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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이야기◈ 스크랩 사진여행 `어느 봄날`에 나른한 `섬`을 만나다. 강화 교동도
길손旅客 추천 2 조회 691 13.04.25 05:5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교동도 여행 코스'

교동읍성 > 읍내리 비석군 > 교동향교 > 화개사 > 화개산 등반 > 화개사 > 대룡시장 > 고목근현지 >

고구리저수지 > 앙갈리 느티나무 > 교동 들녘 난정저수지 > 철책선

    

 

 

 

 

생애 가장 나른한 봄날, 교동도

덩그러니 놓여진 작은 섬,

그곳에서는 계절이 마음을 앞지른다. 천천히,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시간은 무심하게도 제 갈 길을 간다. 모진 한파 물러나고 나른한 계절이 돌아 올 즈음이면, 자연의 시간대로 사람의 손길은 분주하다.

섬이라고 말하지만 어부가 없는 섬, 평화로워 보이지만 적막함이 감도는 땅, 그래서일까? 섬사람들의 입은 많이도 무겁다. 점심끼니 들자마자 밀려오는 춘곤증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 같은 묵직함, 반가움도 짧은 목 인사이고 보니 말 보다는 눈치로 빠른 인사를 대신한다.

 

교동도,

이북을 코앞에 두고 어느 정도의 불안한 땅에서 머무는 사람들은 늘 긴장하며 산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하구에 위치하여 서해바다의 중요한 기항지인 섬, 지금도 안보를 위한 중요한 섬의 위치를 가졌으니 옛 시절에는 오죽 했겠는가? 그리하여 백제때에는 달을신(達乙新)’이라 하였고, 고구려 때에는 고목근현(古木根縣)’을 설치하였고, 신라시대에 들어와서 교동현(喬棟縣)’이라 하였고, 특히 조선 인조7(1629)에는 도호부로 승격, 삼도수군 통어사를 두어 경기도와 황해도, 충청도의 해군본부로 삼아 관아를 두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동서 10km, 남북 5km, 36km의 해안선을 가진 섬으로 여의도의 2배정도 크기에 해당한다

작은 섬에 자리한 화개산은 해발 259m의 야트막한 산이다. 섬의 외곽은 모두 철책으로 둘러쳐진 천혜의 요새가 되었고, 그 속, 땅을 일구어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이루어 냈다. 이러한 경작지는 강화도까지 더한다 해도 가장 넓은 경작지로 곳곳에 자리한 관개시설 시스템이 놀라울 뿐이다.

자연스럽게 무거워지고, 먹먹해진다.

휴전선이 섬을 에두르고 있는 모습에 섬이지만 어부가 없다.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은 공평하게도 비옥한 땅을 주었다. 그리하여 섬사람들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있다. 섬 전체의 70%가 경작면적이라 보면 틀리지 않는다.

 

 

 

 

 교동 읍성

읍성은 둘레가 약 305m 높이가 약 2.4m 이며 용성 3곳과 치첩 네 곳이 있었으며 동쪽, 남쪽, 북쪽에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문만 남아 있다. 순조 13(1812)에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치첩을 고쳤고 고종 27(1884)에 부사 이교복이 고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나 폐하였다. 읍성의 3 문에는 각각 1층짜리 문루가 있었고 그 옆에 곡성이 4곳이 있었다 한다.

     동문의 문루는 통삼루, 북문의 문루는 공북루, 남문의 문루는 유량루였다. 이 가운데 유랑루만 1921년 까지 남아있다 폭풍우로 무너지고 지금은 문루만 서 있다    

 

 

    교동읍성의 흔적 위로 날아가고 있는 철새들,

유일하게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고갈수 있는 철새들이다. 사람은 철책을 만들었으나, 새들에게는 이곳이 그들만의 환경이 되었다.

 

 

피난민들이 일군 땅, 교동.

지금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교동도의 유일한 읍내, 대륭리의 모습이다. 농협과 농기계 수리센타등의 현대화 되어 있는 시설들을 제외하고는 옛 풍경이 그대로 남는다. 피난통에 세워진 건물들의 구조는 마치 짜임새 있게 꾸며진 반공호와 같다. 미로처럼 얽힌 건물의 구조, 실타래가 얽힌듯하여 과연 철책선을 늘상 보고 사는 삶의 모습이구나 싶지만 정작 교동 사람들의 모습은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편안하다. 오히려 그러한 편안한 표정들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어 모이기도 한다.

