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호반 나들잇길은 울창한 숲과 잔잔한 호수 물결,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한데 어울려 사색하면서 걷기 좋은 산책길이다. 전망대에서 만나는 옛 이야기와 주변의 유적지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춥다고 해서 따뜻한 이부자리만 찾을 게 아니다.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겨울을 즐겨보자. 겨울은 겨울대로 볼 게 있고, 음미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때와 장소가 있다.
경북 안동 호반 나들잇길로 발길을 잡았다. 경북 안동 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건축물이나 유물, 전통 양식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안동 호반 나들잇길은 안동의 예스러움에다 사랑을 주제로 한 '스토리 텔링'과 '힐링'을 가미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성 이씨 이응태 부부 사연 속 '머리카락 미투리' 형상화한 월영교 40년간 통제됐던 호숫가 숲길 민속박물관 등 볼거리도 풍성 연인·가족 추억 쌓기 더없이 좋아
안동댐 보조댐 일원의 수려한 경관을 따라 조성된 호반 나들잇길이 안동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안동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3년 모습을 드러낸 호반 나들잇길은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숲길로 지난 40여 년 동안 통제됐던 곳.
숲과 호수를 따라 걸으며 일상의 찌든 마음을 비우고,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450년 전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된 사랑을 되새길 수 있으니, 둘이서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안동의 민속박물관과 석빙고, 임청각을 비롯해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살펴볼 곳도 만날 수 있다. 물론, 온 가족이 함께 가도 좋은 나들잇길이다.
■ '사랑과 영혼'사연 깃든 월영교
안동 시내에서 안동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안동물문화관 옆에 놓여 있는 월영교를 만난다.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다리'라는 뜻이 담긴 목조다리다.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다. 지난 2003년 놓였다. 450년 전 이 지역에 살았던 고성 이씨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450년 전 부부간 사랑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월영교.
1998년 안동시 정하동 택지개발사업 현장에서 이응태의 부인이자 '원이 엄마'가 쓴 한글 편지와 미투리 한 켤레가 발견됐다.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요절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이 편지 형식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함께 발견된,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한 켤레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07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11월 호에 소개됐고, 이후 많은 연구 논문과 함께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알려졌다.
월영교는 미투리를 형상화해 특이한 모양이다. 다리 가운데의 월영정에 서서 주변 경치를 감상해 보시라. 정말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월영교를 연인이 손잡고 걸으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최근 들어 전국의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조명시설과 분수대가 설치돼 있어 야간 경치가 더 운치 있다.
■웰빙 산책길, 호반나들잇길
월영교를 건너 왼편으로 500m 거리에 안동민속박물관과 개목나루가 있다. 오른편으로는 석빙고와 선성현객사, 월영대를 지나 호반 나들잇길로 이어진다.
우선, 안동민속박물관은 우리 선조의 의식주 생활상과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의미있게 볼 게 많다. 박물관 앞 개목나루는 2월부터 '월령 누리호'란 황포돛배를 운항한다. 또, 전통문화체험장에서는 국궁과 대장간, 떡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안동민속박물관의 베를 짜는 조선시대 아낙네의 모습.
안동 석빙고는 보물 305호. 안동댐 수몰지역인 옛 도산면 동부리 산기슭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조선 영조 때 낙동강 은어를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축조됐다고 한다. 석빙고 위로 선성현 객사와 월영대가 있다.
월영교에서 오른편으로 150m가량 걸어가면 호반 나들잇길 입구다. 호반 나들잇길은 전통천연염색연구소에서 법흥교까지 너비 1.8m, 길이 2㎞ 거리다. 보조댐으로 생긴 호숫가를 걷는 산책길로 8곳의 전망대와 2곳의 정자가 있다. 2013년 12월에 개방됐다.
각 전망대에 오르면 '이응태 편지'와 '태조 왕건의 편지', '고성 이씨 탑동 종택의 손자 원미의 편지'등의 이야기가 현대식 버전으로 소개돼 있어 걸으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울창한 숲과 잔잔한 호수, 바람 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한데 어울려 사색하면서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가로등이 설치돼 야간에 이용하면 더 분위기가 있다. 사진을 찍어 추억으로 남길 장소가 많다.
겨울에는 일몰 후 오후 10시까지, 봄부터 가을에는 자정까지 야간에도 나들잇길을 걸을 수 있다. 굽이지게 설치된 덱 로드와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를 오가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일제의 만행 흔적, 임청각과 법흥사지 7층 전탑
호반 나들잇길을 지나 법흥교 너머에 임청각이 있다. 보물 182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조선 중기 때 건립됐다. 낙동강을 끼고 있고 배산임수 명당에 자리 잡은 99칸 고택이다. 안채에 들어서면 삼정승이 태어난다는 석주 선생의 태실이 있다.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
고택 바로 앞에 일제강점기 때 설치한 철로가 놓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1911년 1월 동생과 아들 등 전 일가를 대동하고 만주로 망명한 석주 선생은 서간도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임시정부 시절에는 국무령을 지냈다.
일제는 1936년 서울에서 경주까지 중앙선을 건설하면서 억지로 임청각을 허물고 철로를 놓았다. 그나마 고성 이씨 문중과 지역 유림이 반발해 그나마 고택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일제가 임청각 앞에 철로를 놓은 것은 석주 선생 일가의 독립운동 의지를 꺾으려는 뜻이었다.
석주 선생의 집안은 손자 대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 이후 안동 유림이 나서 석주 선생의 증손자를 찾아와 한동안 돌봤다고 한다.
현재 임청각은 올해 76세인 석주 선생 증손자와 안동문화 지킴이들이 관리하고 있다. 임청각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7층 전탑이 있다. 국보 16호다. 그런데,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다. 본래 모습은 아니다. 바로 옆 철로 때문이다. 이 역시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글·사진=송대성기자 sds@busan.com
여행 팁
■교통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금호분기점에서 칠곡 안동방면으로 우회전해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남안동 IC로 빠져나와 의성·안동 방면으로 5번 국도를 따라 직진한다. 어가골 교차로에서 안동댐 방면으로 우회전해 육사로를 따라가면 호반 나들잇길로 이어지는 월영교를 만난다. 무료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두면 된다.
버스를 타고 간다면 부산동부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매일 오전 7시부터 50~9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요금은 1만 6천 200 원. 안동버스터미널에서는 30분간격으로 출발하는 안동민속박물관행 3번 버스를 탄다.
■ 먹을 곳
안동은 헛제삿밥과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이 유명하다. 월영교 바로 앞에 까치구멍집(054-855-1056)과 맛50년 헛제삿밥(054-821-2944)이 있다. 헛제삿밥(사진) 9천 원. 양반상 1만 5천 원, 안동간고등어 1만 원. 안동찜닭을 맛보려면 남문동 구시장내 찜닭골목으로 가면 된다.안동본가찜닭(054-842-6655), 안동찜닭종손(054-855-9457), 2만 5천 원(3~4인분).
■ 잘 곳
99칸 임청각(054-858-1705)에서 고택체험을 할 수 있다.보물에서 잠을 자는 이색 체험인 셈. 비용은 5만(2인)~15만 원(6인).연등 체험과 함께 임청각 소개와 석주 선생의 생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