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요나 선교사 “죄 회개하니 3개월 만에 건강 되찾아”
‘가라 니느웨로!’(장요나/나침반)
안수기도, 쇼인가?
수호천사 덕에 은행사기범 잡아
전도하다 보니 유방암 사라져
장요나 선교사님은 지난 30년 동안 베트남을 비롯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 교회 300개 이상과 학교와 병원 수십 개를 세웠다.
베트남의 ‘언더우드’라 불리고 있다.
선교지에서 일어난 사도행전의 기적들 전해드린다.
베트남에 선교사로 가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당장 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먼저 내 안에 가득했던 불순물을 깨끗하게 비우는 작업을 하셨다.
말씀을 통해 기도 중에 내 죄를 깨닫게 하셨다.
그 중에는 알고 지은 죄도 있었지만 모르고 지은 죄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여자였다.
기도 중에 대형 화면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두 여자가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한 명은 육군병원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간호장교였고, 다른 한 명은 입대하기 전 여고 교사로 있을 때 가르쳤던 여학생이었다.
아무 연관성 없는 두 사람이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다.
“이들은 너로 인해 이 땅에서 실족한 자들이다. 이들의 핏값은 너에게서 찾는 것이다.”
핏값이라는 말을 듣자 아찔했다.
두 사람은 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간호장교는 이단에 빠져 있던 것이 안타까워 내가 여러 번 권면하여 꺼내준 이유로 결혼해 함께 살자고 끈덕지게 졸라댔다.
나는 집요한 그녀를 피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지만 그녀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보내왔다.
전쟁보다 간호장교의 편지가 더 두려울 때 쯤, 나와 같이 근무했던 임 중령이 한국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책임지고 간호장교의 마음을 돌려놓겠다고 했다.
그 중령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장교로부터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자살을 했다.
간호장교가 쉽사리 마음을 접지 않자 임 중령이 내가 베트남 여자와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으니 그만 잊으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간호장교가 실망해 자살한 것이다.
여학생 역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겨 놓고 약을 먹었다.
두 사람 모두 나로 인해 죽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의 물음에 하나님은 주의 종이 되기 전에, 사역을 감당하기 전에 먼저 나로 인해 실족한 이들의 영혼을 위해 아파하며 회개하라고 하셨다.
알고 지은 죄는 회개하기 쉽다. 그러나 모르고 지은 죄는 참회하기가 쉽지 않았다.
간호장교와 여학생의 자살이 가슴 아팠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들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로 인해 그들이 실족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며칠 동안 금식하며 회개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했다.
깊은 기도 가운데 무엇이 죄인지 깨닫게 됐다.
내가 그들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것이 죄가 아니가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지 않은 것이 죄였다.
내가 사랑할 충분한 이유 있는 자들만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할 수 없는 자들까지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내 안에 없다.
그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흘러 보낼 수 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 분을 통해서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앞으로 베트남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면 내게는 그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그제야 나는 가난한 심령,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제 안에 사랑을 창조하사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실족치 않게 하시고, 제가 사랑해야 할 자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나의 허물을 자백하고 죄악을 토설하자 몸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나를 종일 신음케 하고 뼈가 쇠하는 고통 속에 신음케 하고 몸부림치게 하는 것은 죄였다. 눈물로 죄를 고백한 자리에는 반드시 용서하심의 회복이 있었다.
내 죄를 회개하자 3개월 만에 건강을 완전히 되찾았다. 비로써 진정한 예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됐다.
† 하나님 음성듣고 마비에서 풀려나
10개월간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가 “요나야 베트남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천둥 같은 음성을 듣고 마침 마비에서 풀려 깨어났다.
나는 처음 입을 떼자마자 아내에게 “감림산, 감림산”이라고 말했다.
몸이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서부터 (양산) 감림산기도원에 올라가라는 음성이 들렸다.
감림산기도원은 부산에서 수영만요트장 건설공사를 맡아서 할 때 일이 막히고 꼬여 답답해지면 부하직원의 권유로 몇 번 갔다.
