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대말”의 상품화에 대하여
이번 김영석 영천시장이 영천시가 지역을 상징하는 영천대말(大馬)을 로고로 만들고 캐릭터를 제작하여 도시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자 영천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상품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매우 의례적이라 생각한다. 보수성향이 깊게 자리한 지역민의 반발도 상당하리라 여겨지는 일이지만 뭔가 알릴 것은 바르게 알려서, 시대적으로도 적절한 대처가 되고 지역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방안의 공감대를 개척해 나가는 일 또한 매우 고무적이라 여겨진다.
일찍이 천문 지리학자 ‘격암 남사고’는 영천을 길지라 말했는데 일리가 있어. 영천은 한민족의 영산인 소백산에 가까워. 북쪽엔 보현산(1124m), 서쪽엔 팔공산(1193m), 동쪽의 운주산(806m)이 에워싸며 높이 솟아 있고, 남쪽엔 금박산(432m), 구룡산(675m), 사룡산(685m) 등이 버텨 있어 포근히 감싸인 분지라, 과연 영천은 명당이로고. 한 기록이 보인다.
그렇다면 영천이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북위 36도 동경 129도 부근, 지난 30년간 연평균 기온은 12.25℃이며 최고 기온은 39.4 ℃(1994.7.20), 최저기온은 영하 20.5℃(1981.1.17)이고, 연중 강수량은 1,021.8㎜이며, 연중 일조시간은 2,310 시간이다. 연중 강수량 1,021미리는 거의가 장마기에 내리는 비를 뺀다면 일조시간 2,310시간으로 맑은 날이 많기로 전국에 으뜸이고 건조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여기서 나오는 농산물은 최고의 맛 기능을 지니고 있어서 우수한 상품이 되고 있다.
이곳을 선호하는 국가경영사업을 보면 습기를 피하는 군수산업과 천문관측을 위한 천문대가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태양광발전을 위한 첨단에너지, IT부품산업이 미래의 주종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는 영천이라도 제대로 알려야 지역의 우수환경이 발전의 날개를 달수 있는데, 밤낮 정치 스캔들에 휩싸여 지역민끼리 헐뜯는 작태는 이제 그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영천대말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전국에 이보 더 알려진 영천의 홍보 브랜드는 없을 것이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내가 공직에 있을 때 중앙부서에 회의참석 때 전국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영천사람의 소개를 받고 첫 질문이 영천대말에 관심을 보인다는 일은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영천대말은 전국에 널리 알려진 지역대표적 유행어에 속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영천은 예로부터 곡물류의 집산지로 영천시장에 모여드는 외지 상인들에게 되와 말을 후하게 주어서 생긴 말이며 인심이 좋다는 말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는 좀 기대에 못 미치는 대답을 하기 일쑤였다.
그 후 영천대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조사해 보았더니 영천한약특구와 매우 의미가 깊은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몇 해 전 영천을 위한 사랑모임에 참여하고 있을 때인데, 우리 모임도 로고를 하나 정하자고 하여 제게 일임해 온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영천대마와 청제비를 건의한 적이 있었다. 물으나 마나 영천대마는 회원들이 효용성은 인정하면서도 거부감을 표출하여 채택되지 않았지만 영천을 대표할 그만한 브랜드는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 여긴 일이 생각난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영천대말이 그렇게도 알려졌단 말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을 바르게 내린 사실은 찾기 어려웠다. 거의가 아전인수 격으로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말로 바꾸기에만 전전긍긍한 사실들뿐이다. 영천아리랑이 왜 탄생하였는가? 영천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행동이 노래 가락으로 심금에 깊이 새겨지면서 남녀 간의 사랑, 애향의 그리움이 함께 얽혀져 불러진 노래다. 국내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애틋한 사랑으로 불러지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고국 영천을 그리워한 지역민의 애절한 소원을 담은 노래로 널리 승화시킨 아리랑이 아니던가.
영천대말은 천년에 회자된 영천인의 대명사처럼 불려져 가는 곳마다 크다 힘세다는 억양을 퍼뜨리며 온갖 뉘앙스를 풍겨낸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일이다.
