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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은 석가탄신일로 휴일이기에 올립니다.
뚱보는 갑자기 풍선을 타고 공중으로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범인이아무리 완전범죄를 노린다 해도 어딘가에흔적을 남긴다
수령증이야말로 범인이 모르고 지나친결정적인 단서가 아닐까.
발신자의유춘지는 피살자일 가능성이 크다.
피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 사건은 거의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마인은 주먹코를 한번 문지르고 나서
부산에 내려가 있는 남형사 일행이 묵고있는 모텔에다 전화를 걸었다.
그는 어느새다급해져 있었다.
남형사와 조형사는 마침숙소에 있었다.
별명이 풀레이보이인남형사가 전화를 받았다.
"서창배 씨의 부인한테 서교수의주민등록증에 관해 물어봤나?"
"아, 그걸 빼먹었군요. 지금 가서알아보겠습니다."
"빨리 가서 알아봐! 그런 걸 빼먹으면되나?
서교수가 사망했을 당시 소지품가운데 주민등록증이 있었는지 알아봐.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알아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받아적어. 해운대구 G동212번지 A아파트 10동 515호...
김영대...지금 바로 찾아가서
김영대라는 사람을 만나봐."
뚱보는 그 사람을 찾아보아야 할 이유를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남형사는자못 흥분하는 기색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가보겠습니다."
"냄새가 나면 신병을 확보해서추궁해봐."
"네,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유춘지가25일자 소인이 찍혀 있는 편지야."
"찾아보겠습니다."
전화를 걸고 난 그는 호텔 구내에 남아있는 염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급히 함께가봐야 할 데가 생겼으니 아래층 로비에서만나자고 말한 다음 서둘러 방을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는 프론트데스크로다가갔다.
당직 지배인이 기다리고 있다가그에게 파일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지난 1월 것부터 조사해봤는데... 2월에 처음 투숙한 것으로되어 있습니다.
2월부터 지금까지 열다섯번 투숙했습니다."
뚱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파일을열었다.
로비에 내려와 있던 염형사가가까이 다가와 곁에서 그것을보았다
파일 안에는 서창배가 지난 2월부터S호텔에 투숙했음을 입증하는 숙박카드가
열다섯 장이나 들어 있었다.
그와 함께컴퓨터를 통해 투숙일자를 날짜별로 분류한서류도 철해져 있었다
. 혹시나 해서 알아봐달라고 당직 지배인한테 부탁했던 것인데
예상했던 것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6개월 동안에 한호텔에 열다섯 번이나 투숙했다면
호텔직원에게도 웬만큼 얼굴이 팔렸을만도 한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서창배라는 이름으로 투숙했던사나이의 얼굴을
똑바로 기억하고 있는호텔 직원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기억하고 있다고 해야 고작해서 키가 크고잘생긴 것 같다는 정도였다.
자세히 기억하고있는 사람은 스카이라운지에 근무하고 있는
웨이터 안기홍이었다.
"왜 그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직원이그렇게도 없을까?"
염형사와 함께 호텔을 나와 유춘지의집을 찾아나서면서 뚱보가 물었다.
그의찌그러진 차는 엔진이 걸릴 때까지
쿠르륵쿠르륵 하고 잔뜩 쉬어빠진 소리를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가짜 주민증을가지고 돌아다니는 놈이
자기 얼굴을 쉽게기억시키려고 하겠어.
가능하면 호텔직원들하고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썼겠지.
같은 아파트동에 살면서도 몇년이지나도록 옆집에 사는 사람 얼굴도 모르는경우가 허다하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것도 같군.
그렇다면 안군이 기억하고 있는 정도가믿을만할까?"
엔진이 걸리자 그는 급히 차를 주차장밖으로 몰아갔다.
"내가 가만 보니까 그 친구 눈이 굉장히나쁜 것 같더라구.
웨이터니까 안경을 안끼고 있는 모양이야."하고 염형사가말했다.
"그렇다면 그쪽도 기대할 수없다는건가?"
"두고 봐야지.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거지?"
"아, 내가 말 안했던가."
뚱보는 염형사한테 특수우편물 수령증을꺼내보였다.
"이게 뭐야?"
"그래?"
"우체국에 알아봤어."
"우체국에 알아보면 쉽게 알 수 있지.발신자의 이름이 뭐야?"
"유춘지...서대문구 Y동에 살고있어.
수신자는 부산에 살고 있어.
남형사한테 연락했어. 웬 놈의 비가이렇게..."
뚱보는 차량의 홍수 속으로 거칠게 차를몰아나갔다.
