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3-10
선(善)치 못하고서야 / 성경 벌레
본문의 내용은 엘리사 선지자 시대, 아람의 벤하닷이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 성을 두 번째 침입하였을 때 생긴 일입니다. 에워싸인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몹시 굶주렸습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80세겔(240데나리온, 1데나리온= 1드라크마= 장정 하루 품삯), 합분태( 糞太= 집비둘기 똥) 1/4갑(0.4리터)에 은 5세겔(20데나리온)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들들을 돌려 가며 삶아 먹었습니다.
이 때 문 어귀에 있던 네 문둥이가 성(城)에서 굶어 죽으나 아람 진에 가서 칼에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아람 군사가 있는 진지에 가 보았더니 모두 철수하고 많은 군마와 군량미가 있어 배부르게 먹고 난 후 성안에 굶주린 사람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등장한 네 문둥이는 사마리아 성에서 쫓겨난 자이지만 결국 그들이 성안에 있는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네 문둥이는 성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네 문둥이가 그랬듯 성도는 불신자와 구별됨에 따라 어떤 때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금주해야 하고, 우상 숭배하는 곳에서는 절을 하지 않음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린 자식, 불쌍한 자식으로 취급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버린 자식이 성안에 있는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바인 '전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먼저 본 것을 전합니다.
문둥이들은 아람 군대가 철수했다는 것을 맨 먼저 발견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그 진지에 직접 들어가서 많은 것을 먹었고 입을 것을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없는 얘기를 꾸며내는 게 전도는 아닙니다. 경험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왕하7:10) "드디어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 보니 거기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빌립의 전도 방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을 전해야 합니다.
목사, 교회, 성도들을 만난 것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교회를 알리고 전도를 하려는 이가 교회의 좋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안됩니다.
들은 것, 본 것이 바로 전도의 내용입니다. 예수님도 요한의 제자들이 와 오실 메시아를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지금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가르쳐 달라고 할 때, (눅7:22)에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만난, 본, 들은 것들을 이웃에게 전하십시오.
2. 전하지 않는 것은 선치 못한 행위입니다.
(9절)에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문둥이들이 맨 처음에는 자신들의 행복에 취해 전할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그러는 게 선하지 못함을 발견하고 전했습니다. 선하지 않은 것뿐 아니라 장래에 발각되면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전9:16)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말씀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선하지 못하고, 벌까지 받는다는 말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벌을 준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 지체하면 안됩니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전도에 있어 내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람의 삶이 내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이 들면 믿겠다는 말은 오해의 소산입니다.
EX) "날 밝으면 집 지리 집 지리" 알프스 산의 새 이야기.
“내일이면 집지리"라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티벳에 있는 내일이면 집지리"라는 새는 날씨가 따듯한 낮에는 실컷 놀고먹다가 밤이되고 기온이 떨어져 추워지면 오돌오돌 떨면서 내일 날이 밝으면 당장 집을 지어야지 하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날이 밝고 했볕이 나서 다시 따듯해지면 지난 밤 추위에 떨던 기억 따위는 새까맣게 잊은채 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다시 밤이 오면 그제서야 아이고 추워라 내일은 반드시 집부터지어야지하며 후회를 합니다
다음날도..그 다음날도....
인간의 게으름과 편의에 따른 망각 부족한 의지를 풍자하고있는 새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고난과 역경, 희생과 헌신을 낙으로 삼는 이유는 하나님의 상급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선 주를 위해 헌신한 자를 굽어보십니다. (마5:11-12)은 말씀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전도는 분명한 상급이 있습니다. (단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그런데 만약 하늘의 상을 받기는커녕 벌을 받는다면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주님의 상급을 위해 지금의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는 성도라면, 주님의 상급을 위해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상 받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