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
다음검색
|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5년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입니다. 새해에는 모든 일을 지혜롭게 판단하고 새로운 도전을 가지고 모두의 꿈을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새해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사랑을 더욱 돈독히 하겠습니다. 다툼과 질시와 사악함으로부터 해방되고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연습 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서로가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며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 힘든 일은 서로 격려하며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힘이 들 때 거들어주고 아픈 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하여 위로하는 법을 배우고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으로 잡아주고 밀어주는 힘이 필요합니다. 지난 해의 잘못된 폭발적인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집니다. 내가 먼저그리하도록 노력한다고 송구영신 예배시간에 하나님앞에 드린 기도였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한 해도 그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025년 아침에...... 아프리카 남은 여행기 보내드립니다. 5일차 2024년 11월 10일 일요일 흐림 오늘은 주일이다.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아침에 아내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여지껏 보호하심도 감사하고 앞으로도 건강하여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 달라는 우리들을 위한 기도였지만 진심으로 드리는 감사의 기도이기도 하였다. 호텔의 모든 퇴소 절차를 마치고 우린 워터프론트 방향으로 출발한다. 출발하는데 200미터 앞에 군악대들이 모여 행사장을 꾸미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가 1950년 한국 전쟁 때에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파병했던 전사자들을 기념하는 곳이란다. 입구에 총검을 겨누며 전쟁에 나가는 모습의 군인 동상이 서 있다. 남아공이 우리나라와 관계가 깊은 것은 우리가 위기에 있을 때 젊은 군인들이 파병하여 자기 나라도 아니지만 자유를 위해 몸 바친 숭고한 정신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이 숭고한 정신을 생각하면 백인들은 흑인이 사는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이 흑인들을 괴롭힌 전쟁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고 만델라 대통령과 같은 사람을 통해 지금처럼 자유를 찾게 한 일을 해 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원래 이곳 케이프 타운은 펄로 덮인 곳이었는데 메꾸고 해군기지로 사용하던 곳을 해군기지가 옮기는 바람에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고 빅토리아 여왕과 알프레드 왕자를 기념하는 첫 글자를 사용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한 로열 페밀리를 기념하여 이곳이 지금은 큰 항구와 쇼핑센터로 되었다. 매립지에 컨벤션 시티 홀을 만들어 사용하고 광장 입구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네 명의 동상과 그 앞에 11명의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이 길 보도위에 적혀있지만 지금은 그들이 11명의 이름자 위에 강아지와 개를 보관하는 영업을 해도 누가 무어라는 사람이 없다, 사진을 한 번 찍어둔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한강 작가가 노벨 문화상을 수상했으니 한강 입구에 한강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하는 공간도 만들었으면 그 이름이 오래 기억된 듯하다. 워터세이트에는 세이트 웨어, 다이아몬드 박물관, 컨벤션센터 등이 있지만 입장료도 받고 시간도 없으니 거기는 관람은 포기하고 가이드의 인솔로 시내 투어를 한다. 특산물을 소개하는데 캅포 크림은 아토피 환자나 다리나 몸에 통증이 있는 사람이 바르는 좋은 약이라고 하며 그 외에도 현지산 커피와 루이버스 차, 아마룰라 초코릿과 술, 관절에 좋다는 악마의 발톱 등 관절약이 우리나라보다 10배 정도 싸고 효과도 있다고 한다. 11시 20분에 만나기로 하고 각자 행동으로 들어간다. 나는 아내와 같이 아토피 약을 구하러 슈퍼에 들어갔으나 글씨도 그렇고 지식도 없어서 한참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나왔는데 내가 시내를 한 번 돌아다니는 동안 아내는 물어물어 그 약을 구했다고 한다. 