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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글씨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안중근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뒤 다음해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순국할때까지 중국 여순(旅順) 감옥에서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시 안중근 의사에게서 작품을 받아간 사람은 모두 일본사람으로 안의사에게 글씨를 쓸 수 있도록 재료를 마련해주고 작품을 부탁했다. 거기에는 당시 사건을 취조한 여순 법원의 검찰관 야스오카 세이시로를 비롯해 주지스님, 간수, 세무관등이 포함되어 있다.
의사의 유묵은 대부분 사형선고 후 40일 동안 이루어진 것으로서 형집행 3일전에 쓴 작품도 있다. "人無遠慮必有近憂"라고 쓴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논어論語』에 나오는 글귀로 "가슴속에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열심히 살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재앙이 생긴다”는 뜻이다. 사형을 며칠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평상시 꼿꼿했던 기백과 정신을 하나도 흐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글씨의 필획에 역력히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중국에 파견되어 대련 세관에서 세무관으로 근무하였던 카미무라 쥬덴이 안중근으로부터 직접 받아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엄한 경관의 눈을 피해 어렵게 손에 넣은 것이므로 더욱 더 귀중함이 인정된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큰 기교를 부리지 않고 안진경 해서풍으로 썼지만 결코 간단하게 평가할 글씨가 아니었다. 점 획 하나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기합(氣合)이 들어가 있고, 그 누구도 감히 모방할 수 없는 통쾌하고 웅장한 기상이 살아있다. 글씨의 기운은 마치 북극해의 얼음을 가르며 물길을 헤쳐 나가는 쇄빙선과도 같은 무서운 힘이 느껴진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는 전문서예의 견지에서 볼 때, 그견해가 분분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필력 면에서는 역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비범함이 있다. 그것은 죽음을 며칠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 나라사랑 인간사랑을 실천하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이 마음속에 꼿꼿하게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휘호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특징은 낙관이다. 그의 낙관에는 언제나 '대한국인(大韓國人)'이라는 글씨가 들어가 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함께 광복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손바닥 도장이 찍혀져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손에 검은 먹물을 묻혀 인장 대신 장인(掌印)을 찍었는데, 이는 서예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안의사는 국가를 위해 온 힘을 다할 결심을 표시하고자 러시아와 중국의 경계인 엔치야라는 곳에서 동지 12명과 함께 손가락을 자르고 단지동맹(斷指同盟)을 맺었다. 그리고 그 피로 한국 국기에 '대한독립'이라는 글씨를 썼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현재 실물이나 사진으로 50여점이 확인되는데, 이중 국내소재 26점은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 개인의 작품을 놓고 볼 때 국가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되어 있고, 미술시장에서 가장 높게 거래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의 작품 값이 높은 것을 애국운동을 한 댓가로서의 이름값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전시는 작품에 실린 가치가 그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많이 진열되지는 않았지만, 예술의 전당 전시장을 가득 메울 정도의 진동과 호연정기(浩然正氣)를 느낄 수 있다. 그가 남긴 유묵에는 '글씨의 본질'을 느끼게 하는 바름의 미학이 있고, 중심을 잃고 사는 세인들에게 깨침을 주는 강한 메시지가 있음을 발견케 한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하셨는데, 아래에 올리는 작품은 모두 그해 3월에 제작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2. 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논어 공야장- 3.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써 몸을 단속한다. -논어 옹야- 4. 서투른 목수는 몇 아름드리 기이한 재목을 다루기 어렵다. -장자 인간세- 5.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나라에서도 행할 수 있다. -논어 위령공- 6. 어질지 않은 사람은 곤궁에 오래 처하지 못한다. -논어 이인- 7.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논어 자한- 8. 높은 곳을 오를 때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중용 제15장- 9.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근심이 생긴다. -논어 위령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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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교수님 다녀오셨군요..저도 시간만들어서 가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환절기 건강하십시요...
좋은 글을 담기 위해서는 '수신성'이 바탕에 깔려 있여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좋은 글과 안중근의사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페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점에 대해서는 더욱 감사드리고요...... 늘 건강하시고, 카페가 더욱 발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꼭 해야할 일을 미루고 있다가 며칠전 안중근 의사의 글씨를 보고 충격을 받아,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안의사의 작품이 2억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란적이 있는데,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의 서예도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불굴의 정신과 기백이 있다면 존경과 대접을 받지 않을까요. 요즘 글씨쓰는 사람만나면 빼놓지 않고 안중근 의사유묵전이야기를 합니다.
볼만한 전시였습니다. 저도 전시를 보면서 결기에 찬 안의사의 글씨에 그 사람의 성정이 담겨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분이 보여준 인생을 오늘날의 서예인들은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른 예술과는 달리 서예는 기상을 중시합니다. 지금 서예가 점점 쇠약해져가는 이유는 글씨를 쓰는 기교와 조형성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타락에 있지 않은가 봅니다. 무디어진 도덕적 감수성은 심미적 감수성에 큰 영향을 미침니다. 불의를 보고 놀랄줄 모르고, 노할 줄 모르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회적 관행은 미래사회를 암담하게 합니다. 전시를 보면서 안중근 의사글씨의 필획에 담긴 '浩然正氣'가 사람들의 정신에 누적된 노폐물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말에 서울에 가는데 그때까지 전시회를 해야 할텐데 --- 꼭 보겠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잘 해석이 되지 않는 구절이 있네요 이왕이면 간단하나마 정확한 풀이까지 해 주시면 금상첨화겠습니다 넘 많은 것을 요구하나요^^ 덕분에 잘 감상했습니다 꾸벅
앞서 쓴 글을 지우고 다시 썼습니다. 그리고 원문 해석과 출처를 밝혔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는 말은 안중근 의사의 자작글로 보여집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과거에 한학자 이시자 성대 교수이셨던 故 淵民 李家源선생님께서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글은 중국의 王安石의 글귀라고 말씀 하시더군요 그때 정확한 원문과 원전을 말씀 해주셨는데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수업시간에 정신이 산만한 탓에 원문과 원전을 잘 기억을 못하겠군요-_-;강의 노트도 없어지고ㅜㅜ 암튼 왕안석 글귀는 확실합니다
민족의 위대하셨던 장군님의 품에서 쉬어감에 감사드립니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져 옵니다. 감사합니다.
泰山喬嶽..
저도 이 전시를 보았습니다. 애국심에 불타오르면서도 정말 존경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기린 선생님의 말씀 도덕적 불감증에 대한 말씀이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뒤질랜드에서 살면서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 왔읍니다. 너무도 물질적인 변화와 그것을 신격시하며 추종하는 사회와 사상적 혼돈과 모순들이 저를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안중근 장군님의 애국충정을 토하는 글씨는 '만고청상'- 푸른 서기를 띠웁니다. 진정한 나라사랑,겨레사랑을 배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