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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2 | g1
작성자 : 김영순 (gamsun2) (2003-07-06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도 그 댁 금슬이 으뜸이더이다
진하디 진한 사랑의 힘을 지니셨기에
환생에 환생을 거듭 하여도 부부 되어 행복하소서
안녕 하세요 습관처럼 엉터리지만 3행시로 인사 올립니다
마지막 종장을 쓰는 순간 전 가슴이 뭉클해지고 두방울 정도의 눈물이 맺혔답니다
옛날 로마의 네로 황제가 자기의 詩에 취해서 눈물 흘리며
그것을 저장하기 위한 기막히게 한심한 눈물단지를 가지고 다녔다더니
그도 저 만큼이나 유치한 양반이었던가 보네요
성일 아빠 닭*향기 진동한 안성집을 무던히도 귀찮게 찾아다닌 것
그것도 바쁜 시간이건 한 밤중이건 상관없이 쳐들어(?) 가더라도
갈 때마다 유쾌한 너털웃음을 허허허~ 웃으며 반겨주셔ㅆ지요
철없이---성일 아빠와 첫 대면 일 때도 웃음을 참지 못해 밥상 앞에서 뒹굴어 대던---
그 당시엔 주책을 너무 부린 것 같아 자신을 많이 부끄러워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부끄러움조차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버립니다.
누군가 제게 인생을 논할 자격을 묻는다면 자신 없어 고개를 숙일 수밖엔 없지만
살다 보니 '적신으로 왔다 적신으로 가는 욥의 진리'도
불가에서 말하는 '타타타의 공수래 공수거의 진리'도 내 삶의 철학이 되었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기 변명 일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알몸으로 태어나...지금 이 정도면 수지맞은 장사라고...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지난날 분하고 가슴 떨리는 일들을 잊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요
모든걸 포기하고 체념한 지금은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 아등바등 살았었는지....
그 아귀다툼 속에서 살아남음을 스스로 대견스러워 한답니다
마음을 비우니 채울게 너무 많아지더군요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엔 우물이 있었어요
1년에 한번쯤 청소를 위해 물을 모두 퍼내고 소독도 했답니다
한번은 제가 몸이 가볍다는(?) 이유하나로 밧줄을 타고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지요
위를 올려다보니 조그마한 동그라미 속에 하얀 하늘이 보였고
주위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가족들이 보였죠
살아오면서 그날의 홀로 떨어져 있던 우물 안의 고적함이 가끔씩 느껴지곤 하였지만
그때 전 날 지켜 봐주시는 부모님이 계셨으니 든든했고
더러움을 씻어야 한다는 것밖에는 외로움도 무서움도 몰랐더이다
텅 비워버린 우물 안은 다음날 보니 어느새 맑은 물이 전과 다름없이 차 있었어요
지금 제 삶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더러움 모두 퍼내듯 버리니까 새로운 게 다시 채워지더군요
진정한 친구와 친척이 가려지고 영원한 내 단짝 남편이 귀해지고 자식들이 소중해지며
그 옛날 즐겨듣던 음악이 소녀시절 외워두었던 詩 한귀절 까지도...
모든 것이 새로움이 되어 내안 가까이 퍼져든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때 잠실 영숙여사가 서울낙엽 이라고 씌어진 그야말로 낙엽 한 장을 보내 왔지요
전 그 사연 하나에도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웃어대며 큰소리 칩니다
애들아 ! 너희는 이 엄마의 낭만을 아느뇨 모르느뇨 하고 말입니다 전 이렇게 살아요 .
위풍당당한 코란도에 낭만을 몰고 다니시던 분이 지금은 문전옥답 지키시느라 갖은 애를 쓰신다 들었습니다
편법으로 부를 누린 자들은 진정한 땀방울의 의미를 모를지니
지금은 힘들지만 보다나은 내일을 위해 성일아빠 파이팅!!
연인도 친구도 아님시롱 편지를 썼다고 애자가 방방 뛰어도 난 상관 없시오
편안한 휴식시간에 읽으시기 좋도록 지루하게 쓰지 않으려는 제 노력이 보이시는지요.
