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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28. 05:05조회 4
염상섭
1. 교과서 속 주개념
1) 염상섭의 생애
한국 사실주의 문학을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한 횡보(橫步) 염상섭은 1897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보성전문학교에 재학 중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부립 중학을 졸업하고, 게이오 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으나 1919년 만세운동에 가담한 혐의에 의해 투옥되는 바람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하게 된다. 귀국 이후에는 『동아일보』에 취직하여 기자로 활동하면서 1920년 『폐허』지 동인에 가담하는 등 문단 활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한다.
1921년에는 『개벽』지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여 등단함과 동시에 작품의 주제적, 형식적 독특함으로 인해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22년에는 최남선이 주재하던 주간 종합지 『동명』으로 옮겨 기자로 일했으며, 현진건과 함께 『시내일보』, 『매일신보』 등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는 다시 도일했다가 1928년 귀국하여,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냈으며, 1936년에는 만선일보 주필 및 편집국장으로 만주로 떠났다. 해방 후에는 귀국하여 『경향신문』 창간과 발을 맞춰 편집국장으로 일하였다. 6·25 때는 해군 정훈국에서 근무하였고, 초대 서라벌 예대 학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2) 염상섭의 작품 활동
초기 단편 소설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를 받으며 이후 〈암야〉, 〈제야〉 등의 소설과 함께 3부작 소설로 연작되었다. 이 시기는 무겁고 침울한 자연주의적 작품을 주로 썼으며,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실험주의적,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그러한 사회 현실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의 경향은 점차 탄탄한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성향으로 바뀌어갔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만세전〉, 〈금반지〉, 〈전화〉 등이 있다.
〈삼대〉는 당시 사회 현실의 문제와 지적 분위기를 치밀하게 묘사한 그의 대표작으로 그의 작가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사실상 삼부작으로 되어있는 대(大) 장편 소설의 일부로서 2부는 〈무화과〉이며, 3부는 〈백구〉라는 소설로 모두 신문에 연재된 작품이다. 본격적인 전형적 인물의 설정, 객관성을 띤 사건의 전개, 현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전개한 자연주의적 작품성향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로 사실주의적 문학을 확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식민지 사회를 투철하게 인식하고 당대 사회의 진실을 묘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문체인 내간체를 계승, 발전시켰다.
후기에는 주로 평면적 사실주의 수법을 써왔으며 서민들의 생활문제를 다루면서 윤리적 갈등을 조명한 작품을 많이 썼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해방의 아들〉, 〈재회〉, 〈두 파산〉, 〈취우〉 등이 있다. 그는 근대사회의 특성을 도시에서 찾고 있으며, 생활의 바탕을 개인에게 두었다. 그래서 개인의 삶과 사회를 종합적이고 전면적인 입장에서 관찰했고, 사실성에 기반을 두고 작품을 창작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점들로 인해 그의 문학은 리얼리즘의 문학적 특성과 도시 문학이 잘 접목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확장 개념
1) 염상섭과 동반자작가적 경향
1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면서 1920~30년대에 걸쳐 사회주의 사상은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19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조선 공산당의 창건과 함께 사회주의가 하나의 커다란 유행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사회주의 사상은 주로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며,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당시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주의의 확산 양상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회주의 문학을 부르짖는 일련의 문학가들은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속칭 카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사회주의의 시각에 근거한 문학 이론의 수립과 이를 뒷받침하는 작품들의 창작을 시도한다. 이러한 ‘카프’는 한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정치적 목적의 문학 단체였으며, 기존의 민족주의 계열 작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당시의 모든 작가들이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로 나누어졌던 것은 아니다. 작품의 내용이나 스스로 주장하는 바가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들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본격적인 사회주의자는 아니며 ‘카프’에도 가입하지 않은 작가들 역시 다수 존재하였다. 이들은 비록 ‘카프’와 똑같은 정치적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식민지 한국의 노동자들이나 농민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라든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비판, 혹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등 ‘카프’ 계열의 작가들과 어느 정도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카프’에서는 이러한 작가들을 가리켜 ‘비록 카프의 일원은 아니지만 우리와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하여 ‘(생각을)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동반자작가’라는 칭호를 붙이게 되었다.
