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선조들은 어떻게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선조들의 지혜 대발,땀받이,돗자리,목침,탁족은 기본 삼베옷입고 죽부인 끌어안으며 시원 하고 풍유가득한 여름을 보냈다고 하는데 생활의 지혜로 더위를 멋스럽게 이겨낸 선조들로부터 한수 배우는 여름나기
노하우......
대쪽같은 성품과 차가운 기운을 지닌 죽부인 아랫집 김초시도 요즘 죽부인 안는 재미에 푹빠져산다는 소문이 온동네에 자자하다 왜이더운 여름날 남정네들은 안방마님의 눈흘김에도 아랑곳없이 밤낮 죽부인을껴안고 내려놓을줄을 모르는것일까 저기 동구밖에 사는 김어르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죽부인의 몸과 마음을 빼앗길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본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죽부인이 요란하게 치장을 한것 보았나 단아하면서도 향긋한 죽향으로 남정네의 마음을 흐리지 않는가 어디 그뿐인가 성질이 차가워 옆에만 있어도 줄줄 흘러내리던 땀이 식고 속에서 아무리 천불이 나도 죽부인만 와락 안으면 곧뼈속 까지 시원 하게 녹아 내리지 자 이만 하면 자네도 내마음 이해하겠지 ? 이렇게 무더운 날은 죽부인이 최고라는사실!"
죽부인은 과거 최고의 여름나기 용품이었다 차가운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둥그렇게 만든 죽부인을 안고 바람솔솔 불어오는 마루에 누우면 그야말로 싱선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요즘에도 옛인기를 이어받아 시장이나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줒부인을 안아볼수 있다
죽부인은 중국 당나라때는 죽뢰술이라 불렀다가 송나라때에 이르러 죽부인 또는 竹姬라고 불렀다 조선조 이유원의 글 "임하필기"에보면 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을 두고 수족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것이다 라고 했다 잘마른 황죽을 참숯에 지지면서 엮어만든것으로 길이는 대략 넉자반(약 136cm) 지름은 한아름정도로 구멍이 나도록 성글게 짜서 원통형이 되게 한다 살결이 닿을대 깜촉이 좋고 가시에 찔리는 일이 없게 하기위해 공정이 매우까다롭고 잔손이 많이 간다 못이나 철사를 사용하는것은 금물 그리고 숯을지져서 색을 내는거 외에는 생숯을 칠하는등 가공하지 않는것이 보통인데 이는여름철 담에 씻기거나 묻어나지 않게 하기위해서다
(모시 한복)
삼베흩이불을씌어 죽부인을 가슴에 품고 한다리를 척 걸치고 자면 시원하게 잠을 이룰수 있고 구멍이 뻥뻥 뚫리고 안이 텅 비었기때문에 시원한이 유지 될뿐아니라 대나무의 촉감이 시원함을 주기대문에 여름철 죽부인을 사용하는것은 피서방법으로 최고이며 자식된도리로서 노부모에게 죽부인을 선물하는것은 효도라고 알려져서 그때문에 최근 죽부인을 선물하는 자식들이 늘어나 죽부인의 값도 이제는 매우 비싼 편이다
옛날 아들 5형제를 둔 노부부가 아직도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형제가 밖에서 이모습을보고 투정을 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5형제를 두고도 모자라 또 자식을 만들려고 하니 딱하기도 하다 여섯째가 태어나면 우리만 골탕을 먹는다 업어 키워야하고 똥오줌 치워야하니 그짓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이리하여 5형제는 궁리끝에 부모를 격리시키려고 작정을하고 대나무로 가짜부인을 만들기로 해 뒤뜰에 무성히자란 대나무를 쪼개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안고자기에 알맞을 정도의 긴죽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때는 무더운 여름5형제가 만들어줒 죽통을 안고자다보니 사람을 껴안고 자는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잠이절로 들어 아버지는 자식들이 한없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한편 5형제는 나름대로 여섯번째 동생이 생기지 않아 짐을 더니기뻤고 이를 이름하여 죽부인 이라 그래서 부모가 쓰던 죽부인은 자식이 쓰지 못한다 부모가 사랑스럽게 안고 자던 죽부인 이기
때문이며 죽부인은 담양 으뜸으로 담양은 죽세공업이 발달하여 담양장은 전국 각지로부터 죽세품을 구하러 오는 상인들로 죽제품 장으로 유명하다