성일 아빠! 지 남편에게 위문편지 보내달라 했는데 연애편지까지 썼으니
애자의 똥그란 눈이 더욱 더 휘둥그래 지겠네요 형식과 품위 따위를 지키려는 퀘퀘묵음이 싫어서
자꾸만 편하게 살려고 하니까 사람이 유치해질 수밖에 없지만
전 그 유치함을 사랑합니다 친구의 남편이면 좀 어려울 텐데...
이렇게 글 드리는 게 어색하지만 ... 우린 이처럼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가요?
내방식대로 살아간다는데 누가 뭐라 나요 그리고 이젠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인사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겠지요. 건강 하시길... Denver에서 선영 엄마 드림
3-16-99
변함없이 지금도 몸보신 잘 하시는지요
진시황 빰치는 그 건강관리는 모두들 부러워 할 테니
환하신 미소 속에 행복한 가정 이루소서
미국이란 곳은 넓고도 넓지만 전 오직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만 작은 세게를 이루고 산답니다
시들 줄 모르는 남편의 사랑과 아이들의 관심속에서 제 모가지가 좀 빳빳해진 경향이 있지만
누가 코웃음치던 말던 이렇게 살기로 작정 했답니다
전에는 포기란 말을 자주 썼지만 이젠 작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게 더 적절할 것 같아서죠 '명태'라는 우리 가곡이 있지요
젊었을 적엔 무슨 저딴노래가 있담 하며 거부감을 느꼈는데 지금 듣고 보니 너무도 옳거니 에요
바닷속에 노닐던 명태란 놈이 어부의 그물에 걸렸을 때
그래! 세상구경이나 하자하고 비틀어지게 말림을 당할 땐 이집트 왕의 미이라가 된 양하고
술안주거리로 나섰을 때 시인의 시가 되어도 좋다 하고
제몸이 없어질 땐 이름만이라도 남기리라 하더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롭고 가난한자의 편 인 것 같아 그 점이 더욱 맘에 들었어요
단백하고 구수한 북어 살을 고추장에 찍어 먹어보긴 했어도 명태가 주는 그 깊은 교훈을 최근에야 느꼈다니까요
이리저리 부대껴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간다는 게 가장 현명한 삶일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제 한 몸도 없어지려니 다행이 자식이 있어 내 이름은 기억될 테고..
더 이상의 바램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합니다
제가 지쳐 쓰러졌을 때 어떤 친구는 일으켜 세우려고 갖은 애를 썼고
또 다른 이는 나를 딛고 올라설 궁리를 하더이다 전 골백번 죽었다 깨어도 전자의 인생을 택하렵니다
이렇게 밖에 살수 없지만 말이죠 만약 제가 후자 인생을 택한다면 온갖 말초신경이 오그라들 것만 같고
그 곤혹스러움 또한 견딜 수 없을거에요 남의 평가를 받기 전에 먼저 내스스로 용서되지 않는 그런 삶은
나자신을 더럽히고 욕되게 할 테니까요 누군가가 '인생이란 긴 경주'라고 하던데
그래요! 길고 먼길 가다보면 앞설 수도 있고 뒷설수도 있겠지요
내가 좀더 앞서 갈려고 쓰러진 이를 모른 체 하지 않겠어요
내가 뒤진다고 해서 앞서가는 이를 샘내하지도 않는 그런 인생 길을 가고싶답니다
학창시절에 _ 등산을 참 좋아했어요 산을 오를 때 까마득한 정상을 올려다보면 심란이 밀려오고 힘이 빠지다가도
뒤를 돌아 내려다보며 내가 벌써 이만큼 올라왔구나 하면 다리에 힘이 생겨나서
산행을 할 의욕이 솟아나드라구요
그때부터 전 뒤를 돌아보던 연습을 많이 한 때문인지 이렇다하게 살지도 못하면서 욕심이란 게 없어졌답니다
생각 보담 제가 꿋꿋하게 잘살아가고 있음도
젊은 날 등산(여행)길에서 얻은 지혜와 교훈이 상당히 많이 작용했다고 봐요
구래서 전 자식들에게 여행을 많이 시키는 그러한 부모가 되기를 모두에게 권한답니다