영천에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유서 깊은 고장이다. 특히 유교사상이 깊게 자리한 이곳은 바르고 깨끗한 선비들이 당대 최고의 명예를 누리며 사랑방에 앉아 고고한 글줄의 명성을 자랑하던 시절이다. 이들에게는 학문을 연구하는 외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돈을 버는 일은 천민들이나 하는 하찮은 행실로 여겨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한방 약국을 차려 경제를 도모하는 일은 아예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한약을 조제할 수 있는 기술은 배웠지만 돈벌이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병을 치료하는 것은 선비라면 자가 처방으로 만족하던 시절이다. 선비라면 쇠약하고 정력이 약한 약골로 인식하기 쉬운 선입관이 일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글을 많이 읽은 선비는 요즈음 요가와 같은 운동을 하고(퇴계선생의 운동법상기) 심신을 단련하는 기술을 안다. 그리고 정력제를 조제하여 적당히 사용할 줄도 익히 안다.
영천에는 앞에서 이야기가 있었듯 자연환경이 천혜롭게도 좋은 기능성 한약재들의 생산이 유명하다. 이런 좋은 한약 재료는 시중에 나가면 싼값으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선비들이 만들어 주는 한약조제 기술의 화제다. 한약을 지을 수 있는 화제만 선비들에게서 구하여 지면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즉 그 당시 선비들이 의사의 역할을 하는 시대이다.
영천에는 그 당시에도 한량들이 많았다. 영천은 교통의 중심을 이루게 되니 올바른 선비도 못되고 시중에 유흥이나 즐기며 기방이나 돌아다니는 한량들이 전국에서 모여들 때도 있는 것이다. 한량들은 선비들과 글방시절 인연으로 친분도 있는 한량들이 학문은 하지 않고 기방유흥에만 더 빠지게 마련이다. 이 한량들이 나중에 전국에다 영천대말의 유행어를 만드는 주인공들이다.
쌍화탕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한약이다. 쌍화탕이 감기약이라고 통상적으로 이야기 되는데 자세히 알아보면 그렇지 않다. 쉽게 말하자면 지나친 성행위의 피로를 푸는데 가장 적절한 효과를 나타내는 약이다. 물론 다른 처방에도 효험이 있겠지만 여기에 인용하는 뜻은 그러하다.
내가 직장에서 근무할 때 젊은 직원이 여름에 감기를 앓아 골골거리기를 자주 하길레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하는데 신혼 재미가 지나친가 보다 “김주사 그러지 말고 내시키는 대로 해보겠나, 한약국에 가서 쌍화탕 서너 첩 지어다 달여 먹어봐라 괜찮을 거야” 한 적이 있었다. 성적피로를 너무 느끼게 되면 몸이 허해져서 선풍기 앞에만 서면 재채기가 쏟아지는 현상이기에 여기는 쌍화탕이 제격이었지.
영천의 한량들이 선비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 비방을 남용하지 말고 적당히 사용하랬지만 절제를 모르는 그들이 어디 그러던가 말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요즘 비아그라를 남용하듯 힘자랑을 하고 다녔으니 영천의 대말이 큰지 힘이 센지 분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쌍화탕이라고 다 같은 쌍화탕이 아니다. 쌍화탕의 재료는 개소리 닭소리가 들리지 않는 심산유곡에서 나오는 걸 최고로 아는 지황과 백작약 등 오염이 되지 않는 깨끗한 특히 영천지역 환경에서 자란 약제가 최고로 칠 것이다.
지금도 영천의 한약은 유명하다. 시청에서 한약특구로 지정하여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영천의 중풍약 소문은 민간에서 널리 알려져 서울. 부산 등 각지에서 매일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여기에 아직 그럴만한 브랜드가 없던 차에 이번 영천시장의 발상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올 것임엔 틀림없다. 이것뿐만 아니라 영천의 과일 또한 지역여건의 특이한 기후로 과일 맛은 전국에도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영천은 군사지역이 시가지가 발전할 수 있는 발목을 잡고 있어서 지역경제가 매우 피폐되어 있다. 완산동 공병대부지만 해도 50여 년 전 빼앗듯 징발해간 토지를 국방부가 땅장사를 할 목적으로 이 지역에 쉽게 돌려주지 않고 있어서 완산시장 발전에 막대한 지장이 되고 있어도 항의 하는 단체나 기관이 없다. 정부에서는 수수방관만 하지 말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폭동 적으로 저항하는 어느 지역은 온갖 정성을 쏟아도 영천만큼 국가시설의 피해를 받는 지역은 아무런 대안도 없이 외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어쨌던 새로운 이미지를 태동시켜서 지역경제에 활로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글 : 박용, 경북 동부신문 4월 28일 게재 )
저의 에세이집 제2집에 올린 오래된 글입니다. 올해 붉은 말의 해라 다시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