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心志)깊은 정중동(靜中動)의 서 순옥 시인[詩人]
글 김광한
첫보기에 말붙이기가 힘든 대상이 있다.체격이 자신보다 월등하게 크거나 사회적 직위가 높아서 실수라도 한다면 망신을 당할 것같은 그런 대상,아니면 인격이 출중해서 자칫하다가는 자신의 빈약한 지식이 탄로가 날것같은 사람, 용모가 빼어나서 그 앞에서면 웬일인지 주눅이 들것같은 그런 사람들,그러나 이런 사람들 말고 웬일인지 먼저 말을 붙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것 같고 인정이 많아서 내 슬픔에 동참해 눈물을 글썽여줄 사람,그리고 아는 것이 많아서 웬만한 질문에 시원하게 답변을 해주고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인생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후자쪽 인물이 서순옥 시인이 아닌가 한다.오지랍이 넓고 인정이 많아서 눈물이 마를 사이가 없고 체격에 비해 여린마음이 기득차 툭 치면 눈물이 금방 쏟아질 것같은 사람, 그래서 사물을 항상 슬픈 눈으로 대해서 그 상대에게 자신의 동정을 전하는 시인이 바로 경상북도 울산에 사는 서순옥 시인이다.
67년에 태어났으니 20세기 사람이고 불혹을 갓지난 나이치고 이력서가 두어장이 넘는 것을 보면 여간 활동이 적극적이고 또한 사회적인 신분을 갖고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다 보니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여러 장소를 전전하고 거기서 본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관찰하다가 문득 시상이 떠올라 적어놓은 시들이 노트장 한권이 넘을 것같은데 여기 그 몇편의 시를 올려본다.
*솜 타는 이서방/서순옥
초야 치른 첫날밤 부끄럼을 가리고
아들딸 장성하여 취송시켜 보내고
한 이십년 찌들은 애환 묻은 껍데기
이집 저집 애환들 세월만큼 실렸네.
넝마장수 다리품 마다않고 팔지만
재 넘어 구서방네 열 고개 넘으려니
달구지도 못 끌고 나귀만 앞세우니
십리길 달려가는 고단한 인생사라
요즘은 난방이 잘되어서 굳이 솜이불이 필요없는 시대가 됐지만 아직도 온돌에 군불을 지피고 두텁고 보들보들한 솜이불을 눌러 덮고 자야 제격인 시골이나 변두리 동네에서는 기계로 돌리는 솜틀집이 간혹있게 마련이다.시집올때 가져온 냄새나고 뭉쳐버린 솜을 틀기 위해 솜틀집에 갖다주면 언제나 처럼 때국물이 흐르는 얼굴의 이서방이 받아서 개어놓는다.일거리가 밀리지 않아서 그것은 금방 기계로 들어가고 이윽고 30년도 넘은 먼지와 함께 맺히고 응결이 된 솜이 부들부들하게 펴진다.
시인은 바로 솜틀집 주인인 구서방이란 한 가난한 서민의 변치 않는 삶을 조명한 것이다.이제는 현대화에 빌려서 사라져가는 원시적인 직업이지만 이렇다할 기술도 없고 가진것 배운 것이 없는 이서방으로서는 이 솜틀집이 자기가 살아잇을 동안 없어지지 않고 일거리가 그칠날이 없게 되는 것이 소원이다.
시인은 이런 구서벙의 소박한 희망과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한편생을 살면서 삶의 애환에 시달렸을 성싶은 많은 일들,그러나 서서히 황혼길로 접어드는 구서방의 인생과 그의 정직성, 그리고 그의 가난에 대해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이 시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이해를 못할 것이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고 컴퓨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발로 돌리는 구식 솜트는기계는 아마도 전시대의 유물이나 되듯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보잘것없는 기계가 되어버린 삶의 전부였던 솜틀기,시인은 그런 구서방의 가난한 삶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다.그러나 그의 인생에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 무력감에 더욱 슬퍼지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낡은 반지/서순옥
은밀한 곳에 감추어 둔 마음 하나 버리지 못하는 집착
꿈속으로 파고들어 먼길까지 따라온 외로운 영혼
결코 당신에게 있어 닳고 닳은 반지 하나가 이승의 삶의 전부를 말해주듯
버리고 가지 못하는 미련을 품고 가려는 눈물스런 호소
꿈결로 찾아와 부탁하고 꿈결로 찾아와 인사하고 가네.
