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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9일 오늘의 역사
2024년 영월 분덕재동굴, 천연기념물 지정
터널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돼 자연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강원 영월의 분덕재동굴이 천연기념물이 됐다. 분덕재동굴은 연장 길이가 약 1천810m에 달하는 석회암동굴이다. 2020년 영월읍과 북면 사이의 분덕재 터널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됐다.
국내에서 조사한 석회암동굴 중에서는 3번째로 큰 규모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굴 안에는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만들어진 종유관을 비롯해 동굴 바닥에서 만들어진 석순, 돌기둥 형태의 석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하고있다.
2023년 전남 신안에서 육식·초식공룡알 화석 동시 발견
2009년 육식 공룡알 둥지가 발견된 전남 신안군 해안지역에서 초식공룡알 화석이 추가 발견됐다.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의 알 화석이 한 곳에서 발견된 것은 이례적인 사례이다
전남 신안군 압해면 내태도 해안가(압해대교 신안군 초입부) 일대를 목포자연사박물관 측과 공동현장 조사하던 중 공룡알 화석 등이 새로 발견됐다.
새롭게 발견된 공룡알 화석은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4개의 알과 100여 개의 공룡알 파편들이고, 일부 뼈 화석도 나왔다.
뼈 화석은 2개의 큰 암석 덩어리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들 화석 일부는 뼈 내부가 비어있는 형태로 발견돼 육식공룡 또는 익룡의 뼈일 가능성이 있다.
2020년 서울고법 이명박 전 대통령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원 선고, 법정구속,
2017년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 박송의 명창 세상 떠남(90세)
2011년 스마트폰 제작 '파란만장', 베를린영화제 단편경쟁부문 금곰상
박찬욱 박찬경 형제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파란만장’이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인 금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일 저녁(현지시간)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거행된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26편의 단편영화와 경쟁을 벌인 끝에 ‘파란만장’이 단편경쟁 부문 최고상인 금곰상을, 양효주 감독의 ‘부서진 밤’이 심사위원상인 은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파란만장’은 낚시터에서 묘령의 여인을 만나게 된 남자의 이야기로 한국의 무속신앙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담은 영화. 오광록과 이정현이 주연을 맡은 ‘파란만장’은 100%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해 화제를 모았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두 번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7년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던 박찬욱 감독은 당시 장편 부문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장편 경쟁 부문에 아시아영화 중 유일하게 진출했던 현빈 임수정 주연의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수상에 실패했다. 장편 경쟁부문 최고상인 금곰상은 이란 영화 ‘나데르와 시민, 별거’가 차지했다.
2009년 클린턴 미 국무장관 방한
2008년 카스트로 쿠바 최고 지도자, 전격 사임
2008년 2월 19일(현지시간) 쿠바의 최고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Castro·81)가 성명에서 “육체적 감당이 힘든 상황에서 중책을 맡는 것은 양심에 반대된다”며 전격 사퇴했다.
카스트로의 철권 통치는 49년 전 쿠바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부유한 농장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바나 대학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쿠바인들의 궁핍한 생활을 바꾸기 위해 ‘좌파 혁명가’로 변신했다. 1953년 미국의 지지를 받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Batista)를 축출하기 위해 10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군 부대를 공격했다가 체포됐으며 1955년 특사로 풀려났다.
멕시코로 망명한 그는 1956년 11월 25일 새벽 동생 라울(Raul)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자 체 게바라(Guevara) 등과 힘을 모아 82명이 탄 선박 ‘그란마 호’를 타고 출항, 일주일 뒤 쿠바 해안에 상륙해 동부 산악지대에 거점을 마련했다. 이후 1959년 1월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기까지 혁명적 이념들로 쿠바인들을 열광시켰다. 총리에 오른 카스트로는 외국자본 몰수와 토지 분배 등의 개혁을 단행해 나갔다.
