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금산 온천
지난해 양력 세밑이었다. 한 해가 가던 마지막 날 묵은 때를 씻어내고자 북면 온천장으로 갔더랬다. 빤짝 한파가 닥쳐 영하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 온도가 더 내려갔다. 이른 새벽길을 나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들판을 지나 백월산을 올랐다. 북사면 산등선 따라 오르니 휘몰아친 바람에 가랑잎이 날리고 볼과 귓불이 시려왔다. 추위에 인적이 끊겼고 산새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방학 기간이라 스무 날 넘게 산과 들을 누비고 있다. 모레면 설 연휴에 들게 된다. 며칠 전 단골 이발관을 찾아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나는 일 년 단 두 차례 설과 추석을 앞두고 이발을 한다. 남들에 비해 외모 치장에 드는 경비가 절약되는 셈이다. 이제 목욕을 할 차례다. 방학이면 본포로 나가 강을 건너 부곡 온천까지도 무념무상 걸어 가 목욕을 하고 온 날도 여러 차례다.
비가 예보된 일월 넷째 수요일이다. 부곡으로 걸어가기엔 날씨가 길을 막아 마음을 거두고 이른 새벽 첫차 운행 버스로 북면 온천으로 향했다.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에서 버스를 타니 몇몇 장정들이 보였다. 그들은 동정동에서 내렸다. 아마 인력센터를 찾아 날품을 팔러 가는 사람들인 듯했다. 감계 신도시를 지날 때 목욕 바구니를 챙겨 든 할머니가 두 분 타 종점까지 함께 갔다.
온천장 거리는 날이 밝아오지 않아 캄캄했다. 온천에 드니 지팡이를 든 등산 차림의 내 모습을 본 주인이 새벽에 마금산 산행을 마치고 오신 길이냐고 물어왔다. 날이 어두워 산행을 할 처지가 못 되어 목욕을 끝내고 오를 셈이라고 했다. 탕으로 드니 먼저 온 사람이 몇몇 있긴 해도 온천수는 깨끗했다. 내가 새벽에 온천장을 찾는 이유가 물이 깨끗할 때를 목욕을 하기 위해서다.
목욕을 끝내는 데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뜨려는 시각이지만 낮은 구름이 낀 흐린 날씨라 햇살을 볼 수 없었다. 노점에는 막걸리와 두부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지역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북면 막걸리를 한 병 샀다. 할머니는 내 차림새를 보더니 산에서 내려오실 때 여기 두부도 사 가십사했다. 나는 하산 방향이 달라 그럴 형편이 못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온천장 뒷길 모텔 골목을 지나 사기정고개로 올랐다. 사기정고개에는 마금산에서 천마산으로 건너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고소공포가 심한 나에겐 아찔한 구름다리였다. 그 구름다리를 건너면 천마산으로 가게 되는데 나는 마금산으로 올랐다. 마금산 꼭뒤는 무척 가팔라 초입부터 종아리 근육이 당겨왔다. 구름이 낀 춥지 않은 날씨라 등에는 땀이 흘러 잠바 지퍼를 풀어 내렸다.
정상부가 가까워지자 바위더미가 나왔다. 데크를 따라 정상에 이르니 표지석이 나왔다. 한자와 한글로 된 표지석이 나란히 두 개였다. 마금산(馬金山)은 마고산(麻姑山)에서 바뀐 이름이다. 마고할미는 천지개벽 신화에 괴력을 발휘하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인물로 그려져 있다. 부산 금정산 고당봉이 마고할미 전설의 현장이다. 제주도 선문대 할망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분포한다.
전망 정자에 오르니 사위가 훤히 드러났다, 북으로는 천마산을 비켜 낙동강이 흘렀다. 동쪽 들판 가운데 백월산이 우뚝했다. 삼국유사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전설이 서린 산이다. 남으로는 천주산이 작대산으로 이어졌다. 서쪽에는 상천을 넘어 창녕 일대 산들이 겹겹이 펼쳐졌다. 아까 노점 할머니에게서 산 곡차를 꺼내 잔에 채워 비웠다. 안주는 친구가 택배로 보내온 야콘을 깎아갔다.
마금산에서 옥녀봉을 향해 내려섰다. 신리 갈림길 쉼터에 노부부가 앉아 쉬고 있었다. 나이가 내보다 열 살은 많아 보였는데 아직 정정했다. 옥녀봉에 닿으니 산불감시원이 우두커니 서 있어 잠시 말벗이 되어 주었다. 비탈진 길을 따라 내려 단감과수원을 지나 신리 못에 닿았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승산 산기슭 지인 농장에 들려 안부를 나누고 라면을 끓여 같이 들고 나왔다. 2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