내가 상품을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는 5만원이 넘는 금액을 여기서는 5천원에 구입하는 결과가 되었다. 아내의 눈이 대단하다.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모이기 시작했는데 우리 일행 여자분이 가이드를 불러 선그라스를 매장에 놓고 왔다고 하여 다시 오던 길을 달려갔고 우린 버스 있는데로 오더니 결국은 그 선글라스를 찾았다고 안색이 돌아왔다 버스로 공항까지 간다. 20-30분이 소요된다. 가이드는 자기의 이곳 남아공에 오게 된 소개를 하고 지금은 아내와 같이 선교활동도 하면서 만족한 가이드를 하고 있고 아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군애 입대하여 조금 있으면 제대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군대에서 휴가를 남아프리카로 오는데 왕복 항공료를 한국에서 부담해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때는 아들을 이곳에 초대하여 식구들과 남아공 여행을 한다고 하며 그 시간에는 가이드 일도 하지 않게 휴가를 냈다고 한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국수속은 대체로 쉬웠다. 염려로 가지고 다니던 물을 아내와 같이 거의 억지로 다 마셔버렸는데 그럴 필요까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났다. 티켓도 여권만 제시하면 바로 나오고 화물도 잘 부쳤다. 내가 가지고 있던 화물도 검색대를 그냥 통과하는 것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기내식을 준다. 종업원은 키 큰 남자 안내원과 여자 아내원 둘이서 모든 일을 다 한다. 점심시간이 늦어져서 오후 세 시가 넘어서 준다. 종이 상자를 열고 은박지 도시락 하나를 넣어 주는데 열어보니 감자 익힌 것에 고기 몇 점 들은 수프와 감자 튀김, 그리고 식빵 작은 것 두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물이나 음료를 단 한 번 준다. 먹어보니 내 입맛에 딱 맞아서 구석구석 남김없이 먹고 먹은 종이상자는 구부려 두었다가 승무원이 커다란 비닐 봉지를 가지고 오면 거기에 넣으면 만사 오케다. 벌써 가난한 기분이 들어서 잠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뿐 비행기 날개 아랫부분에 앉았으니 오히려 안에 앉는 것이 좋을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비행 하는 동안 잠시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니 황량한 벌판 나무도 없고 길도 없고 사람도 없고 농사짓는 땅도 아닌 곳을 지나기를 한 시간이 넘게 지난다. 그리고 그 다음은 풀 한 포기 없이 모래만 있는 곳도 지난다. 두 시간이 경과하자 비로소 길게 벋은 도로가 보이더니 사막 뒤에 푸른 나무 숲도 보이면서 황량한 곳에서 기수를 땅으로 내리는 것을 본다. 어? 비행장인가? 그러더니 한참만에 아스팔트 활주로에 비행기는 사뿐히 내려 앉는다. 비행장에 우리 비행기 한 대밖에 다른 비행기나 부속 건물이 없다. 내려서 보니 더 황량하다. 걸어서 입국수속장으로 간다. 긴장할 필요가 없다. 여권도 보지 않고 입국 서류 하나만으로 해결된다. 다음에 비자를 받아야 한다. 한 사람당 50불을 내고 여권을 주니 비자를 발급하는데 더 신기한 것은 비자증을 볼펜으로 써서 내 여권의 한 페이지에 붙인다. 내 담당직원의 볼펜이 잘 나오지 않자 옆의 여자직원의 볼펜을 빌려서 쓰는데 그 볼펜도 잘 나오지 않자 입으로 호 불어서 겨우 내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물건을 찾는 데는 더 간단하다. 내리는 길옆에 화물 컨베이어 벨트가 보였는데 거기에 비행기에서 화물이 나오면 바로 던져 넣으면 안에 있는 우리가 찾는 것이고 시간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 쉽게 우리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공항 밖에는 현지 가이드와 버스 기사가 우리를 기다린다. 필스 가이드와 자브 기사다. 부드럽고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고 마음이 좋은 느낌을 준다. 말씨도 무척 부드럽다. 우리 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다. 짐바브웨 국민들이 거의 모두가 마음이 착한 사람들이라던데..... 대형버스인데 우리 김재구 가이드는 마이크가 잘 나오고 큰 버스가 한 대 있어 우리는 행운이라고 농담도 하였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6시 30분이면 일몰이라고 한다. 아스팔트 길을 들어서부터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아프리카의 환경들이 나타난다. 마른 대지에 맨발로 걸어다니는 소년들, 머리에 작은 보따리를 이고 걸어가는 아주머니들, 작은 나무가 끝없이 펼쳐지는 농사도 짓지 못한 초원들이다. 얼마 가지 않아 짐바브웨 국경이란다. 여기서 여권을 발급받는다. 도로 위에 칸막이 가는 철문이 있고 두 사람이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거기 헙수레한 사무실이 있고 우리가 줄을 서서 여권에 찍힌 비자를 보이면 거기에 도장을 찍어주는 직원이 있고 비로소 수속이 마쳐진다. 손으로 쓴 서류들이 한쪽에 쌓였다. 입국 서류를 모아 둔 장부들이다. 1킬로쯤 가면 잠비아 국경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가 나타난다. 