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지혜로운 바보들이 오늘날에도 긴 행렬을 이루며 우리의 역사 속을 행진해 가고 있다.
짧은 순간들이 때로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변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영혼의 혁명, 인생의 변화는 짧은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실례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20세기의 위대한 지도자요, 성자였던 알버트 슈바이처에게 일어났던 일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 일은 아주 오래 전에 북부 알사스 지방의 콜마에 있는 한 시장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더부룩한 콧수염을 한 집시 모양의 슈바이처가 여행 도중에 벌거벗은 흑인의 상(像) 앞에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 흑인의 입상(立像)은 제국주의 세력을 기념하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성을 상정하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사람들을 착취만 하고, 그들에게 의사나 의약품을 보내 주지도 않았다는 말이 사실일까?”
슈바이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스트라스부르그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 그 검은 모습이 슈바이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를 못했다.
“그러나 내 양심이 편안치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대학 교수지, 선교사나 목사는 아니잖은가?”
그는 자기 마음을 스스로 달래 보려고 했다.
그는 나이 30이 되기 전에 이미 세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는 오르간 연주자로서 명예를 확보했고, 잘 알려진 성서학자였으며,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불후의 전기(傳記)를 남기기도 했다.
콜마에서 돌아온 후, 그는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아프리카 콩고에 관한 잡지 기사를 읽게 되었다.
‘우리가 이런 토착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우리의 눈앞에서 육체적 질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여 죽어가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 선교사들은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날 오후, 교수이며 음악가였던 슈바이처는 그의 남은 생애를 밀림의 야만인들을 위해 바치겠다고, 그래서 백인들이 그들에게 범한 죄를 속죄하겠다고 서원(誓願)하였다. 그의 친구들은 반대했다. 만약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면, 슈바이처가 큰 자선 음악회를 열어 많은 돈을 모금해 보내 줄 수도 있었다. 꼭 그가 문둥병자를 자신의 손으로 씻어 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가 아프리카 밀림에 들어가 여생을 보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신학자로, 교회 음악가로 봉사하는 것이 이 세상과 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도 더 큰 봉사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다른 모든 활동을 일체 중지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함으로써 자기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거의 5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을 때, 그는 복잡한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다. 신비스럽고 영웅적인 목적을 갖고 있던 슈바이처가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를 아끼던 그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생각은 틀림없이 그의 사랑과 결혼이 그의 계획을 중지시키게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유대인 교수의 딸인 헬레네 브레스라우 양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구혼했다.
“나는 지금 아프리카 야만인들을 위한 의사가 되려고 준비 중에 있는 사람이오. 당신의 남은 생애를 나와 함께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보낼 생각은 없소?”
여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훈련된 간호사입니다. 간호사인 내가 없이 당신이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겠습니까?”
30여 년 동안 헬레네 양은 슈바이처의 아내로서 남편의 곁에 머물면서 동부 아프리카 지역의 흑인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리고 슈바이처도 그의 생애를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는 일과, 이론적인 기독교가 아닌 실천적인 기독교를 가르치고 보여 주는 일에 바쳤다.
이런 사람의 철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심오한 학문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순한 진리를 믿고 있었다. ‘인종이나 혈색, 인생의 조건에 관계없이 인간은 고귀하다.’ ‘생명은 존중되고 경외(敬畏)되어야 한다.’ 그가 갖고 있던 또 다른 확신, 즉 그의 인생철학은 가장 고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으로 전파하거나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몸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어리석어 보였던 그의 결단과 그의 생애는 이미 2천 년 전에 나타났던 그리스도와 바울의 발자취에 지나지 않았으며, 수많은 지혜로운 바보들이 오늘날에도 그 발자취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우리의 역사 속을 행진해 가고 있다.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