선영이가 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대학입시 때문에
고속도로를 타고 학교엘 찾아가야 할 일이 생겼어요
길 찾기에 좀 익숙한 제게 의존하려는 딸을 전 과감히 혼자 보냈습니다
free way(무료 고속도로?) 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잃고 헤매던 선영은 차를 세우고
응급전화를 찾아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래요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니만
찾아와서 손수 길을 가르쳐 주더랍니다 그 얘기를 들은 난 속으론 안쓰러웠지만
그래 장하다 네가 영어를 그만큼이라도 할 수 있으니 미국 어느 곳에 차를 몰고 가도 이젠 걱정이 없겠다 그랬지요
그후론 선영이 자신감이 생겨 제가 훨씬 덜 귀찮아졌답니다
교육적이라는 핑계를 대며 애들을 혹사시키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 편 하자고 미루어 버릴 때도 많아요
꿩 먹고 알 먹고 저 좋고 나 좋고 아니겠어요
한국 갔을 때 애자가 장충동 영숙에게 쏟는 마음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몰라요
애자는__ 아까 말한 그 전자의 친구였고 외롭고 가난한자의 詩가 되리라는 명태였어요
그리고 또 애자는__ 말솜씨(입담)가 뛰어나지요 같은 말을 해도 어찌나 맛깔스럽게 잘하던지
만나서 얘기할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랬답니다
이곳에서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애자같은 친구가 옆에 없다는 거죠 하
여 저는 많은 돈을 들여 그녀에게 전화하고 바쁜 시간 쪼개내어 편지한답니다
덤으로 그녀의 남편께 가지도 말입니다 두서없이 쓰다보니 어디서 끝을 맺어야할지 정신이 없네요
시작이 그랬으니 마침도 엉터리 3행시를 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변 영로님의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을 생각합니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소월 시도 외워봅니다
환절기 감기 예방은 뜨거운 정열의 詩 와 함께 해보시죠 .
dear 글라디오라스 문 4-18-99
내가 편지를 쓰고 있을 양이면 딸들은 어머님 집필하신다고 비양거린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너희는 공부해라 난 떡을 써는 대신 편지를 쓰마
우리딴엔 무슨 대단한 유머를 나눈 듯 즐거운 시간이 된단다
답신한번 안보내준 괘씸함에 반항하는 10代 처럼 비죽거리며 다시는 쓰지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제 풀에 지고 마는구나 무쇠처럼 단단하던 너의 건강도 안성 서울 두집살림에 허리 휘어질 피곤이 쌓일텐데
친구인 나라도 위로해 줘야지 거기다가 엽서한장 보내지 않는다고 푸념을 해서야 도리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난_. 이런 시간이 피로가 가시고 흔히들 말하는 스트레스가 해소되니까 앉아서든 엎드려서든 편지질만 하는구나
너_. 편지 쓰기 어려워서 쓰지 않는단 말은 하지 마라 화가 나니까 그냥 바쁘고 힘들어서 못쓴다고 해
전에도 말했지만 언변 좋은 네가 마음만 먹으면 못쓸게 무옌가 얘기하듯 이렇게 쓰면 되잖니?
영희한테 보낸 한 대목 소개할게 "기집애 나쁜년(?) 인줄 알지만 용서해 줄게
무응답의 친구가 너 뿐이겠느냐 모두들 한결같이 똑 같으니 너무 미안해(?) 말거라 ...
나의 이러한 투정에 넌 '지랄하네' 한마디로 웃고 말겠지 그래 나 지랄한다 어쩔래...."
