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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유익2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비료와 거름을 주었는데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면 그 수고는 물론이거니와 거름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옆 밭에도 같은 비료와 거름을 뿌렸는데 풍성한 소득을 얻었습니다. 거름의 효과를 본 것이지요. 그러나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밭에 씨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밭에 아무리 좋은 거름을 뿌렸다고 해도 소용이 없듯이 영의 일에도 마찬가지 경우가 있는데 방언이 그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으로 기도하지만 별로 유익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방언에 대한 이해가 교회 안에서 아직 정확하게 가르쳐지고 있지 못하는 것은 은사가 교회 안에서 아직 활발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밭에 아무것도 심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름은 아무 쓸모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방언은 각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주시는 은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얻는 데 도움을 주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방언은 모든 신령한 은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윤활유와 같고 한약에서 감초와 같습니다. 방언 없이 능력을 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방언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영이 강건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비밀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방언은 필수입니다. 이런 방언을 우리는 언어로 기도할 것이 없을 때 더 많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또는 기도할 내용이 없을 때 하는 보조적인 기도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영을 강건하게 하기 위해서 방언기도는 필수입니다. 영이 강건해진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지혜가 생기고 믿음이 생겨 시험이나 고난이 올 때 말씀으로 극복하고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 영적 힘을 의미합니다. 이 힘은 우리 영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얻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 힘이 생겨 영이 강건해지면 영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힘이 있어야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직무인 은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랜 세월동안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방언기도를 통해서 우리 영안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축적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육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방언기도가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수가 열심히 훈련을 하고 체력을 단련해도 경기를 치러보지 않으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알 수 없듯이 방언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실제적인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면 자신의 영이 얼마나 강건해졌는지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시는 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우선 영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즉 영의 신호를 자신의 지각이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신호가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령 집회에서 불같이 뜨거운 기운이 밖에서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면 누구나 성령께서 자신에게 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환상이 보인다면 계시가 임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성령께서 강력하게 예외적으로 역사하신 것이기 때문에 영이 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놓치지 않고 바로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방법은 아니며 보편적으로 일상에서는 우리 영이 성령의 역사하심을 우리 지성과 감성에 전달해 줌으로써 알게 됩니다.
이 전달 신호가 미약하면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마치 위성방송이 신호를 보내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신호가 미약해서 수상기가 제대로 영상으로 띄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우 더 큰 안테나를 세워야 하듯이 우리 영이 강하지 못하면 성령의 신호를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언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영을 강건하게 하는 수단으로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방언기도이며, 말씀을 묵상하는 묵상기도와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기도가 관상기도(이미지를 그리면서 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은 성장하고 힘을 얻게 됩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며, 따라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이 자라납니다. 그 가운데 방언기도는 매우 쉬운 기도입니다. 우리 자신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이 기도하며, 천사가 기도하며, 성령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영을 강건하게 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계시가 흘러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방언기도는 다양한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언으로 한다고 해서 다 같은 방언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방언기도는 자신을 세우는 역할을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주로 자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정결함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이성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 밖의 내용들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우리의 영이 하는 기도이므로 우리의 뜻을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의 한계 가운데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언기도는 별다른 느낌을 얻지 못하며, 마치 매일 하는 육성기도처럼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방언기도는 습관적이며 늘 같은 톤의 방언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별로 유익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또는 성령께서 하시는 방언기도는 자신의 영이 하는 기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이 기도는 분위기조차 다르고 방언의 음색이나 단어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영, 천사의 영, 성령, 그리고 심지어는 악령까지 방언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그 주체에 따라서 영적 분위기가 다르며 영이 주도하는 내용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모든 방언은 통역되는 것이 아니며,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통역이 이루어집니다. 특별히 통역을 위한 방언이 따로 있는데 이는 회중이 모인 집회에서 주어지는 통역을 위한 방언 즉 예언적 계시를 담은 방언은 예언의 한 수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방언은 우리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예언의 영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 방언은 주로 천사의 음성인데 ‘대언의 영’인 천사가 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치유를 위한 방언과 귀신을 쫓기 위한 방언 역시 다릅니다. 이런 방언은 그 은사를 소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일상적으로 개인기도 때 하는 방언과 다릅니다. 치유를 위한 방언은 지식의 말씀을 얻는 수단으로 주어지며, 통역이 자동적으로 되거나 성경말씀이 떠오르거나(illumined scriptures), 병든 곳에 대한 환상이 나타납니다. 귀신을 쫓는 방언은 강력한 권능이 담긴 명령이며, 방언을 듣는 순간 귀신들린 사람은 힘을 쓰지 못하고 그 앞에 굴복하고 나뒹굴기도 합니다. 방언은 주어진 은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특별히 사역하는 순간에 주어지는 특수한 방언들이 있는데 이는 평소에는 전혀 할 수 없는 방언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방언은 우리의 영을 강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그리고 자세하게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아무리 기도해도 별 유익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기도하는 무지함이 있지 않은가?
