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여성시대 콧멍 백래시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같이 보고싶어서 쓰는 글
1부 2부 3부 4부 나눠서 글 쓸 예정
본문에 대한 의견 교류 대환영!
서치해서 나올 만한 질문ㄴㄴ 네이버 이용 부탁
9장 [선전] 뉴라이트(신new+우파right)가 벌이는 원한의 정치
1
뉴라이트 대표 주자들은 여성평등은 여성의 불행을 낳는다는 반격의 핵심 주장을 만들어 낸 최초의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널리 인용되지만 서로 모순되는 두가지 죄, 도덕적 가치보다 물질주의를 더 드높이는(그러니까 여성들을 탐욕스러운 여피로 만드는) 죄와 전통적인 가족 지원 시스템을 뒤흔드는(그러니까 여성들을 생활 보조금에 기대 사는 엄마들로 전락시키는 죄를 저질렀다며 페미니즘을 비난한 최초의 집단이기도 했다.
2
반격의 움직임이 일어날 때마다 매번 선호하는 희생양이 있었다. 미국보호협회에게는 천주교 신자들이 그런 조건에 부합했고, 코울린 목사의 '사회정의' 운동엔 유대인들이 그러했으며, 당연히 KKK 단에게는 흑인들이 그랬다. 그리고 뉴라이트에게 주적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었다.
3
뉴라이트가 공산주의나 인종이 아니라 페미니즘에 매달렸다는 점은 그 자체로 지난 10년 동안의 여성운동의 힘과 지위를 입증하는 증거였다.
4
뉴라이트 남성들이 미국 정치에 진입하면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마녀사냥도 함께 끌고 들어갔다.
...
심지어 여성의 필요에 대한 연방의 한 보건 교육 자문 위원회마저 "대단히 공격적인 자칭 페미니스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기분 나쁜 듯 밝히기도 했다.
5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을 필요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이 비난했다. 이혼율을 높인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었다. 이혼율은 여성해방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높아지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분명 참담한 경제정책들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는 대단히 분명한 먹잇감이 되었다. 엘리 스밀(전직 전미여성연맹 의장 엘리너 스밀)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먹잇감이었지만, 초인플레이션과 과세 등급은 그렇지 못했다.
6 반페미니즘 의제 설정하기
이들은 이 법안을 가족보호법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이들이 1981년 의회에 소개한 법안은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는 무관했다. 사실 이 법안의 목표는 단 한가지, 여성운동의 거의 모든 법적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
이 법안은 전체적으로 무언가를 금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기나긴 금지 목록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기혼 여성이 아이를 낳고 집에서 지내도록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 인센티브뿐이었다.
...
이후 몇 년간 뉴라이트는 여러 가지 '가족' 관련 입법을 제안했는데, 사실상 이 모든 법안의 목표가 여성의 독립이 고개를 쳐드는 족족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여성이 죽게 되는 한이 있어도 낙태는 전면 금지, 결혼할 때까지 모든 피임 정보를 검열, '순결' 법안, 동일임금법과 다른 동일고용법 폐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은 타파.
7
하지만 이상하게도 뉴라이트가 워싱턴 D.C.에서 사명감으로 하고 있는 일을 기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지지자든 반대자든)은 페미니즘을 '주변적인' 문제로 여겼다. 언론 기사들, 심지어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성향의 미디어에서 나온 기사마저 낙태와 남여평등헌법수정안에 대한 우익 집단의 반대를 더 내실 있고 더 '중요한' 정책 목표(정부 규제 감소, 예산 삭감, 방어 시설 증강)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8
이들에게 자율적인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공개적으로 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주요 이벤트였다.
9 단어 전쟁
뉴라이트 용사들은 자신들을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변화의 주역으로 묘사했지만 이들의 책략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주적, 즉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는 세력들에 대한 반발 일색이었다.
10
정치 서술가 시드니 블루먼솔이 ⎡반기득권의 등장⎦에서 밝혔듯 "역설적으로 보수주의는 진보주의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사명감은 있지만, 적대적인 입장을 벗어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뉴라이트 남성들은 의존이라는 자리에서 자아를 발견했는데, 이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이들은 먼저 나서기보다는 어떤 일이 터진 뒤에야 반응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했던 것이다. ... 뉴라이트 연성자들은 숙녀들을 막아선다는 난감한 과제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11
⎡리더십 강령2⎦는 "20년간 시민권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언어의 장악을 둘러싼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평등'과 '기회'같은 단어가 중요했다. "법정에서든 의회에서든 승리의 비밀은 이런 용어의 정의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
이런 언어 전략하에 뉴라이트는 여성들이 새롭게 획득한 출산에 대한 권리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생명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새롭게 포용한 성적 자유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순결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의 대대적인 직업 시장진출에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여기에 "모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붙였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는 그들 자체, 그러니까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가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
이런 오웰식의 말장난은 뉴라이트 지도자들을 수동성이라는 궁지에서 꺼내 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날로 증가하는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이들의 분노를 감춰 주는 기능도 해냈다. 이는 성공적인 마케팅 수단이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라는 깃발 아래 행진할 경우 이들은 언론으로부터 더 많은 공감을,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더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 숙녀들의 은퇴
뉴라이트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특히 커다란 공격의 화살을 날리고 싶을 때면 뉴라이트 여성 뒤에 숨었다.
