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초이' 최희섭 ⓒ gettyimages/멀티비츠 |
강정호(27·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인해 관심을 받게 된 선수는 지난해까지 강정호와 함께 뛰었던 '홈런왕' 박병호(28·넥센 히어로즈)다. 박병호 역시 메이저리그를 꿈꾸고 있다고 밝혔다.
강정호-박병호 2014시즌 성적 비교
강 .356 .459 .739 40홈(36D2T) 117타 68볼106삼
박 .303 .433 .686 52홈(16D2T) 124타 96볼142삼
그렇다면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강정호와 비교하면 박병호의 위치는 꽤나 불리하다. 박병호는 올시즌 후 포스팅 자격을 얻는데, 이는 1986년 7월생인 박병호가 1987년 4월생인 강정호보다 두 살 더 많은 나이(만 29세)로 포스팅에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박병호가 1루수, 그것도 우타자라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우타자보다 좌타자 1루수를 선호한다. 8개의 수비 포지션 중 네 개(포수 2루수 유격수 3루수)를 대부분 우타자에게 내줘야 하다 보니(물론 이들 포지션에도 우투좌타 선수들이 있다) 1루수와 외야수는 좌타자가 맡기를 바란다(한편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55%의 우타자와 30%의 좌타자, 15%의 스위치히터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120경기 이상 나선 23명의 1루수는 좌타자 15명과 스위치히터 두 명(마크 테세이라, 카를로스 산타나) 그리고 우타자 6명(앨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 호세 아브레유, 에드윈 엔카나시온, 가비 산체스, 마크 레이놀즈)으로, 우타자의 점유율은 26%에 그쳤다.
1루수가 가진 특수성도 각 구단들이 큰 돈을 들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지난해 한국 팬들은 LA 다저스(애드리안 곤살레스)와 텍사스 레인저스(프린스 필더)의 경기를 보면서 1루수의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했다. 1루수가 포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내야 수비 전체가 흔들린다. 그럼에도 1루 수비는 아무나 데려다 놓아도 해낼 수 있다는 게 전통적인 스카우트들의 생각이다. 이는 세이버메트리션들도 다르지 않은데, 승리 기여도(WAR)를 계산할 때 1루수에게는 지명타자 다음으로 낮은 포지션 가중치가 주어진다(1위 포수).
지난해 fWAR 공격 부문 20걸의 포지션
포수 : 1명(포지)
1루수 : 6명(아브레유/리조/미기/골디/엔카/프리먼)
2루수 : 2명(알투베/카노)
3루수 : 2명(렌돈/벨트레)
유격수 : 1명(툴로위츠키)
좌익수 : 1명(브랜틀리)
중견수 : 2명(트라웃/매커친)
우익수 : 4명(스탠튼/바티스타/푸이그/워스)
지명 : 1명(빅터 마르티네스)
그렇다 보니 메이저리그의 1루수는 적지 않은 수가 수비 문제 또는 노쇠화 문제로 인해 다른 포지션에서 이적해 오는 선수들로 채워진다.
지난해 미네소타는 포수로서의 생명력이 다했다고 판단한 조 마우어(31)를 1루로 옮겨줬다. 클리블랜드는 얀 곰스(27)라는 훌륭한 포수를 얻게 되자 원래 포수였던 카를로스 산타나(28)에게 1루를 맡겼다. 피츠버그도 3루 수비가 불안한 페드로 알바레스(27)를 올해부터 1루수로 쓰기로 했다. 올해부터 워싱턴의 1루를 맡는 선수는 팀의 프랜차이즈 3루수였던 라이언 짐머맨(30)이다.
지난해 1루수로 120경기 이상을 출전한 23명 중 10명은 원래 3루수(앨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 마크 테세이라, 에드윈 엔카나시온, 마크 레이놀즈) 또는 포수(조 마우어, 카를로스 산타나, 저스틴 모어노, 맷 애덤스, 가비 산체스)로 입단했거나 데뷔한 선수들이었다.
3루에서 1루로 ⓒ gettyimages/멀티비츠 |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1루수는 19명이었다. 이는 3루수(23명)나 유격수(22명)보다 적은 숫자인데, 최근 오클랜드가 주도하고 있는 플래툰 열풍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포지션이 바로 1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샌프란시스코(버스터 포지)나 밀워키(조너선 루크로이)처럼 지명타자가 없는 내셔널리그 팀은 주전 포수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1루를 활용하기도 한다.
1루에서 많은 플래툰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리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올해 피츠버그는 알바레스를 1루로 보내면서 좌완에게 약한 알바레스를 대신해 우완 선발 경기에 나설 선수로 코리 하트를 영입했다. 하지만 하트의 계약이 1년 250만 달러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우타 플래툰 1루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비정규직일 뿐이다. 플래툰 1루수를 포스팅으로 영입할 팀도 없다.
바로 이 1루수라는 약점 때문에, 시카고 컵스와 플로리다 말린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며 메이저리그를 꿈꿨던 이승엽도 일본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아시아 1루수는 두 명이다. 363경기에 나서 40개의 홈런을 때려낸 최희섭(2002~2005)은 시카고 컵스가 '좌타 거포'인 정통 1루수를 기대하며 길러낸 선수였다.
최희섭의 메이저리그 성적
02 : .180 .281 .320 .601 / 024G 02홈런 04타점
03 : .218 .350 .421 .771 / 080G 08홈런 28타점
04 : .251 .370 .449 .819 / 126G 15홈런 46타점
05 : .253 .336 .453 .789 / 133G 15홈런 42타점
다른 한 명은 일본 선수 나카무라 노리히로(41)다. 긴테스 버펄로스 소속으로 당시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우타자였던 나카무라(30)는 2005년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메이저리그가 그를 3루 요원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1루수 나카무라'에 입찰한 팀은 다저스였다. 하지만 포스팅 금액은 발표되지 않았고, 나카무라는 다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다저스가 나카무라에게 준 기회는 41타석이 전부였다(.128 .171 .179). 나카무라는 1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갔고 2000안타 400홈런을 달성했다.
하지만 큰 돈을 들여 외국인 1루수를 영입해 대박을 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6년 6800만 달러 계약으로 '쿠바의 배리 본즈' 호세 아브레유를 잡았고, 아브레유는 신인왕과 함께 MVP 투표 4위에 오르며 '우타 1루수'라 꺼려했던 다른 팀들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아브레유는 아니더라도 당장 메이저리그의 주전 1루수로 활약할 수 있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넥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포스팅을 받아들이거나 선수가 실망스러운 계약 조건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분명 상황은 쉽지 않다. 그러나 1년 전만 해도 메이저리그 팀이 1600만 달러(174억 원)의 비용을 들여 강정호를 데려갈 거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없었다. 다저스가 류현진에게 가졌던 확신, 강정호를 향한 피츠버그의 믿음처럼, 박병호에게서 성공 가능성을 찾아내는 팀 역시 나타날 수 있다.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적어도 메이저리그는 박병호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강정호를 보러 온 스카우트들은 이미 박병호의 경기력도 충분히 봤다.
메이저리그를 향한 꿈이 홈런왕 박병호에게 큰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 다른 기적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