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aver.me/5VeJlerN
장내과의 진료실에 들어가면 원장님은 펌프로 압력을 주는 옛날 방식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두 해 전부터는 디지털식 자동 혈압계로 바꿨다), 혈당을 검사해주었다. 옆에 간호사가 있어도 직접 다 했다. 과도한 검사도 없고, 최소한의 약만 처방했다. 조금 나아졌거나 안정적인 수치가 보이면 먹던 약을 바로 끊도록 했다.
시설이 낡고 오래된 의원이라 새로운 환자는 거의 없었다. 다닌 지 10년을 훌쩍 넘은 단골 환자들이 대부분이었고, 평균 연령은 60~70대쯤이었다. 그나마도 환자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장님은 매일 오전 9시면 정확하게 병원 문을 열고 진료를 시작했다. 정갈하게 화장을 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환자를 맞았다. 꼭 필요한 말만 했고, 과한 친절도 없었다. 정확하고, 빈틈없이 진료하고, 잉여 없이 처방했다. 모든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았다. 어느 해 여름에는 따님과 여행을 가느라 며칠 병원을 쉰다고 미리 얘기해주기도 했다. 혹시라도 환자가 헛걸음을 할까싶은 걱정과 배려가 담겨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장내과는 보건소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늘 자리를 지키며 언제나 문을 열어 놓는 보건소 말이다.
장 원장님이 87살까지 진료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새로운 배움’이었다. 고령에도 컴퓨터를 배워 처방을 했다. 프로그램에 저장되어 있는 항목을 클릭하고 독수리 타법으로 숫자를 입력하는 정도였지만, 그 연배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스마트폰도 젊은 사람들에게 배워서 불편없이 쓴다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시하는 조사에 참여해 ‘좋은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내과 관련 학술 세미나에도 종종 참가한다고 했다.
뒤늦은 한탄이지만,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아예 병원을 닫았으면 이렇게 가지는 않으셨을 텐데….’ 싶기도 하다. 평소 연세에 비해 건강한 분이라 더 더욱 허망하다. 하지만 장 원장님은 그렇게 병원을 닫을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환자가 하루에 한 명 오더라도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게 그 분의 인생관이고 삶의 자세였다. 역시 의사인 따님은 “어머니는 오랫동안 집과 진료실이 붙어있는 곳에 사시면서 새벽 1시에도 환자가 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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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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