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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운 혀의 중요성
여러분의 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아니면 여러분은 혀의 매력에 대해서 참으로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여러분이 가진 아름다운 얼굴이나 여러분의 훤칠한 키나 또는 예쁘고 멋진 의상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훌륭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결정해 주는 것은 여러분의 혀입니다.
혀는 해가 지날수록 새로운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혀는 보통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가 있습니다. 혀는 상처 나고 할퀸 자국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혀는 흥분해서 성질부리는 것을 누그러지게 할 수가 있습니다. 혀는 낙담한 영혼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혀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성경은 혀를 배의 키로 비유하는데 배의 키는 작은 것이지만 큰 배의 방향을 조정합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약3:4).”
성경은 또한 혀를 불에 비유하는데 불의 작은 불꽃이라도 큰 불을 낼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3:5).”
혀는 여러분의 결혼 생활을 세울 수도 깨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가정을 낙원으로도 사망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자녀들을 사랑 가운데서 여러분에게 이끌 수도 있고 미움을 일으켜 여러분에게서 떠나가 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혀는 친구관계를 유지하게도 하고 친구를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주장을 방어해 줄 수도 있고 나쁜 주장을 저지하지 않고 허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고용되느냐 해고되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치료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수도 있고 그에게서 멀리 떠나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저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해낼 수도 있고 사람들을 자멸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잠언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명성은 대부분 여러분이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인격에 딱지를 붙입니다.
매력 있는 혀를 개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7-8).”
그러면 어떻게 혀를 조정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것을 아름답고 유익한 힘을 가진 물건이 되게 길들이고 훈련할 수 있을까요?
이 강력한 기관은 더 강력한 힘으로 조정할 때에만 아름답고 능력 있는 기관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거룩하신 성령님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행1:8).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맨 처음 사용하신 이 땅의 대상물은 바로 혀였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의 축제 때 예루살렘을 방문한 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며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던 시몬 베드로가 설교하려고 일어섰는데 성령님은 그의 혀를 놀랍도록 사용하여 3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감동되고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저주하던 혀를 회개하는 혀로 변화시키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의 혀는 여러분 자신의 노력만으로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생각과 의지를 주셨고 여러분이 그것을 사용하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혀를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2. 아름다운 혀는 조용한 혀입니다.
어떤 유명한 어학자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7개 국어를 할 수 있으면서도 침묵할 수가 있다.”
성경은 침묵을 지키는 기술에 대해서 결코 침묵하고 있지 않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전3:7).”
우리 모두가 너무 자주 우리의 때들을 뒤섞어서 침묵할 때 말하고, 말해야 할 때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약1:19).”
우리들은 대부분 다 꼭 그 반대로 해서 듣기는 더디하고 말하기는 속히 합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18:2).”
어떻게 아름다운 혀로 가꾸어 나갈까요?
“건설적인 침묵”을 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혀를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꼼짝 못하게 묶어 침묵하는데 근육의 힘이 훨씬 더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건설적인 침묵은 쓸데없는 잡담을 제거해 줍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말하기는 더디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내용 가운데 건설적인 목적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중 많은 부분이 그저 잡담인데 참말을 섞어 넣은 것도 있고 절반쯤 참말인 것도 있고 완전히 참말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건설적인 침묵은 다른 사람과 더 잘 조화하도록 도와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혀를 조금만 더 가만히 쉬게 놓아 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많이 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야고보서 1:19에 말과 성내는 것을 함께 가까이 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말하기는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라.”
우리는 성이 나면 극도로 충격적인 말하게 됩니다. 우리는 화가 나면 아주 빠르게 말합니다. 성이 났을 때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하게 됩니다. 신경질과 목소리는 함께 올라갑니다. 다툰 후에 상처를 남기는 것은 불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급하게 뱉어버린 말들 때문에 생깁니다.
