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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몇 년 전 등산객들이 자주 오르는 어느 산에서 혼자 등산을 왔던 한 여자가 실족사건이 났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강한 바람이 몰아치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근처 산장에 남아있기로 했는데 이 여자만은 기어코 내려가야 한다고 하면서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그 지역에 오래살던 사람들은 산을 내려가는 도중에 있는 계곡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류했으나 여자는 듣지 않고 자신의 집을 꾸려 내려 간다고 하여 등불을 주었지만 그것도 짐이 된다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아뭏든 그 다음날 아침에 그 여자의 시체가 계곡하류로 떠내려 온 것을 인양했고, 그 가족들은 이 어리석은 여자의 시체를 인수해 갔다. 이 여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종말이 두렵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빛을 거절하고는 멸명의 길로 빠지고 있는지 모른다.
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주님께 가까이 함이 복 / 시73:22-28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시편 기자의 신앙과 행복의 가치 기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옛날 6.25직후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미군들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가까이 하는 것도 큰복이거든 하물며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1. 시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조사 연구 기관에서 공장 소음 지역의 아이들과 안정된 주거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장과 정서에 관한 조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정신 환경은 주위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신 환경이 사람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정신 구조는 영적 건강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이 산란하면 정신이 산란해 재고 정신이 흔들리면 생활도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 편 기자는 마음이 산란해질 때 재빨리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야 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시대야 말로 과거보다 산업 공해, 자동차 공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원시인들을 제외하고는 도시 사람들은 거의가 다, 정도 차일 뿐이지, 정신 병 환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리고 화를 내고 욕을 해됩니다. 부모도 없고 윗사람도 몰라볼 정도로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심령이 다 병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산란한 사람, 복잡한 사람, 잡념과 상념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빨리 하나님께로 다가서야 합니다. 그래야 제 정신을 찾고 바른 삶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짐승처럼 우매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2절에 보면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지혜로우면서 가장 미련한 존재, 가장 우수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존재, 가장 강하면서 가장 허약한 존재....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는 방목하는 소 떼가 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소 떼들이 머리를 한라산 정상 쪽을 향하고 풀을 뜯고 있으면 날씨가 좋고, 산아래 쪽을 향해 풀을 뜯고 있으면 비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라산 기슭에 새들이 낮게 날면 비가 오고 높이 날면 날씨가 좋다는 것입니다. 기상대가 한라산 소머리를 보고 일기예보를 한다면 틀림이 없을 텐데, 자존심 때문에 못하는 모양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이나 첨단 장비도 별것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똑똑한 것 같지만 인간처럼 어수룩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발람 선지자가 돈에 팔려 모압을 축복하기 위해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우매 무지하오니 주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말입니다. 복중에 있는 생명은 모태와 연결된 생명체입니다. 모태를 떠나면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이미 죽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가르쳐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현대는 화려한 시체들의 행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주를 떠납니까? 첫째,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간섭받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셋째, 현재의 죄악된 삶에서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넷째,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주밖에는 복이 없습니다. 주안에만이 생명이 있습니다. 주안에만이 소망이 있습니다. 주 안에 만이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주 안에 만이 진정한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놀라운 은혜를 맛보아 알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와 함께 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3절 상반 절에 보면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라고 하였고 25절에 “하늘에서는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사모하는 자를 가까이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실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사모한다고 하는 것은 다르게 표현한다면 ‘사랑’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큰사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 가운데 가장 행복한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부모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매일 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어느 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 얼싸안고 입을 맞추고 집으로 영접해 드립니다. 탕자는 너무도 크신 아버지의 사랑에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를 아버지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이제 부터는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잔치를 배설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를 사랑하며 존귀히 여길 때에 누리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다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가까이 할 때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뻐하며 가까이 섬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 모시는 비결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 노아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시고 사신 분들입니다. 이들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존귀히 여겼으며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에서 섬긴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야말로 정말 복 있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사모하여 사랑하고 그 증표가 되는 기도와 예배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복 있는 자입니다. 이번 대 심방 기간을 비롯해서 정말 하나님을 사모하여 주님을 가까이 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 되는 이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내 오른 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둘째, 나를 영접해 주십니다. 셋째, 영원한 분깃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먹고, 입고, 배우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떤 인생도 일분, 일초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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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존재 목사님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를 드리며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죠? 늦었지만 안부 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