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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
구 자 훈
막 2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서서 내 자리로 향해 가려는데 교감이 불렀다. 들고 있던 송수화기를 더 들어 올려 보이며 전화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출석부를 출석부 함에 꽂아놓고 교감 앞으로 가니 교감이 웃음과 함께 송수화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고운 여자 목소립니다.”
굳이 이 말을 덧붙인 까닭이 무엇일까? 목소리 고운 여자의 전화를 받는 것이 부럽기라도 하단 말인가. 아니면 자기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교감이 건네주는 송수화기를 받아들고
“여보세요.”
했다. 건조한 목소리로. 전화한 사람이 학부모일 수도 있다. 미리부터 상냥하게 받을 이유가 없다. 상담차 만나자고 하면 반갑지 않다. 굳이 학교까지 올 필요 없이 전화로 상담해도 된다고 해도 부득부득 찾아오겠다는 학부모도 있다. 촌지라도 내밀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촌지나 챙기는 교사로 보이는 게 기분 나빠서다. 며칠 전에는 내 반 학생의 한 어머니가, 굳이 찾아올 필요 없고,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하라고 했더니 고등학교 교사는 그렇게 도도하냐고 했다. 왜 안 만나주려는 거냐며. 어이가 없었지만 그럴 리가 있느냐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디 고등학교 교사라서 그러는 것인가. 나 하나를 보고 전체 고등학교 교사로 일반화하다니.
“저, 천성산 정상에서 선생님의 물 한 모금 얻어 마신 여자입니다. 그 물 한 모금이 저한테는 7년 대한의 해갈이었습니다.”
아, 그 여자, 중얼거려졌고, 픽 웃음이 나왔다.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여자라고 할 건 뭐지, 싶었다. 그렇게 말한 어떤 의도라도 있는 건가. 나에 관한 조사라도 한 것인가. 내 이름과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어떻게 안 것일까. 알려고 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때 나의 일행이 여럿 있었으니까. 일행 중에는 여자도 교사가 한 사람, 서무실 직원 한 사람이 동행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행 일곱 명 중에.
“그래서요?”
아, 예, 할 수도 있었는데 불쑥 튀어 나간 말이 반문이었다. 시비조로 들렸는지도 모른다. 신사도가 아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이러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친절하게까지는 아니라도 따지듯이 반문하다니. 혹시 그에게 반감이라도 있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예?”
놀라는 목소리였다. 퉁명스럽게 들렸던 모양이다. 예상 밖인 모양이었다. 내가 잠자코 있으니 그가 말을 이었다.
“아, 저, 그때 약속한 물값 못 드렸잖아요.”
약속한 물값이면? 키스? 그걸 기어코 주겠다고? 혹시 내가 공개된 장소라서 키스를 못 했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키스가 가능한 장소에서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처음 만난 여자에게 키스할 위인으로 본단 말인가.
“상관없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애초에 제가 제시한 것을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그게 싫으시면 다른 걸로 대체하겠습니다. 대안을 제시해 주셔도 좋습니다.”
“괜찮다니까요. 그깟 물….”
“그깟 물이라니요. 모든 사물의 효용 가치는 불변이 아니잖습니까? 환경이나 용도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지지 않습니까? 제가 안 괜찮아서 그럽니다.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고, 물 한 모금이지만 생명수였는데.”
“무슨 그렇게 심한 과장을….”
“과장이라뇨. 절대 과장 아닙니다. 제가 선생님 학교 앞 월하노인으로 가겠습니다. 시간 많이 안 달라겠습니다.”
월하노인은 다방 이름이다. 주인이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상호다. 월하노인은 전설적인 중매인이다. 자기네 다방에서 짝을 이루라는 뜻으로 그렇게 작명한 것일까. 아니면 맞선 자리로 자기네 다방을 이용하라는 의도일까. 고객 확보 수단으로. 이름 지은 사람이 월하노인 전설을 아는 사람인 모양이다.
“좋습니다. 퇴근길에 들르지요. 여섯 시 10분이면 되겠습니까?”
“예. 좋아요.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밥을 사겠다고. 술도 사겠다고. 내가 술을 즐겨 마시는 줄을 아는지 그냥 해보는 소리인지.
