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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과 분노
32: 1-35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 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 저편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 모세가 그들의 만든 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우니라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22.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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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받은 백성이다, 언약의 백성이다”하는 말을 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배역하였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또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보면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입니다. 이 시간 금송아지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행 7:39에 보면 스데반이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행하여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1) 모세에 대해 항상 불만이 있었습니다.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사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늘 복종만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경험했으면서도, 그리고 광야에서 자신들을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믿음은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언약을 맺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습니까? 모세는 중개인 역할만 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당사자인 본인들이 전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모세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자신들을 향해 베푸시던 하나님의 기적이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제 모세도 부인하고, 자신들이 직접 신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과 자신과의 1:1관계입니다. 위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뭐합니까? 또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정작 자신은 전혀 믿음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신들에게 조금 이익이 되면 그때는 좋아하다가,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마치 자신은 제 3자인 것처럼 모세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 아닙니까?
1절에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다면 시간이 조금 더디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2) 그 마음이 항상 애굽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을 행하여”
이들의 마음 속에는 애굽에서 지내던 때의 정신이 너무나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출 14:12에 그들이 홍해를 만났을 때 한 말입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6:3에 먹을 것이 없을 때 한 말입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민 11:4에는 만나만 먹는 것에 대해 말을 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 14:3에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후에 한 말입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이 어떤 곳입니까?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애굽에서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많아질까 염려해서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날마다 심한 고역으로 괴로워했던 곳입니다.
출 2:23에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그런데도 계속 그 마음이 애굽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 누구나 자신의 생활에 대해 만족해서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 안되겠다, 이제는 제대로 살아야 되겠다” 결단을 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예전의 생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하던 일들을 그대로 하는 것이 바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하는 것 아닙니까?
이집트는 원래 다신교입니다. 수많은 신들 중에 태양신을 가장 많이 섬기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던 고센 근처의 멤피스라는 지역에서는 소의 모양을 한 아피스 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일이 눈에 익었습니다.
과거에 너무나 익숙해진 것,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2. 그러면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1)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입니다.
새벽에 출애굽기를 강해하면서 십계명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1계명이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고 2계명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구약 시대는 ‘다른 신’들의 홍수 속에 살던 때였습니다. ‘태양신’‘달신’‘산신’‘폭풍의 신’‘질병의 신’뿐만 아니라 도시마다 각기 ‘수호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본따 돌이나 나무로 수많은 신상들을 만들었습니다. 신상이 없는 종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시대에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피조물입니다. 결국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당연히 구별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감히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형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만일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어떤 형상 안에 제한시켜 놓은, 하나님이 아닌 또 ‘다른 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하나님을 한갓 송아지로 만들지 않습니까? 4절에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금송아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입니까?
2) 그들의 잘못된 제사입니다.
6절에 “이튿날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하나님이 아닌 금으로 만든 송아지에게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자신을 드린다는 의미로 드리는 제사요, 화목제는 더 가까워지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지 않고 금송아지 앞에 헌신을 다짐하고, 금송아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한 제사가 어떻게 바른 제사가 될 수 있습니까?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놀며”
지금까지 하나님의 존재는 그들에게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지금 그들이 있는 위치는 시내산 아래입니다. 시내산은 거룩한 산입니다. 시내산을 가면 순례자들로 꽉 메워지지만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내산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출 24:에 언약식을 체결할 때도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만 산에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예 가까이 갈 수도 없었고, 모세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들이 만든 신 앞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합니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오늘날 예배가 점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변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신자가 좋아하는 예배’
‘열린 예배’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신자가 예배를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불신자가 좋아하는대로 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까?
성경은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이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사실 죽은 예배는 그 예배가 얼마나 활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느냐 받지 않으시느냐에 달려 잇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를 통해 자신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진다 해도 예배의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상 앞에서 자기 만족을 얻으려 하고, 이방신들의 축제와 똑같이 먹고 마시고 뛰노는 것은 육체적인 쾌락을 얻는 겁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출 23:에 하나님이 3대 절기를 만들어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도 지금 또 하나의 절기를 만들어 선포하고 있습니다.
5절에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금송아지로 여호와를 대체한 것에 대한 절기입니까?
그리고 금송아지를 만든 재료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은금 패물 중에서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으로 은금을 취하게 하신 하나님의계획은 그것으로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을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출 25:2)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제물을 불의의 재물로 사용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쓰여질 물질이 우상을 섬기는 데 쓰여진 것입니다.