얼핏 작은 내와 같은 모습이지만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엄청 깊은 계곡인데 여기는 폭포 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통과한다. 거기 다시 입국 여권을 제시하고 어둑한 좁은 길을 가면 우리가 묵을 호텔이 나온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7시 10분에 빅토리아 폭포를 보러 간단다. 호텔은 우리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호텔로 손색이 없는 훌륭한 호텔이고 음식도 내가 여지껏 먹은 음식 중에 최고였다. 적당히 익은 쇠고기 튀김이 그렇고 과일들이 입에 맞는다. 아내는 조금 질기다고 하지만 나는 그게 정말 맛이 있다. 내일 일정을 알려주고 방을 배정받는다. 671호실. 크고 에어컨이 추울 정도로 세게 틀려 있고 침실에는 얇은 커튼이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왕의 침실같다. 2박 3일 여기서 생활한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인터넷과 전기 코드와 목욕탕 물이 콸콸 나오는 멋진 호텔이다. 역시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씻고 잠에 들어간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부한 집바브웨에 대한 내용들(가이드 설명을 덧붙임) 리빙스턴(Livingstone)은 잠비아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남부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97,000명(2002년 기준)이다. 잠베지강 좌안과 짐바브웨 국경 인근에 위치하며 빅토리아 폭포에서 북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한다. 잠비아 공화국(Republic of Zambia)은 아프리카에 있는 내륙국으로 수도는 루사카이다. 북쪽으로 콩고 민주 공화국, 북동쪽으로 탄자니아, 동쪽으로 말라위, 남쪽으로 모잠비크,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 서쪽으로 앙골라와 국경을 접한다. 잠비아의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0만년전부터 인간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루사카 북부지역인 카브웨에서 발견되었다. AD 1000년경부터 시작하여 스와힐리-아랍 노예무역상들이 아프리카의 동부해안에 있는 도시국가에서부터 점차 잠비아 지역으로 스며들어 오게 된다. 잠비아 서부 바로첼란드의 지배적 부족 로지족의 전승에 의하면 그들의 조상알루이족은 룬다족 기타의 종족들과 함께 11세대 전의 조상인 신 니얀베에게 이끌려 북서쪽에서 이동해와서 카푸에강 유역을 중심으로 현재의 앙골라 동부에서 보츠와나 북부에 걸친 바로체 왕국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1798년 포르투갈인이 처음으로 이 지방을 횡단하였으며, 알루이족은 1838년 북상해 온 코롤로족에게 정복당하였다. 1850년 이 지방을 탐험한 D.리빙스턴은 이 지방을 바로첼란드라고 불렀다. 알루이족은 그 후 1864년 코롤로족을 격파한 뒤 로지족이라 자칭하고 왕국을 마로지라고 칭하여 재흥하였다. 그 때 추장(국왕)인 레와니카는 S.로즈의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와 협정을 맺고 광업권 등을 주었다.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는 그 광대한 지배지역을 로즈에 연유하여 로디지아라 불렀으나 1911년 남·북로디지아의 통치를 분리, 북로디지아는 1953년에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그 후 남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 니아살랜드(현재의 말라위) 사이에 연방화의 움직임이 일어나 1945년에 성립된 중앙 아프리카 심의회를 거쳐 1953년 8월 로디지아 니아살랜드 연방이 성립하였다. 남·북 로디지아는 통화를 비롯하여 철도·항공사업·카리바댐 건설 등 많은 공동사업으로 결합을 굳혀 갔으나 케네스 카운다가 지도하는 잠비아 아프리카민족회의는 남로디지아의 백인정권을 위한 연방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남부의 내륙국으로서 고평원이며 언덕과 산지대뿐만 아니라 강과 계곡도 많이 있다. 전체 면적으로는 세계에서 39번째로 큰 나라이며 미국 텍사스주보다 약간 큰 정도다. 잠베지 분지 내에는 주요 강이 다 흐르는데 카봄포강, 렁웨봉구강, 카푸에강, 잠베지강이 있는데 서쪽으로 흘러서 남쪽으로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로 흘러간다. 발원지가 잠비아인데 앙골라로 흘러가며 많은 지류 또한 앙골라 중앙지대로 흘러간다. 잠베지강의 가장 큰 두 지류인 카푸에와 루안과 강은 잠비아 안으로 전체가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카푸에 강은 짐바브웨와의 국경선 근처에서 합류하며 그 직전에 루안과 강은 모잠비크 근처에서 합류하여 모잠비크 해협으로 들어간다. 잠베지강은 빅토리아 폭포로 흘려가며 잠비아의 남서쪽으로 흘러가는데 일부는 카리바 호로 흘러가기도 한다. 종교는 기독교(주로 가톨릭) 비율이 반 이상이고, 그 외에 이슬람교, 힌두교, 전통 종교 등이 있다. 국민의 약 2/3가 기독교도이지만 대부분이 전통적인 애니미즘과 결합되어 있다. 