내 자리로 가니, 내가 기획을 맡은 부서의 주임이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내가 포기를 해야 하네요. 공 기획이 여자 만나러 간다는데 내가 어찌 양보하지 않을 수 있겠소.”
내가 전화 받는 걸 처음부터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자리는 내 자리의 오른쪽에 붙어 있다. 애주가인 주임은 퇴근하면 늘 나에게 대작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퇴근길에 같이 술 마시자는 다른 동료의 요청이 없으면 주임의 청을 들어주었다. 술값은 대개 교대로 치렀다.
교직원 등산회에서 천성산 등산을 한 것은 3일 전 일요일이었다.
“누구 저한테 물 한 모금 제공해 주실 분 안 계십니까?”
천성산 정상에서 땀을 들이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나를 향해 말했다. 4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반듯한, 인상이 참 좋은 젊은 아가씨였다. 목이 몹시 타서 절박해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지 몰랐지만. 내 수통에는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것을 알고 ‘누구’라고 했지만 나를 지목하고 한 말이었을까? 그때 그곳에는 나의 일행을 비롯해 등산객이 20여 명이 있었으나 물을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앞길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물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해도 선뜻 내놓기가 어려웠을까? 목이 타면 참기 어렵다. 나도 목이 몹시 타서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지리산 산행 때였다. 3박 4일 일정의 셋째 날 천황봉에서 치밭목으로 향해서 이동할 때였다. 나는 먼저 나서는 편이 아니라 물을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교사가 질문을 하며 답해 볼 사람 손 들라고 할 때도 한 사람이라도 손드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지 않았다. 손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그때야 들었다. 물을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고, 나에게 당장 필요한 물이 아니니 내가 주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수통은 내원사에서 물을 가득 채웠는데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여러 번 마셔서 물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산행 모임의 총무가 프린트해 나누어준 등산 코스 약도에 의하면 물은 미타암에서 다시 채울 수 있다. 실컷 마실 수도 있고.
“물 드리면 무슨 보답하실 건가요?”
내가 장난삼아 말했다. 여자가 목이 몹시 마른 사람 같지 않게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키스 한 번 하세요.”
물 한 모금에 키스? 뭐? 참 대단한, 아니, 굉장히 희한한 여자네. 물 한 모금에 침 한 방울? 황당, 엉뚱, 경악, 기막힘…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할까. 나는 당신 같은 여자에겐 물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검게 물들인 군용 탄띠에 매달린, 역시 군용인 수통을 뽑아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여자는 꽤 미인이었다. 미인이라서였을까. 낯이 익은 듯한 얼굴이었다. 몸매도 참 아름다웠다. 피부도 곱고 탄력이 있어 보였다. 머릿결도 곱고 윤이 났다. 눈매도 시원하고, 고왔다. 입술도 깨물고 싶을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 나이는 스물두세 살쯤으로 보였다. 자기 정도면 남자들이 키스하고 싶은 여자 아니겠느냐는 자신감에서 나온 발화였을까. 그러나 키스를 물 한 모금 보답에 내놓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 아닌가. 키스 한 번 하라는 말이 놀라워서인지 그 여자를 바라보는 눈이 많았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그러나 여자는 자기 제안이 참 그럴듯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듯이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수통을 건네받은 여자는 수통을 흔들어보고 말했다.
“물이 조금밖에 없어서 제가 마시면 없어지겠는데 괜찮으십니까?”
“아, 예, 괜찮습니다. 다 드십시오.”
아가씨가 물을 마시고 나자 주위 사람들이 나를 주시했다. 내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나 보다. 내가 취하는 행동도 궁금했지만 내가 키스하겠다고 하면 아가씨가 어떻게 나올지 그게 더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나도 궁금했다. 내가 만약 키스하려고 하면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가 키스하려다가 중지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도 궁금했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화장실 나올 때가 같을까요? 남의 말을 함부로 믿다니 참 순진하시군요.”
할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말없이 그가 건네주는 수통을 받아 수통 주머니에 꽂았다. 그리고 그를 잊었다.
월하노인에 들어서니 그가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한복을 입은 한 여자가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있는 모습이 시선을 확 끌었다. 약속 시각이 됐는데 만남을 청한 사람이 시간을 안 지키다니, 싶었다. 빈자리에 가 앉았다. 한복 여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였다. 내가 한복 차림에 의아해한 것을 느꼈는지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강한 인상을 드리려고요.”