...
뉴라이트 계열의 미국을걱정하는여성모임을 설립한 비벌리 라헤이는 "페미니즘은 질병보다 더하다"고 주장했다. "
...
유서 깊은 방식대로 반페미니즘 성향의 남성 지도자들은 여성들을 모집해서 여성의 권리에 반대하는 성가신 일을 맡겼다.
13
라헤이는 1978년 어느 저녁 샌디에이고에 있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도덕적다수의 공동 설립자인 자신의 남편 팀 라헤이 곁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저녁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바버라 월터스는 베티 프리던을 인터뷰 했고, 이 페미니스트 지도자가 자신이 미국의 많은 여성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자 라헤이는 양말만 신은 채로 벌떡 일어나 "베티 프리던이 날 대변하진 않아. 그리고 그녀가 이 나라 다수 여성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 하고 선언했다.
14
라헤이는 여성들을 새로운 대의에 끌어들일 때 전통적인 두려움과 페미니즘적인 포부 모두를 이용했다.
...
결국 이들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거리낌 없이 목청을 높이는 것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15
언론에서는 미국을 걱정하는여성모임을 종종 도덕적다수의 여성 모임인 뉴라이트혁명의딸들 같은 곳으로 묘사하곤 했다.
16
뉴라이트 여성들은 어떤 면에서는 반격의 소용돌이에 갇힌 좀 더 진보적인 '여피' 자매들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었다. 주류 직장 여성들이 내부적으로 반격이 만들어 낸 자기 의심과 비난에 맞서면서 페미니즘의 원칙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편이었다면, 뉴라이트 여성들은 여성운동의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자기 결정과 평등, 선택의 자유라는 여성 운동의 교의를 자신의 사적인 행동에 말없이 녹여내면서도 반페미니즘 관점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17
미국을걱정하는여성모임의 활동가들은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나가 보고를 하고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도 절대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이들은 개인적인 자유와 성 정치에 대한 공적인 입장을 분리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개탄하면서도 사적으로는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이 실제로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건 다른 모든 여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하게 저지르는 일에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10장 [정치] 여자 사람 스미스 씨 워싱턴을 떠나다
18
고위직을 받아들인 뉴라이트 여성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직함만 과장되었지 아무런 권한이 없는 자리나 정부의 가장 가혹한 반페미니즘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 자리가 주어졌다.
19 페미니스트와의 갈등
헤리티지재단의 남성들이 보기에 여성교육평등법 프로그램은 "연방 정부의 곳간을 축내는 페미니즘 네트워크"였다.
20
여성교육평등법의 책임자 레슬리 울프는 여성의 교육을 지지하는 정부 프로그램을 개척한 10년차 베테랑 공무원이자 G.S. 15등급에 오른 몇 안 되는 여성 중 하나였고, 뉴라이트 인사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었다.
...
매년 여성교육평등법 프로그램은 지원금 신청서를 검토하기 위해 150명의 외부 현장 심사자들을 고용해야 했다.
...
하지만 울프가 없는 사이(사실상 그녀가 다른 자리에 발령된 지 겨우 하루 만에) 헤덜리는 그녀가 선발했단 현장 심사자들을 모두 내쫓고 자신의 사람들, 즉 필리스 슐래플리의 이글포럼 쪽 여성들을 채워 넣ㅇㅆ다.
...
대부분의 경우 새로 선발된 현장 심사자들은 교육 평등을 이해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
1년 뒤 울프는 마지막으로 상사의 사무실에 불려 갔다. 그녀는 상사로부터 그녀의 업무가 사라졌고 새로 배정된 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고될 것이라고 전했다. 울프에게 새로 배정된 업무는 보상 교육실의 타리피스트 겸 사무원이었다. 울프는 사표를 냈다. 여성교육평증법 업무를 보던 다른 다섯 명의 여성 모두 해고되거나 사표를 냈다. 반면 남성 직원 다섯 명은 모두 그대로 일했다.