미국은 카스트로 혁명을 인정한 첫 번째 국가였다. 그러나 1961년 4월 16일 공산혁명을 선언하면서 미국과 등을 돌렸고, 하루 뒤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쿠바의 피그만(Bay of Pig)에 침입한 미국 내 쿠바 망명인사들의 반(反)혁명군은 카스트로 정부에 격퇴됐다. 쿠바는 냉전(冷戰)의 최전선으로 변했고, 1962년 10월에는 소련의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다가 미국과 소련 간에 핵전쟁 위기까지 초래했다.
이후 쿠바 경제는 미국의 고사(枯死) 작전에 시달렸고, 냉전이 붕괴된 뒤 소련이 쿠바의 주요 수출품목인 설탕 수입을 중단하면서 쿠바는 완전히 고립됐다. 생활고를 못 이긴 쿠바인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졌고, 1993년엔 카스트로의 친딸인 알리나 페르난데스 마저 미국에 망명했다.
2006년 7월 장출혈 등 증상으로 쓰러진 카스트로는 국방장관인 동생 라울에게 한시적으로 권력을 넘겼고 이후 잇달아 병상 성명을 공개하며 사망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지만, 결국 이날 체력적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사임을 결정했다.
한편 미국 CIA는 600차례 이상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인도 열차에 폭탄테러
2007년 2월 19일 인도와 파키스탄 간 평화 정착 노력을 상징하는 양국 간 운행 열차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해, 최소 65명이 불에 타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사고는 19일 오전 1시 50분쯤(현지시각) 인도 하르야나주 드와나역 근처에서 발생했다. 승객 610명을 싣고 인도 뉴델리를 출발해 파키스탄 라호르로 향하던 ‘삼자우타 익스프레스’ 열차가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힌두스탄 타임스는 객차 2개가 완전히 불에 타 최소 65명이 사망하고 수십여 명이 부상했으며, 이 중 20여명은 중태라고 보도했다.
인도 경찰은 불이 나지 않은 객차 좌석 아래에서 터지지 않은 조악한 폭발물 세 개와 휘발유병 2개를 발견했으며, 이번 열차 화재가 테러에 의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스리프라카시 자이스왈 인도 내무차관은 “발견된 폭발물은 강력하지 않고, 화재를 유발할 목적으로 제조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인도 내무부 관계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평화협상을 방해하려는 파괴행위”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열차 화재는 20일 파키스탄의 후르시드 카수리 외무장관이 뉴델리에 도착해 양국 간 신뢰 구축을 위한 대책 마련에 합의할 예정인 것을 고려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정기영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장을 우주인 전담 의사로 위촉
2007년 교원평가 올해 506개교서 시범운영 발표
2003년 이란 군용기 이란 케르만 인근에 추락, 302명 전원 사망
이란 군용 항공기가 2003년2월19일 오후 이란 중부 도시 케르만 인근에서 기상 악화를 보고한 뒤 추락, 탑승자 302명이 전원 사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이란 관영 IRNA 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사고기에는 이란의 정예 혁명수비대 장병 284명과 승무원 18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사고 규모면에서 이란의 역대 항공기 사고 중 최대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항공기가 추락한 지점은 이란의 중부 도시 케르만에서 80㎞ 떨어진 샤흐다드 인근으로, 사고 항공기는 이날 파키스탄 접경 지역인 자히단을 출발해 케르만으로 가던 중이었다.
테헤란 국영TV는 익명의 관료의 말을 인용, 희생 장병들이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중요한 임무’ 를 수행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고 보도했으나 테러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사고기는 러시아제 일류신 항공기로 알려졌다. 구 소련에서 1976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일류신 Il-86 항공기는 최대 350명까지 승객을 태울 수 있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란혁명 직후 창설된 이란 최고 지도자의 친위 부대로, 병력 12만명이 정규군으로부터 독립된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2002년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후 첫 방한, 도라산역 방문
한·중·일 동북아 3개국 순방에 나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2월 19일 오후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 공군1호기 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취임 후 첫 방한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1시간35분 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문제가 대화를 통해 조속히 해결되는 것이 긴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양국이 공동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으며, 북한에 대해 조속히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김 대통령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회견이 끝난 뒤 이날 오후 경의선 남측 종착역인 도라산역을 방문, 경의선 철도연결 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각각 연설을 통해 대북대화 의지를 밝히고, 북측의 호응을 거듭 촉구했다.