별난 가르침으로 너를 꼬시는 것 같아서 쬐끔은 캥긴다야
애자야 ! 바쁘고 힘들수록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걱정근심 떨어버리고 나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 말야 바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참~넌 신앙인 이니까 주님께 향하는 겸허한 자세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
까짓 것들한테 지고 말면 절대 안되지
우리국악 판소리에서 나오는 창이나 아님 옛날 우리엄마 곡소리에서 진한 한숨과 애절함을
창자 속까지 다 토해내는듯한 소리에 담아내는걸 들어보면 가슴속에 응어리진 그 멍울들이 풀려지는 것만 같았어
우리도 흉내는 못 내겠지만 그 속에 빠져들어 추임새라도 한번 읊어보자구(옳거니~~그래 좋을 시구~~)
더 발전하면 한 손에는 부채대신 냄비뚜껑이라도 들고 험난한 세상에 도전하듯 악이라도 바락바락 지르자꾸나
그러다 보면 나자신을 추스르게 되고 정신건강상 많은 유익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너 이거 아니? 고민하여 시름에 싸인 한숨 속에 생겨난 주름과 그런 것 털어 버리고
쓴웃음일 망정 지으며 넋두리하듯 모든걸 쏟아내여 버린 후의 주름은
하회탈에 나오는 우는 이와 웃는 이의 주름이 된다는 것을
이건 무슨 학설에 의해 나온 얘기가 아니고 순전히 내가 만든 영순 학설이니라
어차피 주름질 運命인 것을 기왕이면 웃는 주름이 더 좋지 않을까
애자야 우리 건강하자구 우리나이에 병을 얻으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결국은 그놈에게 지고 말더라
엊그제 선영 친구의 엄마가 무덤 속으로 드러눕고 작년엔 경록 친구의 엄마가 저 세상으로 갔으니
마음이 착잡해지더구나 영숙 남편 역시 그렇게 떠나셨으니 우리네 人生 허망하기 그지없질 않느뇨
욕심을 버리고 순리대로 살자고 웅변하듯 여기저기 외쳐본단다
내게 주어진 복이 이거라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억지를 부려 붙잡으려고 애쓰면
마음 상하고 몸 망가지고 남는 건 애달픈 한숨뿐 ...
마음먹기 달려있는 우리네 人生살이 봄이 되면 only 봄날만 생각하자
살랑이는 봄바람에 온갖 꽃내음 다투어 풍겨오는 짜릿한 환희를 느껴보렴아
온수동에서 해마다 이때쯤이면 느껴지는 게 있었지 아침이면
오르던 약수터 길에 처음엔 진달래가 무수히 피고 지더니
개나리 노란 색이 병적인 아름다움 되어 눈부시게 했고
그 다음엔 아카시아 만발하여 코피터질 것 같은 진한향기로 나를 매혹시켰고
그게 지고나면 담장마다 뽐내듯 줄 장미가 피어 나를 황홀케 하더라
쉴새없이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감상도 쉴 틈을 줘야지 아이고 정신없어라 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그랬었지
눈처럼 쏟아져 내리던 아카시아숲! 수북히 쌓인 그 꽃길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어 오두방정을 떨게 되는구나
오월이 되면 온수동은 온통 아카시아 향기로 뒤범벅이 되었드랬는데
아직은 여름을 생각치 말자 그냥 봄날에만 충실하자구 그러다 보면 좋은날도 있겠지
애자야! 우리의 어렸을 적 봄단장은 무엇이었을까
서둘러 포플린치마 한 번 입어볼 양 내복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우물가에서 때를 벗기는 일로 시작되었으리라
그리고 공원의 벚꽃 은 너무도 환상적이었지 첨엔 한아름씩 무더기로 바라보며 즐기다가
나중엔 한 송이 한 송이 눈을 마주치듯 바라볼 제 난 참 예쁜 소녀 였을것만 같구나
함평공원 벚꽃에 길들여진 나는 광주 사직공원 벚꽃축제때 실망을 했었고
서울의 창경원 밤벚꽃놀이 에서도 우리공원의 화려함을 보지못했어 다들 빈약하더라고
봄이면 삐비도 많이 뽑으러 다녔지 삐비하면 떠오르는 핑크빛 사연이 있단다
여고시절! 난 어떤 소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혼자서 그를 일기장 속에 숨겨둔적이 있었다
한 3개월 동안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그 부분들이 찢겨진 게 무척 아쉽고나)
어느 일요일 영산강 근처에있는 외가에 다니러 갔다가 꼬맹이 동생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삐비를 뽑으러 갔더랬는데
