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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하용조목사님 스크랩 내 백성을 위로하라
주님의숲 추천 0 조회 307 17.12.05 14: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사야서의 축복


지난주에 요한복음 강해설교를 마쳤습니다. 요한복음 강해설교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은혜를 받으셨던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여러분들의 말씀사역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이후에 무슨 말씀으로 설교를 할까하고 오랫동안 생각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 말씀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이사야서는 작은 성경이라 불리는 책입니다. 구약 속에 있는 신약이라 불리는,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익숙하고 영적으로 많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책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 등 총 성경이 66권인데 이사야서가 신기하게도 첫째 부분이 39장, 둘째 부분이 27장으로 성경의 구조와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메시아의 필요성,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어서 심판받는 과정이 첫째 부분인 1장부터 39장까지입니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심판, 징계, 고통스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0장으로 들어서면서 마치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반전이 됩니다. 메시아의 출현, 회복의 약속, 이스라엘의 찬란한 미래에 대해 66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문체나 스타일, 사상이 다르니 반드시 두 사람이 썼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서는 이사야 한 사람이 다 쓴 책입니다. 그만큼 이사야서는 놀랍고 신비스럽습니다. 앞으로 저는 전반부인 구약에 해당하는 1장부터 39장은 지나가고, 신약에 해당하는 40장부터 66장까지의 메시지를 여러분과 나눌 것입니다. 저는 이사야서를 통해 예수님을 발견하고 메시아를 발견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사야 40장에는 네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내 백성을 위로하라’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오신다. 메시아가 오신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세례요한이 했던 말과 같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예언자가 나와 주의 길을 평탄케 하라, 예비하라는 말로 신약이 시작한 것처럼 이사야의 40장은 바로 이 예언으로 시작합니다.

셋째, ‘인간이 얼마나 영악한 존재인지, 인간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 존재인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능력이 있는지 선포하라’입니다. 

넷째,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입니다.  저는 오늘 이사야서 40장에 나오는 놀라운 메시아의 축복과 이스라엘의 회복의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늘은 두 가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와 ‘주의 길을 예비하라’입니다. 40장 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서 우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말하신 분은 누구일까, ‘내 백성’은 누구일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내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붙어있는 ‘너희’라는 말과 내 백성이라는 말 앞에 붙어있는 ‘내’라는 말입니다. ‘너희 하나님’과 ‘내 백성’은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는 상관없이 야단치고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싸매고 어루만지시는 분입니다.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관계가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을 자식처럼 보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너희’와 ‘내’라는 단어 속에 숨겨있는 메시지입니다.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 보면 하나님은 내 하나님 같지가 않습니다. 또 하나님 관점에서 보면 ‘내 백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심판받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심판받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심판을 받는 입장에서는 너무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40장에 들어오면서부터 하나님은 ‘너희 하나님’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것을 1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시편 100편 3절에 나오는 구절과 같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 시편기자는 이미 하나님과 우리들과의 관계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는 그동안 심판과 분노와 저주의 관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관계는 청산되었습니다. 회복과 일치의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라고 하십니다. 포로생활에 지치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희망이 없는 백성들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고 이스라엘은  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전하고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사야 40장이 시작이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급히 전하라


1절을 보면 이 메시지를 전할 때 염두에 둬야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속히 급하게 빨리 전하라는 것입니다. 1절에서 ‘위로하라’를 두 번이나 쓴 것은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중요하니 빨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메시지, 축복의 메시지, 회복의 메시지는 급하고, 중요하고, 빨리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정답게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우리는 그냥 무관심하게 감정을 섞지 않고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전하긴 전하지만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과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편한 감정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구약의 요나 같은 사람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하는 수 없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렇게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전도할 때 신경질을 내면서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관심하게 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답게 메시지를 전하십시오. ‘정답게’란 말은 ‘마음에 닿도록’이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휙휙 지나가게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슴에 콕콕 박히게 말을 합니다. 설교도 그냥 휙휙 지나가는 설교가 있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가슴에 탁탁 박히는 설교가 있습니다. ‘정답게’란 말은 ‘가슴에 닿도록’ ‘눈물이 나도록’ ‘부드럽고 편하게’ 전하라는 뜻입니다.