 

지나치게 속도전에 치열한 경쟁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주고, 위로를 주며, 멈춘 시계바늘과도 같은 섬 풍경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교동도는,

13개의 법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통 교동의 여행이라 하면 월선포선착장으로 들어와 읍내리에서 시작하여 화개산을 거쳐 대룡리에서 마무리가 된다. 물론 그 외의 지역에도 들러 볼만한 곳들이 산재하고 있지만, 이정표가 정리되지 않아 자칫 길을 잃기 쉬우며, 평야에 자리한 좁은 농로들이 대부분이기에 뻔히 바라보고도 길을 찾지 못하고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불과 5km를 두고 있는 휴전선으로 일부 마을길을 제외하면 네비게이션은 먹통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 읍내리비석군

읍내리 현 교동양조장 앞에서부터 서쪽으로 수십여개의 비석이 늘어서 있던 곳을 이름하여 비석거리라고 전해져왔다.

이 비석들은 쓰러지고 훼손되어 멸실될 우려가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때 교동의 지난날의 역사를 정립한다는 뜻에서 옛 교동의 관문이었던 남산포길 옆에다 이전 정립하였다가 1991년 다시 향교입구로 옮겼다.

39기 대부분이 겸부사(兼府使)의 선정비(善政碑)인데 이 가운데에는 거사대(去思臺)라는 특별한 양식의 비가 3기 포함되어있다.

 

 

이제 막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는 여행자의 여행,

강화도를 지나 교동도로 향한다. 강화 버스터미널을 지나 교동도 배편이 있는 창후리로 향한다. 지척에 강화군 인후리와 교동면 봉수리를 잇는 3.44km의 강화 교동간 연육교가 건설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배편을 이용해야 하는 이다.

화개해운

강화면 화점면 창후리 796-6  /  032-933-3212, 933-4268

 

남으로 석모도가 자리한다.

숙박 및 관광시설의 활성화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외포리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으나, 교동도로 들어가는 배편이 자리한 창후리 선착장은 적적하다 싶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대개의 교동을 들어가는 사람들은 교동이 삶의 터전이거나, 교동과 관계되는 분들, 그리고 등산객등의 여행자들이다.

창후리 선착장에 도착하고 나면 승선표를 끓고 나면 배에 오를 수 있다. 근래 들어 북한의 태도변화에 더욱 철통같은 보안 관리로 엄격해진 절차를 지나고 나서 배에 오르고 나면 10여분, 교동의 월선터미널이다.

주의해야 할 것이 교동, 강화간은 수심이 얕고 물살이 세 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나는 곳으로 배가 우회하여 세우는 경우도 있으니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선착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지도를 펼쳐들고 대강의 코스를 살펴본다.

딱히 어렵거나 까다로운 길이 없다. 국도는 한길뿐이다. 어지간한 여행자의 볼거리들은 모두 그 길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읍내까지 가시면 같이 좀 갈수 있을까요?”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버스가 나오지 않아 난감해하시는 노부부이시다.

버스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나봅니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데, 보통 이 시간이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은 뭔 일이 있나보네요.”

교동에는 따로 마련되어 있는 교통편이 없다. 버스가 수시로 선착장을 오가기는 하지만 부정기적이다.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강화읍내처럼 정기적 순환버스가 다니면 좋을텐데요.”

그러면 좋은데, 뭐 벌이가 되나?, 그나저나 선생은 뭐하시는 양반이유?”

아예, 그냥 교동도 여행 왔습니다.”

여기 뭐 볼게 있다구... 잘 구경하고 가시겨~” 혀를 차시면서도 잘 둘러보라는 인사까지 주신다.

교동은 그러한 곳이다. 스스로 특별함이 없는 곳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다. 가끔씩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오가는 여행자들을 보기는 하지만, 무엇을 보고, 느끼려는 것인지 그 분들은 생각하고 계시지 않는다.

정작 여행자는 그러한 편안함을 가진 모습들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 교동향교

향교는 조선시대 각 군과 현에 설치되어 공자 등 옛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유생과 마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역할을 한 교육기관이다.

교동은 옛날 중국을 오가는 바다 길목에 있어 대부분의 배 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 안유가 교동 향교에 처음 봉헌한 까닭이다.