잠비아의 무수한 전통음악은 아주 리드미컬하며 대개 북, 휘파람, 손가락 피아노로 연주되며 거의 항상 춤과 같이 연주된다. 그러나 가장 대중적인 형태의 하나는 콩고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들어온 룸바다. 포리지(오트밀에 우유또는 물을 넣어 만든 죽)는 잠비아의 주요음식으로 대개 옥수수나 사탕수수로 만든다. 잠비아의 기아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매년 아일랜드의 NGO인 컨선월드와이드,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가 협력하여 발표하는 세계기아지수에 따르면 2016년 잠비아의 기아지수는 100점 만점 중 39.0점으로 가장 심각한 기아점수를 기록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46.1점과 비교해봐도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조사 대상이었던 118개의 개발도상국 중 116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상당한 기아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짐바브웨는 2007년 이후로 엄청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당시 미화 1달러가 200억 짐바브웨 달러가 될 정도로 화폐가치가 폭락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환율을 보자면 미화 1달러에 1,300~1,400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으니 짐바브웨 달러의 경우 그 단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폐 기능을 무산시키는 극심한 물가상승 인플레이션은 물가수준의 지속적인 상승을 말한다. 물가수준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화폐의 가치는 하락한다. 일반적으로 연간 물가상승률이 수백 %를 넘으면 초인플레이션 라고 판단한다. 짐바브웨의 경우도 초인플레이션에 속한다. 계란 3개 구입을 위한 1,000억 단위의 지폐 최근 전국적으로 극심한 조류인플루엔자 질병으로 인해 국내 계란 가격이 크게 올랐다. 계란 한판도 아닌, 단 3개의 계란을 구입하기 위해서 1,000억이라는 단위의 지폐를 사용해야 했던 나라가 바로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짐바브웨라는 국가다. 짐바브웨는 2007년 이후로 엄청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6일차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비 후 갬 오늘의 관람 코스는 잠비아-빅토리아 폴스로 이동했다가 다시 빅토리아폴스 짐바브웨 편으로 이동하는 관광이다, 호텔(ELEPHANT HILLS RESORT)에서 7시 20분에 출발한다. 호텔은 넓고 주변경관도 아름답다. 엔터넷도 잘 되고 룸의 전기시설이라든지 화장실도 나무랄데 없다. 에어컨도 잘 작동되어 빨래가 하루 밤 자고 나니 잘 말라있다. 아침 창문을 여니 잠베이지 강의 느린 흐름과 호텔 앞의 웅장한 원시림의 큰 나무들이 열병식처럼 정원을 지키는 듬직한 호위를 받으면서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어제 저녁은 황소개구리들이 그렇게 능청스럽게 울어대더니 창문에 느리고 조용한 비가 내린다. 처음 보는 비였다. 아침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밤에 바람을 쐬러 베란다를 열였더니 원숭이 네 마리가 달려들더니 한 마리가 방 안으로 순식간에 뛰어들어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와 멧돼지가 무리 지어 정원을 돌아다니던 것을 사진을 찍어 확인시켜주는 대원도 있었다. 출발하면서 가이드가 하루 일정을 소개한다. 오늘 이동은 잠비아-빅토리아 폴스로 이동했다가 다시 빅토리아폴스 짐바브웨 편으로 이동하면서 국경을 두 군데 넘으면서 여권 검사와 입출국 수속은 네 번이나 받는 날이란다. 서류는 본인이 직접 작성해야 한다고 버스 안에서 가이드와 함께 한 줄씩 여권을 내어 놓고 작성한다. 처음 여권을 신청할 때 1인당 2.5불 그러니까 두 사람당 5불을 내야 한단다. 과연 입국 수속이 복잡하지는 않은데 내려서 심사받고 다시 타고 하는 과정이 복잡하다. 우리 일행중에 초등학고 3학년 학생이 있는데 영어로 된 가족관계증명서가 없어서 한참 실랑이를 했다. 원래 만들어서 헨드폰에 저장을 했어도 실제로 가지고 와서 제출해야 한다면서 5분 정도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가이드가 5불을 관계자에게 살짝 건넴으로 통과하게 되다. 초베공원 초베 국립공원(Chobe National Park)은 보츠와나의 첫 번째 국립공원이자 생물학적으로 가장 다양하다. 보츠와나의 북쪽에 위치한 이 공원은 중앙칼라하리 수렵금지구역과 칼라가디 트랜스프론티어 공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공원으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가장 많은 사냥감이 집중되어 있는 곳 중 하나다. 이 공원에는 주로 송아지나 어린 코끼리, 그리고 야성체들을 잡아먹는 사자 무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멧돼지, 코뿔소, 임팔라, 버팔로, 치타, 표범, 코끼리, 악어, 하마 등에서 최고 많이 볼수 있는 보호종들이 여기에 서식한다. 우리 차에서 내려 2대의 짚차에 올라 여정을 시작한다. 