셋째, 메시지를 큰소리로 외치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듣도록 전하라는 것입니다. 웅얼웅얼 전하면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옆 사람은 들을 수 있겠지만, 멀리 있는 곳에 있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메시지를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위로하라’는 내용은 두 가지 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심판이 끝나고 자유케 되었다


첫째는 복역의 때가 끝났고, 둘째는 죄악이 사함이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희망을 잃고 공포와 절망 중에 있는 내 백성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심판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고달프고 외롭고 힘든 포로 생활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죄수가 교도소에서 언도된 형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형량을 마치면 교도소에서 나가야 됩니다. 교도소에서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의 형기가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있지 않고 자유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라는 것입니다.

괌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1972년 한 주민에게 발견되기까지 28년간 숨어 살았던 요코이 동굴이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는데 그 사람은 소식을 듣지 못해 그 공포와 죽음과 도피의 생활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나오기만 하면 자유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마귀, 죄, 세상, 저주에게  억압된 내 인생은 풀려났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병이 풀렸습니다. 저주가 풀렸습니다. 고통이 풀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라는 것이 이사야 40장에 나타난 첫째 메시지입니다.


둘째는 죄는 이미 다 용서받았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죄의식 속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메시지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병은 이미 치유되었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습니다. 당신은 의롭게 되었습니다. 자유케 되었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문화, 습관, 상처 때문에 그 사실을 잘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복역의 때는 끝났습니다.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은 사실입니다. 형벌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이제 우리 죄가 씻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살지 마십시오. 밖으로 나오십시오. 자유하십시오. 누리십시오. 이것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죄를 짓지 않고 죄에 빠지지도 않고 살 수 있는 영적능력을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여러분, 다시는 귀신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마귀의 종노릇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마귀로부터,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쓴 뿌리와 상처가, 우리의 옛날 성품과 습관이 나를 얽매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포하십시오. “나는 형기가 끝났다. 죄사함을 받았다. 메시아가 오신다. 주님이 오신다. 약속의 메시아가 오신다. 하나님이 오신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됨


3절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이것은 세례요한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세례요한은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의 메시지를 받아 전한 것입니다. 왜 길을 예비하라고 하셨을까요? 주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오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재림하십니다. 신랑 맞을 준비를 하는 신부가 되십시오.

그러면 어디에서 준비를 해야 합니까? 광야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사해근방의 유다 광야를 말합니다. 사막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모래만 있는 곳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뜻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신발 신고 옷 입고 당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실 채비를 하고 있으므로 광야에서, 사막에서 길을 예비하고 대로를 평탄케 하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할 수 있을까요? 4절입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낮은 골짜기는 돋우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막은 길이 없는 곳입니다. 길을 만들어도 바람이 불면 길이 다 없어집니다. 사막에는 도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길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대로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사막 같은 인생에 하나님께서 오시는 길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골짜기에 돌과 흙을 넣어서 메우라는 것입니다.

작은 산은 깎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길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굽고 고르지 않는 길은 반듯한 길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로생활로 절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오실 때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거나 모두 그 앞에 무릎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울퉁불퉁한 것, 구부러진 것, 죄악이나 정욕, 악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우상숭배나 음란한 것,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영광을 보리라


그럼 왜 주의 길을 평탄케 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5절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여호와의 길을 만드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낮은 골짜기는 높게 만들고, 높은 산은 낮게 만들고, 모든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을 다 꺾어 버리고 주의 길을 예비하는 목적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가 오신다’는 것은 이사야서의 핵심적인 사상 ‘야훼의 종 메시아가 온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출현입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질곡과 고통과 죽음과 심판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당신 안에 대로를 만들어라. 모든 사상을 부수고, 모든 습관을 버리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둘째 모든 육체가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사야 40장이 시작이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입니까. 참 놀랍습니다. 다음 주에는 나머지 두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대한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 나누게 될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예언적 명령이 바로 이사야 40장 이후를 끌어가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저와 동일한 흥분과 감동과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세상 속에서 태풍이 불고 폭풍이 치고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기를 여러분 모두 바랍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을 대망하면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여기 머리 숙인 당신의 종들의 머리위에 기름을 부으시고

이사야의 가슴속에 불처럼 나타났던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 시대의 오늘 우리들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모두 다 영광스런 말씀의 사자들이 되게 하옵시고

말씀의 수행자, 말씀의 능력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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