21 그리고 아버지들과는 사이좋게
'가족 친화' 운동이 무언가에 친화적이었다면 그것은 사실상 부권이었다.
...
교육부에서 가족 정책 책임자를 맡게 되는 게리 바우어
...
바우어가 <코스비 가족 만세>에서 가장 교훈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혔듯 "아이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가족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이혼이 여자아이보다는 남자아이에게 훨씬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며 통탄한다. 마치 여자아이가 더 맣이 고통받았다면 이혼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리라는 듯이
22
민주당은 여성 하원 의원 제럴딘 페라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여성들에게 두 정당의 확연한 차이를 알렸다.
...
1980년대에는 정계의 많은 후보자들이 가혹한 공격과 철저한 조사의 대상이 되었지만 페라로에 대한 공격은 전무후무했다.
...
칼럼니스트 리처드 리브스는 당시에 "제랄딘 페라로를 향한 돌팔매질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그 누구도 도움을 준다거나 여기에 저항하려고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녀의 측근마저도"라고 말했다.
23
결국 선거 후의 숱한 여론조사가 밝혀냈듯 민주당의 패배는 자카로(페라로의 남편)의 사업을 둘러싼 스캔들 때문도, 페라로가 후보자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회복 중인 경제 덕에 백악관은 당시 공화당의 손에 들어갔다.
...
하지만 역사 재서술은 별스러운 사건도 아니다. 대선 1년 뒤 ≪내셔널리뷰≫는 한 기사에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선거에서 윌터 먼데일의 강점을 보강하기보다는 깎아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판결했다. 그 수수께끼 같은 여론조사가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미디어의 다른 정치 분석가들은 페라로가 부통령 후보로 등판한 것은 민주당이 페미니스트에게 '굴복'한 것이라고 표현했고, 이 때문에 먼데일이 유권자들에게 '유약해' 보이게 되었다며 페미니스트들을 비난했다. 민주당 지도자들은 당이 저조한 성적을 거둔 것은 여성들 책임이고 여성들이 선거에 너무 많은 영향을 행사했으며 백인 남성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공격했다.
...
페라로는 회고록에서 "한 여성의 실패는 종종 모든 여성에 대한 판단으로 독해된다"고 적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선거 기간 동안 겪었던 혹독한 경험과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알린 후회는 나중에 많은 미국 여성들의 가슴에 그와 비슷하게 전달 되었다. 1984년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여성의 53퍼센트가 2000년이면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나타났다. 하지만 1987년에는 그 비중이 4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페라로의 공개적인 패배는 정치에 뜻을 품은 여성들의 사기를 훨씬 많이 꺾어 놓았다. 1988년쯤 되자 양당의 인력 채용 담당자들은 갑자기 공직에 출마할 여성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
미국여성정치센터의 대표인 루스 만델은 잠재적인 여성 후보자들이 한결같은 이유로 고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꾸준히 듣고 있다. 그것은 바로 '페라로 요인'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
1988년 미국 상원 선거에서 투표 용지에 이름을 올린 여성은 1984년의 열 명보다 줄어든 단 두 명이었다. 10년간 상원 선거에 출마한 여성 숫자 중에서 가장 적었다. 하원에서도 여성 후보자의 수가 감소했다. 그리고 주 규모의 모든 행정부 고위직에서 역시 여성의 수가 곤두박질쳤다.
24
같은 해 언론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전무후무한 어떤 균열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격차도 불거졌다. 여론조사를 해 보면 지미 카터가 레이건보다 앞서는 유일한 쟁점이 여성의 권리라는 결과가 나타나곤 했다. 처음으로 상당한 페미니즘 성향의 투표가 표면화되었는데, 정치학자 에설 클라인이 전국 투표 패턴에 대한 연구에서 밝힌 대로 그것은 여성들 사이에서만 갑자기 불거졌다. 클라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여성의 권리라는 쟁점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택하는 유권자군이 있고 이들이 페미니스트 성향의 투표를 중심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최초의 선거"였다. 실제로 1988년에 이르자 한 여론조사에서는 남녀평등권을 선호하는 여성의 무려 40퍼센트가 "페미니즘 정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60년 전 여성 참정권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마침내 실현될 위기에 놓인 것이었다. 즉, 상당수 여성들이 남성과 독립적으로 투표를 행사하는 유권자군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이렇게 엄청난 여성 표를 확보해 준 듀카키스 지지자들은 임금 평등, 사회적 평등, 그리고 출산에 대한 권리라는 페미니즘 의제를 가장 열렬히 응원하는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25
공화당 남성들은 여성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남성들에게 감명을 주고 싶다는 희망에서 마초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부시는 특히 기자단 앞에서 자신의 남자다운 패기를 입증하고 싶어 했다.
