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을 가진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콧수염은 금세 사라질 거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콧수염은 홀씨로 날아가거나 닿거나 자랄 테니까. 어느 날의 폐허는 단 한 사람이 살아서 걸어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단 한 사람은 외롭고 쓸쓸하지. 고드름처럼. 정월엔 해돋이를 보러 갈 거야. 윤슬로 적은 이름은 출렁이겠지. 동해처럼. 깊고 푸른 물방울로 채워진 마음으로 동그랗게 흘러, 흘러.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별들. 별을 노래하자. 기억났어. 한 사람이 폐허 속에서 한 사람을 끌어올리지. 껴안지. 눈동자 속에서 빛나는 우리, 별자리를 궁리하지. 웅크린 뒷모습으로도 노래하는 별이 되자. 저 멀리서 별을 보는 네가 콧수염을 쓰다듬는 것처럼. 길게 숨을 내쉴 때 깊고도 푸른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아득하지만. 환하게 사방이 밝아올 때 공터엔 쓰레기와 낡은 가구, 폐차들이 즐비하지. 어젯밤 우리가 상상했던 공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 반짝일 리 없는 이것들이 어둠 속에서 우릴 자극하고 반짝이고 속삭였던 건 노래였을까. 꿈이었을까. 콧수염은 장난스럽지. 장미 섬과 지하철을 내려가는 계단과 조그만 삽을 꽂아 놓은 화분 속 흙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한없이 깊고 푸른 물방울처럼. 찢어진 마지막 장 만화처럼. 두 장의 사진을 맞대면 황홀하지. 비밀 같은 별자리가 펼쳐지니까. 이마를 흘러, 목덜미를 흘러, 한없이, 한없이
〈강주 시인〉
△ 2016년 '시산맥' 등단
△ 시집 '흰 개 옮겨 적기'
△ 정남진신인시문학상(2016), 동주문학상(2020) 수상
△ 2019년 대산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