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포인세티아
안압지雁鴨池
타샤의 정원
소설처럼
수국
사과
미래의 묘지
불의 나신
꽃기린
모란과 작약
반구대 암각화
통도사에서
멀고도 가까운 해변
낙화
| 2부 |
야생의 방
빗방울
텍사스 가방
수련과 태양
하이힐 칸타타
관문성에 들다
폭우
커피의 아침
카라멜마끼아또
리모델링
췌장암
십리대숲
목련의 시간
귤
| 3부 |
빛
패턴
손톱
향기
3월에 내리는 눈
장롱과 외투
그림자들
칸나의 해안
벚나무
거문고의 저녁
서출지書出池
빈집
둥지
| 4부 |
이상기후異常氣候
산막의 신발
꽤 긴 기차
다가오는 것들
선물
사과밭에서
밤이 밤을 까는 밤
텐트 1
텐트 2
개여뀌
모란 산책
베질루르 홍차
사회적 거리 두기
양치질, 3분
해설 무거운 것들을 위하여|황정산
시인은 가벼운 존재이다. 세상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읊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몇 구절의 시를 위해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고통을 모르고 음풍농월을 한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꽃을 노래하고 새를 얘기하는 그 한가한 시구들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 준다. 그것들을 잠시 잊고 도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언어를 통해 삶의 무게를 태워 아름다운 힘으로 변화시켜 마음 속에 꽃을 피우고 삶을 견딜 불꽃의 에너지를 만든다. 그렇게 해서 죽음까지도 견디고 받아들이며 아름다운 순간으로 만들어 낸다.
-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포인세티아
눈의 감정이 소녀의 머리카락을 빗어 넘겼다사선으로 날리는 체크무늬 블라우스 위로붉은 돌기가 돋아났다
차끈하게누구도 눈의 방향에 대해눈의 색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었다오른손이 모르게 왼손도 모르게진심이라는 경계에서는언제나 네 편이었다는 것도내리는 어둠도 떠나버린 배에 관심이 사라졌다꽃의 심장은 젖어있는 바깥으로
왜 자꾸 예민해지는 것일까 오염된 마을과 결별하고 싶을수록
움켜쥔 시간 밖에서점점 넓어지는 젊은 날의 바다그 바다의 기억이 선명해진 날이면 누군가의 출항에 대해서는 좀 더 적극적이 될까?노란 꽃눈을성스러운 눈송이라 말하고 싶은 밤,어린 포엽이 또 한 잎 빨갛게 익었다내가 너 대신 아파줄게, 더는 울지마밤새 속삭이는 담벼락 위 눈발들자주 체위를 바꿨다
안압지雁鴨池
여기에는 무수한 방이 연결되어 있다
벽과 바닥에 각기 다른 얼굴이 연결되고
기둥마다 각기 다른 능력이 연결되고
저녁 또는 새벽이 되기 위해
고요함 속 민첩함은 자주
흐트러진 마음을 불러 모아 경계를 허물지
어쩌다 세상 밖 먼지를 뒤집어쓴
무거운 것들은
고독한 기다림으로 밤새 북을 쳤을 테고
어둠이 달과 나란히 같아질 때
방과 방이 합이 되는 순간엔 별하늘이 콸콸 쏟아졌을 테고
선禪을 재구성한 물빛
공동체를 원하는 벽과 벽 사이
나무 새 바람 몸짓이 예사롭지 않았을 테고
방과 방의 통로는 뜨거운 계절일수록
빗소리가 자주였을 테고
불현듯 누군가도
저기 저 깊숙한 물의 혀를 닮아보겠다고
밤새 신발 벗은 채 밤하늘을 귀찮게 했으리라
몸은 뜨겁게, 꽃이 피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