고려 인종 5(1127) 때 각주에 향교가 세워졌을 때 화개산 북쪽인 고구리 향교골에 세워졌으며 교동읍이 읍내리로 옮겨짐에 따라 부사 조호신이 영조 17(1741)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현존하는 우리나라 243개의 향교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교동 여행의 시작은

교동읍성을 시작으로 읍내리 비석을 지나 교동향교를 목적으로 하고, 화개사와 화개산을 한바퀴 돌아보는 일정이다. 우선 몇몇의 일정중의 중요한 곳을 메모해 보면,

교동향교(喬桐鄕校)’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로서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 된 곳으로 고려 충렬왕12(1286) ‘문성공 안유(성공 安裕, 1246~1306)’선생이 원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공자와 십철(十哲)의 초상을 모셔와 화개산 북쪽(, 향교골)의 문묘에 모셨다가 충렬왕29(1303) 송도로 모셔졌다라고 하여 수위(首位)’를 이루게 되었고, 교동향교를 수묘(首廟)’라 칭한다. 그러던 영조10(1741)에 부사 조호신에 의하여 화개산 남쪽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현재 대성전(大成殿)’공자(孔子)’, ‘안자(顔子)’, ‘증자(曾子)’, ‘송조2(宋朝2)’과 함께 우리나라 ‘18(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화개사와 부도

창건연대는 고려때라고 전하는데 고려말의 문신 목은 이색(1328-1396)이 독서하였다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금불상 2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전한다. 원 건물은 1840년경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건립되었으나 1967년 다시 화재가 일어나 1968년 중건하였다.

유물은 부도 1기가 있으며 절 뒤에는 문무정이 있으며 절 오른쪽에는 불두화가 있다.   

 

 

△ 화개산 들머리임을 표시하는 '강화나들길'리본

 

△ 화개산 봉수대 (강화군 향토유적 제29호)

화개산 정상과 이어지는 연봉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봉수대로 낮은 석단만이 남아 있다. 가로4.6m, 세로7.2m, 간존높이 1.2m다.

남으로 강화의 덕산봉수대와 동으로 하음의 봉천봉수대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 다음이 화개산(華蓋山)’이다.

해발 295m의 산으로 화개사 앞을 출발하여 화개산 정상에서 교동면사무소를 지나 다시 화개사 앞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2시간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화개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시원한 조망에 있다. 북쪽의 땅을 아무런 간섭 없이 이렇게 바라 볼 수 있는 몇 없는 곳이다.

 

그리고 대룡시장,

누군가는 평화로운 겉모습에 반하여 시간이 멈춘 곳이라 했다. 누군가는 과거를 기억하는 곳이라 했다. 그리고 여행자는 시간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여기가 6.25때 부텀 있던 시장이야. 지금 집들이 다 그때 지어진 것들이거등..”

대룡시장이 어디쯤인지 묻는 여행자의 물음에 지나시는 어르신의 대답이시다. 드러내거나 내세우려 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분명하게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마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러한 역류의 시간 내지는 정체된 시간들이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작가의 시선들에서 나온 몇몇의 단어들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그러한 공간인 것이다. 옛 건물에 콘크리트를 덧대었고, 그 이전에는 스레트를 켜켜이 얹어 우풍을 막았다. 더 그이전의 시간에는 판자때기로 바람을 막아 놓았을 것이다.

교동도 여행의 끝은 누가 뭐라해도 대룡시장에서 짧게 만나는 과거와의 조우다. 

 

 

 

 

 

△ 화개산 정상부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인 곳이다. 해발259.6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강화해협은 물론이고, 북녘의 땅까지도 조망되는 곳으로 북녘땅을 누구의 간섭없이 마음껏 조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중의 한 곳이다.

 

 

△ 효자묘와 화개약수터△

 

 

△ 고구리한증막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한증막이다. 이 외에도 교동에는 봉소리와 서한리에도 한증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증막은 모두 산에서 물이 내려오는 골짜기와 산림이 풍부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안평대군, 연산군, 광해군, 임해군등의 왕족들의 유배지임을 들어 당시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동의 땔감들이 한양으로 팔려나가고 일제시대 벌목으로 사라지면서 한증막도 유지하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고구리한증막은 둘레45m, 지름15m, 높이3m정도로 성인10명정도 들어 갈 수 있는 규모이나, 황토가 바람에 사라지고 현재는 돌만 남아있는 모습이다.

