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 7,23-28; 루카 11,14-23
+ 찬미 예수님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지금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저자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을 우기는 걸 보면, 그들이야말로 정말 마귀 들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베엘제불’은 언뜻 자동차 엔진 세정제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가나안의 신 바알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루카 복음에서는 사탄과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였는데요, 여기서 ‘시험한다’(πειράζοντες, 페이라존테스)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에게 유혹받으셨다(πειραζόμενος, 페이라조메노스)고 할 때 사용된 단어와 같습니다(루카 4,2). 이들은 악마가 예수님께 했던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저희를 유혹(πειρασμόν, 페이라스몬)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11,4)”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나오는 ‘유혹’ 역시 ‘시험’과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후에 즉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하느님의 손가락’이라는 표현은 탈출기에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파라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 모기가 창궐하는 셋째 재앙 후에 파라오의 요술사들이 파라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입니다.”(탈출 8,19)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당신이 모세와 같은 예언자이실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을 통해 이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이어서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중립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이거나, 아니면 예수님 반대편에서 흩어 버리는 일을 합니다. 흩어 버리고 분열시키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며 더욱 안타까운 점은, 예수님께 대한 반대가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린다고 험담하고,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요구합니다.
처음엔 어느 한 사람이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에 솔깃해하는 사람들이 동조하고,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뒷담화를 하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독성죄를 범하는가 하면, 마귀가 한 것처럼 예수님을 시험해 보려고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서서히 수난의 길로 향하고 계십니다.
20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버나드 로너건 신부님은 인류 역사에 출현한 편견을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요, 그중 하나는 ‘집단적 편견’으로서, 사회의 특정 집단이나 부류가, ‘선’(善)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편견입니다. 교황님께서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집단적 편견의 큰 통로가 뒷담화입니다. 오늘날은 언론이 잘못된 정보와 해석을 함부로 유포하면서 집단적 편견을 부추깁니다.
오늘 제1독서는 마치 예수님께서 백성들 한가운데서 말씀하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 그런데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이 민족은 야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하느님 말씀인지, 하느님을 거스르는 말인지 의식하면서, 내가 하는 말이 예수님 편에 서서 하는 말인지, 그 반대편에서 하는 말인지 성찰해야겠습니다. 우리와 우리 주위의 편견을 주님께서 정화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미켈안젤로, 아담의 창조 중 일부 (15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