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마 붓다의 생애 (78)
47. 아난다
붓다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비구니나 신심이 돈독한 우빠사까나 우빠시까도 아난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할 것이고, 아난다가 그들에게 설법하면 모두가 환희심을 낼 것이다.”
붓다가 말씀을 마치자 아난다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땅은 작은 도시이고, 숲 속에 있는 황량한 도시이며,
변방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열반에 드시지 마십시오.
저 짬빠, 라자가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와라나시와 같은 큰 도시에서 열반에 드십시오.
그곳에는 부처님을 신봉하는 거부장자나 바라문이나 거사들이 많이 있어 부처님을 받들어
모실 것입니다.”
“아난다야, 이곳을 작은 도시, 숲 속에 있는 황량한 도시, 변방에 있는 작은 도시라고 부르지
말라. 먼 옛날 마하수닷세나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있었을 때는 이 도시의 크기가 동서로
12유순이요, 남북으로 7유순이나 되는 큰 도시였다.
그 때는 꾸시나라를 꾸사와띠라고 불렀고, 그 때의 꾸시와띠는 물자가 풍부하였고
사람들도 많았으며 밤낮 쉴 사이 없이 우마차의 오가는 소리로 시끄러울 정도였느니라.”
<마하수닷사나 자따까>에 의하면, 아난다가 ‘이 작은 도시에서 열반에 들지 말아 달라’고 했을 때, 이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48. 말라족에게 알려라.
붓다가 아난다에게 ‘오늘밤 안으로 여래가 열반에 든다’는 것을 말라족에게 전하라고 지시했다. 붓다의 지시를 받은 아난다는 꾸시나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마침 꾸시나라의 말라족이 공회당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아난다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와셋따들이여, 부처님을 뵙는 것도 오늘밤이 마지막이 될 것이요.
부처님께서 오늘밤 살라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실 것이니,
여러분은 가서 의심되는 것이 있으면 직접 물으시오.
그리하여 뒷날 후회하지 않도록 하시오.”
말라족들은 가족들과 함께 붓다를 뵈어 야겠다고 각자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살라 숲으로 모여들었다. 아난다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씩 뵙게 했다가는 날이 새도 끝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가족별로 그룹을 만들어 앞에 세우고 붓다에게 그들을 소개했다.
49. 마지막 교화자
이때 수밧다란 이교도가 붓다께서 오늘밤 안에 열반에 드신다는 소식을 듣고 의심나는 것을 물으려고 달려왔다. 그는 이미 120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아난다가 그의 앞을 가로막자 붓다를 꼭 뵐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아난다는 붓다가 병환중임을 들어 공연히 붓다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거절하였다. 그렇지만 수밧다는 붓다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은 마치 우담바라 꽃이 피는 것을 보기가 어려운 것처럼 힘든 일이니 제발 붓다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붓다는 밖에서 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소리를 듣고 아난다에게 말하였다.
“아난다야, 그 사람을 막지 마라. 들어오게 하라. 의심을 풀려는 것이니
조금도 귀찮을 것이 없다. 그도 내 말을 들으면 반드시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붓다를 뵙게 된 수닷다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여쭈었다.
“세상에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사상가들이 많습니다.
뿌라나 깟사빠․맛칼리 고살라․아지따 께사깜발라․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라티뿟따․니간타 나따뿟따가 그런 이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르침이 모두 다릅니다.
세존께서는 그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다 아십니까?”
“수밧다여, 나는 그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다 알고 있소. 이제 내 가르침을 들으시오.
모든 가르침 가운데 여덟 가지 바른 길, 다시 말해 팔정도(八正道)가 없으면
사문(沙門)의 제1과(果)․제2과․제3과․제4과와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소.
나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을 가르치고 있소. 외도들에겐 사문의 과(果)가 없소.”
붓다는 수밧다에게 다시 말했다.
“내가 29세에 출가하여 어언 51년, 유익함[善]을 찾아 금욕[戒]과 명상[定]과 지혜[慧]를
닦으며 조용히 사색해왔소. 이제 가르침의 요점을 말했나니,
이 길을 떠나서는 수행자의 삶이란 없소.”
한역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29세에 출가하여 35세까지 외도들 가운데서 도를 배웠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깨달음을 얻는 자를 보지 못했다.
오직 팔정도를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멋지게 나이 들기]
이제 그만 자신에게 너그러워져라
나이가 들면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너그러움에는 나의 지난 잘못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포함된다. 나 자신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다면 진짜 제대로 나이를 먹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세 가지 일은 증오를 사랑으로 갚는 것. 버려진 자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 잡지에서 인상적인 기사를 읽었다. 자녀들이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자 장례식이 끝난 후 주의 사람들에게 뒤늦게 부고를 전했는데 그 내용이 감동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생전에 크고 작은 잘못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던가 보다. 자녀들이 볼 때도 아버지의 잘못은 명백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잘못을 적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분들께 자녀들이 대신 사과의 말을 전하는 부고장이었다. 잘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모사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 아버지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은 자녀들의 마음이 의미심장하다.
인생에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시점에 이르면 실수와 실패, 잘못된 일드을 돌아보면 좋겠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다. 후회 혹은 속죄의 고백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다. 그게 진짜 회고록이다. 어떻게 살았건 간에 살아온 모든 인생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멋있게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 앞에 설 수 있다. 나의 부족했던 삶을 통해 인생 후배들이 많은 것을 배운다면 그 또한 내가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 아닐까.
과거는 과거다.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몸이 바쁘지 않을수록 과거 속에 살기 쉽다. 과거를 완전히 잊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갖고 놀아라. 과거는 심심할 때 잠깐 불러내가지고 노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어떤가.
불가에 ‘지금 네가 선 자리를 꽃방석으로 만들라’라는 말이 있다. 과거도 미래도 보지말고, 지금을 보라는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오늘을 살 뿐이다.
이근후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갤리온출판)」 중에서 발췌요약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