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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吳氏 派祖 世系
(한국오씨 파조 세계)
(※가나다 순)
高敞-始祖 學麟(학린). 고려 靖宗 때 翰林學士 正四品. 외적 토평한 공으로 高敞을 食邑으로 하사하니 후손들이 本貫으로 함. 孫子 世文이 陞補試(승보시)에 장원 東闕侍學(동궐시학)을 지냈으며 (東宮 三品)-六品 兄 世功과 弟 世才와 함께 당대 유명한 學者, 詩와 書藝에 능함. 世才는 竹林七賢의 一人으로 李仁老와 學問 交流. 世文의 曾孫 季孺가 고려 忠肅王 佐理功臣 三重大匡都僉議 贊成事 牟陽君(모양군)에 봉함. 季孺의 孫子 淹(엄)이 李朝 太宗 때 京畿水軍節度使, 忠淸道 兵馬節度使 역임. 淹의 孫子 原纘(원찬)이 上將軍 正三品 武將으로 忠誠함. 澐(운)은 壬辰倭亂 때 義兵將하고 丁酉再亂 때 공을 세워 通政大夫(三品) 僉知中樞府事 工曹參判을 했다. 近代에 3ㆍ1運動 民族代表 33인 중의 一人 獨立運動에 앞장선 華英은 또한 朝鮮民族黨黨首 韓中協會 會長 등을 지냄.
● 集姓村 : 慶北, 忠北.
● 行列字 :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炯ㆍ烜(훤)ㆍ炳)(坤ㆍ培ㆍ埈)(鉉ㆍ錡)(浩ㆍ漢ㆍ洙)(桓ㆍ柄ㆍ柱)
33세 34세 35세
(燁ㆍ爀ㆍ炫) (圭ㆍ孝ㆍ謹)(鈺ㆍ鈞ㆍ珽)
● 祠宇 : 竹林祠(學麟ㆍ世文ㆍ世才)
軍威-始祖 淑貴(숙귀). 賢佐의 二子. 高麗 때 軍威君에 封君되어 世孫이 定着 世居함. 同福에서 分籍함. 七世孫 光桂가 副尉 儀賓府 소속 正三品. 子 景安은 千戶이며 朝鮮朝의 晟은 禦侮將軍(어모장군) 正三品. 용맹을 떨쳤고 錫孝가 通政大夫에, 道桓은 同知中樞府事 역임. 道泰와 命虁(명기)는 禦侮將軍을 하고 在雲은 通政大夫를 함.
● 集姓村 : 濟州道 서귀포시. 남제주 난산리, 신풍리.
● 行列字 : 14세 15세 16세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時 祿 廷 觀 季 在 昇 杓 太
羅州-始祖 淑珪(숙규). 高麗 中葉 進士 후에 中郞將 偃(언)을 一世祖로 함. 世居地 羅州를 本貫으로 함. 5世孫 自治가 武科 世祖 13년에 李施愛의 亂을 平定 功勳이 敵愾功臣(적개공신)에 책록 후에 兵曹參判하니 羅城君에 封함. 또 宣祖 때 謙(겸)은 別試文科하여 南原府使 全羅道觀察使 禮曹判書 大司憲 右議政 右贊成 正一品, 几杖(궤장)을 下賜받고 知春秋館事, 明宗實錄 편찬에 참여. 壬辰亂 때 全州實錄史庫에 兵火를 막아 保存하는 데에 공이 큰 希吉과 學行이 뛰어난 孝錫이 家門을 빛냈다.
● 琴岩祠 : 原從一等功臣 吳希吉을 配享함. 高敞 아산면 소재.
● 殉節紀績碑(都統長 吳寅燮) : 광산군 본양면 소재
● 集姓村 : 羅州市 노안면 도산리, 문평면 일원.
● 行列字 : 13세 14세 15세 16세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23세
時 源 相 煥 圭 善 洙 根 烈燮 敎均 鍾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泳 秉 熙 均 鎬 淳
● 元堂影閣(吳自治)-光州市 光山區 본량면 왕동리.
廣山祠(吳謙) : 光山區 삼도면 송산리.
琴岩祠(吳希吉) : 高敞郡 아산면 반암리.
大明祠(吳孝錫) : 광산구 본량면 명도리.