지붕이 덮여있고 다소 높은데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의 보호장치가 없다, 길 옆의 광경은 1시간 가는 동안 거의 똑같은 모습이다. 작은 나무 숲이 펼쳐지는 초원인데 아직은 봄이라서 잎사귀에 잎이 나지 않아황량한 것처럼 보인다. 이 지역의 원래 거주자들은 산 부시먼족(보츠와나의 바사르와족으로도 알려져 있다)이었다. 그들은 과일, 물, 야생 동물과 같은 식량 공급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는 유목민이었다. 20세기 초, 보츠와나가 될 지역은 다른 토지 소유권 제도들로 나뉘었다. 그 당시에, 공원 면적의 주요 부분은 영지로 분류되었다. 다양한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관광을 촉진하기 위한 국립공원의 아이디어는 1931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듬해 초베지구 주변 2만4000km2가 미수렵지역으로 공식 선포됐다가 2년 뒤 3만1600km2로 확대됐다. 초베 국립공원은 공식적으로 1960년에 만들어졌지만, 처음에 원했던 것보다 작았다. 1967년에 보호구역은 국립공원으로 선포되었다. 그 당시 이 지역에는 몇몇 산업 정착지가 있었는데, 특히 목재 산업이 번성했던 세론델라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 정착지들은 점차 공원 밖으로 옮겨졌고, 1975년이 되어서야 보호구역 전체가 인간 활동으로부터 면제되었다. 오늘날 세론델라에서는 이전의 목재 산업의 흔적을 여전히 볼 수 있다. 그 공원은 1980년과 1987년에 소규모로 확장되었다. 이 공원은 약 13만 마리로 추정되는 코끼리 개체수가 많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 사는 코끼리는 칼라하리 코끼리인데, 알려진 코끼리 중에서 가장 큰 무리 크기다. 그들은 아마도 토양의 칼슘 결핍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다소 부서지기 쉬운 상아와 짧은 엄니로 특징지어진다. 많은 수의 코끼리로 인한 피해가 일부 지역에 만연해 있다. 사실, 도태가 고려되어왔을 정도로 초베 전체에 걸쳐 집중되어 있지만, 너무 논란이 많고 공원 관리자에 의해 지금까지 거부되어 왔다. 건기에 이 코끼리들은 초베강과 린얀티강 지역에 거주한다. 장마철에, 그들은 공원의 남동쪽으로 200킬로미터 이동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포 지역은 공원보다 멀리 떨어져 짐바브웨 북서부로 퍼져나간다. 초베 국립공원의 도로 상황은 계절과 강우량에 크게 좌우된다. 공원을 여행하려면 4x4 차량이 필요하다. 건조한 달 동안, 특히 기온이 상승하고 우기에 강 근처의 도로가 진흙탕이 되면서, 두꺼운 모래가 조베 강 전선에서 문제가 된다. 한 시간 걸려서 우리들은 잠베지 강가의 카페에 도착한다. 여기서 찬 한 잔 하자는 곳인데 음료는 무제한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맘껏 마신단다. 알고 보니 여기서 우리는 잠베지강의 유람선에 올라 초원의 동물들을 관람하는 곳이었다. 정원에 많은 나무들이 있었고 망고나무에 아직은 퍼런 망고들이 주렁주얼 열려 있었다. 차를 마신 후에 조금 내려가면 강가에 띄워놓은 유람선이 나타난다. 이곳이 잠베이지 강의 초원이다. 잠베지강은 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긴 강이다. 실제로 잠베지도 긴 강이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인 빅토리아 폭포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잠비아가 영국령 북로디지아였던 시절에는 이 지역도 북로디지아 (현재의 잠비아) 영토였으나 1880년대 내내 남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영토 갈등으로 싸우던 영국과 포르투갈 사이에 결국 조약이 맺어지면서 이 지역만은 앙골라 (당시에는 포르투갈령이었다) 몫으로 돌아간 것. 영국은 이 지역을 떼어주는 대가로 또다른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의 항구에 조차지를 건설할 권리를 얻어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영국이 유리한 조약이었다. 길이는 2,574km이고 잠비아·콩고민주공화국·앙골라·나미비아·보츠와나·짐바브웨·모잠비크·말라위·탄자니아 세계 유일의 사합점인 카중굴라 지역이 이 강을 경계로 한다. 초베강을 우리 배는 한 쪽에는 보츠나와 땅이고 반대쪽은 나미비아라고 하는 중간지점을 관람한다. 넓은 강의 중앙에는 넓은 섬이 있고 그 섬 안에는 버팔로라고 하는 들소와 하마와 악어 그리고 각종 새들이 보인다. 강 옆에는 악어가 나와서 일광욕을 즐기는데 우리가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오수를 즐긴다. 그 옆에는 암펠라 가족들이 떼를 지어 와서 물을 마신다. 사잔에 보면 이 암펠라 가족들이 물을 마시러 왔을 때 악어가 살살 다가가서 한 마리를 낚아 채는 장면도 보았다. 버팔로는 가면서 더 많은 무리가 되어 장관을 이룬다. 더 가면서 코기리 많은 무리가 나와 있는 장면을 본다. 작은 코끼리 한 마리가 물가에 있어니 우리는 보란 듯이 코로 장난을 친다. 코를 빙빙 돌리더니 자기 이빨을 감아 올린다. 이빨을 닦는 것 같다. 그러더니 발로 코에 진흙을 덮더니 코를 들어 뒤로 뿌리니 자기 둥까지 휙 진흙과 물을 뿌려댄다. 그러더니 이제는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나와 유유히 자기 무리들에게 다가간다. 