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잘 쇠시고 건강들 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랫만에 들어와 뜬금없지만 과거시험과 벼슬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윤초시, 맹진사, 허생원, 김선달
이런 허명(虛名?)들이 실제 이름 대신 널리 통용된 경우는 아마도 우리나라를 빼면 없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동리에서 행세깨나 하던 어른은 물론이고, 그저 나이 든 노인을 지칭하는 흔한 이같은 명칭에 대해 그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 참으로 괴이합니다.
교과서에도 나온 황순원의 ‘소나기’에는 윤초시의 증손녀가 나오고요. 1950년대 후반에 개봉한 인기 영화 ‘시집가는 날’은 김승호 주연으로 ‘맹진사댁 경사’라는 소설을 영화한 거라네요. 조영남이 부른 경쾌한 리듬의 ‘최진사댁 셋쨋딸’도 있지요. 1930년대 중반에 나온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는 허생원이 조선달과 함께 나옵니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은 벼슬을 사칭하구요.
예비 자격시험 합격만으로도 만족?
이게 모두 과거시험이 낳은 병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선조에는 3년마다 한번씩 치는 과거시험 식년시(式年試)가 있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시행하는 증광시(增廣試)가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특별채용을 위한 별시(別試)들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중언부언하는 것은 논점을 흐릴 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기에 생략합니다. 식년시는 통상 상반기에 한성에서 시행합니다. 바로 이전 하반기에 식년시를 칠 자격을 주는 지방의 향시(鄕試)가 있는데, 여기에 합격한 이를 통상 초시(初試)라 부른다고 하지요.
향시에 합격한 사람은 다음해 상반기에 한성에서 식년시를 칠 자격이 주어집니다. 여기에는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 있는데, 생원과는 철학과 역사에 해당하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이 주제이고, 진사과는 시(詩)를 짓는 거지요.. 이렇게 생원과 진사라는 명칭이 탄생하게 됩니다. 생원과와 진사과에 급제한다고 하여 바로 벼슬길에 오르는 게 아니고, 대과라 부르는 문과(文科) 시험에 붙어야 가능합니다. 재미있는 건 문과 시험을 포기하고 생원이나 진사라는 이름만으로 만족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거지요, 일단 가문의 체면은 지켰으니..
그리고 과거시험에 붙고도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을 선달(先達)이라 불렀는데, 조선 후기에는 특히 무과(武科)에 합격하고도 벼슬하지 못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아홉번 장원급제한 栗谷
율곡 이이 선생은 13세에 장원을 시작으로 29세까지 도합 9번의 장원을 하여 조선조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근래 양시합격이나 삼시합격도 무색하지요.
-13세 소과 진사과 초시 장원
-21세 소과 진사과 복시 장원
-23세 별시 장원
-29세-소과 생원과 초시 장원
-소과 생원과 복시 장원
-소과 진사과 초시 장원
-대과 초시 장원
-대과 복시 장원
-대과 전시(展試)* 장원
*전시(展試)는 나라의 시무를 묻는 논술형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이 붙은 율곡은 하마터면 10번 장원급제 할뻔 했다네요. 29세 때 소과 진사과 복시에서는 장원을 못하고 그냥 합격만 했기에..
경로용으로 관직명까지 남발
노인의 다른 명칭이라 할 수 있는 영감(令監)은 조선시대 정2품에서 정3품 당상관까지 고위품계를 가진 신하들을 이르는 말이었데요. 일제 강점기에는 군수나 판검사를 지칭하는 명칭이었으나, 지금은 그냥 남자 노인을 좀(?) 높여 부를 때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세기 후반에도 이미 나이많은 노인들에게 영감을 경칭으로 쓰게 했다는 기록도 있네요.
1920년대 발표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에는 인력거꾼 김첨지가 나옵니다. 하층민들의 삶을 그린 이 소설에 나오는 첨지는 그저 나이먹은 남자를 낮춰 부르는 명칭이나, 조선조에서는 중추부(中樞府)에 속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의 약칭입니다. 첨지중추부사는 정3품 무관으로 당상관에 속하는 고위층 벼슬입니다.
조선조에는 말단 9급에 해당하는 참봉(參奉) 벼슬이 있습니다. 이중 왕릉을 관리하는 능참봉을 최고로 치는데, 이는 하는 일은 적고 관할 관청 관리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폼나는 벼슬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조선 후기 매관매직에 양반마저 팔아먹던 시절, 경로용으로 관직명을 폭넓게 부여해 준것은 돈 안 드는 복지정책(?)의 일환이 아니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