白蓮祠 :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
樂安-始祖 士龍(사룡). 高麗 때 三司左尹 從三品. 外敵을 討伐한 功으로 紫金魚袋(자금어대)를 하사받고 樂安君에 封함. 李朝 世宗 때 司馬試에 합격한 뒤 經筵官을 역임한 陟之를 一世祖로 함. 子 伯顔(백안)은 世祖 때 文科하고 吏曹參判 弘文館大提學을 역임하고 孫子 元老가 敎授(儒生 가르치는 從六品)를 지냄. 哲儉(철검)은 正憲大夫(正二品) 兵曹判書 역임. 通政大夫를 한 景弘(경홍)과 景毅(경의) 형제와 希麒(희기) 또한 壬辰亂 때 扈聖功臣(왕을 호종한 신하) 책록으로 石城君에 봉한 連이 있음. 武臣으로는 訓練參軍(正七品)을 한 洽(흡)과 武科 及第 武藝로 명성을 떨친 時俊과 禦侮將軍(어모장군)을 지낸 命仝(명동) 등이 家門을 빛냄.
● 集姓村 : 慶北 영양군 영양면 감천동.
全南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全北 완주군 고산면 일원.
● 行列字 : 15세 16세 17세 18세 19세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漢 標林 煥 壽 欽 東 休 熙 睦 鉉 澤浩
26세 27세
相秀 燦烈
● 祠의 位置 : 祠宇(吳受訥) 慶北 영양군 영양면 감천동
同福-始祖 寧(영). 賢佐의 長子. 高麗 高宗 때 契丹(거란)을 討平한 功으로 同福君에 封하니 後孫이 同福을 本貫으로 함. 孫子 大陞은 元宗 때 文科及第 여러 官職을 거쳐 侍中까지 함. 曾孫 光札이 大將軍, 五世孫 璿(선)이 都僉議侍郞贊成事를 지냈고 六世孫 潛(잠)이 藝文館大提學을 거쳐 僉議贊成事로 龜城君에 封함. 李朝에 世賢의 子 晩翠 億齡과 黙齋 百齡 兄弟가 유명하니 億齡은 式年文科에 及第(湖堂-王의 特命으로 才主 있는 人材 特秀敎育) 大司憲과 刑曹判書를 3회 역임하고 40年 官職에 淸廉하여 淸白吏에 錄典됨. 文章과 書藝에 탁월한 재질이 있음. 아우 百齡은 宣祖 때 文科及第하여 同副承旨 福川君에 封하고 仁祖 때 都承旨 大司憲을 하다. 後孫들이 顯達하여 家門을 繁盛시켰음. 億齡의 子 翊(익)은 承旨, 靖(정)은 兵曹參議 吏曹判書를 하고 竱(전)은 校理와 持平을 역임. 百齡의 子 竣(준)은 孝宗 때 禮曹判書 知春秋館事 弘文館提學 世子右賓客 大提學 輔國崇祿大夫에 올랐다. 二子 端(단)은 麟平大君의 丈人으로 黃海道觀察使를 하고 子 挺一은 仁祖 때 文科及第하고 都承旨 孝宗實錄 편찬에 참여. 各道 觀察使 吏曹判書 大司憲(司憲府 從二品) 漢城府判尹 戶曹判書 右參贊(議政府 正二品) 耆老所에 들었다. 挺昌(정창)은 大司憲 禮曹判書 藝文館提學을 역임. 孫 始萬은 文科及第 大司憲 承旨. 始壽는 文科及第 刑曹 吏曹判書 右議政을 하고 始復은 文科及第 大司諫 吏曹判書를 하고 글씨에 능함. 文章이 뛰어난 光運은 大司諫 大司憲 大提學. 大益은 戶曹參判하고 德泳은 吏曹參判하니 文翰家(문한가 : 여러 대를 글과 글씨에 才主人이 난 집안)라 칭송하였다.
● 彰孝祠 : (吳浚의 孝行을 기리기 위해 세운 祠堂)-高敞郡 신림면 외화리.
龍池祠 : 海南郡 계곡면 용지리.
德林祠 : (吳繼宗)-南原市 雲峰邑.
月窟祠 : (吳百齡)-忠南 公州市.
文會書院 : (吳億齡)-黃海道 배천.