이미 여기저기가 긁히고찌그러졌기 때문에 차를 신주 모시듯몰고가지 않아도 되었다.
고급 승용차를몰고가는 사람들이 뚱보를 향해 눈을흘겨댔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댔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에 젖을대로 젖어버린 도로가 함몰되어가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기때문에 날이 빨리 저물고 있었다.
이윽고 Y동에 들어선 그들은 먼저 그구역을 맡고 있는 파출소에 들렀다.
파출소 안에는 소장과 순경 두 명이 앉아있었다.
신분을 밝히자 젊은 순경이소장에게 그들을 소개했다.
중년의 소장은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나 그들을탐색하듯이 쳐다보았다.
"135번지면 어디쯤 됩니까?"
뚱보의 물음에 젊은 순경이 벽에 붙어있는 관내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135번지에 무슨 사고가 났습니까?"
깐깐하게 생긴 소장이 눈을 반짝이며물었다.
자기 관내에서 발생한 일이라면자신도 좀 알아야겠다는 태도였다.
"아닙니다. 사람을 좀 찾으려고그럽니다."
"여기가 135번지입니다."
젊은 순경이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짚어 보였다.
"개인주택입니까?"
"네, 주택입니다. 여기서 나가서오른쪽으로 한 200m쯤 걸어가다보면
담배가게가 하나 나올 겁니다.
그 가게를끼고 왼쪽으로 쭉 가시면..."
순경의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135번지면 슈퍼마켓하는 최사장집아니야?"하고 소장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관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신상카드가 비치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형사들은
거기서 더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다음에 찾아간 곳은동사무소였다.
동사무소에는 이미퇴근시간이 지난 뒤였기 때문에 당직근무자만이 앉아 있었다.
용건을이야기하자 동사무소 직원은 즉시135번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는 주민등록표를꺼내주었다.
Y동 135번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모두해서 8명이었다
. 세대주의 이름은최상수(崔相洙)였고 부인은이명애(李明愛)였다.
그 사이에 자식이 넷있었고, 그 외에 최상수의 노모와
그의처제가 동거인으로 되어 있었다.
유춘지란 이름은 없었다.
"괜히 헛다리 짚은 거 아니야?"
염형사의 말에 뚱보는 화난 표정으로머리를 흔들었다.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어.
등록이 안 돼 있는 동거인은 많다구."
"제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염형사의 빈정거리는 말에 뚱보는헛기침만 했다.
최상수의 집은 동사무소에서 가까운거리에 있었다.
그의 집은 네거리 코너에있는 3층 건물로
1층과 지하층은슈퍼마켓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2층은다방으로 임대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3층에다 살림집을 차려두고 있었다.
최상수는 외출중이었다.
그의 부인과노모가 형사들을 맞았는데 그녀들은
혹시동거인 가운데 유춘지라는 젊은 여인이있지 않느냐는 형사들의 맥빠진 질문에
그런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대답했다.
"슈퍼마켓 종업원들 가운데 그런 이름을가진 아가씨가 없을까요?"
"종업원이라야 네 명인데...유씨성을 가진 애는 없어요."
"그렇다면 혹시 말없이 행방을 감춘여자는 없습니까?"
이명애는 웃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뚱보는 마지막으로 피살자의 사진을꺼내보였다.
"이런 여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없는데요."
"모든 게 가짜투성이군."
"부산쪽도 아마 가짜일걸."
뚱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꽤나 심사가사나워져 있었다.
그전 같았으면 밖으로화를 터뜨렸겠지만 수사 생활에 이력이붙다보니
자신도 놀랄 정도로 참을성이많아졌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한동안 차 안에말없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다 극심한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빗방울이 자동차의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자꾸만 멀어져가는느낌이었다.
마형사는 의자를 뒤로 젖힌 다음 상체를눕히면서 눈을 감았다.
염형사도 그가 한것처럼 똑같이 상체를 뒤로 젖히고 나서두눈을 감는다.
마형사는 계속 사건을 생각하고 있었다.
수사가 끝나기 전에는 잠시도 거기에서생각이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 자신이더 잘 알고 있었다.
어제 S호텔에서는 두 건의 살인사건이일어났다.
두번째 사건은 오늘 드러났지만피살자가 죽은 것은 어제 오후의 일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 다 어제 같은 호텔안에서 살해된 것이다.
검시의의 말에따른다면 그것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살해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남자는 지하 주차장에서 불고기가 되어죽었고
여자는 방안에서 시체로발견되었다. 누가 먼저 죽은 것일까?