대나무를 여성의 의미지로 보는경향은 희박하지만 신비와 영기가 서림나무로 임정하는 측면이 많은 편이다 삼국유사의 "미추왕과 죽엽군"은 이러한것을 뒷받침하는설화로 14대 유리왕때 이서국 사람들이 금성을 공격해왔으나 신라군이 당해내지 못했는데 이때 귀에 댓잎을 꼿은 이상한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 적을물리쳤다 적이 물러가자 이상한 군사도 오간데 없고 미추왕의 능 앞에는댓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미추왕이 도운것으로 알고 후에 이능을 竹現陵이라 이름하였다
"萬波息笛 이라는 피리에관한 설화로 신라 신문왕때 동해에 작은 산이하나 떠내려 왓는데 산에 신기한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어 왕이 그 대를 베어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뭄때는 비가오고 장마때는 비를 멈추게했다 이처럼 나무중에서도 대나무는 사군자의 하나로 특별히 취급될뿐아니라 무당이 신내림의대 즉 新竿으로도 사용하고 있음을 알수있다우리나라에서는 대나무를 여성의미지로 볼만한 근거는 일본이나 중국만큼 마노지는 않지만 이곳의 "죽부인전"처럼 여인의 절개를 대나무에 대입시킨것을 보면 대나무를 여성화하는 시각도 있었던것 같다 어떻든 대나무를 여성화 하여 죽부인을 만들어 여름 더위를 피해보려는 지혜는 동북아아 권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했던것 같다
이와 같이 대나무를 잘게쪼개 길고 둥를게 엮은 베게형으로 품안에 끼고 자거나 다리를
얹고자면서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던 또하나의 부인으로 옛선인들의 여유와 생활의
멋을 보여준다
선조들의 여름나기 필수품 대나무 왕골 돗자리나 목침과 같은 용품은 "대나무"와 더불어 "왕골"을 재료로 많이 만들어졌다 꽃무늬가 새겨진 화문석이나 용무늬가 새겨진 용문석 돗자리 문에다는발 역시 왕골을 사용했다 왕골은 논밭이나 우물가 같은 습지에서 자라는식물로 대나무처럼 시원하고 땀을 잘 흡수해 오래사용해도 윤기가 그대로 유지되며 질기고 부스러짐이 없어 양반은 물론 서만층에서도 많이 애용했다
등거리와 모시는 통기성과 까깔한 감촉이 그만이어서 옷을 홀랑 벅은것 보다 오하려 더시원해 모시 삼베와 더불어 여름철에 즐겨 입었던 선조들의 여름나기 필수품이었다 지금은 흔이 볼수없는 등거리는 드나무 줄기를 가는게 쪼개 조끼 모양으로 엮어 만든 남자들의 옷으로 모시나 삼베등의 저거리 안에 바쳐 입는 상의다 요즘은 러닝셔츠라고 불러도 될법한 등거리는 가만 앉아있어도 땀이줄줄흐르는 여름날 모시저고리 안에 바쳐 입으면 살과 옷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통풍이 잘되게 하고 몸을 시원하게 해줄뿐아니라 땀이 옷에 배지 않게 한다 등거리와 함께 사용된 토시는 팔목에 끼워 사용해 팔에 땀이 배는 것을 막아준다
사초과의 일년 혹은 월년초인 왕골은 강이나 하천 등 습지에서 자라며 높이는 60~90cm
정도로 땅속에 짧은 줄기가있고 땅위의 줄기는 세모져 있는데 잎의 기부는 잎집으로 되어 줄기를 감싸며 잎새는 너비0.8cm~1.5cm로 위면에 두모서리가 있고 9~10월에 길이 10~30cm의 대형 꽃차례가 겉으로 나며 꽃차례를 감싼 종포편은 4~5개로 길고 잎모양을 띤다 이삭가지는 긴것이 20cm에 달하며 ,꽃이삭은 왕골의 껍질을 벗긴것을 말려서 돗자리,바구니 등의 세공용품으로 사용한다 매끄럽고 광택이나는 줄기를 말리면 대단히 질기고 논이나 습지에 심어 기르기도 하는데 요즘 강화도 화문석 돗자리가 옛날부터 품질이
뜅러나기로 유명한데 동남아시아나 남중국쪽에서 이 왕골을 길러 반입해와 짠 제품을 강화도 화문석 보다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현재도 강화도 화문석은 고가로 팔리고 있다
예날 선조들이 살던 흙집은 여름에는 더운기운을 막아 시원함을 주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를 막고 태양의 열을 담아 주었다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시멘트집은 뙤악볕에 달구어지면 그열기를 그대로 실내로 전달하는 반면 흙집은 열기를 내보내고 흙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드나들게 한다옛선조들이 에어컨 없어도 더위를 이길수 있었던건 숨쉬는 흙과 함께 집안에서도 시원한 바람을 전달 받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마가 드리워진 한옥은 뙤악볕을 가려주고 그늘을 만들어 대청마루를 더욱시원하게 만든다 대청은 태양열을 이요해 더운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처마 끝에 머물러 있도록 하기때문에 대청에 앉아 있으면 더운 바람 대신 시원한 바람을 으낄수있다
