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피다
지난 소한엔 양이 제법 않은 비가 내렸고 어제가 대한으로 올겨울은 큰 추위가 없이 넘어간다. 보름 뒤 따라올 입춘이 24절기에서 가장 앞자리 위치한다. 수목으로는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제철을 맞아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해는 꽃소식이 예년보다 빨리 올 듯하다. 아마도 일주일이나 열흘은 빠르지 싶다. 어디선가 매화망울이 부풀 테고 벚나무 가지 꽃눈도 기지개를 켜고 있을 테다.
어제는 거제 근무지 다녀온 일월 셋째 화요일이다. 새내기 신입생 예비소집이라 업무 부서 곁에서 일을 돕고 연말정산을 하고 창원으로 복귀했다. 같이 방학을 맞은 친구와 후배가 반송시장 주점에서 얼굴을 보자고 해 두어 시간 자리를 같이 했다. 밤이 늦은 시간인데 아파트단지 인근 상가로 차수를 변경해 한 자리 더 옮겨 갈 때 종종걸음으로 귀가했다. 나는 일찍 잠드는 유형이다.
다른 이웃들은 아침 출근 시간대에 나도 도시락을 싼 자연 학교 등굣길로 시내를 관통해 마산의료원 앞으로 나갔다. 구산과 삼진 방면으로 가는 녹색버스를 타려고 길목을 지켰다. 저도 연륙교로 가는 61번 버스가 와 탔다. 가포를 거쳐 덕동을 지난 유산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마을 어귀에선 동네 주민들이 빗자루와 마대자루를 들고 나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설맞이 청소인 듯했다.
유산에서 군령으로 넘는 고갯마루는 국도 5호선이 로봇랜드로 건너가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석곡 나들목부터 로봇랜드까지는 개통이 되었으나 우산교차로에서 접속도로 개통이 늦어졌다. 도로가 새로 뚫리는 옥동마을 뒤 야산에서 가야시대 고분군 유물이 다수 발굴되어 공사에 차질이 왔다. 본래 국도 5호선은 마산에서 시작해 중부 내륙으로 올라가는데 근래 거제까지 연장되었다.
고개를 넘으니 야산에 에워싼 사이로 진동만 바다가 살짝 드러났다. 비탈을 내려서니 석곡으로 가는 길에 이어 해양드라마 세트장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군령마을 포구에 이르니 바다에서 작업을 마친 어선이 한 척 선착장으로 들어와 기다려봤다. 한 젊은 어부가 시동을 끄고 어선을 정박시켰다. 양식장에서 갓 건거올린 토실하게 자란 굴과 오만둥이를 부두로 들어올렸다.
군령 포구에서 마전마을 입구로 가니 그림 같은 학교가 나왔다. 구산초등학교 구서분교장이었다. 폐교되지 않고 병설유치원을 포함해 분교장으로 격하되어 맥을 잇고 있음이 신기했다. 비탈진 산모롱이를 돌아가다 볕이 바른 자리서 배낭을 풀어 도시락을 비웠다. 다시 길을 나서니 행정구역이 진동면으로 바뀐 도만마을이었다. 거기도 마을 앞 바닷가엔 횟집과 찻집이 몇 채 보였다.
도만마을에서 구부러진 1002번 지방도를 따라 걸으니 다구리가 나왔다. 다구 뒷산에 제말 장군 묘가 있다. 제말은 임진왜란 때 조카 홍록과 함께 왜적과 맞서 큰 전공을 세우고 성주에서 장렬히 순사했다. 임란 직후 혼란기에 묘역을 만들지 못하고 혼령이 떠돌다가 그가 죽은 뒤 이백 년 뒤 정조의 명으로 다구리에 안치해 영면에 들었다. 제말 장군은 진동과 이웃인 고성 출신이다.
제말 장군 묘와 가까운 찻길 아래 묵정밭에 매화가 여러 그루 자랐다. 그 가운데 두 그루에 화사한 기운이 감돌아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홍매화도 백매화도 아닌 분홍매화였다. 올겨울이 예년에 비해 무척 따뜻했음을 실감했다. 우리 지역에서 아무리 일찍 피는 매화일지라도 입춘이 지난 우수경칩이 되어야 보는데 한 달은 당겨 피는 매화꽃이었다.
다구리 앞 해안은 작은 섬을 안산처럼 낀 포구가 원호를 그린 마을이었다. 바다 저편 먼 곳은 거제로 낯이 익은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해안을 따라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주도마을이었다. 주도는 광암해수욕장과 가까운 어촌으로 모텔과 횟집들이 이어졌다. 자동차들이 많이 다녀 찻길 혼잡했다. 마침 명주에서 돌아 나오는 64번 녹색버스가 와 탔더니 진동을 거쳐 금방 마산에 닿았다. 20.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