남자쪽 신원은 밝혀졌다.
그 두 죽음은서로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혀관계가 없는 것일까?
서로 독립된사건이라기보다는 서로 연관성이 있는사건들이 아닐까?
두 사건 모두 같은호텔에서 발생했고, 발생한 시간도비슷하지 않은가.
두 사건의 연관성을찾아내면 고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만일전혀 관계가 없다면 골치 아프다.
이리뛰고 저리 뛰어야 하니까.
빌어먹을.
용의자
해운대구 G동에 있는 A아파트 단지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지대에자리잡고 있었다.
단지가 워낙 커서나지막한 산 하나가 온통 아파트 건물들로뒤덮여 있었다.
일반 소시민들을 상대로지은 것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20평 내외의조그마한 아파트들이었다.
아파트 단지로 뻗어 있는 차도를 택시를타고 오르면서 보니
바다는 숫제검은빛이었고, ㅈ빛 하늘과 맞닿은수평선은 유난히도 선명해 보였다.
그러나그 선명함은 금방 흐려지더니 아파트 단지앞에 이르렀을 때는
수평선도 보이지 않게되었다. 빗발이 갑자기 굵어지고 있었다.
뒤로 거대한 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A아파트 10동 앞에서 택시를 내린형사들은 515호를 찾아
5층까지 이어져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아파트는 모두 5층높이로 지어져 있었고, 지은 지 오래 된 듯꽤 낡아 보였다.
각 동을 지키는 경비실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앞장서서 올라간 남형사가 먼저 515호의초인종을 눌렀다
. 안쪽에서 급하게뛰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누구세요?"하는 물음과 함께
이쪽의응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
낯선 사람들을 보고 젊은 여인이 놀라는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속이 비치는 잠옷바람이었고, 욕실에서 금방 나온 듯했고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색을 하고뛰어나왔다가 낯선 사람들을 보고
그만실망한 것 같았다.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의 풀어헤쳐진가슴쪽으로 쏠렸다.
그녀는 당황해서가슴을 여미며
"잠깐 기다리세요."하고는 안쪽으로 도로뛰어들어갔다.
젊은 형사들은 그녀의 농염한 자태에잠시 얼이 빠진 듯 서 있다가
그녀가사라지자 멋적은 미소를 나누었다.
"근사한데..."
플레이보이로 통하는 남형사가 참지못하고 한마디 하자 거한은 두 눈을껌벅거렸다.
잠시 후 블라우스를 위에 걸친 여주인이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김영대 씨댁입니까?"
"네, 그런데요."
"지금 계십니까?"
"안 계시는데요. 어디서 오셨는가요?"
그들을 쳐다보는 그녀의 두 눈에 약간두려운 빛이 나타났다.
"경찰입니다."
남형사가 신분증을 꺼내보이자 그녀의안색이 굳어졌다.
어느새 나타났는지그녀의 뒤에는 어린 소녀 하나가 매달려있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가요?"
"아, 좀 만나볼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실례지만 김영대 씨하고는 어떤사이십니까?"
"남편이에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그렇습니까. 부군께서는 어디가셨습니까?"
"서울 가셨는데요."
"언제 가셨습니까?"
남형사의 질문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어, 어제 가셨는데요."
"언제 오신다고 했습니까?"
"글ㅆ요. 오늘 내려오신다고했는데..."
그녀는 말끝을 흐리면서 형사들의 눈치를살폈다.
"안에 좀 들어갈까요?"
조형사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상대방의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밀고 들어가자
그녀는 당황해서 옆으로 비켜섰다.
조금은 들뜬 듯한 분위기를 지닌 매력적인여인이었다.
열댓 평쯤 되어보이는 작은아파트 공간은
그녀의 게으른 성품을말해주는 듯 꽤나 어질러져 있었다.
이렇다하게 값이 나가는 가구 같은 것도 눈에띄지 않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임시로거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집안분위기였다.
열린 방문 사이로 흐트러진침대가 보였고,
그 침대가 놓여 있는벽면에는 온통 여자의 나체 사진들이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여주인이 다급하게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그들은 더 이상그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좁은 거실에 놓여 있는 낡은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는 급히어질러져 있는 것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는 제 엄마만 따라다니고 있었다.
여주인이 차를 대접하려는 것을 형사들은사양했다.
그 대신 그녀를 자리에 앉게 한다음 그녀의 이름부터 물었다.
그녀는자신의 이름을 하종미(河宗美)라고 했다.
