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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이끄시는대로(3월 6일)
누가복음 4:1-13(신약 93)
새봄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방역 패스를 중단하고 모든 국민들이 조금은 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접종과 상관없이 49명까지는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접종 완료자들만 모일 경우에는 좌석의 75%까지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장 예배를 드리는 것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직업적인 이유로 인해서 아직 현장 예배에 참여할 수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직업적인 이유가 아닌 경우에는 자유롭게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염려가 되시는 분들은 유튜브로 참여하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함께 모여 예배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라고 하고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날까지를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절을 계산할 때 주일은 사순절에서 제외가 되고 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을 사순절이라고 부릅니다.
금년 사순절에는 총회에서 다섯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같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첫째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서,
둘째는 일상회복과 현장예배 회복을 위해서,
셋째는 10월에 우리나라에서 ECFC가 열릴 예정인데 일상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대회가 열릴 수 있기를 위해서,
넷째는 그동안 힘들었던 교회들이 다시 부흥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다섯째는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이렇게 다섯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 성경을 읽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고 마귀에서 시험 받으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는데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받으신 것입니다.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므로 시험을 이기는 본을 보여주셨고 또한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이미 시험을 받아 이기신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이야기는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공관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시고 시험 받으신 것을 설명하면서 성령에게 이끌리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광야로 가셨고 시험을 받으셨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많이 들었고 잘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이야기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에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사건을 기록한 공관복음은 모두 공통적으로 성령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하셨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의 몸을 가지셨습니다. 따라서 공생애 사역을 하심에 있어서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보면 너무나 약해 보이시고 십자가를 제대로 지고 올라가실 힘조차 없어 보이셔서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죄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힘도 없을 만큼 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약할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신 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성도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셔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고 너희는 성령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모여서 기도하던 120명이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되 다시 우리의 영성이 회복되고 성령 충만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코로나 19가 우리를 영적으로 침체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서 다시 성령 충만한 참빛 교회, 성령 충만한 참빛 가족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충만하신 예수님은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광야로 가셨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신 것을 기록하면서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즉 성령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시련의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 머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통해서 지금까지 애굽에서 400년을 살아온 것을 청산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광야는 시련과 시험의 자리이면서 광야는 또한 새롭게 하는 자리입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곳이 광야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30년을 사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신 인간의 삶을 벗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서 공생애를 위해서 광야에서 과거의 삶을 벗고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영적 과정을 겪으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광야로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영적 광야 생활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영적 광야로 인도하셔서 과거의 나를 벗고 새로운 성도로 거듭나는 과정을 겪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을 받은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새로운 사도로 거듭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갈 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성령님께서 금식하게 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렇게 기록한 다음에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이 기간이 40일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금식하신 것은 마귀의 시험에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금식하실 때 마귀가 금식을 방해하는 시험을 하고 금식이 끝난 다음에 본격적인 시험이 왔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하신 것은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개인적인 의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금식하시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우리가 금식기도를 할 때가 있는데 금식기도는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금식하게 하실 때 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의지로 금식을 하면 견디는 것이 쉽지 않지만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금식을 하면 힘들지 않게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금식을 하시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배고픔을 느끼셨고 목마름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면서 금식을 하셨고 금식 중에 오는 어떤 유혹과 시험도 이기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금식할 때 철저하게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해야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온전히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시험을 받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40일간 금식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식이 끝나셨을 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시험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고 그곳에서 시험을 받게 하셨습니다. 2절을 다시 보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지만 성령님께서 마귀가 시험하는 곳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욥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 2: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욥이 시험을 받을 때 욥을 시험한 것은 사탄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욥을 시험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사탄은 시험하는자 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갈 때 시험이 전혀 없고 모든 것이 다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끄셔서 시험 받는 자리에 서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시험 받는 자리에 서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시험 받는 자리에 서게 하시고,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입니다. 6절을 보면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마귀는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 즉 어둠의 권세를 마귀가 잡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시험할 때 자신이 가진 권세를 가지고 흥정을 했습니다. 나에게 절하면 내가 가진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너에게 주겠다. 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귀는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권세를 가지고 시험을 합니다. 내가 가진 이 권세를 너에게 주겠다. 그러니 너는 내 말을 듣고 내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라고 시험을 합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마귀는 돈과 명예와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시험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에게 마귀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시험을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런 시험을 통과하도록 시험 받는 자리에 서게 하신 것입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 내게 절하라, 뛰어 내리라 이것은 인간이 가진 욕심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고 마귀는 공중권세를 잡은 자로 우리를 먹는 것 다르게 표현하면 돈, 그리고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시험을 합니다.
3. 시험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시험 받는 자리로 이끄시지만 우리가 어떤 시험을 받는지 승리하게 하십니다.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게 하시는데
성령님은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8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0-12절까지
4: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4: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도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눅 12: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시험 받을 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생각나게 하셔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도 성령님께서 오셔서 어려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말씀이 생각나게 하셔서 결국에는 승리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십니다. 빌 4:7절을 보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 성령을 의지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는 성전 꼭대기로 가서 뛰어내리라고 시험을 했습니다.
이것은 마음을 시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 할 수 있잖어 이렇게 시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의지하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살후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감당할 시험만 주십니다. 고전 10:13절을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성령님께서 시험을 받는 자리로 이끄시지만 누구든지 그 사람이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하십니다. 내가 받는 시험이 두렵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그런 시험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그런 시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험만 주시고, 시험을 받을 때 피할 길을 미리 준비해 주셔서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마귀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이기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고 있다면 이 시험을 감당할 믿음과 힘이 나에게 있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음을 믿고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큰 시험을 겪는 사람은 그 만큼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련과 환난 속에 있어도 성령님은 능히 이기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대로 살아가되 그 자리가 금식하는 자리가 되고 시험을 받는 자리가 된다고 해도 성령님께서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마음을 지켜 주시고 능히 감당하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모든 것을 성령님께 맡기고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말씀으로 승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유지함으로 승리하고 능히 감당하게 하시고 피할 길을 주셨음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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