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까지만 해도 뉴질랜드는 새들의 천국이었다. 상위 포식자인 포유류가 없기 때문이었다. 타조처럼 덩치는 크고 날지 못하는 20종 안팎의 새들이 천하태평 땅위를 어슬렁거리며 지천으로 널려있는 먹이를 골라먹었다. 뼈를 기초로 원형을 복원해본 결과 타조 크기의 두 배가 넘는 새도 있었다. 1642년 네덜란드 선장 아벌 타스만이 이끄는 탐험대가 남섬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뉴질랜드는 새들의 지옥으로 급변했다. 사람을 처음 보기 때문에 신기해서 가까이 접근하는 크고 맛있는 새들을 잡아먹기 시작하여 불과 몇 년 사이에 키위를 제외한 ‘날지 못하는 새’들을 모두 멸종시켜버린 것이다. 3종의 키위가 살아남은 이유도 작고 빠르고 맛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몸통이 과일 키위와 비슷하다고 하여 명명된 키위는 기형적으로 기다란 부리를 달고 있다. 알의 크기도 별나서 동일한 체격의 다른 새가 70g의 알을 낳는 반면 키위의 알은 420g이나 나간다. 전통적인 진화생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스티븐 J 굴드(1941~2002)는 연구 결과 원래 체격이 컸던 키위가 작게 진화한 ‘진화적 왜소종’이라고 추정했다. 굴드는 에드워드 윌슨(1929~생존), 리처드 도킨스(1941~생존)와 함께 ‘세계 3대 진화 이론자’로 꼽히고 있다.
굴드의 연구에 따르면 키위는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조류 가운데 유일하게 두 개의 난소를 가지고 있다. 80일 간의 부화기간, 굴 파기 습성, 모피와 비슷한 깃털, 후각에 의존하는 야행성 먹이 찾기 습성 등도 포유류와 비슷하다. 굴드는 키위의 조상이 포유류로 진화하다가 몸집이 도로 작아지면서 조류로 남게 되었고, 이때 알의 크기는 함께 축소되지 못하고 지금처럼 큰 채로 남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뉴질랜드에 천적인 포유류가 없어 큰 알을 품은 채 뒤뚱거리며 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자연선택이었다. 고립된 생태계인 갈라파고스와 마다가스카르에서처럼, 뉴질랜드의 키위도 아주 특별한 진화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질학계 및 고생물학계에서는 6600만 년 전부터를 신생대로 구분한다. 신생대는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진 거대한 운석으로 인해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한 뒤 전혀 새로운 생태계가 나타났다 하여 중생대와 구분한 시기다. 이 마지막 대멸종이 일어난 시기는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제3기였다. 중생대에는 하늘에는 익룡이 날아다니고 땅에서는 거대한 공룡이 2억 년 동안 생태계의 제왕으로 군림했으며, 바다에서는 어룡과 수장룡이 용왕과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유카탄반도의 운석 대충돌로 체중 10kg 이상인 육상 척추동물과 해양의 어류들도 모조리 멸종했다. 고생대에 출현하여 중생대까지 바다를 지배하던 다양한 형태의 암모나이트도 식물성 플랑크톤의 절멸로 인해 함께 멸종했다.
민물에 살던 동물들은 덩치가 억수로 큰 종류를 제외하고는 많이 살아남았다. 악어와 거북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물이라는 피난처 덕분에 저산소와 건조라는 악조건을 견뎌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곤충들도 살아남았는데, 그 가운데는 운 좋게도 이미 지난 네 차례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았던 종류도 많았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인류가 탄생한 것도 유카탄반도의 운석 대충돌로 인해 공룡과 같은 대형 포유류들이 멸종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가혹한 상위 포식자로서 먹이사슬을 무시하고 수많은 종을 멸종시키고 있다. 지구 생명체 역사에서 인류가 어떻게 평가될지, 우리 모두 진지하게 존재가치를 성찰해봐야 한다.