염상섭은 그의 작품 경향이나 그가 발표한 평론 등으로 인해 때로는 민족주의 문학가로, 때로는 경향파 문학가로 평가받곤 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염상섭은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민족주의 문학 계열에도, 김동인 같은 순수문학 계열에도, 혹은 김남천이나 한설야 같은 카프문학 계열에도 소속되지 않는 작가였다. 그러나 그의 〈삼대〉는 그를 동반자작가로 불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다수 존재한다. 〈삼대〉가 동반자적인 작품으로 해석되는 것은, 소설의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조덕기가 사회주의에 대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덕기의 친구인 김병화는 당시의 전형적인 사회주의자로 그려지는데, 덕기는 이러한 친구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상당부분 동의하지만, 실제 행동이나 말에 있어서는 병화의 그것을 따라가지 않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덕기의 모습은 1900년대 초반에 일본 유학생활을 겪었던, 1920년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당시의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당시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행동이나 투쟁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삼대〉는 이와 같은 당대현실을 조덕기라는 인물에 투영해 보여주고 있으며 여기에서 조덕기가 보여주는 현실 인식은 김병화, 나아가서는 사회주의자들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유사함은 사회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라는 겉모양으로 나타났고,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삼대〉, 그리고 염상섭은 동반자작가의 자리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삼대〉 이후의 염상섭은 〈윤전기〉와 같은 동반자적 소설을 계속해서 창작하게 된다. 그가 보여주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은 카프 계열의 작가들보다도 냉철하고 날카로운 면이 있었으며, 오히려 이러한 객관성 때문에 동반자의 위치에 머무르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 염상섭 소설의 서술적 특징
한국 근대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 염상섭의 사실주의적 경향은 그의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작가적 중립성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소설 대부분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되어 있지만 서술자의 서술은 인물들의 생각과 시선이 갖는 테두리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과거 신소설이나 고전 소설의 서술자들이 보여주었던 작가적 논평이 상당부분 제거된 것으로 염상섭이 근대적 서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작가적 중립성은 근대 이후 소설들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염상섭에게 있어서는 이와 같은 중립성의 유지가 그 어느 작가보다도 투철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삼대〉나, 단편 소설 〈두 파산〉과 같은 작품에서도 인물에 대한 서술자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각각의 인물의 내면과 생각에 근거를 둔 것이지 결코 서술자 개인의 자의적인 평가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 개개인이 서로에 대해 각자의 평가와 입장을 표명하기만 할 뿐 그것이 어느 하나의 중심적인 입장으로 획일화되거나 합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강할 경우 이들 목소리가 서술자의 입장으로 통합되어 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1인칭 주인공 시점일 경우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염상섭의 경우에는 초지일관 작가적 중립성을 엄격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면모는 염상섭의 사상적 지향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염상섭은 비록 카프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태도를 내비쳤던 작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카프와 대립하던 민족주의 계열 작가에 속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중간자적 위치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상적 지향점 역시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어느 하나에 일방적으로 이끌려 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장편 〈삼대〉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바이기도 하다.
〈삼대〉에 이르러 염상섭의 리얼리즘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염상섭의 작가적 중립성을 극명하게 대변해주는 인물이 바로 조덕기이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적극적으로 들지 않으며, 친구 병화와의 관계에서도 비록 심정적으로는 그에게 동의하지만 현실적 문제에 있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돈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현실적 인물인 할아버지, 예수교를 신봉하지만 난봉꾼인 개화지식인 아버지, 사회주의자인 친구 병화와의 관계에서 덕기는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는 심퍼다이저(sympathizer, 동조자)이긴 하지만 결국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언제나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덕기의 중립적 태도는 염상섭의 문학관과도 닮아 있다.
이처럼 염상섭은 다양한 이념적 지향점을 지닌 인물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킬 때에도 어느 한 인물의 편에 서서 그의 이념을 옹호하기보다는 중립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한다. 그는 역사적 가치평가를 직접 내리기에 앞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물 간에 존재하는 힘과 인식의 차이, 세태의 갈등과 변화를 드러내어 이로부터 당대 현실에 대한 객관적 지평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이야말로 당대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염상섭의 작가적 중립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관련 작품
만세전
원래 1922년에 〈묘지(墓地)〉라는 제목으로 [신생활]이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잡지 폐간과 함께 연재가 중단되고 2년 후 단행본 〈만세전(萬歲前)〉으로 이름을 바꿔 완결된 중편 소설이다. 제목 그대로 3·1 운동 전의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이인화’라는 지식인 청년의 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동경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이인화가 조혼을 한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착잡한 심정으로 귀국길에 올라 부산과 김천 등지를 거쳐 서울의 집으로 돌아온 후 다시 동경으로 떠나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이국(동경)-고향(서울)-다시 이국(동경)’이라는 여로를 따라 줄거리가 전개되므로 여로형 구조의 소설이라고도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염상섭이 지식인의 자의식을 자연주의적 필치로 그려낸 〈표본실의 청개구리〉, 〈암야〉, 〈제야〉 연작 이후 본격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작품이다. 초기 작품에서는 관념적 필치가 두드러졌던데 반해 이 작품에서부터 염상섭 특유의 사실주의적 필치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한 예로 ‘이인화’의 눈에 비친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은 이전 작품에 비해 훨씬 구체성을 얻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으로 비쳐지기도 하는데 이는 〈만세전〉의 이전 제목인 〈묘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인화’라는 인물이 겪는 번뇌와 고민, 그로 인한 자기 각성의 과정이다.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별다른 자의식이 없던 나약한 지식인 청년이 식민지의 피폐한 생활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면서부터 자신의 존재와 주변 세계에 대한 그간의 의식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여행 과정에서 일본인으로부터 느낀 모멸감, 가난에 찌든 식민지 조선의 농촌을 경험하면서 ‘이인화’의 인식틀은 확장되고 보다 사회적인 안목을 갖추게 된다. 이는 일종의 성장 소설의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인물의 경험과 인식 변화, 현실 세계에 대한 구체적 접근을 통해 염상섭은 개인의 존재와 사회 현실을 유기적으로 다루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염상섭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