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31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국내 대기업들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 약속 덕에 환대받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문 정부도 자화자찬하는 분위기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엿볼 수 있었던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전략을 살펴보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국제 경제 환경 속에 우리 먹거리를 지키고 창출하려는 문 정부의 노력과 성과가 얼마나 초라한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
한때는 값싼 노동력과 유연한 노동시장을 활용하려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 생산 기지를 건설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으로 부품이나 자재를 공급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글로벌 공급망 체인 붕괴로 핵심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자국 내 핵심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해외 진출 기업을 국내로 복귀시키며 국내에 일자리를 만드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 큰 흐름이다. 바이든 정부는 핵심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반도체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을 미국의 영향력 아래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정부 조달 관련해서는 ‘Made in America Office’를 신설하여 연방정부의 물자 및 건설 자재 조달 시 미국산 소재나 부품 사용을 독려하는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국내 대기업들의 미국 내 44조원 투자의 핵심 내용은 반도체 공장 건설, 전기차 생산, 전기차에 필요한 배터리 공동 개발이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핵심 산업의 부품이나 소재, 친환경 전기차를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고 개발할 경우 세계 최고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도 더 쉬워지고, 더 많은 소비자의 선호 변화에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의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USA)’ 전략에 따른 주 정부 차원의 세제 경감을 포함한 인센티브 혜택을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전진 기지라 할 수 있는 미국 내에서 생산될 한국 대기업 제품은 이제 미국산이고, 미국 내에 수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문 대통령이 환대받은 것은 대기업 투자 패키지가 바이든 정부의 미국 중심 첨단 산업 재편 요구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대한 화답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 무대에서 온갖 홀대를 뒤로하고 이번 방미 과정에서 환대받았다고 안도하고 있을 문 정부에 묻고 싶다. 문 정부는 해외 기업을 포괄하는 국내 첨단 산업 허브화, 외국인 투자·일자리 확대를 위해 그동안 무엇을 하였나? 우리나라에 공장을 짓고 주요 부품을 생산하는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사실상 거의 성과가 없다. 외국인 직접 투자 중 제조업 분야는 1999년 84억달러에서 2020년 60억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아세안 신남방 정책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가능성 선전만 요란했다. 한국판 리쇼어링 역시 2019년 돌아온 현대모비스를 제외하고는 성과가 미미하다. 현대모비스는 국내 리턴 기업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가 제시한 100억원의 국고 보조금을 받지도 못했다.
기업의 경제 활동에 부담을 주는 일명 ‘기업 규제 3법’은 국내 투자를 염두에 둔 외국 기업에 ‘한국은 기업 하기 참 어려운 나라’라는 시그널로 작동한다. 전경련·중견기업연합회·벤처기업협회는 기업 규제 3법이 회사 경영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지난 1월 설문 조사에서 국내 고용 축소(37.3%), 국내 투자 축소(27.2%), 국내 사업장의 해외 이전(21.8%)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50%)과 중견 기업(37.7%)은 ‘국내 투자 축소’, 벤처 기업은 ‘국내 고용 축소’(40.4%)가 높았다. 중견·벤처 기업의 25% 이상이 국내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기업이 국내에 공장을 지어 한국산 제품을 생산하며, 한국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외국인 투자 전략이 통할 리 만무하다.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은 뒤죽박죽 그 자체다.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은 방향성이 달라 함께 갈 수 없다. 소득 주도 성장을 포기한다는 청와대 선언을 들은 바 없으니 혁신 성장의 성과도 나올 리 만무하다.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한다면서 기업 규제 3법으로 국내 기업을 해외로 밀어낼 처지다. 주 52시간 근로제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아이디어 및 제품 개발에 탄력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법적 제약을 가하고,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뿌리 산업 기업들에 추가 고용의 부담을 준다. 노동조합법과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중견·중소 기업은 경영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신 충전·포장만 가능한 백신 허브 입지 구축을 국민에게 방미 답례품으로 제시할 것이 아니라 바이든 정부의 영리한 경제 정책을 배우고 ‘Made in Korea Office’ 설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엉터리 산업 전략과 일자리 창출 실패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김현숙 /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