아마 교복을 입었을 테니 그림 한 번 그려봐라 그 들판에서 소년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며 뛰어가는데
가슴 터질 듯한 그 느낌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랐단다
희열의 극치 였다고나 그 날밤 한 묶음의 삐비를 들고 그를 만났는데
그 소년도 자기집 정원에서 온갖 나뭇잎을 수집해 왔더라고 (왜 우리가 책갈피에 눌러 두었다가 편지에도 넣고 일기장에도
붙이고 그랬었잖니 잠실여사가 내게 써먹은 서울 낙엽처럼)
약속이나 한 듯 서로가 마음이 통했으니 꽤 오래갈 인연일줄 알았는데
한 백일쯤 지나니 모든게 시시해져서 그냥 그렇게 찢기어진 일기장만 남았다만
아~~그 시절 생각하니 넘 재밌다 그지
애자야 편지는_. 어떤 형식이 없어 참 좋은 것 같아 (영순 생각) 과거 현재 미래 어느 곳이든 가고싶은대로 가고
뉘게 평가받을 일도 없고 그냥 얘기하듯 수다만 떨면 되니까
일기는_. 옛날에는 많이 썼지만 지금은 싫어 그건 나만 읽을 테니 잘 다듬어 지지가 않고 너무 횡설수설해
그래서 난 편지를 통해 널 괴롭히지
넌 아마도 내가 모진 풍파 이겨내고 어떤 피안의 세계로 들어섰기에 여유로움으로 이렇게 너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할거다
그건 아냐 거친 세상 파도와 싸우기 싫어서 아니 지쳐서 모든걸 포기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야
남들이 호화저택에 고급자동차를 타드래도 난 상관없어 내겐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이룬 오페라 아리아를 사랑하고
그 멜로디에 빠져들 수 있는 감성이 있지 음악에 취해 있을 때 전화가 오면 통화를 하다가도 상대방에게 이것 들어보셔요
난 이대목이 기가 막히게 좋다구요 라고 푼수 끼를 떨기도 한단다
소박한 내 차안에서 어쩌다가 댄서에 순정 같은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면 나도 몰래 앗싸~~하며 어깨춤이 절로 나지
그럴 때면 벤츠야 물렀거라 캐딜락도 안 부럽단다
애자야~! 난 스스로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련다 세속적인 눈으로 나를 재려는 이들과는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새로이 친구를 사귈 필요도 없질 않는가
우리 함평댁들 하고만 친해도 옛날 옛적 얘기 우려먹고 되풀이 해 먹을 수 있어(호박죽인가 먹게 ?)
한세상 심심하진 않을 테니까 근데 시방 내가 몇 장이나 쓰려고 덤비는가?
무게 중량 오버하면 우체국도 가야하니 이만 줄여야 쓰것다
결론하건대 편지란__. 수다 만 떨면 되는 거여 나처럼__. 안녕
** 변명: 여기저기 땜질자국 있는 거 용서해라 밝은 정신 차리면 나도 잘 쓸 수있어 하지만
비몽이건 사몽이건 간에 쓰고만 싶은걸 어떻허냐.
5-6-99 dear 글라디오라스 문
지난 한달 가량 _ 네 분의 친구 님들께 편지 쓰느라 하루하루가 행복했었다
그 일을 끝냈을 땐 앓느니라고 침대에 납짝붙어 일하러 갈 시간직전까지 꼼짝 않고 시름시름 했단다
전화했듯이 딸내미는 집필 안하시니 아프다 했고 난 아파서 집필을 못한다 했지
바쁜 중에도 pen을 붙잡고 엎드려있는 엄마의 모습은 자식들한테 교육적으로 참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수다떠는 것처럼 써내려 가다보면 나름대로 감탄사가 들어갈 만한 문구가 나오게 되더구나
소개한다면
영희--너의 그 고운 모습 기억해줄 일기장 같은 이 친구는...
영숙--불투명한 미래를 꿈꾸던 암울했던 내 人生의 봄날은 왜 그리 활짝피지 못하고 움츠려 들기만 했을까
현령--개나리색 한복 곱게 차려입은 너의 그 우아함은 괜히 나타나는 자태는 아니라고 생각해
애자--벚꽃 한송이 한송이 눈을 마주치듯 바라볼 제 난 참 예쁜 소녀였을 것 같구나
친구들에게 써보낸 이러한 넋두리들이 직장에서 일할 때라든지 운전을 할 때 머리 속에 자꾸만 맴돌면
난 생기를 찾은 듯 어깨에 힘이 절로 난단다 누구는 자신의 시에 눈물 흘렸다지만
난 자신이 쓴 편지 들을 떠올리며 홀로 흐뭇해한단다
어쩜 넌 이 별난 행복감을 갖은 내가 불쌍해져서 마음이 짠해 질거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삶의 낙인걸 어쩌란 말이냐
콜로라도에 모처럼 봄비가 촉촉이 내렸지 그 빗속에 떠올리는 건 한국의 꽃샘추위가 간절하게 그리워지더라
벚나무가지 무섭게 휘둘러대며 꽃잎들을 나동그라지게 하던 그 폭풍 같은 봄!