기도할 때 우리는 아무런 생각이나 목적도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하는 경우라면 그 기도는 생명이 없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바라세인의 기도인데 이런 기도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는 수단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하고 없으면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무 유익이 없으며, 방언으로 몇 마디 기도하고 시간을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해서 그냥 그렇게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경우에 깊은 기도로 들어갈 시간이 없으며, 기도주체가 바뀔 여유도 없습니다. 기도형태는 방언이지만 여전히 육에 속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방언을 기도의 보조수단이라고 여기는가?
방언기도는 육성기도를 돕는 수단정도로 생각하고 편하게 기도하기 위해서 방언으로 기도하며, 별로 할 말이 없을 때 기도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세는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말로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런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셋째, 방언기도는 신비한 체험을 하는 수단으로 아는가?
방언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이므로 이 은사를 통해서 환상을 보고 신비한 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것입니다. 방언통역이 되지 않으면 별로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고 통역을 못하니까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자신이 혼자 하는 방언은 스스로 통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역하기를 구해야 하며, 이 통역 역시 술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단편적으로 부분적으로 미약하고 별로 의미 없는 것 같은 단순한 느낌으로 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도 대부분 자신을 바로잡고 세우는 것이 가장 많습니다. 예배에서 일어나는 통역은 통역을 위한 방언으로 개인 방언과는 다릅니다.
넷째, 영적 지식을 거의 모르는 유아수준인가.
영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으며, 성경지식도 별로 없이 무작정 남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니까 자신도 그냥 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저 단순하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라면 유익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의 일은 모르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적 지식이 필요하며 지식이 없으면 깨닫기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영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와 목적을 모르면 다음 단계의 태도를 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은 자라나야 하고 상승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그 상태로 굳어져 버리고 맙니다.
다섯째, 방언기도는 다 같은 것인 줄 아는가.
방언기도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고 그 주체도 다르며, 따라서 목적도 다른데 이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다 같은 방언인줄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목적으로 구분하면 1.자신의 유익을 위한 개인 방언, 2.표적을 위한 방언, 3.능력을 행하기 위한 방언, 4.통역을 위한 방언 등이 있으며; 주체로 구분하면 1.자기 영의 방언, 2.천사의 방언, 3.성령의 방언, 4.악령의 방언 등이 있습니다. 이런 방언의 다양한 구분으로 인해서 성경은 ‘각종 방언’이라는 말씀으로 그 차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방언이 단 하나로 같다고 생각하면 다양한 방언에서 오는 다양한 기능과 유익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여섯째, 방언을 은사로만 알고 있는가.
방언의 은사는 신령한 은사 가운데 하나이지만 은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은사로서의 방언은 다른 은사를 돕는 보조기능으로서 작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능력을 행할 수도 없고 다 기적을 행할 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다 병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신령한 은사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이 방언의 은사도 없습니다. 바울은 사도와 선지자, 교사, 기적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자, 돕는 자, 관리하는 자, 여러 가지 방언 말하는 자 등과 같은 직무와 연관되어 각 사람이 고유한 직임에 의해서 그 직무를 감당하듯이 구분되어 있는 것처럼 방언 역시 그러함을 지적합니다. 각종 방언을 말하는 자는 여기서 은사로 보기 보다는 직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은사를 위해서 각종 방언을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다양한 직무를 다 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방언을 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은사가 아닌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한 방언은 누구나 다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남을 돕는 은사는 일부 사람에게만 주어지지만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은사로서 돕는 것과 성도로서 돕는 것과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그러나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에 잠시 설명한적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배우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막연하게 알고 유익을 얻지 못했던 것으로 착각했던 방언이 우리의 영적 성장과 은사를 개발하는 일에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장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