2001년 영국 잉글랜드 브렌트우드 도살장에서 돼지 구제역 발생
2001년 프랑스의 샹송가스 샤를 트레네사망
‘샹송의 태양왕’ ‘노래하는 광인’ 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 그를 빼고는 샹송을 얘기할 수 없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트레네는 ‘언어의 마술사’ 이고 ‘프랑스 웃음의 상징’ 이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바다 특히 고향인 남프랑스 나르본 인근 지중해의 풍광을 서정시처럼 묘사한 노래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1913년 태어난 그는 7세때 최초의 샹송을 작곡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많았다. 젊은 시절 장 콕토 등과 어울리며 시를 발표하는가 하면 소설도 썼다. 그러나 그의 천부적인 목소리는 그로하여금 가수의 길을 걷게 한다. 1933년 피아노 연주자 에스와 콤비를 이루며 데뷔한 그는 1938년 ‘붐(Boum)’ 으로 그해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음했다. 60년이 넘는 가수생활 기간 중 1천여곡의 샹송을 직접 작곡하고 노래했다.
사망 전년까지도 콘서트를 열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팬들을 만났던 트레네도 이날의 죽음으로 이제 샹송의 전설이 됐다. 대표노래로는 ‘라 메르’ ‘시인의 혼’ ‘길모퉁이’ ‘캐나다 여행’ 등이 있다.
1999년 김병현 선수, 계약금(27억원)받고 MLB 애리조나다이아몬드백스 입단
김병현(20.성균관대 2년)선수가 미국에 진출한 한국선수 중 최고액인 계약금 225만달러(약 27억원)를 받고 미국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다. 김병현의 에이전트는 1999년 2월 19일 다이아몬드 백스 사무실에서 이같은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제까지 메이저리그 최고 계약금은 1997년 뉴욕 메츠에 입단한 서재응의 135만달러였으며, LA다저스 박찬호(1994년 입단)는 120만달러를 받았었다. 광주일고 2학년때인 1995년 청룡기 우승을 이끌면서 MVP를 차지한 바 있는 김병현은 150㎞에 육박하는 직구와 각도 큰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국내에서보다 국제무대에서 위력을 떨쳐왔다.
1998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 쿠바전에서 인상적인 호투를 했고, 12월 방콕아시안게임 중국전에서는 8타자 연속삼진 등 6이닝 퍼펙트 피칭을 하기도 했다.
1997년 중국 등소평 사망
개혁, 개방을 통해 `잠든 대륙` 중국을 깨워낸 등소평.
중국의 막후 실력자 등소평이 1997년 2월 19일 향년 93세로 사망함으로써 모택동 화국봉에 이은 세번째 최고지도자 `부도옹`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1978년 3차 중국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부터 시작된 `등소평시대`는 개방-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나 경제개혁은 추진하면서도 정치개혁은 외면, 과감한 정치개혁을 추진한 `고르바초프 바람`에 밀려 한때는 인기를 잃기도 했다.
등은 사천성에서 태어나 14살 때인 1918년 프랑스로 유학해 20년대 초반에 파리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발을 담그면서 혁명의 역정을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중산대학에서 공부하고 1929년 귀국한 등은 공산당원으로 맹활약, 대장정 초기인 1934년에 이미 당중앙비서장이 되어있었다. 팔로군 정치위원을 거쳐 1956년 중공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그러나 국가주석 유소기와 함께 경제발전을 위해 물질적 보상제도를 채택하고 엘리트를 양성하자는 실용주의 노선을 취했던 그는 1966년 문화대혁명의 회오리속에서 홍위병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실각했다.