그래서 짐짓 한복을 입었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새로 맞췄습니다.”
“아, 예.”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려고 한복을 새로 맞추어 입고 나왔다는 것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으나 싫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준 것도 괜찮았다. 물 한 모금의 보답을 하기 위해 이렇게 새로 맞춘 한복을 입고 나온 그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틀림없었다.
다방에서 식당으로 옮겨 밥을 먹으며 술잔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한참 시간을 보낸 뒤 장난삼아 물었다.
“제가 그때 약속을 지키라고 했으면, 키스하겠다고 덤볐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궁금하기도 했고, 여자에게 호감을 좀 느낀 탓도 있었을 것이다. 덤볐다는 표현을 쓴 것은 짐짓 그렇게 한 것이었다.
“했겠죠.”
그의 대답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고 아주 명쾌했다.
“예? 정말요?”
“그럼요. 키스할 의향이 있었다면, 호감이 있어서였을 테니까요.”
“그렇게 되나요? 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런 질문을 했겠습니까?”
“만약 했다면요?”
“그때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다른 걸로 제시했겠죠. 제가 약수터의 쪽박도 아니고. 어쩌면 열 배쯤 갚겠다 하지 않았을까요?”
약수터의 쪽박, 재미있는 비유다 싶었다.
“열 배면 물 열 모금? 코미디네요.”
“어쨌든 열 배니까 되로 받고 말로 주기 아닙니까?”
“혹시 보답 정도에 따라 물을 얻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제안을 ….”
“쉽지 않은 성취를 하려면 용기나 모험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제가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한 것은 물 한 모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게 무엇이었느냐고는 묻지 않고
“아, 예.”
했다.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
“물 한 모금 청한 사람이 제가 아니고 남자였거나 못생긴 여자였더라도 물을 제공하겠다고 하셨을지. 물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일정은 많이 남았는데….”
나는 쿡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잘생겼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어서다. 웬만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 아닌가.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드러내기 어려운 말 아닌가. 이렇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 내숭 떠는 것보다 나은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얼른 대답하지 않으니까 그가 다시 말했다.
“대답 못 하시는 건가요?”
“아마 … 글쎄요?”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지 궁금했다.
“말씀 안 하셔도 알겠습니다.”
“…….”
“아마로 이어질 말, 뻔하지 않습니까?”
“대답은 생략해도 좋겠군요. 좀 더 구체적으로 궁금증을 풀고 싶습니다. 아까 이미 한 질문입니다만 물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이 제가 아니고 다른 남자였고, 그가 어떤 보상을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도 같은 대답을 했을까요?”
“아까, 받은 것의 열 배쯤이라고 대답했는데 다시 묻는 까닭은 왜 그런 놀라운 제안을 했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추리,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머지않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추리, 상상의 바탕이 될 사실이 속속 드러날 테니까요.”
만남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참 성취하고자 한 것이 물 한 모금이 아니었다고 했지.
여자가 밥값을 내려는 것을 말리고 내가 냈다. 함께 먹은 밥이나 술값을 여자한테 내게 하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내겠다고 우기지 않았다. 아니,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다시 만날 기회를 주시는 거네요. 제 예상이 맞았네요. 선생님이 궁금해하시는 것을 머지않아 아시게 될 것이라고 했죠. 또 만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말이죠.”
다시 만나자고 할 수 있는 핑계가 생겼다는 것이겠다.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음 만났을 때는 그가 밥값 내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으나 일부러 그렇게 했다. 또 만나자고 할지 만남을 끝낼지 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할 뜻은 없었다.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나는 그 여자의 연락처나 신상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아 여자가 연락하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었으나 그의 제안으로 우리의 만남은 이어졌다. 산에도 같이 가게 되었다. 근교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씩 먼 산으로도 갔다. 산에 따라 산악회를 바꾸어 가며 산악회 1일 회원으로 따라다니며 고흥반도의 팔영산, 영양의 일월산, 광주의 무등산, 무주의 덕유산까지도 갔다. 산악회 1일 회원으로 무박 2일 설악산 산행도 했다. 공룡능선 코스였다. 그 산행에서는 나의 체력이 좋다는 것을 그가 보았고 그의 체력이 좋다는 것을 내가 확인했다.