그때도 나는 기도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상황은 답답했지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몰라 더듬더듬 몇 마디 구하고 나서는 기도원을 따라 이어진 계곡에서 송사리를 잡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기도한 것보다 술 마셨던 것이 더 선명한 그곳에 1년 만에 뼈 가죽만 남아 38kg 밖에 안되는 몸으로 이모님의 등에 엎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내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큰 벌레가 되어 예루살렘 성문 옆에 앉은 앉은뱅이처럼 예배당 입구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종일 말씀을 듣고 찬양을 불렀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하고 가슴이 뜨거웠다.
죄가 깊을수록 은혜는 컸다.
감림산기도원에서는 1년 365일 내내 집회가 있었다.
내가 기도원에 간지 3개월이 됐을 때 남서울비전교회 최요한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다.
신유의 은사가 강했던 목사님께서 특별히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그 때 사람들이 목사님이 서 계신 자리에서 서너발짝 떨어진 곳에 방석을 놓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광경에 호기심이 생겨 계속 주시했다.
목사님이 사람들의 이마에 손을 대자마다 그들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것을 보자 안수기도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전부 쇼같았다.
안수기도를 받고 병이 낫다는 간증이 넘쳐나는데도 나는 목사님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그런데 집회 마지막날 목사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의심을 풀지 않았던 나는 목사님의 동선을 눈으로 쫒았다.
목사님은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면서 옆으로 뒤로 빠르게 움직였고, 사람들은 볏단처럼 뒤로 쓰러졌다.
방언이 터지고 기도가 뜨거워지는데 나만 심드렁해서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
† “앗 뜨거워”... 안수기도에 모든 병 치유 받아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목사님은 일어나 앉지도 못한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앗 뜨거워”
목사님의 손이 내 머리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펄쩍 뛰며 소리쳤다.
마치 불붙은 쇳덩어리가 이마에 닿은 것처럼 뜨거웠다. 묵직한 충격이 순간 나를 압도했다.
그 불같은 손에 내 머리가 녹고 몸뚱이가 녹으면서 온 몸이 불에 활활 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내 안의 모든 병을 깨끗이 치유하셨다.
그때부터 회복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후들거리던 다리에 힘이 붙었고 번번이 꺾여 주저앉게 했던 팔에도 힘이 생겨 제법 몸을 지탱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지난 10개월 동안 병마와 싸우면서 불치병으로 전신 마비로 누워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죽었다고 했지만, 그때 내 영은 살아서 하늘나라를 자유롭게 오갔다.
그들이 죽었다고 판단한 것은 내 육과 혼이었다.
내 참 본질이자 존재인 영은 죽지 않았다.
만일 내가 숨이 끊어져 목숨이 다했다해도 육신은 흙이 돼 썩어지고 하나님의 씨(생기)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영은 죽지 않는다.
나의 영은 육으로부터 분리돼 땅을 떠나 우리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죽지 않은 영의 존재로 천국과 지옥 중 한 곳에 가게 된다는 사실을 식물인간으로 있을 때 알게 됐다.
가장 무서운 것은 천국과 지옥은 끝이 없는 곳이며 영원하다는 것이다.
또 구원은 죽음 이후의 일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선택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천국과 지옥은 실제 존재”
천국과 지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실제로 존재한다.
나는 꿈이 아닌 신비한 경험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영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속속들이 보았다.
천국은 그야말로 생명의 세계였다.
솜사탕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다채로운 색깔로 살아 움직이며, 오케스트라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돌멩이가 나무에 화답하고 흐르는 물이 바위를 감싸 돌며 내는 신비한 소리는 마치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여”라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말로 외치는 것 같았다.
아무 것도 해할 것이 없고 오직 찬양과 감사만으로 충만한 세계.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다.
지옥이 있었다.
지옥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었다.
그곳에는 고통과 아픔, 절규 만이 가득했다.
소멸되지 않은 뜨거운 불이 사람들을 견딜수 없게 만들었다.
그 불길 안에서 그들은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목말라 했고, 증오와 갈등으로 적의를 불태웠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만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다니며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나라들이 그러하리도다.”(시편 9장 17절)
지금도 지옥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면 정신이 번쩍 든다.
절대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16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