훈련된 사육장의 코끼리보다 더 재롱을 많이 부린다. 하마떼가 작은 섬처럼 움직인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대장을 중심으로 일렬로 섬쪽으로 이동도 한다. 뭉쳐 떠 있으면 강 가운데 있는 돌섬처럼 보인다. 망원경으로 보니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섬을 감돌아 여기저기 우리처럼 관람하는 배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본다. 사진밖에 남을 것이 없어서 장면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2시간 반동안 우리는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한다. 배가 내리는 곳이 우리들이 점심을 해결할 식당이다. 중앙에 엄청 큰 정원수가 있고 빙 둘러 식당과 주변 건물들이 있다. 지붕을 보면 초가지붕인데 가는 철망으로 덮혀 있고 갈대로 엮은 지붕이 튼튼하기 이를 데 없다. 식사는 부폐라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고 가져다 먹는데 싱싱하고 맛이 있지만 나는 고려하여 되도록 적게 먹는다. 지프에 올라 흰개미 집을 찍으려고 한참을 준비하여 겨우 한 곳을 찍을 수 있었다. 기사가 어찌 빨리 달리는지 사진기를 들면 그 장면이 지나가 버린다. 마지막 출국 수속을 하고 나오는 순간 내 카메라가 지프 의자 앞의 주머니에 넣고 그냥 내린 것이 생각나서 급히 가이드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했다. 기사는 즉시 이곳 검사원에게 이야기하고 그는 바로 전화로 내가 탔던 짚차의 운전수에게 연락하여 한참 뒤에 내 핸드폰은 나의 손으로 들어왔다. 아 조심하고 조심해야지 하는 안도감과 일행들에게 미안한 맘도 들어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차는 출발한다. 다음이 짐바브웨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다. 두 나라에서 관람할 수 있는데 집바브웨 쪽이 훨씬 좋은 광경을 볼 수 있아. 가이드는 1번에서 15번까지 관람이 가능하지만 12번 이후는 별 의미가 없다고 일러주면서 동행한다.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 잠베지강에 위치한 폭포다. 빅토리아 폭포는 스코틀랜드인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이것은 짐바브웨에서 사용 중인 이름이다. 더 오래된, 토착 이름인 모시오아툰야 폭포(Mosi-Oa-Tunya, 뜻: 천둥소리 내는 연기)는 잠비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 중이다.세계 유산 목록은 두 이름 다 인정한다. 빅토리아 폭포는 너비 1.7 킬로미터와 높이 108 미터의 규모다. 일반적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와 이과수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라 불린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이 폭포를 기록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토착민들은 훨씬 전부터 폭포의 존재를 알았다. 리빙스턴은 폭포 중앙에 있는 잠비아의 리빙스턴 섬에서 폭포를 기록했는데, 이 곳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폭포 중간의 땅이다. 여기서 폭포를 관찰한 리빙스턴은 당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 이름을 지었다. 영국인들이 식민지 시절에 지은 이름이라고 종종 이름을 바꾸자고 현지에서 반발도 일어나곤 한단다. 그렇지만 이 폭포를 보러올 때 기점이 되는 인근에서 가장 큰 잠비아의 도시 이름부터가 리빙스턴인 걸 생각하면 쉽지는 않을 듯하다. 빅토리아 폭포는 어떻게 보면 어느 부분에서도 최고는 되지 못하는 애매한 폭포이기도 한데 앙헬 폭포처럼 가장 높은 폭포도 아니고 이과수 폭포처럼 가장 넓은 폭포도 아니지만, 폭과 높이를 고려하면 매우 큰 폭포다. 폭x높이를 계산하면 가장 크다는 주장까지도 있지만, 곱해도 이구아수 폭포한테는 어차피 상대가 안된다. 연 평균 수량도 나이아가라 폭포한테 밀린다. 최고 수량의 역대기록만이 유일하게 1위. 사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폭포의 아름다움이니 수량의 순위가 크게 중요하진 않다. 폭포의 수량은 계절에 따라 크게 변하는데, 특히 우기인 4월에 절정에 이르며, 그때는 1분에 5억 리터 이상의 물이 폭포를 따라 떨어진다. 반면 10월부터 11월의 건기에는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일부 구간에서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으며, 이 시기에는 바닥을 걸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도 가능하다. 이러한 건조 시기에는 폭포의 절벽과 그 아래에 형성된 협곡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그 자체로도 감동적인 풍경을 제공한다. 우리가 도착한 이 폭포는 상류지방에 가뭄으로 인하여 수량이 부족하여 최저위 수량이어서 웅장함이 그리 크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폭포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폭포의 수원인 잠베지 강 중간 중간에는 나무가 자라는 섬들이 있는데, 폭포 근처에 가면 점점 더 많아진다. 