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 -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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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28. 21:00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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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
해인사
1. 해인사에 700년이 넘은 보물이 있다고요?
준비물: 사진기, 필기도구, 운동화 * 팔만대장경판이 있는 경판고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사찰을 둘러보세요. |
수려한 산세가 펼쳐지는 가야산에는 천 년을 훌쩍 넘긴 유서 깊은 사찰, 해인사가 있어요. 해인사는 통일 신라 시대인 802년에 세워졌어요. ‘해인’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말인데, ‘진실된 세계’를 뜻해요.
해인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여기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판이에요. 몽골족의 침입으로 혼란에 빠지자, 고려 조정은 평화를 소원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목판에 새기도록 했어요. 팔만대장경판에는 고려 시대의 호국 정신이 담겨 있어요.
팔만대장경판은 8만 개가 넘는 경판에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한 사람이 새긴 듯 정확하고 반듯하게 새겨져 있어 고려 인쇄술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 알 수 있지요.
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도 자연환경을 과학적으로 이용한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조선 시대에 세워진 장경판전은 목조 건물인데도 벌레가 생기지 않고 습기가 차지 않아 지금까지 경판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해 주었답니다.
팔만대장경판과 장경판전은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기록 유산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어요.
가야산 기슭에 자리 잡은 해인사 전경이에요.
고려 시대 몽골족의 침입에 대해 알아볼까요?
몽골 제국이 세워진 1231년부터 1270년까지 몽골족은 7번이나 고려를 침입했어요. 고려는 해전에 약한 몽골군을 무찌르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몽골군에 대항했지요. 이 시기에 백성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고 황룡사 9층 목탑 등 수많은 문화재가 사라졌어요.
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를까요? 《팔만대장경》의 원래 이름은 《고려 대장경》이에요. 《대장경》을 새긴 판의 수가 8만여 장에 이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는 별칭이 붙었어요. 불교에서는 ‘아주 많음’을 가리키는 말로 ‘팔만 사천’이라는 표현을 써요. 부처의 가르침을 ‘팔만 사천 법문’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유래된 이름이기도 하지요. |
2. 팔만대장경판에 천 년의 지혜가 있다고요?
《팔만대장경》에는 불교 경전의 내용이 들어 있어요. 고려 시대의 인쇄술을 세계에 알린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에 대해 알아볼까요?
1) 《팔만대장경》의 탄생
《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두 번 만들어졌어요. 첫 번째 《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 거란의 침입에 맞서 77년 동안 만들어졌지요. 중국의 《대장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대장경》이 완성되었지만 1232년에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불에 타 사라지고 말았어요.
그 후, 조정과 백성은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 《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1236년에 시작된 《고려 대장경》 사업은 1251년까지 이어졌어요. 첫 번째 《대장경》과 두 번째 《대장경》인 《팔만대장경》이 완성된 기간 사이에 대각 국사 의천이 《속장경》을 편찬했어요. 이 모든 것을 합쳐 《고려 대장경》이라고 부르지요. 《대장경》은 부처의 말씀인 경, 율, 론 3장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을 가리켜요.
《팔만대장경》은 《대장경》의 내용 외에도 당대의 모든 지식이 모여 있어 그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해요. 뛰어난 목판 인쇄술과 《대장경》에 담긴 고려인의 정신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우수한 문화유산이랍니다.
2) 장경판의 비밀
《대장경》의 경문이 새겨진 장경판은 천 년을 견뎌 왔어요.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 등 질 좋은 나무를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대패로 곱게 다듬은 뒤에 경문을 새겼지요. 붓으로 경문을 쓰고 그 글자를 하나하나 목판에 새겼답니다.
목판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5,238만 개에 달해요. 서른 명의 장인이 16년에 걸쳐 글자를 새겼지만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글씨가 아름다워요.
3) 장경판전의 비밀
장경판고라고도 하는 장경판전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 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에요.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견판전에도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장경판전은 앞뒤로 두 채, 양옆에 두 채를 합해 모두 네 채의 건물로 지어졌어요. 남쪽과 북쪽의 창 크기가 서로 다른 것이 특징이지요.
햇살을 거르고 통풍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창에 촘촘한 기둥을 세웠어요. 장경판전 내부 흙 바닥에는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넣어서 건물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했어요.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판을 간직한 법보 사찰로, 우리나라의 삼보 사찰 중 하나랍니다. 삼보는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이라는 뜻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스님을 말하지요.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판 외에도 많은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어요. 해인사의 또 다른 보물들을 만나 보아요.
고려 시대의 인쇄 기술을 자세히 알아볼까요? 고려의 인쇄 기술은 목판 인쇄뿐만 아니라 금속 활자를 만들어 인쇄한 것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알려져 있어요. 금속 활자로 인쇄한 《고금상정예문》은 독일의 금속 인쇄술을 널리 알린 구텐베르크의 인쇄물보다 200년이나 앞섰어요. 하지만 《고금상정예문》은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아요.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에요. |
4) 쌍둥이 목조 비로자나불
해인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상은 통일 신라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이에요. 각 부분의 균형이 잘 맞으며 옷의 주름이나 손가락 모양 등 세부적인 표현이 무척 섬세해요.
최치원은 누구인가요?
최치원은 신라 말에 당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친 최고의 문장가예요.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관직을 지내다가 28세가 되던 해에 신라로 돌아왔어요. 그러나 엄격한 골품제를 따랐던 신라에서 6두품이었던 최치원은 뜻을 펼치기 어려웠지요. 벼슬을 버리고 물러난 최치원은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남은 생을 마쳤답니다.
5) 3층 석탑
해인사의 길상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은 신라의 건축 기술로 만들어진 탑이에요. 탑 속에서는 최치원이 쓴 탑지1)와 157개의 소탑 같은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었어요.
895년에 쓴 최치원의 ‘해인사길상탑지’에 따르면 신라 진성여왕 9년(895년)을 전후해 궁예와 견훤의 싸움으로 굶주리는 병사들을 위해 해인사의 훈혁 스님이 벼를 모아 군량2)을 제공하고, 그 나머지로 3층 석탑을 세웠다고 해요
해인사의 삼층 석탑은 길상탑으로도 불려요.
6) 해인도
해인도는 의상 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에 화엄 사상을 210자로 요약한 노래예요. 해인도를 외우며 탑 주위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지요.
7) 다양한 불교 관련 유물들
해인사에는 수많은 불교 관련 유물들이 전해지고 있어요. 해인사 석조 여래 입상, 해인사 원당암 다층 석탑, 석등, 해인사 목조 희랑 대사상, 해인사 사명 대사 부도 및 석장비 같은 소중한 문화재를 모두 만날 수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삼보 사찰은 어디인가요?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사찰이에요.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판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지요. 송광사는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사찰이에요. 그래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부처님과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스님, 이 세 가지 보물을 가진 삼보 사찰이라고 부른답니다. |
3. 해인사의 창고를 열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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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 대적광전 → 장경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