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찢기듯 부서졌다...
김준호 기자
입력 2023.07.11. 09:42업데이트 2023.07.11. 10:25
11일 오전 해체작업이 시작된 경남 거제 거북선. /거제=김준호 기자
짝퉁 목재 사용·헐값 매각 등 탄생부터 줄곧 논란 속에 있던 경남 거제 거북선이 11일 해체·철거에 들어갔다. 지난 2011년 6월 11일 준공 후 4413일 만이다.
이날 오전 8시 30분 경남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야외광장. 포클레인 1대가 거북선 머리 부분을 내리치자 ‘뚜둑’하는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산책을 나섰던 시민이 이 장면을 보면서 “마치 거북선의 비명 같다”고 했다. 목재 부식이 심각했던 상태라 포클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거북선 몸체를 담당하던 목재는 종이 찢어지듯이 쉽게 부서졌다. 앞서 거제시가 전문 업체에 맡긴 용역에서 ‘목재의 90% 이상이 부식되는 등 재활용이 어렵다’는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실제로 거북선 선체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스펀지 들어가듯이 쑥 들어갔을 정도였다. 이날 시작한 거북선 해체 및 철거, 이후 소각 등의 작업은 오는 23일까지 진행된다. 선체에 쓰인 목재는 소각되고, 금속은 고물상에 매각할 계획이다.
11일 해체된 거북선의 용머리가 부서진 목판과 잔해 더미 위에 놓여져 있다. /거제=김준호 기자
거제 거북선은 지난 2010년쯤 추진한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했다. 16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2011년 6월 11일 준공했다. 제작 당시 전문가 고증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 때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해 ‘1592 거북선’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후 거북선 제작 업체가 국내산 소나무 ‘금강송’을 쓰겠다는 계약을 어기고, 80% 넘게 외국산 목재를 쓴 것이 드러나면서 업체 대표가 구속되는 등 탄생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이 사건으로 거북선 건조업체 대표는 사기 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전시된 거북선. /뉴스1
제작 이후엔 거북선 관리가 문제였다. 당초 승선 체험 등 관광용으로 거북선을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닥에 물이 차오르고, 기울어짐이 심했다. 뭍으로 올리고 나서는 나무가 썩는 등 부식 현상이 심했다. 태풍 등 자연재해에 파손도 발생했다. 유지관리비로만 1억5000여만원이 들어갔다. 전문 용역업체로부터 ‘재활용도 어렵다’는 판단을 받자, 결국 거제시는 거북선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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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는 폐기 처분에 앞서 공매를 하기로 했고, 7차례 유찰 끝에 지난 5월 16일 60대 여성 A씨가 154만 5380원에 거북선을 낙찰했다. 낙찰 가격이 알려지자 이제는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낙찰자 A씨는 “충무공 이순신 탄생일인 ‘1545년 3월 8일’에 맞춰 쓴 가격이다”고 억울해했다.
A씨는 이 거북선을 학습체험용으로 활용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길이 25.6m, 너비 6.87m, 높이 6.06m에, 무게가 120t에 달하는 거대 공작물인 거북선을 옮길 장소와 운반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A씨는 거북선 인수를 포기했고, 거제시는 당초 계획한 대로 거북선을 폐기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제작부터 지금껏 숱한 논란에 있던 거북선이지만, 거제시민은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우연히 철거 현장을 지나가던 거제 시민 이모(45)씨는 “짝퉁이고, 부식되고 해도 거북선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것 아니냐”며 “철거 작업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진 않다”고 했다.
11일 오전 해체 작업 중인 거제 거북선. /거제=김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