이 폭포는 강물의 폭 전체가 한번에 쭉 떨어지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그 폭은 1,708m에 이른다. 빅토리아 폭포에는 산이라든가 계곡이라든가 하는 험준한 지형이 없이 사방 수백 km가 평지가 계속돼서, 물이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지형이다. 물이 떨어지면서 생성되는 엄청난 물보라가 수백 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최대 50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찾아가는 길은 잠비아, 짐바브웨 모두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두 나라 모두 폭포 근처에 관광의 거점이 되는 도시가 있다. 잠비아의 리빙스턴은 인구 10만 명 정도의 도시로 국제공항도 있고 있을 것은 다 있어 대개 이쪽을 통해 접근하게 된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폴스는 인구 3만 명의 도시로 리빙스턴에 비하면 작지만 국제공항이 있고 관광용 인프라가 잘 되어 있다. 이쪽은 리빙스턴과는 달리 폭포에 붙어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아주 가깝다. 폭포가 워낙 긴데다 국경이 폭포 가운데를 지나가기 때문에 잠비아쪽에서 보는 폭포와 짐바브웨쪽에서 보는 폭포의 풍광이 다른데 짐바브웨쪽에서는 폭포의 대부분을 정면에서 보며 이동할 수 있지만, 잠비아쪽에서는 폭포의 일부분을 그것도 측면에서만 보게 된다. 2019년 12월, 가뭄으로 폭포가 말라버렸단다. 폭포 유수량은 1977년도 조사된 수치 1/60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빅토리아 폭포 주변 지역 야생동물도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빅토리아 폭포에서 북동쪽으로 450㎞ 떨어진 마나 풀스 국립공원은 가뭄으로 인해 황무지로 변해 먹이와 물을 찾지 못한 동물들이 쓰러지고 있다고 한다. 4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인하여 주변 나라들은 식량난에 빠지고 있는데 관광자원인 폭포조차도 말라서 관광객들이 실망하고 돌아가고 차츰 관광객들이 줄어서 가이드들도 비상이 걸렸다. 그러다가, 2020년 4월에 폭우로 다시 제 모습을 되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기타 빅토리아 폭포에서 서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잠비아의 카중굴라Kazungula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데 이 마을은 세계에서 유일한 4개 국가의 국경이 한 점에 만나는 곳으로 유명하다.(잠비아, 짐바브웨, 나미비아, 보츠와나) 구글 지도를 최대한 확대해보면 완전히 붙어 있지는 않은데 잠베지 강을 사이에 두고 잠비아와 보츠와나가 마주보고 있으며 강 중간쯤으로 나미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이 들어와있다. 자연 빅토리아 폭포 중간에 툭 튀어나온 리빙스턴섬의 왼쪽이 짐바브웨 쪽이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며, '그레이트 짐바브웨' 석조 유적군도 유명하다. 이 유적은 쇼나족이 건설한 것이지만 과거에 짐바브웨를 식민지로 삼았던 백인들은 열등한 흑인들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없다고 믿고 이곳을 '솔로몬왕의 금광 유적'이라 생각해 도굴꾼이 유적을 싹 쓸어 갔으며, 그 뒤로도 시바 여왕의 궁전이라거나 아랍인이 지은 것이라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며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학자들을 방해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발견된 새의 조각상이 짐바브웨 국기에 그려져 있다. 자연 상태 자체는 무척이나 잘 보존되어 있는데, 짐바브웨 특성상 미개발 지역이 많고 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사바나 평원이 전국적으로 펼쳐져 있어 많은 동물학자들의 로망 국가가 되고 있다. 1980년 독립한 이래로 로버트 무가베가 쭈욱 장기 집권하고 있었다.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를 거두었으며, 대선 1차 투표에서도 야당 대표인 모건 창기라이가 승리하는 등,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뻔했다. 이후 2013년 대선에서는 무가베가 61.9%로 여유롭게 당선되었다. 2009년 워싱턴 포스트지 주말 매거진 퍼레이드에서 세계 최악의 독재자에서 당당하게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정부패가 널리 알려져 있는 독재자인 만큼 짐바브웨 사람들 모두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무가베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대선에서 무가베를 찍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봐도. 이에 대해서 짐바브웨의 후진성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가베가 독립 영웅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나와 우리는 선상크로즈를 즐긴다. 