"부군께서는 무슨 일로 서울에올라가셨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빗어넘겼다.
"오늘 틀림없이 내려오신다고 그랬나요?"
"오늘쯤 내려오신다고 하면서올라갔으니까...아마 오실 거예요."
"김영대 씨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종미는 얼른 대답하지 못한 채머뭇거리다가 자신 없는 투로
"사업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무슨 사업입니까?"
그녀는 또 머뭇거렸다.
"아직 하지는 않고.. 앞으로 할거예요."
형사들은 서로 한번 쳐다보고 나서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재는 뚜렷이 하는 일이없습니까?"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그녀의 얼굴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나타나는 것을 보고 남형사는 다그쳐물었다.
"앞으로 하려고 하는 사업이란 건뭡니까?"
"레스토랑이에요."
"식당 말입니까?"
"네, 한식당이 아니고 카페식
"어디다 개업할 겁니까?"
"서울에다 할 거예요."
"개업일자는 언제입니까?"
"다음달 중순경이에요."
"그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셨나요?"
"네, 아마 그럴 거예요."
"유춘지 씨하고는 어떤 사이십니까?"
남형사는 느닷없이 엉뚱한 질문을던져보았다.
갑자기 정곡을 찌름으로써상대방에게 미처 거짓말할 틈을 주지 않기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빗나갔다.
"유춘지 씨가 누군가요?"
"유춘지 씨를 모르십니까?"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은 몰라요."
"유춘지 씨는 댁을 잘 안다고 하던데요."
"저를요?"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가 머리를가로저었다.
"전 그런 사람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댁의 부군하고 잘 아는사이인가 보지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녀의 얼굴에 경계와 의혹의 빛이나타났다.
"미안하지만 집안을 좀 살펴봐도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그 집안을 뒤져볼 수 있는수색영장이 없었다. 미처 그것을 준비하지못했던 것이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가요? 그분한테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별것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됩니다."
"좀 살펴보겠습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집안을 살펴보아도좋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수사관들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이미 일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녀가 안된다고 완강히 버티었다면 그들도 하는 수없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차를 밟아나갔을터이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그녀의 무응답을 자기들편리할대로 해석하고 일에 착수했던것이다.
사실 절차 같은 것은 시간을다투는 수사 실무자들한테는
수사를지연시키는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일 뿐일경우가 많다.
당하는 입장에서는인권문제를 들고 나오겠지만 말이다.
수사관들이 노리는 것은 오로지 하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체포하는 일이다.
살펴보겠다는 말의 유연성도 실제로는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안은 눈깜짝할 사이에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형사들은 집안을 샅샅이 뒤져대고있었고, 그들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은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고 있었다.
그들은마치 쓰레기를 뒤지는 것처럼 물건들을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집착력을 보이며 집요하게 뒤져대고있었다.
집 주인에게 무엇을 찾는다는구체적인 말도 없었다.
조형사는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안에는 겨울 옷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는 트렁크를 뒤집어 엎었다
. 쏟아져나온옷들을 뒤적여보다가 하나씩 집어들고
필요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 그것을 구석쪽으로내던졌다.
그 아파트에는 조그만 방이 두 개있었다.
하나는 안방이었고 그보다 작은다른 하나는 장난감 같은 것들이 널려 있는것으로 보아
아이 방인 것 같았다.
남형사는 침대가 놓여 있는 안방으로들어갔다.
그때까지 얼어붙은 듯 서 있기만하던 하종미가 재빨리 들어오더니
얼굴을붉히며 흐트러진 침대를 정리하기시작했다.
남형사는 잠시 벽면에 붙어 있는 여인의나체 사진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아주근사하군요."라고 중얼거렸다.
하종미는 더 이상 배겨내기가 힘들었던지홱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벽면에 어지럽게 붙어 있는 여인의 나체사진들을 외국 잡지 같은 데서 오려낸것들로
하나같이 팔등신 미녀들의 풍만한육체를 컬러로 찍은 것들이었다.
음부 같은곳이 고스란히 매력적으로 드러나 있는것으로 보아
플레이보이지 같은 잡지에서주로 골라낸 것 같았다.
하종미가 그랬을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남자쪽에서섹스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그랬을 것같았다.
남형사는 몸을 돌려 화장대 앞에 섰다.
화장대 위에는 여러 가지 화장품들이 가득놓여 있었다.
머리빗에는 긴 머리카락들이그대로 붙어 있었고,
재떨이 안에는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담배 꽁초에는 포도주 색깔의 립스틱이 묻어 있었다.
꽁초는 미제 켄트였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