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치 낚기 외 1편
박연숙
바람은 비늘도 없이 고요하고 밤의 긴 등에는 일곱의 별무늬가 펼쳐진다 밑밥 필요 없는 낚싯줄 끝 둥글어 팽팽해지고 근처의 공기가 투둑투둑 터지며 속살 보인다 흡흡, 들이 마시는 공기로 침몰하는 심호흡에 미끈, 풀밭에 엉덩방아 찧고 보니 가물치 한 마리, 쓰다달다 말도 업이, 입이 꿰었으므로 얕은 데로 끌고 와 보니 두 눈, 별이라도 잡아먹을 듯 번득이는데, 그 눈빛 무서워 제풀에 미늘이 풀릴 때까지, 잡거나 잡히거나 눈 마주치지 못하고 티격태격 웅덩이 물 퍼내면서 밤을 새웠다
화두가 작았던가 태몽이 컸던가,
웅덩이 퍼내고 퍼내다가
아득한 손맛, 아리고 아쉬운
발뒤꿈치, 검은 지느러미 돋는다
이미지 상자
상자는 손가락이 길다. 마술사는 투명하지만 성실하지 않다. 상자는 비둘기를 다 보여주고, 나는 손가락만 의심하다가 트릭을 놓치고 만다. 순간이 즐겁고 싶다면 연통이 되어볼 것. 만취한 마술사의 상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마시기 위해 머리를 처박아 볼 것. 하지만 구름은 검은 커튼 뒤에 사다리를 걸쳐 놓는다. 마술사의 손가락이 상자를 연다. 전생이 왕자였던 잘생긴 남자를 따라 새장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 웨딩드레스를 입고 벚나무 위에서 산산조각 나는 여자, 만삭의 상자에 꽂히는 칼을 피해 뱅글뱅글 웃으며 태어나는 여자, 그리고 곧 멋진 지옥을 선물할, 돈 떼어먹고 사라질 여자가 상자 구석에 숨어 있다.
상자를 뒤집으면 우르르 굴러 떨어지는 입귀눈코, 앙, 진실은 지루해. 거짓말을 보여줘, 의심하지 않을게, 손가락들은 저마다 하나를 가리킨다. 잊지 말 것, 마술사 손가락에는 색색의 눈동자가 열려 있다.
ㅡ『시에티카』 2011년 상반기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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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숙
경기도 이천 출생. 2006년 『서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