●集姓村 : 全南 海南郡 계곡면 일원.
海南郡 산이면 상공리.
南原市 운봉면 서무리.
全北 高敞郡 新林面 일원.
● 行列字 :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相 然炳 在 鏞鐸 祿 秉根 黙 致 鎰 源 東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應 均 鎔鍾 海 植 煥 喜
寶城-受權의 三子 賢弼(현필)은 兄과 함께 契丹을 討平한 功으로 寶城君에 封함. 高麗 明宗 때 文科及第함. 孫子 漢卿이 三司右使(三司에 속한 正二品) 僉議贊成事(正二品) 역임하고 六世孫 思忠(恭愍王 때)이 文科及第 大司成 左常侍 역임하고 寧城府院君이 됨. 朝鮮이 開國되자 佐命開國三等功臣 中樞院副使(中樞院에 속한 從二品) 政堂文學 觀察使. 七世孫 天福은 門下侍郞平章事하고 寶城府院君이 됨. 天福의 子 漸(점)은 禮曹判書 역임. 高麗末에 大將軍인 蒙乙은 李成桂를 추대한 공으로 開國功臣 寶城君이 되고 資憲大夫 吏曹判書 역임. 世祖 때 伯昌은 申叔舟와 함께 純誠佐理一等功臣에 올랐고 興原君에 封함. 世宗 때 點은 文科及第하고 通訓大夫 禮曹判書 역임. 子慶은 端宗 때 武科及第 僉知中樞院事하고 李施愛 亂을 平定한 功으로 嘉靖大夫敵愾二等功臣 寶城君에 封한 후 禮曹判書에 이름. 天乙은 大提學(弘文館, 藝文館 소속의 正二品)을 지냈으며 延札은 吏曹判書. 執(집)은 漢城判尹, 誠(성)은 刑曹判書였다.
● 集姓村 : 청원군 낭성면 삼산리.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 시목리.
● 祠宇 : 吳俊立 孝子旌閭.
吳大男 忠臣旌閭.
吳悳(덕)明 忠臣旌閭.
吳錫采의 孝行紀績碑.
吳子慶의 不祧廟(부조묘).
吳瑞鍾의 忠臣旌閭-忠北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
孝子旌閭(吳景禮). 孝行旌閭(吳尙晋). 忠孝旌閭(吳正根)-京畿道 평택 팽성
기암서원(吳熽소)-청원군 오창면 기암리.
影堂(吳著)-청원군 낭성면 갈산리.
● 行列字 :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秉 燮 在 鉉鎬 治永 杓植 炳 圭 鍾 淵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寅 烈 基 善 泰泌 榮東 顯魯 重遠 鎔鎭 浩淳
延日-吳洽(오흡)은 高麗 때 典書 역임. 先系는 알려지지 않고 延日 지방에 토착하여 살던 士族으로 傳함. 始祖 洽을 一世祖로 本貫하고 世系를 이어왔음. 子 宗周가 朝鮮에서 副正(관청의 從四品)을 역임. 孫子 鈞(균)이 縣監. 曾孫인 壽貞도 縣監이며 壽貞의 子 隼(준)이 中宗 때 文科 刑曹判書하니 家門을 中興시킴.
● 集姓村 : 平安南道 덕천군 덕천면 청룡리.
蔚山-始祖 吳延祉(오연지). 高麗 器監 中書侍郞 平章事하고 東南邊境의 倭寇를 討平한 功으로 鶴城(울산의 옛 地名)君에 封하니 후손들이 本貫으로 함. 孫子인 受天이 高麗 때 正義大夫 左副大言(正三品-左副承旨와 같음)을 지냈으며 曾孫인 湜(식)이 李朝 太宗 때 刑曹參議 全羅道觀察使, 世宗 때 吏曹判書를 역임하고 五世孫 欽老가 世宗 때 司馬試에 及第 濟用判官 또 黃州判官을 지냈다. 道男은 李适(이괄)의 亂 때 王을 扈從(호종)한 功으로 振武功臣에 策錄됨. 迪男(적남)은 將仕郞하고, 經史에 조예가 있어 德望이 높은 琢(탁) 등이 유명함. 外에 瓛(환)은 漢城府判尹을 하고 必濟는 僉知中樞府事하고 贊雄은 折衝將軍하고 炳奎는 同知敦寧府事(敦寧府 소속 從二品)을 하니 家門을 더욱 빛냈다.