뙤악볕에나가 뛰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돌아와 우물가에서 시원하게 목물을하고 방에 들어가 누우면 차가운 방바닥으로 해서 등의 땀이 금새 싹 가신다 찬바닥을 골라 이리 딩굴 저리 딩굴 하다보면 더윅는 저만큼 물러나서 이제 배 잠방이 입고 일어나 앉을 만 하게되었다 토담집은 흙벽이 두꺼워 겨울의 매서운 추의도 막아주지만 여름의 더운기운을 가로 막는다 담이구꺼운 토담집은 출입구가 크지 않은편이라 동굴로 들어가는 정도로 그런 土房은 바람이 따로 불지 않아도 뙤악볕마당보다는 훨씬 시원하다 굴속같기 때문이다
21세기 오늘날의 한옥으로 토담집을 권장하는 까닭도 이런 장점 때문이다 마루깐 대청에서 시원한 화채한그릇을 단숨에 비우니 석빙고에 들어와 앉은 만큼이나 시원해 좋다 큼직한 태극선으로 슬슬 부채질을 하면 이제 더위는 남의 일이 되었다 격을 차리는 사람이면 다리짧은 坐榻에 올라 앉는다 사이를 두고 가지런히 박은 나무오리로 해서 좌탑의 바닥은 바람이솔솔 통하게 되어 까실하게 왕골 돗자리를 깔고 앉으니 이제 마련은 다된셈이다
새로장만한 등거리를 배 잠방이 속에 받쳐 입고 의복이 몸에 착 달라붙지 않고 등거리로 해서 사이가뜨고 그리로 통풍이 되니 부채바람이 깊은 사타구니에 까지 시원하게 불어준다 삼복더위의 찌는듯한 마당에 비하면 대청은 한결시원하고 쾌적하며 아침나절부터 벌서 그늘에 들어있어서 좌탑을 뒤편 바라지창 가깝게 자리잡으면 뒷동산에서 불어드는 시원한 바람기로해서 기분좋은 졸음에 빠진다 얼른 등거리벗고 잘생긴 竹夫人끼고 대나무 竹枕
이나 사기러만든 陶枕베면 머리가 상쾌해 지면서 南柯一夢을 즐길수있다
대청은 묘하게 태양열을 이용한다 한옥은 처마가 깊어 깊은 처마는 뙤악볕을 가리며 볕을 가리니 그늘이지고 그늘은 나무그늘이 시원한것처럼 마당에 비하면 훨씬 서늘하다
한옥은 도심을 제외하면 대략 背山臨水하는 터전을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산 기슭에 집터를 잡는다 시원한 바람이 집으로불어 뙤악볕 마당에서 더워진 공기쪽으로 찬공기가 흐르는것이다 마당으로 가려는 공기가 집에 막혀서 처마밑에 감돌고 이기류가 아주 놀라운 여건을 조성해 소문들어 아시는분은 알겠지만 충북 진천 연곡리의 보탑사 삼층목탑 동편
약사여래상 앞에 놓인 수박은 사월파일에 올렷는데도 썩지않고 생생하게 견디는데 그해 동짓날에 수박을 잘라 나누어 먹는데 그때까지도 수박은 상하지않고 상태를 유지한다 시골종가댁 뒷마당 오지항아리를 묻고 일년내내 제사에 쓰일 과일을 저장하느데 제철에 갈무리를해 비철에 쓰려는 준비인데 용케도 그과일은 상하지 않고 여름을 지내고 한해를 넘기기도 한다
처마밑에 恒溫恒濕의 기운이 잇어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저장할수있는 이치를 우리는 규명할필요가 있다 그탐구가 과학적이라면 당연히 규명해야할 대상이
되며 이는한옥이 지닌 장점을 알아내는 한단계가 된다 집뒤처마에 감돌던 바람기는 열린 바라지창을 통해 대청으로 불어든다 막혔다가 통과를 하니 공기가 속도를 더해 風速이
생기니 대청의공기는 빠르게 유통해 그런공기의 한가닥이 대청의 삼각형 천장으로 불어
오른다 피라미드의 각추형 처럼생긴 천장을 휘감은 바람기가 대청 마루로 쏟아져 충진된 氣가 대청에 坐起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서니 여름에 탈진하였던 기운에 생동감이 자극을 한다 過夏하는 보약을 따로 먹지 않아도 그만한 기운이면 거뜬하게 여름을 이겨낼수
있게된다
복날에 뜨끈한 국물의 음식을 먹는다 以熱治熱의 처방인데 시원한 토방이나 마루깐 널찍한 대청에서 식구들이 모여 앉아 즐겁게 먹으면 여름감기 한번 앓지않고 잘도 삼복더위를 넘긴다 대청은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발달된 구조여서 매우 개방적이다 그개방성이 구들과 연합하여 한옥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채택되어 대청앞쪽은 거의 개방된 구조로 남겨둔다 대청은 그래서 큰나무 아래정자나 다락집이나 원두막 만큼이나 시원하게 냉방의
기능을 발휘한다 열대아의 괴로움을 하소연 하는 현대인들에게 대청 만들고 처마를깊게 구조하라고 권하고 싶은것은 기름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 형편에 종일 낸방하는라 그비싼 기름을 소비하지 않아도 여름을 무던히 지낼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첫댓글 네 올여름은 시원하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