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3일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 루카 6,20-26)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오늘 복음은 참된 행복을 가르쳐 주신다. 루카는 여덟 가지 복을 네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20절) 이것은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죄에서 가난한 사람, 악덕에서 가난한 사람, 세상 우두머리에게 빼앗길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요한 14,30 참조). 부유한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그분처럼(2코린 8,9 참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을 요약한다면, “우리가 몸과 마음, 모든 힘을 다하여 또 가진 것을 다해서 하느님께 충실하고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살이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에 불행하고 바보스럽게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보상받지 못한 것은 영원으로 그리스도께서 책임지고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현세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한 것은 좋은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행복과 네 가지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우선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을 향해 “행복하여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솔직히 그리 행복해 보이질 않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 눈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향해서는 “불행하여라.”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향해 좋게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을 통해, 또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왜 우리의 시선과 다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행복 선언의 주인공들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불행 선언의 주인공들은 무엇이든 채워져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굳이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며, 그 반대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과 함께하는 삶입니까?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고통과 시련,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