...
선거운동 기간 동안 부시의 선거운동 본부에서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질문을 일축했다. 너무 사소해서 논평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26
민주당이 아직 여성들에게 구애를 하던 1984년,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경축 만찬회를 열었고, 전국에서 모딘 여성 간부회의 구성원 앞에서 모든 대통령 후보가 연설을 했다. 하지만 1988년이 되자 민주당 여성을 위한 파티는 말 그대로 끝났다. 그해에는 경축 만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 간부 회의가 열리는 아흘간 대통령 후보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듀카키스는 아내를 보냈고, 저명한 남성으로서 여성 간부 앞에서 연설한 사람은 부통령 후보이자 상원 의원인 로이드 벤슨이 유일했다. 듀카키스는 민주당 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면서 출산 여부를 선택할 자유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성차별과 임금 평등, 남녀평등헌법수정안에 대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모호하게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넌지시 비춘 게 전부였다. 이제 공화당 사람들처럼 듀카키스의 눈에도 여성은 가족 단위로 안락하게 묶여 버렸을 때만 들어오는 것 같았다.
듀카키스는 여성들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최대의 지지층을 잃어버렸다. 그해 여름 24퍼센트나 그에게 유리했던 젠더 격차는 선거일에 이르러 8퍼센트 이하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
공화당이 젠더 격차를 둘러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민주당이 너무 지리멸렬했기 때문이었다.
...
듀카키스의 선거 운동원 중 한 명인 도나 브라질은 부시의 가정적인 남자 코스프레 이면에 숨은 위선에 대해 감히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논평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그리고 겁먹은 듀카키스는 보좌관의 지각 없는 행동에 대해 부시에게 서둘러 사과했다.
민주당 내 대부분의 여성들은 후보자들이 여성인구를 내팽개친 데 저항하기는커녕 침묵 속에 고통을 삼키겨 숙녀가 되는 법을 연구하고 있는 듯했다.
...
"우린 더 이상 '여성 쟁점'을 다루지 않아요." ... "우린 '가족 문제'를 다루죠."
27
정계의 여성들은 자기 발로 가족 문제에만 매달림으로써 스스로를 불구화하고 찬밥 신세를 자초했다. 여성 정치인들은 가족이라는 대의를 위해 여성 문제를 도외시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너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반격의 격언에 또 한 번 굴복했다. 여성들은 교육 기회와 임금 평등, 출산의 자유를 요구하지 않아야만 보육 서비스와 출산휴가를 요철할 수 있었다. 이런 반쪽자리 전략은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먹히지도 않았다. 그해 모든 보육 법안과 출산휴가 법안이 무산되었던 것이다.
'가족 친화' 이데올로기가 미국 정치의 중심으로 확장되면서 여성들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28 자기만의 당
양대 정당 여성들의 끝 모를 배신에 전력이 난 일부 대표들은 전국 대회를 열고 제3당, 그러니까 여러 대의 중에서도 여성 평등을 위해 싸우는 당을 창당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를 제안했다. 이 발의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
언론은 이 제안에 과열된 반응을 보이느라 정신이 없었던지 죄다 틀린 기사만 쏟아 놓았다.
...
사실 그해에 처음으로 이런 중서부 여성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전미여성연맹에 가입하기도 했었다.
...
전미여성연맹의 제3당 제안에 온갖 멸시와 비난이 퍼부어졌고 결국 제안은 확산될 기회를 얻기도 전에 불꽃이 꺼져 버졌다. 여성 조직의 대표들이 너도나도 공개 석상에 달려가 자신은 여성 정당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종종 숙녀스러운 말투로 선언했던 것이다.
...
공화당과 민주당에 있는 많은 여성 "친구들"이 "우리가 그들을 버리려 한다고 느끼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이는 페미니즘 지도자들이 제3당 카드를 이용해서 민주당이 완전한 여성 의제를 지지하도록 압박했던 1980년과는 대단히 달라진 반응이었다. 당시 이들은 민주당이 남녀평등헌법수정안과 낙태권, 보육을 의제로 삼지 않으면 독립적인 후보자였던 존 앤더슨을 지지하겠다고 위협했다.
제3당 아이디어가 촉발시킨 강력한 조롱은 여성 정치인들에게도 그만큼 강렬한 불안감을 안겨주었음에 틀림없었다.
...
정계의 기득권 세력들은 전미여성연맹의 안을 '비현실적'이고 '철없다'며 조롱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있고 위협적이었다.