“아, 목이 마르네. 물 한 모금….”
백양산 산행을 마치고 성지곡 수원지 옆길을 걸으며 그를 놀리려고 가끔 했던 말을 또 했다. 그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대꾸했다.
“기분 좋아서 하는 소리죠?”
“그게 그렇게 되나요?”
“우리 만남의 열쇠가 됐으니까요.”
“혹시 그런 파격적인 제안이 역효과를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나는 그때 잠시 물을 줄까 말까 망설였던 일을 상기했다. 물을 줄까 말까 망설인 것은 키스 운운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이 있다는 것을 알린 셈인데 안 준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용렬스러운 일 아닌가. 사내로서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아뇨. 이미 물이 있다는 것을 알렸는데, 보상이 마음에 안 들어 거절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죠. 그건 남자답지 않으니까요. 보상 종류에 따라 수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절박한 사람에게 취할 태도가 아니죠.”
“제가 남자답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 우려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선생님에 관한 정보를 제법 많이 획득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계획된 제안이었습니까?”
“그건 아니죠. 그런, 보상 운운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즉흥 발화?”
“제가 순발력이 좀 있습니다. 사고의 유창성 말입니다.”
“그때 진짜로 목말랐던 것 맞습니까?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요.”
“글쎄요.”
여자는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대답을 기다린다는 눈치를 보였더니 이윽고 그가 말했다.
“눈치채셨군요.”
“제가 그런 보상에는, 물을 제공할 수 없다고 했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아마 무엇이면 되겠느냐고 물었겠죠. 그랬다면 선생님은 물 한 모금의 보상으로 무엇을 요구하셨을 겁니까?”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부터 보상받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가 미인이 아니었다면 보상을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묻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 한 모금 값으로 키스를 제안하셨는데 키스를 그렇게 쉽게 ….”
하십니까, 하고 물으려는 내 말을 부리나케 자르고
“아뇨. 저 아직 키스해본 적 없습니다.”
재빠르게 말했다.
“예?”
키스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여자가 그런 제안을 했다니 어떻게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생애 첫 키스를 처음 만나 물 한 모금 준 남자에게?
그가 화제를 돌렸다.
“한국인으로서의 이상적인 키에 알맞게 벌어진 어깨, 호남형 얼굴에 여자들의 시선을 끌 만한 요소를 다 갖춘 남자, 직업도 안정적이고. 연애 안 해 봤다면 이상하겠죠.”
나의 연애 경험담이 듣고 싶었을까. 연애한 적이 없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을까. 나는 연애해 본 적이 없었다. 나한테 다가온 여자가 몇 있었으나 나의 선택을 못 받고 모두 떠났다. 나의 부모의 극심한 불화를 보며 자란 나는 누구와 부부가 되어 함께 무난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떠나버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훨씬 더 나를 강력하게 끌어당긴 매력이 있었다면 눈 딱 감고 붙들었을까. 첫 번째 여자는 군에 있을 때 편지를 보내온 사람이었는데 2년이나 나를 쫓아다녔고, 만나면 밥도 같이 먹고 영화도 보고 산책도 했다. 그러나 연애는 아니었다. 여자는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그것을 암시하는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손 한 번 잡아보지 않았다. 그 여자가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면 혹시 연애하게 되었을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하자는 대로 내가 따른 것은, 최소한의 예의로 여겼을 뿐이었으니까. 나에게 호감을 보인 여자는 동료 여교사도 몇 있었다. 교사였지만 고등학교 과정인 사범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나에게 호감을 보인 교대 출신도 있었다. 그와는 여러 차례 동료들이 다 퇴근한 교무실에서 캄캄할 때까지 오목을 두기도 했다. 내가 끝내자고 해야 끝이 났다. 나는 혼인 자체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나에게 혼인 공포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잠재의식 속에. 혼자 살려고 딱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나는 연애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고.
“좋아한 남자 많이 있었을 텐데….”
연애 경험도 있었을 테고요, 덧붙이려다 말았다. 주변의 남자들이 빼어난 미인을 못 본 척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싶었다.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나의 연애에 관한 대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연애도 해 봤을 거라고요? 그런 적 없어요. 제가 좀 쌀쌀맞은 데가 있거든요. 냉기를 느낀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냉기라니요?”