아르마딜로
천산갑
공룡의 대멸종은 중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에 출현하여 공룡을 피해 숨죽이며 살아오던 포유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최초의 포유류는 파충류에서 진화했는데, 파충류의 비늘 하나가 수십, 수백 개의 털로 변한 것이다. 아마존에 사는 아르마딜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열대지역에 사는 천산갑 등은 원시적인 비늘을 가진 포유류로서 모든 포유류의 맏형이다. 포유류의 특징은 알 대신 새끼를 낳고 피부에 땀샘이 분포하여 체온을 조절할 수 있으며, 후각이 예민하고 야행성이 많다. 땀샘의 발달은 빙하기와 간빙기의 잦은 교차로 기후 변화가 극심했던 신생대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다.
가스토르니스
디아트리마
아이피오르니스
모아새
공룡이 멸종하고 포유류 시대가 왔음에도 지상의 제왕은 여전히 공룡이었다. 바로 공룡의 직계후손인 대형 조류였다. ‘공포의 두루미’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유럽의 가스토르니스와 북아메리카의 디아트리마는 키가 2m에 달했다.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는 못했지만, ‘공포의 두루미’들은 육중한 다리로 숲속을 휘젓고 다니면서 기다란 발톱으로 포유류를 낚아채어 뾰족하고 긴 부리로 쪼아 먹었다. 키 3m, 체중 400kg의 ‘날지 못하는 새’ 드로모르니틴이 오스트레일리아대륙을 지배한 것도 이때였다. 마다가스카르의 아이피오르니스, 뉴질랜드의 모아새도 신생대를 주름잡던 최상위 포식자였다.
이때 인도대륙은 아프리카에서 분리된 뒤 빠르게 북진하여 아시아대륙 밑으로 파고들면서 히말라야산맥을 융기시켰다. 거대한 판게아로 존재하던 초대륙도 빠르게 분리되어 아메리카가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그 사이에 대서양을 형성했다. 태평양대륙판은 북아메리카판과 충돌하면서 로키산맥의 키를 키웠다. 대륙들이 분리되는 틈을 타서 오세아니아대륙도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남극 가까이 남하한 뒤 정착했다. 현재의 대륙 형태가 갖춰진 것은 신생대의 일로 역사가 길지 않다는 얘기다.
오리너구리
가시두더지
대륙 이동은 포유류의 진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포유류는 단공류‧유대류‧태반류로 분류한다. 단공류는 알을 낳는 포유류로서 현재는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만 남아있다. 유대류는 태어난 새끼가 어미의 배주머니 속에 있는 젖을 먹으며 자라는 동물이다. 현재는 대양주와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에만 생존해 있으며, 캥거루‧코알라‧주머니고양이‧주머니쥐‧월뱃 등 248종이 확인되었다. 태반류는 가장 성공적으로 진화한 종으로서 빈치류와 설치류가 대표적이었는데, 몸집이 점점 커지면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진화하여 현재 최상위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태반류 동물 가운데 코끼리‧하마‧낙타‧소‧말‧돼지‧양‧염소‧사슴처럼 발굽이 갈라진 동물을 따로 유제류라고 한다.
거대한 초식동물이 등장한 것은 중생대 말기에 출현한 풀 덕분이었다. 풀은 고생대는 물론 중생대 대부분의 시기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세대다. 대멸종 직전까지 살다 사라진 대부분의 공룡은 풀 대신 나무를 먹고살았다. 몸집이 큰 초식동물은 대개 무리를 지어 살았다. 초식동물이 등장하여 고양이科‧개科‧곰科 동물들의 몸집이 차츰 크게 진화하면서 익룡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풀의 등장으로 포유류의 몸집이 커지면서 형세가 역전되자 익룡들은 멸종하거나 몸집이 작게 진화하여 살아남았다. 대양주의 키위는 몸집을 줄여 살아남은 익룡의 마지막 후예다.
첫댓글 맨 위의 사진...어디서 본듯 하다 했더니만...
바로 뉴질랜드 남섬의 피오르드인 밀포드사운드 풍경이었구만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