3. 아론의 범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잘못된 일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아론에게 있습니다.
왜 아론이 이런 실수를 범하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갈 때 아론은 장로들과 함께 산 중턱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이 할 일은 모세를 위해 기도하면서 또 이스라엘 백성을 감독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기도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고 감독의 사명도 다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지도자가 어떻게 제대로 감독할 수 있겠습니까?
지도자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아론은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것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말씀으로 그들을 바로 세워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요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라”고는 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성경적이지 않는 방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합니까? 아니면 성경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가르쳐 줘야 합니까?
처음에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너무나 가난하니까 헌금에 대해 차마 말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시간이 흘러도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선교 본부에서 “이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라고 회신이 내려 왔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라고 하니까, 정말 그 어려운 중에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굳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가까운 분들에게 너무 많이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을테니까 아시겠지만 그때부터 물질적인 축복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백성들이 신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어떻게 대합니까?
2절에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어떻게 영적인 지도자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백성들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떻게 변명합니까?
22-24절에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이것은 절대 지도자가 할 말이 못됩니다. 분명히 자신이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는 말이 되는 말입니까? 그리고 그 책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부 떠넘기고 있지 않습니까? 지도자는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바로 세워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냉정할 필요도 있고, 어떤 때는 무관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차갑게 말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따갑게 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지금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부분을 감당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4. 사단의 개입
이 사건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사건의 배후에 사단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실제로는 그 뒤에서 조종하는 사단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제사지낼 때 절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조상신이 있습니까? 그래서 밥과 음식, 과일을 차려 놓으면 조상이 먹고 간다고 믿으십니까? 그래서 잘 먹고나면 죽은 조상이 살아있는 후손을 도와주는 겁니까?
우리가 살아있을 때에도 아무런 힘없이 지내다가 죽고나면 무슨 초능력을 가진 귀신이 되는 것입니까?
지금 산 위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의 내용들을 모세에게 알려주고 계시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가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금송아지로 하나님을 대신하게 하려 한 것은 사단의 공작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행하는 순간에도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모세가 내려오다가 그들의 행위를 보고 대노하여 언약의 돌판을 깨뜨립니다.
19절에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느니라”
모세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혈기입니다. 40세 젊은 나이에 혈기 때문에애굽 사람을 쳐죽이고 그로 인해 40년간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던 사람이 사람 앞에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혈기가 남아 있습니다. 후일에 므리바에서 자신의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반석을 두 번 내리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 않았습니까?(민 20:11)
그런데 지금 아무리 상황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이 직접 새겨주신 그 돌판을 집어던집니다. 당연히 돌판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사람의 약점을 이용합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움직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괴하고 금송아지를 새로운 신으로 섬기게 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돌판을 깨뜨리면 언약이 깨어질 것이라 생각하여 모세를 분노케하여 돌판을 던지는데도 성공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조상을 잘 섬긴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제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상을 숭배하는 방법을 성공시켰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상 숭배에 젖어들게 된 것입니다.
5.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언약
그러나 그것으로 상황이 끝났습니까? 그렇다면 완전한 사단의 승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아론도, 심지어 모세까지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깨어어져 버리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산으로 올라오게 하십니다. 물론 다시 오를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출 34:1-3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이 말이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하나님이 친히 돌판을 준비해주셨지만 이제는 자신이 깨뜨린 것과 똑같은 돌판을 자신이 직접 깎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라,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아무도 함께 오르지 말라고 하셨고, 양과 소도 산 앞에 있지 못하게 하시니 결국 혼자서 그 무거운 돌판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야했습니다. 시내산이 지금도 올라갈 때는 얼마나 가파릅니까? 그 가파른 길을 무거운 돌판을 들고 올라가는 모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깨뜨린 언약의 돌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의 돌판은 새겨졌습니다.
요나서를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합니다.
“니느웨로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쳐서 외치라”
욘 1:3에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낮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요나를 결국 스올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오게까지 하여 다시 니느웨로 보냅니다. 그리고 요나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불순종하여 거역하든지, 분노하여 깨뜨리든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도 없이 하나님을 배역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분노할 때도 수없이 많지만 그런 자들을 통해 끝까지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늘 불순종하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늘 분내하는 우리들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