● 行列字 : 12세 13세 14세 15세 16세 17세 18세 19세 20세
有羽 必世 宗鳳 東根 光河 奎 錫憲 永奭 秉基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燮鍾 廷洙 秉鐸 泰 彬 思 徾(미) 鎭
長興-始祖 吳天佑(오천우)는 賢弼의 六世孫이요 思忠의 二子가 朝鮮朝에서 兵馬節度使를 역임. 本貫은 長興으로 함. 燮宜는 李朝 때 大提學 역임. 愼言은 牧使를 하고 愼行은 軍資監正을 하고 繼殷은 禦侮將軍(어모장군: 正三品)을 하고 麟(인)은 中樞府事를 역임하고 彦信(언신) 등이 家門을 빛냈다.
● 集姓村 : 益山市 八峯洞 隱基里, 金馬面 葛山里.
●永慕齋 : (吳繼殷ㆍ吳鵬ㆍ吳受福ㆍ吳震謙 配享)-益山市 金馬面 葛山里 소재.
祠 位置 : 德川書院(吳應賢ㆍ吳應弼ㆍ吳應哲)-全北 益山市 隱基洞.
● 行列字 : 46세 47세 48세 49세 50세 51세 52세 53세
彦煥 植志 炳鎭 基淑 錫根 洙炳 相喆 燮
全州-始祖 吳俊玟(오준민)-賢弼의 十世孫 高麗 때 兵部尙書 역임하고 完山伯에 封하니 후손이 本貫으로 함. 孫子 玄福이 高麗 때 戶部尙書하고 曾孫인 笱逸(구일)이 評理司事(첨의부 소속 正二品) 尙書令을 하고 五世孫 欽淳은 大將軍을 하고 巡撫使(地方官員의 잘못을 살피는 관직)를 역임. 肯殷(긍은)은 戶部尙書하고 綾城伯(능성백)에 封함. 武礦(무광)은 上將軍하고 그의 子 希鉉은 高麗末에 大司諫하고 朝鮮朝 開國功臣 左贊成 大司憲을 역임함. 李朝 때 直提學을 지낸 弘鈞, 禮曹參判에 오른 弘燁과 戶曹參判에 오른 胤秀와 戶曹正郞을 지낸 弘鐵과 孝子로 이름난 泰殷 등이 유명하다.
● 集姓村 : 平南 대동군 남형제산면 일원.
● 行列字 : 近ㆍ起ㆍ錫-億ㆍ志ㆍ鍵-守ㆍ國ㆍ淵-雲ㆍ命ㆍ東-興ㆍ泰ㆍ炯
平海-始祖 吳克中(오극중)은 高麗 때 門下侍中하고 同知中樞府事에 追贈됨. 後孫들이 先祖 世居地를 本貫으로 함. 子 宗仁은 高麗 때 銀靑光祿大夫 知門下省事를 하고 孫子 璥(경)은 李朝 때 匡靖大夫 吏部尙書(正二品)를 역임하고 五世孫 時義가 端宗 때 資善大夫 吏曹參判(從二品)을 하고 文瑞가 寶文閣直提學을 하고 文慶이 副護軍(從四品)을 하고 得齡은 漢城府判尹을 역임. 彦祿(언록)은 禦侮將軍을 하고 以華는 折衝將軍(正三品) 希八은 戶曹參判과 더불어 家門을 빛냈다.
● 集姓村 : 全南 海南郡 현산면 고현리. 海南郡 옥천면 봉황리.
● 祠宇 : 德湖祠(吳信男)-全南 江津郡 대구면
● 行列字 :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元 鎔 浩 根 烈 在 鉉 泰 柱 炳 基
咸陽-始祖 吳光輝(오광휘)-高麗 때 文科壯元 左僕射(좌복야 正二品)하고 外敵 격퇴하여 推忠靖亂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이어서 三重大匡 金紫光祿大夫 咸陽府院君에 封하니 後孫들이 寶城에서 分籍함. 子 洪芮(홍예)가 正義大夫 咸陽君에 封君됨. 孫子 裕(유)가 戶部尙書(正三品)하고 曾孫 世龍은 李朝 때 大司成하고 世龍의 子 仲元은 吏曹判書하고 孫子 儼(엄)이 大司憲과 忠淸道觀察使를 함. 凝(응)은 漢城府左尹 全羅道觀察使를 지냈으며 健은 孝行으로 이름났고 春秋館記事官(正六品) 또 明宗實錄 편찬에 참여. 壬辰亂 때 義兵으로 戰功을 세운 玭(빈)과 長(장)이 유명하다.
