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부매화도화동삽일병(賦梅花桃花同揷一甁)」 고뇌와 처세를 읊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유배문학 「부매화도화동삽일병(賦梅花桃花同揷一甁)」은 ‘매화와 도화(복숭화꽃)가 한 병에 꽂힌 것을 보고 읊다’라는 뜻으로 정취를 담아낸 글이다. 겨울의 끝자락을 지키는 백매화(梅花)의 고결함과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분홍빛 도화(桃花)가 하나의 소박한 도자기 화병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글은 조선전기 문신‧문인이었던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이 1505년 초봄 어느 날, 거제도 배소(配所)에서 지은 작품이다. 그가 남긴 오언고시 「부매화도화동삽일병(賦梅花桃花同揷一甁)」은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정물시가 아니라,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처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은 명작이다.
○ [매화(梅花)와 도화(桃花)의 조화와 특징] 홍언충(洪彦忠)은 연산군 시기 사화(士禍)를 겪으며 유배와 은거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부매화도화동삽일병(賦梅花桃花同揷一甁)」의 내용을 보면, 매화와 도화를 통해, 매화처럼 “절개와 지조, 고결함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복숭화꽃(桃花)처럼 “온화하면서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을 선택할 것인가?”를 대립적·조화적 관점에서, 스스로 성찰한 글이다. 아시다시피 매화(梅花)는 엄동설한을 뚫고 피어나 고결한 향기를 뿜어낸다. 이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청초한 신념을 지키는 선비의 지조, 즉 '독야청청(獨也靑靑)'의 삶을 상징한다. 반면 따스한 봄날의 햇살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나는 도화(桃花)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상징이다. 이는 ‘자신의 빛을 부드럽게 하여 세상의 먼지와 한데 섞인다’는 노자의 '화광동진'처럼,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온화하게 융합하며 살아가는 유연한 삶의 태도를 뜻한다. 한 병에 꽂힌(同揷一甁) 담백한 매화와 화사한 분홍빛 도화는 하나의 화병(一甁) 안에서 중심을 잡으며 기묘한 균형을 이룬다. 이는 매화가 가진 엄격한 절개와 도화가 가진 포용적 온화함이 한 지식인의 내면 안에서 치열하게 공존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서 저자 홍언충이 동삽일병(同揷一甁)의 매화(梅花)와 도화(桃花)가 가지는 처세의 고뇌에 대해 살펴본다. 홍언충이 살았던 조선 전기는 올곧은 소리를 하던 선비들이 화를 입던 잔혹한 정치적 격변기였다. 이 시기 선비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지조를 지키다 매화처럼 꺾일 것인가? 아니면, ② 도화처럼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온화하게 살아남아 뜻을 도모할 것인가? 시인은 이 2가지 상반된 삶의 방식을 '한 병에 함께 꽂아둠(同揷一甁)'으로써 어느 한쪽만을 정답이라 단정 짓지 않는다. 매화의 절개만을 고집하면 세상이 너무 차가워지고, 도화의 화광동진만을 쫓으면 자칫 세속의 영달에 물들어 지조를 잃기 쉽기 때문이다. 매화와 도화가 꽂힌 투박하고 묵직한 도자기 화병은 이 상반된 두 가치관을 묵묵히 품어내는 '마음의 그릇' 혹은 '시대의 현실'을 상징한다. 이러한 처세의 고뇌가 단순히 본능적인 생존 양식의 선택이 아니라, 글을 읽는 문인으로서 치열하게 학문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뇌임을 뒷받침한다.
결국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지조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되(매화), 세상과 소통할 때는 따스함과 유연함을 잃지 않는 것(桃花), 상생(相生)의 미학’이다. 매화의 강직함은 도화의 온화함을 만나 독선에 빠지지 않고, 도화의 화려함은 매화의 맑은 향기를 만나 가벼워지지 않는다. 홍언충의 이 시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차가운 세상 앞에서 매화가 될 것인가, 아니면 따스한 도화가 될 것인가? 아니면 두 가지 마음을 한 병에 품고 조화를 이룰 것인가?‘
○ [홍언충(洪彦忠)의 성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번 「부매화도화동삽일병(賦梅花桃花同揷一甁)」는 저자가 매화(此兄)와 복숭아꽃이 한 병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쓴 글로, 홍언충 자신에 대한 성찰이 다른 한편으론 현실 대응 문제와 긴밀히 물려 있다. 그러나 도저(到底)한 주제는 결국 ‘나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매화와 복숭아꽃을 의인화해서, 매화는 결백한 빙설(氷雪)의 자태에 지조의 경개(耿介)한 자질을 가진 사내로, 복숭아꽃은 홍군(紅裙, 붉은 치마)을 두른 어여쁜 여인으로 그렸다. 사내의 철석같던 마음은 여인을 아내로 맞으면서 변했다. 그는 이에 대해 ‘부끄럽다[恥]’고 했다.
