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셴코 대통령측과 대립도 '다리'를 건넌 느낌이다. 당선자는 현 정권이 밀어붙인 몇가지 정책을 비판하며 '남의 신발'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쏘아붙였다. 대표적으로 우크라이나어 사용 강제화 정책이다. 여전히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로셴코 대통령측은 지난달 25일 자신들의 대선공약인 우크라이나어 강제 사용을 의회에서 법제화했다.
이 법령에 따라 우크라이나 모든 국민은 우크라이나어를 배워야 하며, 공공부문 종사자 등에게는 우크라이나어가 의무화된다. 우크라이나는 지역 특성상 서쪽 주민은 우크라이나어를 주로 쓰지만, 러시아에 가까운 동부 지역은 러시아어 사용 지역이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임명한 클림턴 외무장관은 13일 유럽평의회(CoE)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경우, '민스크 평화협정'을 파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언론은 이를 최후통첩이라고 전했다. 민스크 평화협정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2015년 프랑스, 독일의 중재로 분리·독립을 선언한 동부 지역 친러시아측과 합의한 것으로, 해당 지역의 교전 중단과 평화 정착 방안을 담고 있다.
클림턴 장관의 우려는 CoE가 러시아에게 표결권을 돌려줄 경우를 겨냥하고 있다. CoE는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유럽의 국제기구로, 47개 국가가 참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회원국이지만,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제재조치의 일환으로 표결권을 상실했다.
이같은 포로셴코 정권의 어깃장은 젤렌스키 당선자에게 새로운 정책을 펼 타이밍을 빼앗거나 속도를 늦추게 할 여지가 다분해 보인다. 당선자는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크림반도및 동부지역 분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측과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 협상을 더욱 꼬이게 만드는 게 포로셴코 정권의 노림수라고 할 수 있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러시아 스캔들'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유럽연합 역시 지금과 같은 대 러시아 관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젤렌스키 당선자도 국제적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포로셴코 정권에서는 이 흐름이 마뜩치 않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