인데 연내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올해를 ‘성장 기반 구축의 해’로
잡고 있는 대성하이텍의 매출 목표는 700억 원. 지난해 대성하이
텍의 매출액 367억 원보다 큰 폭으로 뛰어오른 수치다.
지방 중소기업이라는 핸디캡을 뚫고 고속 성장하는 비결에 대
해 최 사장은 ‘품질경영’과 ‘정직’을 꼽았다. “우리 회사 제품은
1,000분의 1㎜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정밀도가 높습니다”라고 그
는 말했다. ‘정직’은 일본에 수출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토
다. “일본 기업과 거래하려면 첫째도 정직, 둘째도 정직입니다. 그
들과 거래하면서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숨기거나 변
명하기보다 먼저 인정하고 즉시 고쳐 나갔고 그러한 열성이 일본
기업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전 직원이 소통하는 문화 정착
최 사장은 ‘책 속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인재 육성과 직원 교육
에 독서만 한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독서포럼을 4년째 진
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은 과장급까지 독서포럼에
참여하도록 했지만 올해부터는 전 직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처음에 독서포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반대가 심했다. 특히 현
장 관리자들은 “일할 시간도 없는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
며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이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
다. 직원들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회사는 책 구입비 전액을 지
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만화책만 빼고 다 된다’고 했어요. 여직원이면 요리
책이라도 사 보라고 했지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실적이 신통
찮아요. 그래서 만화책까지도 완전 오픈했습니다. 이제는 차츰 책
사는 실적이 늘어나고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대성하이텍은 매주 화요일 2시간의 토론회를 가지며 전 직원이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또 1년에 한 번씩 180명 전 직원이
워크숍을 통해 일체감을 다진다.
지방 중소기업이지만 매출의 90% 가까이 수출하는 대성하이텍
은 앞으로도 수출시장에 주력할 계획이다. “처음 수출길을 뚫기가
어렵지 한번 바이어와 거래를 트면 수출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라
고 최 사장은 말했다. “대금 결제나 재고 부담이 적고 물량도 상대
적으로 많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수출을 시작하려는 기업에 대해서는 “전시회나 상담회에 많이
참가하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 아
닙니까. 수출이 그만큼 중요하지요. 해외시장을 계속 노크하다
보면 언젠가 문이 열리는 만큼 인내심을 갖는 것이 가장 필요하
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