뼈마디가 으스스해져 따뜻한 이불 속으로만 기어 들어가던 그런 것들이 향수처럼 향기처럼
내 가슴팍에 파고든단다 여기서 가질 수 없기에 생겨난 그리움 같은 게 있지
그건 _. 여름날 바닷가에 모래밭을 걷다가 발바닥에 조개껍질이 찍히는 그 아픔조차 느끼고 싶고
꽃샘추위에 들여놓은 옷가지 다시 꺼내고 연기 마셔가며 연탄불 피우던 그 느낌
추운 겨울 발동동 굴려가며 버스 기다리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직전 물씬 풍겨오던 흙냄새 라던가
장마 비에 눅눅한 느낌, 곰팡이 냄새까지도 그리운 걸 어떻하냐
어떤 시엔 '그리움도 병인양' 이라던데 나의 그리움은 생활에 활기를 주고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기도 한단다
현령은 그리움이란 결국 자신을 지켜준다고 했지 정말 그런 것 같다
한국 갔을 때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맡았던 그 옷 냄새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단다
그 냄새 실컷 맡고 오니 살 것 같았다 그게 아쉬워 이거 사줘 저거 사줘 하며 널 볶아먹지만
이곳에선 전혀 가질 수 없는 냄새지
우리 부근씨가 교회 갈 때면 으레이 입던 양복을 작년 여름에 들어서면서 셔츠차림을 허용했더니
계절이 바뀌어도 그 편안함을 고집하므로 교회갈때마다 서로 얼굴을 붉히곤 했었지
한국 드라마에서 출근하는 남편에게 옷 입혀주는 장면을 보고 불현듯 느껴지는 게 있었다
난 그 느낌 그대로를 내 남편에게 속삭였는데 뭐라고 한줄 아니?
'아휴~ 남자의 양복냄새 와이셔츠 냄새가 그립고나'
그랬더니 그후론 아내를 위하여 양복 입는걸 마다하지 않더라 고까짓 소원하나 못 들어주겠냐고 내게 말했지만
아마도 양복쟁이와 바람이라도 날까봐 겁이 난 게지
애자야! 양난을 보면 얼마나 꽃이 화려하고 예쁘더냐 치만 향기를 맡아 봐 무슨 향이 있나
무취의 화려함은 곧장 질리고 말 듯이 이곳 봄치장도 그렇더구나
막 깍아놓은 잔디밭에 잠깐 풀 냄새가 날뿐 꽃에도 나무에도 향이 별로 없단다
나의 콧구멍은 봄을 위하여 모든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데
자동차 매연냄새조차도 나질 않으니 얼마나 무미건조한 곳인가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향수를 즐겨 쓰나보다 그 인공적인 향이 뭐가 좋다고...