“선생님한테야 그걸 보였을 리가 없죠, 당연히.”
그가 내 자취방으로 찾아왔다. 주소를 일러 준 적도 없었고 그가 내 자취방을 방문해 주기를 기대한 적도 없었다. 만약 찾아오겠다고 했으면 극구 말렸을 것이다. 그게 어디 환영할 일인가.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파김치를 가지고 왔다. 어머니한테 배워서 자기가 직접 담근 것이라고 했다.
“제가 파김치 좋아한다는 것 아셨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냐 싶어서, 물어본 것이 쑥스러웠다.
“당연히 알았죠. 안 좋아하실지도 모르는 반찬을 어떻게 가지고 오겠습니까?”
어떻게 알았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제가 선생님에 관해 아는 것이 많다고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저 내숭 떠는 것 싫어해요. 제가 가진 장점을 광고, 아니 자랑하려는 편이죠. 요리 솜씨 한 번 보여 드리고 싶어요. 선생님 주방 좀 빌려도 될까요?”
내 집을 찾아온 것은 요리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자기를 아내로 맞으면 자기의 요리를 평생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도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 같았다. 나를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몰랐다가 나중에 알고 실망하면 그것은 여간 낭패가 아니지 않겠는가. 그가 나를 배우자로 선택하겠다면 나의 약점까지도 다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요리는 참 훌륭했다.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찾아온 목적은 또 있었다. 그가 물었다.
“2년 전 담임한 강정숙 기억나세요?”
“예? 그럼, 강정숙 언니? 처음 봤을 때 낯익은 듯하더라니…. 아, 정숙이 참 예뻤죠.”
당신 참 예쁘다는 소리를 그렇게 한 셈이었다. 이름만 기억나는 게 아니었다. 출석번호가 47번이었다. 44번 반장 박두이, 45번 김하수, 46번 김진경…51번 부반장 장영희 등등. 나는 학급담임을 맡으면 당일 이름을 다 알았고, 한 달쯤이면 출석번호도 다 알 수 있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다.
“선생님, 아직 제 이름도 안 물어보셨어요. 하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연락을 늘 제가 했고, 제 목소리를 잘 알아들으셨으니까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이름 알려드릴 기회를. 그런데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가 없군요. 예, 정숙이 언니 맞아요. 강정옥이고요. 이름이 참 촌스럽죠? 영자나 옥자처럼 ‘자’로 끝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만요.”
“그렇네요.”
촌스럽다는 것을 긍정한 것은 아니고, ‘자’로 끝난 이름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것을 긍정한 것이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가 선생님 뵙고 싶어 하셨죠. 치맛바람은 아니고, 선생님 참 고맙다면서. 그런데 선생님이 안 만나 주려 하셨대요. 하실 말씀 있으면 전화로 하시라면서.”
그런 적이 있었다. 만나고 싶은데 언제 학교로 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굳이 만날 필요 없다고 했고. 그랬더니 부탁드릴 게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고마워서 인사 한 번 드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때 나는 전화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바쁘신데 오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숙이한테 특별히 배려한 것도 없고요. 저는 학생 차별 안 합니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 또 있어요. 아주 오래전 이야긴데. 저의 담임한테 불려가 혼난 이야기를 하셨어요. 담임이 호출을 하니 가슴이 쿵덕거리더래요. 아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엄마를 호출할까 싶었대요. 그런데 담임교사는 대뜸 나무라더래요.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착한데 엄마는 왜 형편없느냐 하더래요. 인사할 줄 모른다고 하면서. 마치 자기가 저를 착하고 공부 잘하고 예쁘게 한 것처럼. 그런데 그 교사, 저한테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요, 어려운 일 저한테 다 시키면서 줄 반장 하나 시켜 주시지 않았어요. 1학년인 그 어린 나에게 은행에 가서 거금을 찾아오라고까지 했어요. 그리고 학년말 통지표에 우를 하나 주었어요. 그것도 제가 아주 잘하는 음악을. 저 웬만한 노래는 한 번 들으며 부를 수 있어요. 음정, 박자 딱딱 잘 맞추고 음색도 고와요. 감정도 잘 표현하고요. 체육을 우로 주었으면 이해했을 수도 있어요. 체육도 수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치맛바람 일으키는 여자 중에는 교사를 세 부류로 분류한다고 해요. 촌지를 꼭 주어야 하는 교사, 촌지 유무나 액수로 학생을 심하게 차별하는 교사, 촌지를 주지 않아도 되는 교사, 어떤 이유로도 학생을 차별하지 않는 교사, 촌지를 주면 안 되는 교사, 무능하거나 나태한 교사가 아니라 촌지를 주면 화를 내는 교사로. 그 밖에도 촌지를 진심으로 주고 싶은, 학생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교사도 있기는 하나 아주 드물대요. 촌지를 쇠죽이나 개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해요. 물려고 하거나 짖어대어 안 줄 수 없는 촌지와 열심히 일하는데 더 열심히 하라고 힘을 북돋우려고 주는 촌지….”