● 集姓村 : 慶北 영양군 영양면 대청동. 黃海道 송화군 윤유면 다천리.
● 楓溪書院 : (杜庵ㆍ吳尙德)-全北 南原市 대강면 풍산리.
竹山祠 : (沙湖 吳益昌과 子 晪전을 봉안)-全北 高敞郡 아산면 죽산리.
西溪書院 : (吳健)-慶南 산청군.
西湖祠宇 : (吳長)-慶南 산청.
● 行列字 :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廷載中 鏞鐘錞 洛淵羽 秉秀東 必憲寧 圭赫喆 會銖善 永雨 林春杰
咸平-始祖 吳岑(오잠). 賢輔의 四子. 高麗 때 文科及第. 銀紫光祿大夫 門下侍中 平章事 三重大匡 檢校太子太師를 역임하고 功이 있어 佐命功臣 咸豊(咸平의 옛 지명)君에 封함. 子 進厚가 文科及第 金紫光祿大夫 吏部尙書를 하고 孫子 思摠(사총)도 銀紫光祿大夫 左僕射(正二品)를 역임함. 孫子 啓는 直提學하고 端은 僉知中樞府事하고 齡(령)은 孝行으로 유명하였다.
● 集姓村 : 忠南 公州市 牛城面 上西里, 方文里.
●影堂 : 龍堂(吳岑ㆍ吳進厚ㆍ吳思摠ㆍ吳公孝ㆍ吳孫啓ㆍ吳迪적ㆍ吳衡ㆍ吳憲ㆍ吳定國)
● 旌閭(吳齡): 모두 忠南 公州市 熊津洞
● 行列字 :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鎭 源 秉東 榮炅(경)在 錫鎬 澤 植 炳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基 鍾 泰 柱 烈 均
海州-始祖 仁裕(인유)는 中國 宋나라 때 大學士(984년 成宗 3년)가 高麗에 들어와 檢校軍器監을 역임하고 海州에 정착하여 後孫이 本貫하고 世系를 이어왔다. 高麗 때 睿宗 2년(1107)에 尹瓘과 함께 女眞族을 討伐한 名將 延寵(연총)은 吏部尙書 門下侍中 平章事하고 贊成事에 이른 漢卿(한경)과 또한 先廷은 工曹典書(正三品)를 하니 家門의 기틀을 잡았다. 始祖의 十四世孫 允謙은 繕工監役을 지낸 希文의 子로서 司馬試에 합격 觀察使와 左副承旨를 하고 仁祖反正 후 老西의 領袖가 됨. 大司憲과 吏曹判書를 하고 左議政을 거쳐 領議政에 올랐다. 조카 達濟(달제)는 丙子斥和 三學士 尹集 洪翼漢과 함께 살해됨. 結婚한 지 2년도 못 되어 헤어진 哀絶한 詩가 있다.
瀋陽 寄內南氏 심양에서 부인 남씨에게 보낸 편지
琴瑟恩情重 금슬은 구구 비둘기(금슬-은헤로 거듭 사랑하는 마음)
相逢未二期 서로 만난 지 2년도 채 못 되었는데
今成萬里別 이제 만리 이국땅에 있으니
虛負百年朞 백년 같이 살자던 약속 저버렸네.
地闊書難寄 머나먼 길이라 편지도 부칠 수 없고
山長夢亦遲 산이 첩첩하니 꿈길도 더딜밖에
吾生未可卜 나의 목숨은 점칠 수 없으니
須護腹中兒 임이여 뱃속의 아이를 꼭 보살펴 주시오.