건설적인 침묵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저 열심히 들어주는 “울림판” 노릇을 해주기만 해도 가끔 다른 사람들을 크게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그런 경우에 꼭 슬기로운 조언이나 굉장한 지혜의 말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저 열린 귀만 준비해도 되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정신과 의사는 그의 치료의 중요한 부분이 그의 환자들이 그들의 마음을 이야기할 동안 가만히 잘 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시인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환자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의 말을 중단시키거나 다투지 않고 그저 귀를 잘 기울여만 주어도 기꺼이 시간당 2만원에서 7만원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집에는 귀를 열어 두기 위하여 기꺼이 오랫동안 혀를 침묵시킬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배우기만 하면 많은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들은 너무도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단지 우리의 입을 다물고 우리의 귀를 열기만 하면 엄청난 병원비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건설적인 침묵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중요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큰 폭풍 가운데서 그리고 지진 가운데서 그리고 불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실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는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왕상19:9-18). 만일 엘리야가 조용하지 않고 열심히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그는 자신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46:10). 스가랴 선지자는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고 말하였습니다(슥2:13).
기도는 하나님과 서로 주고 받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입으로 뿐만 아니라 귀로도 하여야 합니다.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3. 아름다운 혀는 증거하는 혀입니다.
개인적인 믿음은 또한 공개할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는 것과 고백하는 것은 동전에 앙면과 같이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마음이 아는 것을 혀가 말하게 마련입니다. 로마서 10:9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내 생명의 주님이시고 그는 무엇보다도 내 구주이시기 때문에 내 주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증거하는 혀는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라고 말하였습니다(벧전3:15).
이것은 실제로 소망으로 빛나는 삶, 그래서 그 생활이 너무나 특이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행복해하느냐?”고 질문하도록 만드는 삶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언짢아하고 침울해 있거나 여러분의 혀가 비평적이거나 불쾌한 어투를 뱉을 때 아무도 여러분에게 “여러분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해” 물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혀는 아름다운 증언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함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의미에서는 세상 법정에서 그리스도를 변호하기 위한 증인입니다. 이 법정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발견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관하여 본인 스스로의 증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와 더불어 영원을 나눌 소망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법정에 서고 친구가 여러분을 위하여 증언을 해주어야 하는데, 만일 여러분의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너무 바빠서”라든가 “공중 앞에서는 당황하기 때문에” 라든가 “받을 질문이 두려워서”라든가 등의 이유로 증인석에 서기를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만일 그리스도의 친구라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세상 법정에 나가 여러분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온갖 종류의 변명을 늘어 놓고 뒤로 빠져 버린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느끼실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증거하는 혀는 훈련될 수가 있습니다.
복음 사역을 하는 데는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훈련받아야 하는 차원에서 “예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원하여 증거하여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예비”되지 않았습니다. 훈련받기 위하여 모든 예배, 기도회,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대, 전도대에 참여하여 훈련받으시기 바랍니다. 전도의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이 경험이 적은 사람들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증거하는 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합니다.
아무도 복음 사역에 있어서 훈련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란할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확신과 능력을 위해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우리에게 달렸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증거하는 혀가 되기 위한 능력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아니시면 우리는 무능합니다. 우리가 그의 도우심을 받지 않으면 우리가 주의 깊게 실천에 옮긴 계획들도 아무 생명 없이 땅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배운 기술도 버려야 할 때가 있고 우리의 주의 깊은 계획도 치워버려야 할 때가 있으며 완전히 무의식적이고 연습하지 아니한 말을 하는 자신의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능력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에 대처해서 예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아시고, 성령께서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고 잘 대비하지 못했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마10:19).”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20).”
4. 아름다워지는 연습
매일 거울을 보고 선포합시다. “너는 믿음의 사람이다. 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너는 아름다운 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성령님이 너를 도와주신다.”
그리고 복음을 담대하게 믿음으로 전합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53: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10:17).”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영접하는 자란 예수님을 자기 마음에 모셔드린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드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누리는 권세와 신분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매님 문제 있습니까? 질병으로 고통당하십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치료받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가정과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사업과 직장에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삶이 행복해집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영접기도를 하시겠습니까? 몇 마디만 저를 따라하세요. 진실한 마음으로 하세요.
“주 예수님 나의 죄를 담당해 주시고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내 마음에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지금 내 마음에 들어와 주세요. 지금부터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나의 삶을 인도해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자매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5. 전도는 쉽다. 전도는 복이다. 전도는 내가 먼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며 전하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주시는 상급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출처: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 글쓴이: 그리스도의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