29
양켈로비치의 1989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 여성들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평균적인 미국 여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가 자신들과 가깝다고 생각했을까? 다수 여성이 전미여성연맹, 여성운동 지도자들, 그리고 페미니스트 세 집단을 언급했다. 이 양켈로비치 조사를 연령대별로 분석해 보니 민주당과 공화당의 미래에 정말로 우울한 결과가 나타났다.
30
1980년대가 저물 무렵 여성들은 엄청나게 강력한 투표 블록을 구성할 수도 있었다. 여성운동과 다른 진보 운동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천군만마를 동원하기만 했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1980년대 미국 국회 의사들의 반격은 여성들에게 유리한 이 역사적 정치적 기회를 저지했다. 배척과 적개심, 조롱의 폭격을 꾸준히 가하면서 말이다. 이런 폭격에 가장 의기소침해진 건 당연하게도 가장 근거리에 있던 여성들이었다. 그래서 전미여성연맹의 중서지역 대회에 참석한 평균적인 미국 여성들이 만반의 준비를 완료한 그때 워싱턴의 많은 여성 지도자들은 잽싸게 몸을 숨겼던 것이다.
11장 [교리] 반격의 수뇌부, 네오콘에서 네오펨까지
31 조지 길더 : "미국 제일의 반페미니스트"
길더가 주목하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젊은 싱글 남성들은 양켈로비치의 '도전자들' 보다 훨씬 우울하다. 길더가 보기에 싱글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불쾌한 족속으로, 기혼 남성에 비해 약물 중독자, 알코올중독자, 상습적인 도박꾼, 범죄자,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별거벗은 노마드 중의 개코원숭이 무리"와 같다. 그는 "남자가 결혼하지 않은 채로 나이가 들면 자살한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말한다. 길더는 "이 야만인들을 길들일"수 잇는 건 결혼반지뿐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만일 전형적인 싱글 남성이 이렇게 매력이 없다면, 어떤 여성이 그와 결혼은 고사하고 데이트할 생각을 할까? 길더는 여성들에게 당신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답한다. 결혼을 하든지, 그렇지 않을 거면 죽을 준비를 하든지. 그는 "주변적인 마성이라고 해서 무력하지는 않다"고 기분 나쁘게 충고한다. "이들은 칼과 총, 마약과 알코올을 구입할 수 있꼬, 이로써 잠시 약탈적인 방식으로 우월감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들은 "강간하고, 약탈하고, 짓밟고, 빼앗을"것이다. 어두운 골목에서 이런 남자를 마주치느니 그냥 결혼식을 올리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식이다.
32
1981년 마침내 길더는 자신의 일을 레이건의 일과 연결시켜서 문학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전력이 있는 중도 공화당 성향을 억제하고 레이건의 연설문 담당자가 되어 레이건의 수락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나중에 이 새 행정부의 공급 중시 경제학과 예산 감축 계획에 청사진을 제시할 한 권의 책이었다. 이 예산 감축 계획은 여성 가장 세대에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당시 ⎡부과 빈곤⎦은 진보주의자와 이들의 유산에 대한 공격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또 다른 정치 집단 역시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와 이들의 소행 역시 적나라하게 공격했다.
명성도, 재산도 없던 프리랜서 작가가 하룻밤 새 레이건 행정부의 지적인 총아가 되었고, 그 덕에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변신했다.
...
당시 이 책을 비판했던 사람들은 그 경제적 메시지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길더는 여기서도 독립적인 여성들에 대한 전쟁을 이어 갔다. 사실 그는 전쟁을 더 확대했다. ⎡부과 빈곤⎦은 싱글 남성들이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기혼 남성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는 이유로 여성운동을 비난한다.
33 앨런 블룸 : 페미니스트 지배에서 도망친 난민
앨런 블룸의 ⎡미국 정신의 종말⎦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교육의 쇠퇴에 대한 책인 척하지만 여성운동을 공격하는 데 숱한 지면을 할애하고 잇다. 학문의 상태를 개탄하든, 점점 약해 빠져 가는 음악의 경향을 개탄하든, 학생과의 관계가 덧없음을 개탄하든, 그가 지목한 해로움의 근원은 똑같다. 사회 전반이 페미니즘으로 돌바서면서 여성들은 요구와 욕망에 가득 차게 된 반면, 남성들은 활기와 정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
블룸의 책에는 사실 교육 수준 하락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반면 점점 기세등등해지는 여성들의 공포정치에 대한 기나긴 호통에 대단히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
...