允謙의 孫子 道一은 肅宗 때 都承旨 大司憲을 거쳐 大提學에 오르고 玄孫 命恒은 兵曹判書를 하고 奮武一等功臣을 하고 海恩府院君에 封하고 右議政을 지냈다. 斗寅은 文科壯元하고 肅宗 때 刑曹判書를 하고 後孫에서 많은 人物이 나왔다. 子 泰周가 顯宗 때 駙馬(명안공주와 결혼)가 되고 書藝家로 유명했으며 孫子 瑗(원)은 大提學으로 英祖에게 學問과 德을 닦는 進言을 하고 옳다면 直言을 하기로 유명했다. 瑗의 子 載純도 兩館大提學으로 이름이 났다. 近代 人物로 開化先覺者 慶錫과 子 獨立運動 33인 중의 一人 世昌이 家門을 빛낸 자랑스런 人物이다. 高麗革命黨을 組織하여 武裝抗日運動을 하다 獄死한 東振과 醫學 開拓者요 事業家였던 兢善 그리고 文壇의 괴짜 詩人 空超 相淳 등이 더욱 빛났다.
● 牛山祠(吳先慶ㆍ堡ㆍ塾ㆍ命說 등의 學德을 기림)-全南 靈光郡 靈光邑 우평리
彰烈祠(吳達濟)-忠南 夫餘郡 구릉면 금사리.
忠烈祠(吳興業)-全北 南原市
彰烈書院(吳達濟)-忠南 홍산.
德峯書院(吳斗寅)-京畿道 安城市 양성면.
壯岩서원(吳遠濟)-慶北 영주.
老憲書院(吳斗寅)-咸北 경성.
露峰書院(吳廷吉)-全北 南原.
忠烈祠宇(吳斗寅)-慶北 의성.
影堂(吳允謙)-江原道 평강.
德山祠(吳延寵)-全南 谷城郡 오곡면 덕산리
龜巖書院(吳允謙)-京畿道 廣州
顯節祠(吳達濟)-京畿道 廣州
褒義祠(吳達濟)-京畿道 平澤
松山祠(吳斗寅)-京畿道 楊州
義烈祠(吳斗寅)-光州廣域市
豊溪祠(吳斗寅)-京畿道 坡州
顯忠祠(吳允迪)-咸北 會嶺
顯忠祠(吳遵禮)-咸北 會嶺
忠烈祠(吳應鼎)-忠南 錦山
忠烈祠(吳 稶)-忠南 錦山
忠烈祠(吳 稷)-忠南 錦山
忠烈祠(吳邦彦)-忠南 錦山
● 集姓村 : 忠南 錦山郡 추부면 일원.
京畿道 安城市 양성면 덕봉리.
京畿道 龍仁市 원삼면 죽능리.
● 行列字 :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泳 根 煥 世 錫 澤 植 炳 基 鎭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源 柱 烈 均 鍾 浩 東 炯 圭 鎔
和順-始祖는 寶城吳氏 始祖 賢弼의 三子인 元(원)을 一世祖로 하고 世系를 이어왔다. 元의 七世孫 順公이 高麗 때 殿中內給事(從六品)를 지냈고 李朝 英祖 때 尙麟은 文科及第 여러 官職을 하고 成均館典籍을 역임했다.
● 集姓村 : 全南 靈光郡 백수읍 학산리
● 行列字 :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敬 秉 炫 在 鍾 永 植 炯
興陽-始祖는 寧老(영노)인데 賢弼의 後孫이다. 李朝 太宗 때 文科及第 判典農寺事(판전농시사)하고 大司憲을 역임. 荳原君(두원군)에 封함. 始祖의 二子 伯昌이 文宗 때 文科에 及第하여 京畿道都事를 거쳐 世祖 때 藝文館直提學을 역임하고 都摠管(正二品) 知中樞府事를 하고 大司憲과 佐理功臣 興陽君에 封함. 또한 順孫이 左贊成을 하고 植과 重憲이 副護軍을 하고 繼立이 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家門을 빛냈다.
● 集姓村 : 忠北 槐山郡 南面 일원.
● 祠宇 : 竹山祠(吳益昌)
● 行列字 :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命 煥 在 鉉 永 根 炳 均
2011 辛卯年 1月 14日
♣ 資料 提供 : 韓國吳氏宗親會 益山支會 副會長 仁齋 吳根鐸(同福派 28世)
♣ 文書 作成 : 韓國吳氏宗親會 益山支會 總 務 丈溪 吳秦均(同福派 27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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