 

 

 

△ 대룡시장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주민들이 피난처로 임시로 거주하던 공간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 되면서 당시이 골목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공간이다. '시간時間'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공간이 된다.

 

 

 

△ 대룡시장 '대풍식당'의 국밥 (5,000원)

잘 익은 배추김치와 아삭한 깍두기의 조합이 기가막힌 맛을 낸다. 생각보다 많은 건더기와 진국의 육수맛은 여행자의 허기와 피곤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국밥과 함게 냉면(6,000원)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풍식당 : 032-932-4030 강화군 교동면 대룡리 456-1  

 

 

△ 고목근현지(古木根縣址)

고구려 때 고목근현을 설치한 곳으로 이루 인조7년(1629년) 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읍치을 읍내리로 옮기기전 까지 관아건물이 들어 서 있던 곳이다. 길이 1,200m로 4개의 문과 관아터, 부속건물터로 추정도는 흔적이 남아있다.

 

 

△ 고구리저수지

19764월에 완공된 88.5(266천평)의 저수지로서 사계절 어디든지 낚시할 수 있는 곳으로 주어종은 참붕어, 잉어, 빠가사리, 가물치등 공해없는 어종을 볼 수 있다. 원래 화개산 북쪽 기슭인 이곳에는 큰 연못이 있었고 연못은 가르는 길이 있었다. 76년에 바닷가쪽으로 둑을 쌓고 물을 끌어 올 때 물을 가두는 물푸기못으로 칭하여진 고구저수지는 상하류가 둑길로 갈려 있지만 물은 서로 통한다.  

 

 

 

△ 교동의 드넒은 평야

섬 전체의 70%가 경작지로 섬이지만 쌀생산이 주를 이루는 섬이다.

특히 어지간한 농촌보다도 체계화되어 있는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수리시설이 눈에 뜨인다.

 

△ 양갑리 느티나무

드넓은 교동평야를 굽어 보며 선 느티나무로 수령410년으로 수고35m, 나무둘레 9.3m에 이른다. 

 

 

△ 난정저수지

난정지구 농어용수개발을 위해 199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현재 완공을 했다. 위치는 난정리외7개리에 걸쳐있다.

난정저수지의 수혜면적은 321만평(1070ha)에 이르고 유수면적은 121ha에 달한다.

 

 

 

 

철새들은 남과 북을 잇고 있었다.

사람은 철책을 놓아 군사시설을 만들어 놓았으나, 철새들은 곡창지대를 오가며 남과 북을 넘나든다. 교동의 갯벌과 교동평야는 철새들에게 중요한 안식처가 된다.

교동의 땅은 사람에게도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안식의 터전, 삶과 풍경의 사이에서 교묘하게 어울린 시간의 공간이 교동도에 머문다.

순수가 녹아내린 삶의 섬,

교동도에서 마주 친 미치도록 나른한 '어느 봄날'이었다.   

 

p.s>

강화도까지 오가는 유일의 길이 48번국도가 전부인지라 주말과 휴일의 복잡스러움을 감안해야 하며,

교동도에 들어가는 배편이 정시 출발로 되어 있지만 실제 15분 전후로 출발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미리 도착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잇다. 또한, 교동도에서 나올경우에도 예상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먼저 선착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이 강화도로 건너가 낙조를 기대하지만 선착장에서 길게 이어진 차량행렬에 진이 빠진다. 그저 '섬' 안에서만 조용하다.

 

 

 

      

글,사진  박성환

www.gils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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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4.25 12:11

    첫댓글 교동도 한번가본기억을 생각해봅니다 읍성만 다녀온듯 합니다 교통이 불편해서 차량이 없이는 다닐수가 없더라구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04.29 05:51

    네,
    자기차량이 없으면 아무래도 이동이 불편한 곳입니다.
    대중교통이 마을버스뿐인데, 배차시간이 정확하지를 않습니다.

  • 13.04.25 17:36

    사진과 설명 감사합니다
    한번 가보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작성자 13.04.29 05:52

    자가용 보다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추천하고 싶습니다. 교동도를 다녀보니 그것이 더 편할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13.04.26 19:27

    교동도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보여주시여 감사하며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작성자 13.04.29 05:53

    감사합니다.
    작은 섬이지만, 나름 역사와 볼거리는 많은 섬입니다.

  • 13.04.30 09:27

    강화쪽에도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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