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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라도 광주를 방문할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는 언니가 광주 오월 걸음 걷기를 권해서 따라갑니다.
축지법 가능케하는 KTX 고속철도는 광주 여행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도 서울에서 광주는 꽤 먼 여정이라 이동시간 들인 만큼 최대한 많이 둘러보고 오려 합니다.
국립광주 박물관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이건희 컬렉션이 주제입니다.
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국보급 보물 포함, 귀한 자료를 볼 수 있는 기회라 만장일치로 여행 일정에 넣었습니다. 서울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는 예약하기도 힘들 만큼 경쟁률이 높았습니다.
이제 서울에서 전국으로 흩어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수집품을 안 볼 이유가 없지요.
간송미술관 전형필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국보를 국민에게 되돌려 준 이건희 회장님이 존경스럽네요.
수북한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지는 박물관 입구는 사람의 빗질로 치워도 치워도 소용없습니다.
세월의 흔적 같다고 할까요? 시간은 두터운 낙엽처럼 켜켜이 쌓여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롱나무가 도열한 징검다리 발판을 지나 당당한 기와가 얹어진 국립광주 박물관이 나타납니다.
믿을만한 호위무사와 노련한 집사가 있는 성에 귀한 보물이 맡겨져 있는 느낌입니다.
국립박물관 이미지는 광주의 영문 첫 글자 'g'와 대표 문화재인 도자기를 모티브로 합니다.
해와 달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바꾸듯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국립광주 박물관의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전시 안내 책자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 베트남어가 제공됩니다.
광주에도 서울처럼 외국인, 단체, 어린이 관람객 다양합니다.
기대하고 온 전시회가 1층에서 진행 중입니다.
우린 각자 돌아보고 입구에서 다시 모이기로 합니다.
보고 싶은 대상, 머물고 싶은 시간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각자 제일 기억에 남는, 혹은 맘에 드는 유물을 이야기해 보기로 말이죠.
그래서 나름 순위를 매겨가며 보다가 경중을 매길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귀하고 가치 있다기보다는 내 맘에 좀 더 남는 작품이 어떤 것일까 기억하기로 합니다.
초대장을 읽고 들어갑니다.
'수집가의 취향'
수집가는 특정 시대나 사조에 치우치지 않고,
폭넓고 수준 높은 문화재들을 모아 소중히 간직하였습니다.
이전의 수집가들이 자신이 애호하는 특정 장르에
집중한 것에 반해, 수집가는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며
남다른 취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다채로운 수집품들은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전통 미술품에 담긴 수집가의 취향을 느껴보세요.
조선 19세기 말 ~20세기 초로 추정되는 나무와 유리로 된 주판입니다.
학원에서 배운 주판알과 다르게 아래가 다섯 알이네요. 올림 방법이 다를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전시품이 있으면 화면을 클릭합니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작품 안내는 접근하기 쉽고 도움 됩니다.
상투 머리에 씌우던 가죽과 금속 장식 도구는 남자들의 멋 내기 수단이었겠습니다.
부채나 고리에 장식과 향 등을 달던 선추입니다.
조선 19세기 나무와 명주실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조선시대 권력과 재물 있고, 남성 패션잡지에 나올만한 멋쟁이들의 선택입니다.
화려한 도자기와 악기도 수집했네요.
제 눈길을 확 이끄는 달 항아리입니다. 이따 친구에게 이 작품이 맘에 들었노라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은은한 달빛은 화려하지 않음에도 지구를 끌어당기는 듯한 은근한 힘으로 저를 당깁니다.
조항진 초상초상화로 유명했던 화원 이명기 작품입니다.
문신 조항진 ( 1738~1803 ) 초상의 초본과 정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얼굴 주금, 검버섯, 수두 자국 등 사실적 묘사를 보입니다.
관모를 쓴 반신상 모습으로 초본은 평상복 도포 차림, 정본은 흑단령 관복입니다.
단학흉배와 민무늬 오사모 등을 갖추고 있어 주인공 품계를 짐작해 봅니다.
오른쪽 상단에 정 5품 벼슬인 교리를 지냈고, 철종 임술년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고 적고 있어 후대에 남긴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친 붓 터치가 보이는 분청사기 조화 모란무늬 항아리 입니다.
조선 15세기 후반 ~ 16세기 전반 작품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안목과 오랜 경험으로 쌓인 전통을 보는 눈은 수집가의 목록 상당수를 국가지정문화재로 만들었습니다. 이 전시회에서 회화, 도자, 불교 공예품 총 16건의 국가지정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효자전은 아이들과 함께한 어른들에게 인기 있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이 쓴 효도에 관한 글입니다.
이건희 에세이 ( 1997년 )
"정보화와 관련해 본다면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의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글은 기막히게 과학적인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여느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건희 회장님의 생각이라 하니 되새겨 읽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반도체를 일으켰구나.'
월인석보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말로만 듣던 그 보물입니다.
1459년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지은 '석보상절'(1447)과 세종이 편찬한 '월인천강지곡'(1449)을 하나로 엮어 만든 책입니다. 1457년 세상을 뜬 왕세자 도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책입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용비어천가' 체재에 따라 제작합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먼저 나온 불경언해서로, 조선 전기 한글 연구에 귀중한 문헌입니다.
이렇게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는 역사라니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공간이동하는 기분입니다.
사람의 시간은 지구의 시간에 비해 미미해서 월인석보와 나 사이에 시간이 잠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의 자는 이 세월이 크기만 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백자는 청자에 비해 값이 5배 이상 차이 날 정도로 수집가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외면받던 이 백자병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수집품이 됩니다.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선택된 유물은 1991년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되어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됩니다.
사람도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인연을 만난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나는 나답게 살다가 언젠가 인정받을 수도, 죽고 나서 가치가 재 조명될 수도 있습니다.
경기도 광주 분원마을에서 제작한 도자기를 만나니 새삼 반갑습니다.
주로 왕실에 진상되던 도자기들이었습니다.
광주 축제에서 재현되었지만 이 백자는 수백 년 전 공기와, 사람들의 손길을 겪었습니다.
업경대의 배웅을 받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비추어보는 거울입니다.
배웅하며
지금까지 우리의 큰 삶의 궤적을 남기고 떠난 한 기업가의 전통문화를 애호했던 수집가로서의 면모를 돌아보았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가의 높은 안목과 취향으로 모인 아름다운 옛 미술품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간을 초원하여 예술을 감상하고 즐기는 법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기증품의 첫 지역 나들이인 이번 특별전을 통해,
수집가가 그랬듯 마음의 기쁨과 정신의 조화를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광주 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서화 전시품 교체 일정 안내
아시아 도자문화실
국립광주 박물관
관람 시간 10:00~18:00
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휴관
관람료 무료 / 입장 종료 30분까지
유모차, 휠체어 무료 대여
어린이 박물관 10:00~17:00 ( 매월 첫째 주 월요일 휴관 )
어린이 박물관 관람 및 교육 프로그램 신청
예약 문의 062-570-7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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