다시 말해서 페미니즘은 "여성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여성을 남성의 명령에서 해방시켰는데, 이 학자가 보기에 이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34
블룸의 책이 가장 악명 높긴 하지만 1980년대 말 서점에서 '미국의 몰락'을 다룬 두껍고 진지한 채귿ㄹ이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19세기 말에 유사한 책들을 쏟아 냈던 사람들이 그랬듯,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이런 책들을 만들어 내는 학식 있는 저자들은 미국의 교육 수준 저하와 도덕적 가치의 하락, 경제적 능력의 약화에 대한 암울한 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런 국가적인 고난의 탓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페미니즘 탓이라고 주장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35
교수직과 출판권 대부분이 이제는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넘어가 버렸다는 블룸의 확신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학 교정에 있는 많은 남성 교수들이 공유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확신의 발판은 사실이 아닌 공포다.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모든 4년제 기관에서 종신을 보장받은 교수 중 여성은 10퍼센트뿐이다. 이는 1960년대보다 6퍼센트밖에 늘지 못한 수치다. 박사 학위를 받고도 취업하지 못한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이 다섯 배 더 많다. 페미니스트 교수들이 대학 교정에 넘쳐 난다는 주장도 틀렸다. 여성학과 학과장은 전국에 열두명뿐이다.
...
학계에서 블룸 같은 학자들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면 이는 페미니즘 연구보다는 대학 내의 우선순위가 금전을 좇는 쪽으로 바뀐 탓이 더 컸다. 1980년대에는 대학들이 하나둘 인문학 예산을 감축하고 그 대신 1980년대의 양대 교내 성장 산업인 의대와 경영대에 재정을 퍼부었다.
36
블룸이 생각하기에 배제당한 쪽은 오히려 자신같은 남성이었다. ⎡미국 정신의 종말⎦에서 "가족의 쇠퇴"에 대한 그의 한탄은 사실 뉴라이트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가정과 공적 영역에서 사라진 전통적인 남성의 권위, 그가 극심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권위에 대한 한탄이다. 그는 "가족은 남편의 뜻이 곧 전체의 뜻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통일체의 축소판과 같다"는 믿음이 남아 있던 시절이 그리운 듯하다. 그는 완화된 이혼법하에서 호쾌하게 남편을 차 버리는 아내를, "남자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통제를 받지 않는" 딸들을 고깝게 여긴다.
때로 블룸은 남자들이 욕먹을 걱정 없이 마음대로 여자들과 재미를 보던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듯한 소리를 한다. 그는 여성이 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은... 그거 주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37
워런 패럴 : 해방된 남자의 변심
"남성은 여성보다 더 비참해요. 그러니까 남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사실 지금의 여성보다 더 힘이 없단 거죠." 워런 패럴은 잠시 말을 멈추고 여성 가정부가 막 건네준 커피 잔을 홀짝였다. 다른 방에서는 여성 비서가 분주하게 타이프를 치고 그의 파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38
뉴욕 대학교 총장 비서 일을 그만두고 유명한 남성 페미니스트 서적이 될 책 ⎡해방된 남자⎦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성의 의식 고양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남성 모임 수백 개를 좆기하여 남성들에게 "[여성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라"고, 결혼과 관계의 정치적 토대를 파헤쳐 보라고, 남성성의 과시외 폭력의 관계를 폭로하라고 독려했다. ... 그는 페미니즘이 남성 또한 해방시킨다고 말했다. 혼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그리고 '여성적인' 감정을 억누르면서 남성성을 입증하고 또 입증해야 하는 심신의 긴장으로부터 말이다. 그는 1971년 ≪뉴욕타임스≫에 쓴 한 칼럼에서 "남성성을 드러내려면 싸워야 한다는 걸 배워 본 적이 없는 남자아이는 심리적으로 훨씬 자유롭게 잠재적인 싸움에 말려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차의 '마력'을 과시하기 위해 차를 날듯이 몰지 않고 더 자유롭게 조심해서 운전한다."
...
하지만 페미니즘이 더 이상 미디어를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게 되자 패럴도 열정이 식어 버린 듯 했다.
...
어떤 경우든 1980년대 중반에 이르자 그는 새로운 피억압자인 남성을 위해 떨쳐 일어날 때라는 결심을 굳혔다. ⎡남자들은 왜 그럴까⎦에서 패럴은 독립적인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너무 많은 분노를 쏟아 내고 있고, 여성이 남성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그저 "자신들의 최고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투덜거린다.
...
1980년대 중반이 되자 남성 해방 운동에 함께 몸담았던 패럴의 남성 동지들 역시 그를 버렸다. 알다와의 테니스 경기는 끝났고 도나휴는 "더 이상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패럴의 신간이 발간되면서 일부 여성 페미니스트 친구들도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
패럴의 사무실에 있는 파일 캐비닛은 이제 남성들에게서 온 감사 편지로 미어터진다. 그의 전화로는 남성 모임과 남성 권익 협회에서 연설을 해 달라는 청탁 전화가 꾸준히 걸려 온다.