1973년 주은래 총리의 추천으로 복권돼 국무원 부총리가 됐지만 1976년 주은래 사후 문화대혁명을 주도하던 이른바 4인방에 의해 다시 권력에서 밀려났다. 그해 9월 모택동이 사망하고 화국봉이 4인방을 제거하자 재기해 `실사구시`의 논법으로 중국 최고지도자 자리를 차지했다.
1997년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9개국을 잇는 아태해저광케이블(APCN) 개통
1993년 아이티 여객선 침몰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은 1991년 12월 최종 합의되고 1992년 2월19일에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공식 발효됐다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합의에 따라 세 차례의 대표접촉을 통해 공동 문안을 작성, 양측 총리 서명을 거친 다음 이날 평양에서 상위개념을 갖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공식 발효된 것이다.
한민족 공동번영과 남북 공존이 전제된 남북기본합의서는 화해, 불가침, 교류, 협력 등 3개 부문에 대해 남북이 합의한 것으로 이 기본합의서 정신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금지하며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는 남북 쌍방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7천만 동포의 염원과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플루토늄 추출을 가속화하는 등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착수함으로써 비핵화 동동선언은 물론 남북 기본합의서도 핵개발 음모를 감추기 위한 유치한 기만전술이고 전형적인 위장평화전술 이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992년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화해와 불가침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1985년 노신영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83년 국세청, 36개 특정지역 고시
1982년 일본, 미국에 1백억달러 차관 제의
1981년 호남선 복선공사 기공
1981년 한전, 전남 영광군에 원전 7,8호기 기공
1981년 조선초(1402)에 제작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일본서 발견
1979년 한국-코모로 국교 수립
1977년 트램펄린 선수권 대회
1977년 증권감독원 개원
증권감독원 및 증권관리위원회가 1977년 2월 19일 김용환 재무장관 등 관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족됐다. 김 장관은 이날 "증권관리위원회와 감독원의 발족은 자본시장 발전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자본시장 운영에서 질적인 개선과 우량주식공급확대에 중점을 둔 기업공개시책을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이날 업무를 시작한 증권감독원은 증권관리위원회의 지시감독을 받아 유가증권의 발행을 촉진하고 그 관리와 거래의 공정을 기하며 증권 관계기관의 감독과 검사를 하게 됐다.
그밖에 1. 증권감독원이 담당하는 업무는 유가증권의 발행 및 거래에 관한 계획의 수렴과 집행, 2. 유가증권의 등록 및 신고서의 심사, 효력의 지정, 3. 상장법인의 관리와 증권관계기관의 검사, 4. 등록법인과 상장법인의 기업분석 및 기업내용의 공시, 장외거래의 감독, 5. 정부대행 또는 정부 위탁업무나 공인회계사 감사보고서의 분석과 심리 등이다.
1970년 국토통일원, 통일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
1968년 런던교 해체
1965년 베트남 람반할 장군 쿠데타(4차) 실패. 해외도주
1965년 시이나 일본 외상 내한 반대 데모
1958년 미국 국무성, 주한미군 불철수 거듭 다짐
1957년 영국-그리스- 터키, 키프로스협정
키프로스는 그리스계와 터키계 2개 민족으로 형성된 1개 국가로 국민들의 반목은 이미 고질화된 상태의 국가였다. 분리를 원하는 터키계 국민들에 비해 그리스계는 그리스와의 병합을 갈망해 왔다. 그리스계 국민수는 8대 1로 터키계를 압도하고 있었다.
섬을 둘러싼 그리스·터키의 대립으로 양국간의 감정이 점점 격화되자 서방국가 반공군사동맹의 분열을 두려워한 영국과 미국이 중재에 나서, 1959년 2월 마침내 취리히에서 양국 수뇌의 비밀회담이 실현됐다.
