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만드는 김호기 마에스트라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녀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과 우아한 모양새에 매료되어 20년 넘게 연주자로 바이올린과 한 몸처럼 지냈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일원으로 보낸 8년은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왼손가락에 이상이 생겼고 더 이상 연주자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는 운명 앞에서 그녀는 오래 울지 않고 이번에는 바이올린 제작자의 길을 선택했다. 곧장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언어의 장벽과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바이올린 제작자로서 마에스트라 자격을 땄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녀는 절망의 순간 또 하나의 문이 열린 셈이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라는 악상기호를 자기 인생의 악상기호로 여겼다고 한다. ‘천천히 노래하듯이’. 안단테 칸타빌레의 대표적인 연주곡이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곡 제1번 제2악장인데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선율이 마음의 위안을 주는 명곡이다. 톨스토이가 처음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고 전해지는 곡이다. 어쩌면 그 곡처럼 그녀의 삶도 천천히 노래하듯 일궈낸 삶이었는지 모른다. 온갖 장애물을 넘어 마침내 꿈을 맛본 그녀의 삶은,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노래하듯 경쾌하게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렇다. 세상일은 한 번의 좌절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 것, 느리더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 무엇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삶이라는 악보를 연주해 나갈 것, 그렇게 우리 자신에게 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