...하지만 이 반페미니스트 팬들은 패럴리 가장 영향을 미치고 싶어 했던 청중이 아니엇을지 모른다.
...
"한때 날 우성처럼 여기던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인기가 떨어지면서 난 크게 상처받았어요.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나한테 거리를 두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39
로버트 블라이 : '요구르트나 먹던 사람들'을 '야성적인 남성'으로 변신시키다.
...
20년 전 블라이는 지금과는 다른 이유에서 버클리의 영웅이었다. 1960년대 평화운동가였던 이 시인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문학적 저항으로 명성을 날렸다.
...
생명을 지키려는 본성은 원래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있지만, 남성의 경우 건강하지 못하게도 그런 본성이 억압되어 있다는 게 블라이의 입장이었다. 1970년대에는 양성 모두에게 열린 모임인 위대한 어머니 회의를 이끌었는데, 이 회의에서 그는 '여성적인' 평화 사랑 정신을 증진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평화운동이 지지부진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블라이는 더 이상 군중을 호령하지도, 퇴짜 놓을 수 있는 전국적인 상을 수상하지도 못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1980년대 초에 이르렀을 때는 심지어 자신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하지만 그가 문제라고 지목한 것은 초반의 명성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남성과 더 이상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강인하고 성난 여성들, 일생 동안 남자들에게서 받은 수모에 대해 목청을 높이는 여성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된 게 문제였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남자들이 이런 여성들과 너무 가깝게 동맹을 맺는 바람에 아버지들과 자신의 남성성을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초창기에 자신이 했던 권유는 실수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블라이는 남성들을 "깊은 남성성"으로 다시 안내하는 남성전용 워크숍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자들이 부족 가면과 야생동물 의상을 입고 "내면의 야수"를 재발견하는 주말 황무지 체험을 이끌었다.
...
1980년대 중반에 이르자 블라이는 다시 군중을 이끌게 되었다. 단 한 번의 강의에 55달러, 이틀짜리 체험에 300달러를 내는 남성들이 수백이었다.
...
블라이가 성공을 거두자 숱한 모방자들이 나타났다.
...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와 뉴욕 시의 스털링관계연구소에서 진행하는 400달러짜리 주말 프로그램 "남성, 섹스, 권력"에서는 '겁쟁이들'에게 고릴라 옷을 입히고 가슴을 두드리며 서로 주먹다짐을 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짜 남자'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 1980년대에 이런 세미나에 등록한 남성만 1만 명이 넘었다.
40
블라이 : 오늘날 전국에는 '부드러운 남자' 현상이 번지고 있습니다. 가끔 내 청중을 들여다보면 젊은 남자의 절반 정도는, 내가 보기엔 부드러워요. ... 이런 남자들은 불행한 경우가 많죠. 이런 남자들한테는 에너지가 많지 않아요. 생명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생명을 주지는 못하죠.
...
"요즘 미국 남자들은 너무 소극적이고 순진하다"고 말한다. "질병이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그건 여자들이 퍼뜨리는 거죠. 여자들은 1960년대부터 사실상 남자들의 영역을 침범했고 남자를 소년 대하듯 대했어요."
청중에 있던 여성이 여성운동 탓이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남성 운동은 여성운동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몇 분 뒤 그는 다시 청중 내 남성들에게 "여성들의 힘의 장"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여성이 말이 모순된다고 지적하자 그는 이성을 잃었다. ...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며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당신같은 여자들이 남자들을 요구르트나 먹는 인간들로 만들고 있는 거요." 당황한 여성은 씩씩대는 이 시인을 달래려고 애썼다. 떨리는 목소리로 감정적으로 멀어진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물어본 것이다. "남편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가 소리쳤다. "그냥 내버려 두란 말입니다."
...
"난 사태가 점점 악화될거라고 봐요. 남자들은 점점 자신의 남성성에서 멀어지면서 불안정해질 거예요. 남성은 점점 여성에 가까워지고, 여성은 남성에 가까워지려고 하겠죠. 전망이 밝지 않아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 혹은 페미니즘이 정말로 남자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뭘까? 이 덕망 있는 시인은 갑자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근거 같은 건 필요없어요. 나한테는 뇌가 있고, 그래서 아는 거예요. 뇌를 쓰면 되니까."
