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8일 전날 단행된 검찰 인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형사·공판부에 전념해온 우수 검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자 노력했다”면서다. 추 장관은 글에서 “지금까지 한두 건의 폼나는 특수사건으로 소수에게만 승진과 발탁의 기회와 영광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법률가인 검사 모두 고른 희망 속에 자긍심을 가지고 정의를 구하는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검찰) 인사를 바꾸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선 형사부 검사들도 민생 사건을 한 달에 평균 많게는 200건이 넘게, 적게 잡아도 150건씩 처리하면서 많은 고충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故) 김홍영 검사 사례를 언급했다. 김 검사는 업무 스트레스와 직무 압박감을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2016년 5월 서른셋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추 장관은 “새내기 검사 김홍영이 희망과 의욕을 포기한 채 좌절과 절망을 남기고 떠난 것을 그저 개인의 불운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온 조직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인사에서 우수 여성검사들을 법무부의 주요 보직에 발탁했다”며 “검찰 사상 최초로 서울중앙지검과 부산지검 강력부에 여검사 2명을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추 장관은 “지금 전체 2212명 검사 중 700명의 여검사가 활약 중”이라며 “제가 검사시보를 했던 1983년에는 딱 2명의 여검사가 있었는데 그 시절에 비하면 비약적인 성과가 이뤄졌다”고 자평했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 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이어 전날 후속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후 추 장관이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인연이 있는 검사들이 대거 요직에 배치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빚어졌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정진웅 부장검사도 이번 인사에서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27일 발표한 검찰 중간간부(차장·부장검사) 630명의 인사는 '윤석열 고립 인사'의 완결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 총장을 보좌해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한 검사들은 좌천시키고, 그 자리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챙기는 검사들을 내리꽂는 '포상·보은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尹, 인사 명단 보지도 않고 덮어
윤 총장은 지난 주말쯤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에게서 인사안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안 내용은 앞서 윤 총장이 전달한 의견과는 정반대로 짜여 있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앞쪽의 대검 인사안만 본 뒤 "이런 내용이면 나머지 내용은 더 볼 필요도 없겠다. 놓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인사 발표 당일인 27일에도 윤 총장은 인사 명단 앞부분만 본 뒤 "(나중에) 신문에 나오면 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이날 인사에서 윤 총장이 그간 관례에 따라 '중앙지검 전보'를 요청했던 박현철 대검 정책기획과장은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장으로, 윤 총장이 '대검 잔류'를 요청했던 박영진 대검 형사1과장은 울산지검 형사2부장으로 발령 났다고 한다. 박영진 과장은 '채널A 사건'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정반대 의견을 냈다가 결정적으로 찍혔다는 말이 나왔다. 또한 윤 총장의 '입' 역할을 했던 권순정 대검 대변인은 전주지검 차장으로, 구상엽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은 마산지청장으로 전보됐다. 대검 인사들은 법무부가 이날 '(윤 총장 의견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힌 데 대해 "기만에 가깝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정권 관련 수사 검사들도 대부분 좌천됐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라임자산운용 사건'에 관여했던 검사들 대부분이 줄줄이 지방으로 발령 나거나 외부기관에 파견됐다. 10년 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 자금 수사팀이었던 신응석 청주지검 차장은 대구고검으로, 엄희준 수원지검 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은 창원지검 형사3부장으로 전보됐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사건을 맡았던 양인철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은 서울북부지검 인권감독관에 배치됐다.
◇요직은 추미애·이성윤 친위부대로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요직은 추 장관과 이 지검장의 측근 검사들로 채워졌다. 이 지검장을 보좌할 선임 차장인 1차장에는 김욱준 4차장이 수평 이동했다. 옵티머스 펀드 사건을 지휘했고, 박원순 전 시장 피소 유출 의혹 사건으로 고발된 김 차장은 이 지검장의 핵심 측근이다. 2차장에는 윤 총장 장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했던 최성필 의정부지검 차장이 전보됐다. 3차장은 추 장관을 보좌한 구자현 법무부 대변인이 맡게 됐다. 직제 개편으로 반부패수사부 등 직접수사 부서를 지휘하게 되는 4차장에는 형진휘 서울고검 검사가 왔다. 형 검사는 이 지검장과 함께 검찰 기독교 모임인 '신우회'에서 활동했고, 지난해부터 국무조정실에 파견돼 코로나 역학조사 지원단을 이끌며 추 장관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채널A 사건' 수사 과정에서의 '육탄 압수수색'으로 '한동훈 검사장 독직 폭행' 혐의 피의자로 서울고검의 수사 대상이 된 정진웅 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광주지검 차장으로 승진했고, '채널A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전준철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은 반부패수사1부장으로 전진했다. 여당 정치인들의 연루 혐의가 드러난 라임 사건(서울남부지검), 윤미향 의원이 당사자인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사건(서울서부지검) 등 현 정권으로선 껄끄러운 수사를 앞으로 지휘하거나 담당할 차장·부장 인사에서도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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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 했다는 이유로 감찰 대상이 된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가 서울동부지검으로 발령 난 것을 두고 검사들은 "이번 인사의 지향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비난했다. 검찰 내부 게시판에 "검찰을 다루는 저들의 방식에 기생하려는 검사들이 부끄럽다"는 글을 올린 이영림 서울남부지검 인권감독관이 이번에 대전고검으로 좌천된 것과 대비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