그가, 나를 집으로 찾아온 궁극의 목적은 청혼이었는지 모르겠다.
“저와 혼인해 주십시오. 청혼마저도 제가 하네요.”
“자신 없습니다. 행복하게 해드릴.”
“제가 행복해하면 행복한 거지, 행복을 누가 주는 것인가요?”
“…….”
“얼른 대답하시지 않아도 돼요. 오래는 아니지만 한 열흘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금정산 등산을 둘이서만 한 날이었다. 북문에서 범어사로 내려올 때였다.
“오늘이 제가 기다리겠다고 한 열흘이 꽉 찬 날입니다. 혼인을 안 해 주시려면 아이라도 가지게 해 주십시오. 혼자서도 잘 키우겠습니다. 선생님도 절 사랑하는 건 맞잖아요. 사랑하면서 혼인 안 한다고 사랑의 행위를 주저한다면 사랑이라 할 수 없겠죠.”
그렇다. 나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은 하나의 씨앗이 싹이 터서 움이 나고 자라듯,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자라서 익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를 그렇게 만든 데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나를 믿고 사랑한다는 그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모도 물론 한몫했지만. 혼인하지 않으려면 아이라도 갖게 해 달라니 얼마나 나를 사랑하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데 목이 메었다.
“인물 좋죠. 머리 좋죠. 선생님, 아이큐 156이라는 것도 알아요. 선생님 동기한테 들었죠. 성격 좋죠. 인품 좋죠. 뭐 하나 빠진 게 없잖아요? 직업도 그만하면 안정적이고. 이 세상에 남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나를 이만큼 믿어주는 사람을 마다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좋아요. 우리 혼인합시다. 오늘 하신 말씀 절대 잊지 마십시오.”
“그럼요. 잊을 리가 있나요.”
나는 자신이 불끈 일어나 힘차게 말했다.
“우리 오늘 피로 풀이 목욕은 가족탕에서 합시다.”
“물 한 모금 보상 제안 이후 첫 제안입니다. 첫 제안을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겠죠. 흔쾌히 수락합니다.”
그가 자기 어머니한테 인사하러 가자고 해서 내가 그러자고 했을 때 그가 말했다.
“혹시 어머니가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물으면 괜찮은 대학 아무거나 대세요. 어머니가 학교 많이 따지거든요. 어머니는 이미 우리 혼인을 허락했으니까 다른 문제는 없어요.”
“저, 대학 안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인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중등학교 교원 자격은 고시 검정에 합격하여 취득해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나였다. 부산에 온 것은 대구는 직할시가 아니었고, 부산은 직할시였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더 가고 싶었으나 정부에서 곧 전쟁이 터질 것처럼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6·25 때 한강철교 폭파로 피란할 수 없었던 사람 중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간 젊은이도 많았고 북에서 납치한 저명인사도 많았고, 살기 위해 북에 부역하고 서울이 수복된 후 처벌받은 사례도 많았던 게 생각나서였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에 관해 아는 것이 많다고 했잖아요. 선생님이 대학 안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고등학교 교사라면 으레 대학은 나온 걸로 알죠.”
“저, 거짓말 못 합니다.”
그렇다. 나는 거짓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참말처럼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안 물어보게 해 놓을게요. 스스로 밝히지 않아도 되게요. 침묵만 하고 있으면 되게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제 딸 말 들으니 ㅂ대 사범대학 나왔다니 총각이 공부를 참 잘했나 보네요.”
