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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항복하라.”
그Franciscus Assisiensis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무분별했습니다. 방탕했습니다. 기사가 되고 싶은 야심에 불탔습니다. 실제로 기사가 되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부자였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많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중병에 걸려서 죽다 겨우 살아났습니다. 이후, 그는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결심을 돌이키기 위하여 설득하다 나중에는 체벌까지도 마다하지 않은 아버지와의 관계는 물론 많은 재산의 상속권도 포기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과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서 아버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사회를 떠나 사막에서 생활하며 구걸로 연명하는 가난한 은수자Hermits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던 밤이었습니다.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거지였습니다. 비에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추위에 떨면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그는 즉시 거지를 방안으로 들였습니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거지는 나환자였습니다.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있었습니다.
거지는 너무 배가 고프니 저녁을 먹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비에 젖은 거지의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고름이 줄줄 흐르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흉측한 나환자와 마주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녁을 대접한 후, 잠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가 막 잠이 들려고 할 때였습니다. 거지가 다가왔습니다. 너무나 춥다면서 함께 침대에서 잘 수는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거지와 함께 자게 되었습니다. 거지의 몸에서는 여전히 피고름과 진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썩은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거지를 두 팔로 안았습니다. 자신의 체온으로 거지의 언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새벽 기도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함께 잠들었던 거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같이 잔 흔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방안은 깨끗했고, 빛났습니다. 냄새마저도 향기로웠습니다. 순간,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자신을 찾아와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즉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하나님께 “평화의 기도”라고 알려진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항복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바른 신앙의 자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원하십니다. 성숙한 신앙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다른 누구보다 크고, 놀랍고, 엄청난 일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에 옮겼을 때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의지 전체를 하나님께 맡겼을 때 곧 항복했을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항복이 삶의 특징이었던 그는 미처 깨달아 알지도 못한 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그A. W. Tozer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고, 아직도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으며,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을 상대로 명령하고 있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간섭하려고 한다.”라고 외쳤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장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외쳤습니다. 항복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부리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외쳤습니다.
영향력 있는 작가로 알려진 그녀Stomie Omartian는 “왜 어떤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도무지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왜 그들은 계속해서 일이 꼬이고 그저 근근이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것일까? 그들은 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거의 맛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 앞에 두신 (크고 위대하며 놀라운) 목적과 사명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항복’에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특징은 완전한 항복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항복했습니다. 모세가 성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맨발이 필요했습니다. 완전한 항복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완벽한 항복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창세 전 작정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당신이 지으신 피조물로부터 모진 고난과 핍박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허물과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불과 유황이 꺼지지 않고 타는 지옥 불구덩이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이루어드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항복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 호흡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죽은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순간순간, 저와 여러분을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완벽하게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뜻과 의지와 계획까지도 완벽하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완벽하게 항복했을 때 부어지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줄도 모른 채,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한 가르침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대로 돌려보냈다가는 기진해서 쓰러질 수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마을로 보내서 허기진 배를 채우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눅9:13a)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성인 남자만 족히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히 파격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명령이었습니다. 절망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확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외쳤습니다.
지금 순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명령을 내리셨는지 알고는 있느냐는 핀잔이 섞여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은 민가로부터 떨어진 들판이었습니다. 오천 명 이상을 한꺼번에 먹일 음식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구할 수 있어도 제자들에게는 음식을 살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 곧 저와 여러분의 계산법으로 볼 때는 그렇습니다. 너무나 쉽게 놓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백방으로 노력해 봤지만 해결하지 못한 질병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귀신에게 붙잡혀 짐승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남편을 잃은 직후 독자 아들까지 죽어버린 상황에서 절망하는 여인의 문제 곧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해주시는 바로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심을 받은 현장에서는 자신들도 똑같은 일을 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까지 단 한 차례도 불가능한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무리를 앉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은 과연 어땠을까요? 기대에 들떴을까요? 아니면 절망적이었을까요? 아니면 이제까지 없었던 믿음이 갑자기 생겼던 것일까요?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가 보였던 것일까요? 어쨌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믿음입니다. 완전한 자기 부정입니다. 완전한 신뢰입니다. 완전한 의존입니다. 완전한 맡김입니다. 완전한 굴복입니다. 완전한 항복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병이어를 축사하셨습니다. 떼어 주셨습니다. 감질이 날 정도로 찔끔찔끔 떼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먹고 다 배불렀더라.”(눅9:17a)라는 증거대로, 노약자까지 포함하면 이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다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길 정도로 넉넉하게 떼어 주셨습니다. 제가 경험한 선교 현장은 언제나 이랬습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현실적으로는 늘 부족했습니다. 일단 항복하고 순종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풍성하게 채워졌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나누고도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항복은 지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의지적인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Charles de Foucauld는 젊은 시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의 참모습을 사람의 경험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졌습니다. 여인들과 더불어 밤낮으로 파티를 즐겼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크게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했습니다. 이후로, 뜻과 의지와 계획의 주체인 자신을 철저하게 숨겼습니다. 금욕을 추구했습니다. 은수자로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하는 기도를 수없이 반복해서 드렸습니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하나님께
내 영혼을 바칩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은 참으로 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아무도 찾을 수 없습니다. 누가 주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그분의 의논 상대가 되었습니까? 누가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답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롬11:33-35)라는 증거대로,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성민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무려 사십 년 동안이나 가르쳐 주신 것은 하나입니다. 전적인 하나님 바라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항복입니다. 완전한 항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작정한 자신으로 온전히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항복의 정도 만큼 하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여전히 죄에 지극히 취약한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항복하고 싶다고 골백번 고백해도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용을 쓰며 몸부림친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종교 장사치들에게 붙잡히자,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치기에 바빴던 제자들을 죽음을 불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용사로 거듭나게 해주셨던 성령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을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어가고 계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항복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해를 구하지도 않고 항복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무엇보다 호흡하는 모든 순간, 성령께 완전히 사로잡힐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는 바로 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복된 삶, 어두운 시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는 복된 삶, 무엇보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누리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길 수 있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