41
실비아 앤 휴렛 : 네오페미니스트의 시시한 작업
"난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이 전미여성연맹에 소속된 세련된 엘리트 직장 여성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을지 몰라도 사실상 일반 여성들을 돕는 데는 방해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
그녀가 자신의 책에서 밝인 바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들은 일반 미국 여성의 필요한 열망과 관계맺는 데 크게 실패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많은 주부들은 동등한 대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힘들게 쟁취한 보호법의 혜택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블루칼라 여성들의 타당한 걱정까지 감안하면 남녀평등헌법수정안에 반대하는 유권자의 수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당시 투자은행가 남편과 함께 부유한 맨해튼 지역에서 살고 있던 휴렛은 이런 일반 여성들과 언제 접촉해 봤던 걸까?
...
페미니스트들은 모성이 아닌 평등에 집중함으로써 "엄청나게 큰 실수"를 저질렀다. ... 페미니즘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내버렸다."
42
휴렛은 여성들이 남녀평등헌법수정안에 반대했던 걸 결혼 관계 내에서의 지원과 '보호법의 혜택'을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은 이미 대부분의 주 법률이 규정해 놓은 대로 이런 지원이 성별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말고는 여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
결국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을 무산시킨 사람들은 일반 여성들이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쥔 세 핵심 주 의회의 소수 남성들이었다. 이 남성들이 남녀평등헌법수정안에 반대했던 건 수정안이 여성들의 전통적인 보호 장치들을 침해해서가 아니라 한 핵심 주 의원의 표현에 따르면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믿음에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43
자기가 직접 쌓은 탑에 흠집을 내는 유명 페미니스트는 프리던만이 아니었다. 잘나가는 베스트셀러로 1970년대에 여성해방운동이 유명세를 타는 데 도움을 주었던 일부 작가들이 과거의 입장을 철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뉴라이트 입장에서는 오래된 페미니스트의 이런 회개가 너무 좋아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
1980년대가 진행되는 동안 이 1970년대 유명 페미니스트들은 점점 퇴행적인 먹잇감을 내놓곤 했다. 그리어는 1990년 의지가 약했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아빠, 우리 당신을 몰랐어요⎦를 내면서 필립 와일리의 가모장 주의를 능가할 정도로 어머니를 악마화했다.
...
베티 프리던이라는 이름은 수백만 미국인들에게 여성해방운동과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 20년 뒤 그녀는 "페미니즘의 신비"를 공격했고 여성운동이 "이름 없는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프리던은 "나는 여성의 권리가 미국 여성들에게 가장 긴박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째서 프리더는 자신이 그렇게 큰 공을 들여 만들고 이끌었던 운동을 짓뭉개게 된 걸까?
...
이 책 전반에는 뉴라이트의 표현들이 새 단장을 한 모습으로 곳곳에 널려 있다.
...
만일 반발심에서 그녀가 자신의 삶에서 이 모든 측정할수도,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여성적인 일과 장식들을 깨끗이 잘라 낸다면, 그러니까 더 이상 쿠리도 굽지 않고 머리카락을 수도승처럼 자르고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하고 침실에 컴퓨터 책상을 들여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결국 그녀는 새로운 '자신감의 위기'에 시달리게 된다. 삶에 뿌리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내면에서 몸서리치고, 남성성 과시욕 때문에 메말라 가게 된다.
프리던은 뉴라이트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 뉴라이트의 '가족 친화' 의미론의 덫으로 직행해 버렸다. 그녀는 이제 여성운동을 "페미니즘의 반발"이라고 일컫기까지 하면서, 자기 고유의 의제를 설정하기 보다는 반격에 맞장구치고 있다.
44
캐럴 길리건 : 다른 목소리인가 아니면 빅토리아시대의 메아리인가?
여성(이나 그 어떤 인구 집단)의 '특수함'에 경의를 표할 때면 항상 거기엔 양날의 검과 같은 상황이 따른다.
...
그녀는 평등이 오히려 여성의 특수한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을 차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에게 '특별하다'는 표현을 쓰는 순간 여성의 한계를 정해 버리는 우를 쉽게 범하게 된다. '특별하다'는 건 우월하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에둘러서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1부 신화와 회상 [신화] [역사]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LxCT/311359?svc=cafeapi
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1 [미디어] [영화]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LxCT/311408?svc=cafeapi
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2 [TV] [패션] [미용]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LxCT/311687?svc=cafeapi
3부 반동의 기원 [선전] [정치] [교리]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LxCT/312133?svc=cafeapi
4부 반격의 결과물1 [심리] [일터]
4부 반격의 결과물2 [신체]
첫댓글 글 써줘서 고마워!
글써줘서 고마우이
더 많은 여시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와 이 책 너무 두꺼워서 매번 읽다가 포기했는데 고마워 정독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