훗날 생의 마감을 눈앞에 두게 될 나의 인생 또한 허무하게 될까 봐 내내 찹찹하기 그지없는 내 마음
위의 시에서 보듯 서순옥시인은 시의 소재를 우리들의 가난했던 지난시절의 삶과 소외된 이웃들에게서 찾아 나선다는 것이 다른 여류시인들과 구분이 된다고 하겠다.남녀간의 사랑과 고독, 그리고 이별의 아픔과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는 여류시인들에게서는 찾아보지 못할 끈끈한 인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히 담겨있다는 것이다.낡고 보잘것없는 옛날의 반지, 그것에 얽힌 풍요스런 사랑의 이야기,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들의 역사이고 기억하고 싶은 보석과도 같은 시간들이다.오직 나만이 아는 그래서 더욱 값이 나가는 그 반지,누가 가져가지도 않겟지만 그것이 없어진다면 내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허망감에 젖어드는 그 낭만과 같은 반지,그것을 서순옥시인은 시로서 물질은 많지만 정신이 공허한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로 만들어서 전하는 것이다.
*수석(壽石)/서순옥
너는 시선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을 꽂았다
너는 발로 차기도 했지만 나는 두 손에 받쳐 들었다
너는 하찮게 여길지나 나는 신전을 차리듯 모셨다
너는 밟고 지나갔지만 나는 멀리 있어도 찾아 나선다.
수석을 가만히 드려다보면 우리들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듯 하다.전체적으로 보면 산과 하천같이 보지만 가까히서 보면 하늘같ㄷ기도 하고 또 다른 형상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 수석을 보는 즐거움이다.수석안에는 강과 하천과 산이 들어있고 거기에 개미보다 작은사람들이 오가고있다.수석은 축소한 인생살이 그 자체이다.마치 날씨 맑은날 비행기 유리창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거기 장난감처럼 생긴 버스가 다리위로 달리고 강과 산이 도화지에 그린 조그만 그림처럼 보인다.그것은 수석안에 들어있는 그림들과 흡사하다.서순옥 시인은 수석을 보면서 그 수석의 값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수석안에 들어있는 꿈결같은 그림을 보고 문득 삶의 방관자가 된듯한 느낌을 갖는다.그리고 야기에 한줄의 낙관(落款)과 같은 시를 올려놓았다.그것이 수석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서순옥
어느 시인이 그런다 속임을 받았어도 노여워하지 말라고
노여워하지 않는 대신 나는 다만 침묵 할뿐이다
생각에서 생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위선으로 뚫린 터널에 갇혀 출구로를 향해 몸부림하는 나 일지라도
가성假聲으로 노래하며 먼 바다를 헤엄쳐오는 그대 일지라도
침묵으로 대신 할 뿐이다
얼핏보면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의 동명 시같기도 하지만 서순옥시인의 위의 시는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삶이 그대를 속인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삶으로 돌려버리고 자신은 그 험한 생활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하는 시가 아닌 좀더 반성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권장한 시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서순옥 시인은 그 나이로보아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이다.생각에 앞서 행동이 우선되는 그 나이에 비해서 과묵한 천성이 그를 심지가 깊은 시를 쓰게 만든 것이다. 앞으로 남은 많은 세월은 그에게 더 좋은 시를 제공하게 될 재료로 가득차게 되리라 믿는다.
67년 포항 출생 - - - 사계문학회 회원 - 시와비평 문학회 회원 - 한국육필문인협회 회원 - 울산문인협회 회원 - 울산시인협회 회원 - 작천정 낭송회 회원 - 서라벌문인협회 회원 - 2003 사계문학 인터넷 문학상 수상 - 2004 겨울호 시인과 육필시 신인상 - 2005.5 개인 시집" 묻어야 할 그리움"(씨알소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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