뒤이어 양국에 영국·미국 대표를 포함한 회의가 2월 19일 런던에서 개최되어, 런던 협정으로 불리는 키프로스 독립협정이 성립됐다. 이 협정으로 1960년 8월 키프로스는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12월 14일에는 마카리오스 주교가 터키계 경쟁상대를 물리치고 키프로스 대통령에 선출됐다.
1955년 동남아조약기구(SEATO) 발족
1945년 미군, 일본 이오지마(硫黃島)에 상륙
일본 도쿄 남쪽 약 1200km 지점에 위치한 오가사와라(小笠原) 열도의 화산섬 이오지마(硫黃島). 태평양전쟁이 종전으로 치닫던 1945년 2월19일, 미 함대의 맹렬한 함포사격과 함께 미 해병대가 상륙했다. 4일간의 공방전이 지나고 태평양전쟁 중에서도 최악의 날로 기록된 2월23일, 산의 모습을 바꿀 정도의 맹폭으로 마침내 산 정상 스리바치산(摺鉢山)이 함락됐다.
일본군은 거의 90%에 가까운 1만 9,900여명이 옥쇄했고, 미군도 6,800여명이나 전사했다. 이오지마 함락으로 일본은 개전후 처음, 식민지가 아닌 자신의 영토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해야 했지만 태평양전쟁은 비로소 종전으로 물꼬를 틀었다.
성조기를 스리바치산 정상에 힘있게 꽂는 6인 용사들의 모습(사진)이 AP를 타고 미 언론에 보도되자 감동과 환희의 물결이 미국 전역에 퍼져갔다. 7번째 전시 국채를 발행한 미 정부도 국채 판매를 위해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장면보다 영웅적인 화면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진은 기자에게 퓰리쳐상을 안겨주며 우표와 아이스크림 등에도 사용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진짜 영웅이 아니었다. 함락순간을 놓친 사진기자 로젠탈스가 뒤늦게 산에 올라 연출한 사진임이 밝혀졌다.
1898년 토머스 에디슨, 축음기 특허 획득
1897년 한성은행(조흥은행 전신) 발족
1896년 유진덕 의병장 철원에서 항일봉기
1885년 광혜원 설립
1861년 러시아, 농노해방 선언
1771년 샤를 메시에가 은하를 발견하여 M102로 목록에 넣음. 그러나 진위여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
1403년 동활자 제조(태종3년)
1136년 묘청의 난 진압
나라 안으로는 이자겸의 난으로 궁전이 불타 민심이 흉흉하고 나라 밖으로는 강성한 여진족이 금(金)을 세워 고려에 압력을 가하고 있던 고려 17대 왕 인종 때. 승려 묘청이 인종에게 접근, 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은 왕기(王氣)가 다했으니 도읍을 서경(평양)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솔깃한 인종이 서경에 대화궁을 짓게 하는 등 천도를 모색하자 반대세력이 들고 일어서 묘청은 서경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방색을 부각시킨다. 설상가상으로 대화궁에 벼락이 떨어지는 등 불길한 조짐이 보이자 인종은 천도계획을 중단시킨다. 묘청은 초조해졌다.
1135년 나라 이름을 대위국(大爲國), 연호를 천개(天開)로 정하고 서경에서 반역을 일으켰다.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이 서경에 당도하자 반란군은 자중지란을 일으켜 묘청은 부하인 조광에게 죽임을 당하고, 조광은 1년여를 버텼으나 식량부족과 사기저하로 정부군에 성을 빼앗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136년 2월19일이었다.
단재 신채호는 묘청이 승리했다면 조선사가 독립적ㆍ진취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며 이 사건을 ‘일천년래 제일대사건(一千年來 第一大事件)’으로 평가했다.
607년 교황 보니파시오 3세, 66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