얼마전 백화점엘 갔는데 샤넬no5가 눈에 띄더라 그냥 지나쳐왔지만
그 향이 얼마큼 좋은지 다음엔 꼭 맡아봐야겠다
정말 좋다고 느껴지면 한번 사 봐야지 지가 비싸봤자 내 일주일 pay만 하겠냐
난 이때껏 향수라곤 모르고 살았다만 사용을 하던 안하던 간에 사치스런 마음으로 사볼까 한다
(딸들에게 슬쩍 귀뜸만 하면 가질 수 있지만 불쌍한 내딸들 그만 울겨 먹을 란다
엄마생일에 결혼기념일 어버이날까지 겹쳤으니 얼마나 짐이 무겁겠냐)
착한 친구야 내게 편지 받건 전화 받건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해 할 것 없다
그들에게도 반가워만 한다면 언제든지 보낼 수 있단다
어설픈 나의 말장난에도 코방귀 뀌지 않고 감동하고 공감하여주는 넌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넌 나보다 더 낭만적이고 감상적이야 똑 같은 편지를 해도 감동이 배가되어 돌아오는데
네게 쓰지 않으면 뉘게 쓰리오 널 울리기 도하고 웃기게도 하지만 그 웃음에_ 그 울음에_ 진정한 情을 느낀다
나의 정성어린 서신 받고도 마누라한테 압수 당해 읽어보지도 못하신 진환씨도 안녕하시지
따로 안부편지 하고싶어도 그 마누라 뵈기 싫어 안 쓸란다 (변명임)
내가 굳이 성일 아빠대신 이름을 강조하는 내력을 들어봐라
제주도 졸업여행을 마다하고 친구들끼리 일주일동안 내설악을 샅샅이 뒤진 적이 있었지
그때 보디가드로 남학생 한사람이 끼었는데 세월이 흘러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중 한 친구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그 남편(남학생)이
날더러 '영순씨'라고 부르더라 난 그 부름이 너무 좋았다 그
래서 나도 친구들 남편이름을 의식씨 진환씨 이렇게 부른단다
선영아빠 아니 부근씨 한테도 가르치지 성일 엄마 하지 말고 애자씨 하나 엄마가 아니고 현숙씨
영숙씨 송희씨 순애씨...라고 그리고 남편과 일하는 시간이 다르기에 가끔씩 전할 말을 메모에 남길 때도
끝에다 '영순씨 가' 라고 쓴단다 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나의 이름을 빛내준 사람은 처음엔 그 친구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빛내려 한다 young sun(젊은 태양)이라고 말야
미국에 오니 이름까지 태양처럼 빛을 발하게 되는구나
네 남편게도 전해다오 날 선영엄마 하지 마시고 영순氏(??)라 불러 주시길 바란다고 ...
이젠 _내 이름에 콤플렉스 같은 건 없으니 마음대로 부르시라고
친구야~! 못 말리는 이 영순씨는 주전자에 물끓이는 게 번거롭다며 micro wave(전자 렌지)에 물 한 컵을 데워
다시 금테 두른 본 차이나 꽃 찻잔에 커피한 잔을 타 마시는 그런 한심함을 마시며 산단다
얘들은 그게 더 복잡하다고 구구히 설명을 늘어놓지만 이것 또한 내 멋잉게
'유영아 차 한잔 마시자 ' 하면 '네 오늘은 무슨 찻잔에 ?' 그러면 대답이 얼마나 어수선한지 아냐
'응 저번에 깨뜨려먹고 한 개 남은 것' '한국 롯데서 너무 비싸게 산 그것'
'지난 크리스마스때 강제로 선물 사달라 졸랐던 것'
마치 떼쓰는 아이 달래듯 엄마! 이거요? 저거요? 하며 찻장앞에서 웃음 지으며 나를 놀리기도 한단다
행복이 별거더냐 그걸 느끼려고 덤빌랴 치면 차(tea)한 잔에서 부텨 차(car)에 이르기까지
모두 행복 투성이지 기아 세피아는 made in korea 여서 자랑스럽고
또 한 대는 버린 것 주어서 손을 봤더니 효자노릇 단단히 해내서 거져생긴 맛에 기분 좋고
비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 맑은 날은 맑아서 좋으니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찾아야 하는 게
행복의 필수 조건이 아닐련지... 너도 한 번 찾아봐라
성희의 미끈하게 뻗어 내린 몸매를 보며 잘생겨서 급우들의 공부를 방해했다는 아들을 바라보며
중세기 골동품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너의 거실에 버티고 서있는 그 장식장을 보며
진짜 참일군이 되어 양계장에 묻혀 사시는 듬직한 남편을 생각하며
이토록 널 사모하여 잠못드는 영순씨를 그리며
무엇보다도 따뜻함이 가득한 네 마음씨를 스스로 칭찬하며 와~~넌 너무 부자로다
오늘 쓰려다 못쓴 함평여중 시절의 '내가 본 문애자'를 예고편으로 남기며 이만 안녕을 고 하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