글의 화제는 유하혜(柳下惠, 士師)와 백이(伯夷)로 전환된다. 홍언충은 유하혜와 백이를 대조하면서 유하혜의 ‘和(온화)’는 백이의 ‘偏(편벽)’과는 같지 않다고 했다. 백이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隱)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하자 동생인 숙제(叔齊)와 함께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죽었다. 유하혜는 춘추시대 노(魯)나라 때 현자이다. 사사(士師) 즉 사법관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세 번이나 파직되었는데도 다른 나라로 가지 않았다. 백이는 섬길 만한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향인(鄕人)과 함께 서 있을 때 그의 관(冠)이 바르지 못하면 마치 자신을 더럽힐 듯이 여겼다. 그러나 유하혜는 어떤 임금을 섬겨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네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고 몸을 드러낸들 네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했다.
홍언충은 이중에 무엇인가? 교결(皎潔)함을 지키다가 속세의 유혹에 빠져 변질되고 만 매화인가. 자신의 절조를 지키다가 세상과 단절하고 마침내 꺾여버린 백이인가. 도(道)에 충실할 뿐 특정한 임금이나 관직에 집착하지 않고 어느 상황에서도 올바름을 잃지 않았던 유하혜인가. 성품으로만 보면 홍언충은 매화나 백이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는 평소 매화를 좋아해서 종종 시로 읊었고, 백이의 고결함을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문제는 ‘나는 무엇인가’보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의 유하혜 쪽으로 자기 길을 생각한 것 같다. 전술한 것처럼 그는 임금의 명을 하늘로 여기고 나쁜 임금일지라도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점은 유하혜를 닮아있다. 그는 혼자가 아닌, 시대에 섞여들어 내 역할을 수행함을 자신의 본분으로 여겼다. 그가 당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갑자사화로 유배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출사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 다음 ‘先’ 운목의 오언고시(五言古詩) 24구(句) 「부매화도화동삽일병(賦梅花桃花同揷一甁)」 즉, ‘매화와 도화가 한 병에 같이 꽂힌 것을 읊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작가가 연산군 시절 갑자사화(1504년)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를 갔을 때 지은 작품이다. 하나의 꽃병에 고결한 매화(지조 있는 선비)와 화려한 도화(세속의 영달이나 타협)가 함께 꽂혀 있는 모습을 보며, 유배객으로서 느끼는 고뇌와 처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부매화도화동삽일병(賦梅花桃花同揷一甁)」** 매화와 도화가 한 병에 같이 꽂힌 것을 읊다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物忌太皎潔 세상 만물은 너무 희고 깨끗한 것을 꺼리는 법이니
瓦礫數能全 쓸모없는 기와나 조각들이 자주 온전함을 보전하네.
此兄氷雪姿 여기 이 형(매화)은 얼음과 눈 같은 맑은 자태로,
耿介得之天 굳은 지조를 하늘로부터 타고났다네.
相逢瘴霧鄕 풍토병과 안개 가득한 유배지(瘴霧鄕)에서 서로 만나니
迎我輒粲然 나를 맞이하며 문득 환하게 웃어주는구나.
怳如平生歡 마치 평생을 함께한 오랜 벗을 만난 듯 기뻐서
挹袂拍其肩 소매를 걷어쥐고 그 어깨를 두드려 보네.
憐兄太孤僨 하지만 형(매화)이 너무 외롭고 꺾여 지내는 것이 가련하여
紅裙配嬋姸 붉은 치마(도화)를 짝지어 곱고 아름답게 꾸며주었지.
