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면 더 몰아준다던데, 적당히 해야 하나?”

[청명]

“일 잘하면 더 몰아준다던데, 적당히 해야 하나?”

분위기가 싸늘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목표한 수익이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한 상황. 전사 차원에서 원가 저감 TFT(Task Force Team, 프로젝트성 임시 팀)을 만들어서 연말까지 운영하겠다는 공지가 내려오고, 우리 팀도 한 명을 차출해야 한다. 그 일을 맡을 담당을 정하는 회의이니 다들 눈치만 볼뿐이다.

이 팀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자원하는 사람 있느냐고 던져 보는데 누가 나서겠는가? 첫 번째 화살은 그나마 업무에 여유가 있는 황 책임을 향한다.

황 책임, 그래도 자네가 맡은 프로젝트는 이제 곧 마무리 되잖아. 어차피 연말까지만 한시적으로 하는 일이니까 우리 팀에서는 황 책임이 맡아 줬으면 하는데…

안됩니다. 팀장님. 프로젝트 후속 작업이 얼마나 복잡한데요. 지난번에도 막판에 문제 생겨서 출장 가고 정신없었던 거 기억하시잖아요. 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신입인 나 연구원이 맡을 수도 없고… 김 수석.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김 수석이 맡아 줘야겠어. 어쩌겠냐? 우리 팀 대표하는 자리잖아. 부탁할게.

… 예. 알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오늘 밥 살 테니까 저녁에 시간 비워 놔.

역시 또, 김 수석님이 맡으시는구나. 하여튼 일을 잘하는 것도 죄다. 무슨 일만 터지면 김 수석 님께 맡겨 버리는데, 이렇게 일이 몰려도 괜찮은 거야? 아이들도 아직 어리던데. 역시 일은 적당히 해야 하나 봐.

내가 일하는 시간이 쌓여서 미래의 나를 만듭니다

회사는 직원이 나가지 않을 만큼만 돈을 주고, 직원은 회사가 쫓아내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한다.

직장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한 말입니다. 우리가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제1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고, 회사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만큼 서로 목표에 충실하다면 일견 이해가 되는 명제입니다.

그러나 서로 주고받는 돈을 걷어 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활동입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쌓여 내 몸이 구성되듯, 내가 일하는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쌓여서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갑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돈을 얼마나 받는지와 상관없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겁니다.

먼지 같은 일을 하다 먼지가 되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의 종류를 직접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쉽게도 우리는 하고 싶은 일,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보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삽니다. 설령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고 해도 몇 년을 반복하다 보면 변화가 절실해지는 경우가 많죠.

변화가 필요하면 이직도 많이 합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일을 하면 지금의 답답한 문제가 해결될 것 같거든요. 연봉도 올려 받으면 좋겠죠. 하지만 경력직 이직은 신입 채용보다 기대하는 바가 더 명확합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으려면 성과를 다시 쌓아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새로운 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상황이 변할 때도 있습니다. 위의 에피소드처럼, 누구도 나서지 않은 새로운 일이 떨어질 때입니다. 팀장 입장에서는 꼭 누군가가 해줘야 하는데, 각자의 업무가 셋업된 상황에서 추가로 부담 주기는 난처한 상황이죠. 그러니 그 일을 맡아 주는 사람이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새로운 일이 터질 때마다 도맡아 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세요. 남들보다 조금 더 바쁘긴 할 테지만,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일을 하고 있나요? 근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맡는 일을 혼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기존의 일을 하면서 덤터기로 새로운 일도 떠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지나고 보면 예전에 하던 일 중 단순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고 본인은 새로운 일을 주로 하고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교육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을 어떻게 진행하는지에 대해서 정해진 틀도 없기 때문에 룰도 협의해서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고, 부서 외의 사람들과 접점도 늘어나니 사내에서 접하는 영역도 더 넓어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일을 잘해 내면, 다음 기회가 왔을 때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평가도 잘 받고 승진의 기회도 더 찾아오겠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을 만날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세련되게 협상하세요

그러니, 일복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적당히 일하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만 취하지는 마세요.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비교해서 더 재미있을 것 같고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면 과감하게 도전하길 추천합니다. 다만, 말도 안 되는 덤터기를 쓰지 않으려면 세련된 협상이 필요하겠죠.

먼저, 새로운 일의 양과 기간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잠깐 맡을 일이라면 현재 하는 일의 일정을 조정하는 정도의 양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맡아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새로운 일을 놓고 어떤 걸 계속하고 어떤 걸 넘겨야 할지 팀장과 협상해야 합니다.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지킬 건지는 간단합니다. 내게 부담이 없는 일을 지키고, 내가 잘 알고 잘하는 일을 잘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넘기세요. 내가 하던 일이라고 아까워할 필요 없습니다. 일은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아니까요. 오히려 자기가 하던 일을 남이 잘할 수 있도록 조정한다면 새로운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일들을 찾아서 하다 보면, 어느 틈에 부쩍 자란 본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찮은 일을 하면 하찮은 존재가 된다지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그냥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가치 있는 일을 맡을 만큼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자기 영역에서 한 발자국 나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유일하게 ‘갑’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MZ를 위한 TIPs

• 새로운 일을 맡는 것은 기존 일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부담 없는 일을 지키고, 잘 아는 일을 정리해서 넘겨주자.
• 필요한 지원과 교육과 권한을 잊지 말고 협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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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이정원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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