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폴 스톨츠(Dr. Paul Stoltz)가 쓴 “역경지수: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를 보면, 역경 앞에서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1)문제만 부딪히면 도망치는 포기형(quitter)이다.
(2)역경 앞에 도망치지 않지만, 그 문제 앞에 캠프치고 주저앉는 현상유지형(Camper)이다.
그들이 60-70%의 절대다수다.
(3)역경이란 산을 온힘으로 올라가는 정복형(climber)이다.
마침내 그 가운데 다른 캠퍼(Camper)들과 함께 역경을 넘는 자는 “리더”(leader)가 된다.
요즘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면서 칭찬교육으로 자녀들을 키운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면서 “좌절교육법”을 실시한다.
즉 시련을 만들어 자녀들이 학업에 정진토록 하고, 위기대처능력을 키워준다.
이스라엘 교육심리학자들은 성공에는 지능지수(IQ; Intelligence Quotient)가 20%, 역경지수(AQ; Adversity Quotient) 와 감성지수(EQ; Emotional Quotient)가 80%의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매년 국립국어원은 신어(新語)를 발표한다.
2011년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2014년 오포세대(인간관계, 주택구입)를 발표했다. 2015년엔 꿈, 희망마저 포기한 칠포세대가 등장했다.
자녀들의 역경지수(AQ)를 키워보자!
역경지수(AQ)가 높은 사람의 특징이다.
(1)역경이나 실패로 타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2)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역경은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한다.
겨울에 나이테를 하나씩 키우듯 역경(逆境)을 뒤집어 경력(經歷)을 쌓는다.
칭기스칸(Chingiz Khan, 1162-1227)은 역경을 먹고 자라는 “리더”가 되라 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9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고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직업이고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는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기독교는 고난을 극복하는 종교다.
교회사를 보면, 국민소득 1만불이 넘으면 복음전파가 어렵다 한다.
결국 교회의 성장과 정체는 역경지수에 달렸다.
예수님은 아들이지만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히 5:8).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 9:22).
이것이 고난의 순기능이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67,71).
바울도 고난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그는 디모데에게 고난을 부끄러워 말라고 한다(딤후 1:8; 2:3).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고난의 본보기라 한다(벧전 2:21).
선행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벧전 3:17),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고(벧전 4:13), 고난을 부끄러워 말라 한다(벧전 4:16).
영혼을 창조주께 의탁하고(벧전 4:19), 고난을 받으라 한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역경지수(AQ)를 높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