今朝殊綽虐 그런데 오늘 아침은 유독 (도화가) 아리땁고 화사하여
顏色不如前 매화의 안색이 예전만 같지 못하구나.
向來鐵石心 본래 가지고 있던 저 무쇠나 돌 같은 굳은 마음이
恥隨尤物遷 치명적인 미물(도화)을 따라 변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구려.
嘗聞士師和 내 일찍이 노나라 사사(법관)였던 유하혜의 '조화로움'을 들었으니
不類伯夷偏 더러운 세상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던 백이의 치우침과는 다르다네.
怡然裸裎側 몸을 벌거벗은 사람 곁에 있더라도 기뻐하며 동화되니
未浼於吾賢 그렇다고 해서 우리 현인(매화/유하혜)의 깨끗함이 더럽혀지겠는가.
兄雖自皓皓 형(매화)이 비록 스스로 희고 결백하다 한들
此物方登筵 저 도화 같은 화려한 것들이 바야흐로 잔칫상에 오르는 법이라네.
且可混光塵 그러니 잠시나마 빛을 감추고 세상의 먼지와 섞여(和光同塵)
以取時世憐 이 세상의 가련히 여김(용납함)을 받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吾言眞可否 내 말이 정말 맞는지 틀리는지 묻노라니
嘆息淚如湔 탄식 속에 흐르는 눈물이 씻어내리듯 쏟아지는구나.
[주1] 물기태교결(物忌太皎潔) : 도덕경이나 장자 등 노장사상에 자주 등장하는 지혜로, 너무 깨끗하고 강직하면 세상의 시기를 받아 부러지기 쉽다는 뜻.
[주2] 장무향(瘴霧鄕) : 기후가 고약하여 병이 나기 쉬운 남쪽 변방의 유배지. 여기서는 작가가 유배되었던 거제도를 가리킨다..
[주3] 철석심(鐵石心) :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매화의 절개, 즉 작가 자신의 선비로서의 지조를 의미한다.
[주4] 사사화(士師和)와 백이편(伯夷偏) : 맹자(孟子)에 나오는 성인들의 처세. 백이(伯夷)는 세상이 더러우면 조용히 은거해 버리는 강직하고 치우친 인물인 반면, 유하혜(柳下惠, 사사 직책을 지님)는 아무리 더러운 세상이나 사람 속에 섞여 있어도 자신의 순결함을 잃지 않고 조화를 이룬(和) 인물이다.
[주5] 혼광진(混光塵) : 불교나 노자 사상의 '화광동진(和光同塵)'에서 유래한 말로, 자신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세의 티끌 속에 섞여 살아감을 뜻한다. 여기서는 유배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적 타협을 의미한다.
○ 내용인즉, 이 시는 늦봄에 대뇌우를 읊었던 기개 넘치던 모습과 달리, 유배라는 가혹한 현실 정치의 벽 앞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복잡한 내면을 격조 높게 표현한 명작이다. 먼저 매화와 도화의 상징성을 대비시켰다. 시 속에서 매화는 고결한 지조와 학문을 지키다 유배를 오게 된 작가 자신(혹은 사림 세력)을 뜻한다. 반면 도화는 화려하고 세속적이며, 권력과 영달을 좇는 훈구 세력이나 아첨하는 무리, 혹은 세상의 타협적인 가치를 상징한다. 이어 타협과 생존에 대한 유배객의 고뇌를 읊었다. 작가는 유배지에서 홀로 고결하게 시들어가는 매화가 안타까워 화려한 도화를 옆에 꽂아 준다. 그러나 도화의 화사함에 가려 매화의 빛이 바래가는 모습을 보며 서글픔을 느낀다. 이에 작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너무 결백한 것을 미워하니, 백이처럼 부러질 것이 아니라 유하혜처럼 세상의 먼지와 적당히 섞여(混光塵)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모진 박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조금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유배객의 솔직한 고뇌다. 그러나 결국 비장한 결말을 이끈다. 마지막 구절에서 작가는 "내 말이 정말 맞는가?"라고 자문하며 눈물을 흘린다. 현실적인 생존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도화와 섞이는) 방법을 떠올려 보았지만, 뼛속까지 선비인 작가로서는 그러한 타협 자체가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타협할 수 없는 자신의 결백함과 잔인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거대한 탄식과 눈물로 화하며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