당황한 딸이 황급히 말했다. 내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잘했지 그럼. 학급 담임교사가 의과대학으로 진학하라고 권했는데 의사가 하기 싫다고 사범대학으로 갔는데.”
나는 그가 말한 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야, 이건, 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을 밝히지 않으면 그것도 거짓말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으로 찝찝했지만. 그가 내 말을 막지 않았다면 나는 사실을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못을 박듯이 말했다. 마치 종결짓듯이.
“이 사람,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야. 더 따질 것 없어. 엄마, 내 판단 믿잖아?”
“그럼, 믿지 그럼.”
그의 어머니는 내가 가지고 간 황남빵을 여러 개 먹었다.
“옛날 맛 그대로네.”
감탄하듯 말하면서. 그가, 경주가 친정인 자기 어머니가 황남빵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해서 일요일인 전날 경주까지 가서 산 것이었다. 그와 같이 가서였다. 황남빵 사기 위해서만 경주까지 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박물관, 포석정을 둘러보기도 했으니까 임도 보고 뽕도 딴 셈이었다.
“어떻게 황남빵을!”
“내가 우리 어머니 황남빵 굉장히 좋아한다고 했지.”
“그렇다고 부산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이가 날 얼마나 사랑하면 경주까지 황남발 사러 갔겠어요? 내가 더 좋아하지만.”
내가, 그가 그때 물을 청했을 때 모른 척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껴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대답일지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를 부부로 결합해준 물 한 모금.
“그때 당신이 물 한 모금 청했을 때 내가 모른 척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왜 대답 안 해?”
“당신 생각은?”
“아마 부부가 안 됐겠지.”
짐짓 한 말이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내가 답을 준 것 같은데 예사로 들었나 보네.”
“몰랐는데.”
역시 일부러 그래본 말이었다.
“내가 의도적이었다 했잖아요.”
“그랬지.”
“그러니까 그 방법이 실패했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거라고요. 당신은 이미 내 포획 대상으로 찍혀 있었으니까요.”
나는 웃기만 했다.
“목표물이 하나라도 도구는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죠. 성공할 때까지.”
“여보, 나 물 한 모금 주시겠어요?”
좀처럼 아내에게 무슨 부탁을 하지 않는 내가 말했다. 마침 아내가 부엌에 있었다. 부엌일을 대충 마치라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묻는 형식으로 말했다. 나는 명령형을 잘 쓰지 않는다.
“무슨 보답 하실 건데요?”
모처럼 부탁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정이 듬뿍 실려 있었다.
“키스면 되겠어요?”
“조금만 더 쓰시죠. 반세기 동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나도 웃고 아내도 웃었다.
첫댓글 섬세한 기억의 재생, 르포 변환- 작가 일기 !
작가 일기?가 아니고 작가 일기!라고요?? 자서전 같은 것? 설마?
잘은 모르겠으나, 진짜로 小說 같은 소설이네요. 부럽습니다. 부산넘
소설이란 주변에서 듣고 보아 온 또는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엮어지나 봅니다. 내용을 보니까.
긴 글을 이 난에 타자를 한 것 같은데 널문니님은 몇 타일까요? 별 게 다 궁금하네요.ㅋ
많은 시간을 소요한 것 같아서 마음이 찡 합니다.
마무리를 멋지게 꾸몄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퇴장합니다. 평화로운 밤 되시길 바랍니다.
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을 복사해서 붙이기 때문에 힘들지 않습니다.
독수리 타법 겨우 면한 정도로 타자 속도 빠르지 않습니다.
8비트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했습니다만.
요즘의 장난감보다도 훨씬 못한 삼성의 첫 컴퓨터 8비트 짜리가 학교에 보급되었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 교실에 컴퓨터를 설치했는데 그때도 수업에 활용한 교사는 저뿐이었습니다. 한참 후 제 옆 자리의 젊은 교사가 활용하더군요.
언젠가 이 소설의 창작 노트라 할까 비화라 할까를 털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경험이 단순하여 늘 소재 빈곤으로 갈증이 심함을 작품을 써야 할 때마다 절감한다는 것을 우선 밝힙니다.
남의 경험 보고 듣기를 열심히 하는 편이라는 것도.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많은 책을 접하면서 어떻게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을까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바쁘신데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