일몰의 모습이 아름답단다. 강물은 많고 흐름은 느리고 강 주변에는 낮에 보았던 그 광경이 다시 나차난다. 해질 무렵에는 얕은 구름이 끼어 일몰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하늘과 구름과 물과 주변의 숲이 어루러져 피곤한 몸을 의자에 눞힌 채 한참을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우리들은 호텔 근처에서 화화로운 식사를 한다. 통돼지 바비큐와 버팔로 구이와 악어 구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음식이 제공되고 화려한 무대 연극이 되지만 우린 관심이 없고 음식만 대강 먹은 뒤에 호텔로 돌아온다. 오늘의 멋진 광경이 꿈에 나타날 듯한 하루였음을 감사한다. 7일차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맑고 흐림 빅토리아 호텔 조식 후 헬기투어를 한다. 그리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우린 경치를 보며 초원을 달려간다. 가는 길을 따라 기찻길이 보인다. 케이프ㅡ타운에서 짐바브웨까지 놓인 철로는 금을 나르기 위해 만든 철로라 한다. 차창밖으로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세상에 나는 수평선은 많이 보았지만 산과 바다를 제외한 들판으로만 이루어진 지평선은 본 지가 오래다. 마치 연필로 선을 그어놓은 듯한 아마득한 지평선 끝은 아디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활한 땅이다. 헬기장에 도착한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어서 다소 놀랐다. 헙스레한 건물이 한 채 나타나고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은 벽돌이 깔린 바닥의 흙을 긁어 수레에 퍼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10여 미터나 자라는 선인장이 두 군데 있었다. 어찌나 크고 싱싱한지 아내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우린 네 조로 나눈다. 헬기 한 대에 네 명이 타기에 사업하고 돈 많은 일행과 한 조가 되었다. 키 큰 직원 하나가 벽에 걸린 주의 사항과 배행 경로가 사진으로 인쇄된 벽걸이 앞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발음으로 비행데 대한 주의 사항을 설명한다. 여기 헬기 한번 오르면 170여 달러가 소요되고 한 번 비행하는 시간은 20여분이란다. 우린 두 번째로 헬기에 올랐다. 한전벨트를 매고 헤드기어를 머리에 쓴다. 엔진소리가 심하므로 쓰지 않으면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하늘을 나르는 헬기 속에서 아래에 펼쳐지는 광경을 본다. 나이아가가 폭포의 헬기투어와 비슷한 광경이었다. 강의 원천지에서 폭포위를 왕복으로 날아 폭포의 어떤 방향이든지 볼수 있게 비행한다. 물이 많지 않아서 폭포의 관광은 금방 마쳐진다.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빅토리와 폭포 위를 날아 보았다는 성취감이면 되었다 다시 내려가 오던 길로 되짚어 신령수인 1,200년이나 되는 바오밥 나무를 보러 간다. 둘레가 엄청 큰 바오밥 나무는 길 옆에 있다. 이 지방 사람들의 신앙의 근간이 되기도 하며 나무 앞에는 설명하는 표지판이 서 있고 우리들은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다. 길 옆에는 목각을 하는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에 늘어서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오밥 나무 열매를 몇 개 가져다 놓고 열매를 잘라 안을 먹게 하였다. 딱딱한 목화솜처럼 생긴 씨앗을 몇 개 씹어 본다. 별 맛은 없지만 딱딱한 씨를 씹다보면 향극한 맛이 그리 싫지는 않다. 나는 기린 목각 하나를 샀다. 5불인데 더 사고 싶지만 가지고 가는 문제가 있으니 이것으로 만족한다. 버스는 점심 이른 시간이지만 근방의 리버사이드 식당에서 하고 간다고 한다. 빅토리아 폭포의 시작이 이 식당 앞에서 시작된다. 느리게 흐르던 물이 식당의 오른쪽으로 흐르면서 급류로 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우린 다소 기다리는 시간이 걸리지만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는다. 주문하기에 따라 다르게 익혀주는데 너무 익힌 고기보다는 중간정도 익힌 고기를 선택하였다. 과연 씹히는 초감이 나에게 맞아서 좋았다. 아내는 더 익힌 스테이크를 역시 맛있게 잘 먹었다. 식당의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잡비아 국경으로 이동한다. 빅토리아 다리 위로 차가 지나고 나면 바로 국경이어서 우린 내려 수속을 밟는다. 여기서 또 목각을 파는 상인들이 줄줄이 자기 것을 사라고 하는데 아까 목가시장에서 산 값보다 더 싸게 부른다. 코끼리, 물소 하마 세 마리에 10불이라고 하니 싸긴 싸다. 하나도 사 주지 못한다, 100조원이 찍힌 잠비아 화폐을 사가라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린 짐을 차에 놓아두고 걸어서 빅토리아 다리를 보러 나간다. 다리는 두 개인데 우리가 건너온 다리의 하류쪽에 폭포의 가까운 곳의 다리를 보러 간다, 잡자기 해가 얼굴을 내밀더니 더운 기운이 몸을 덮는다. 땀이 나니 그늘진 곳으로 골라다녀도 나오는 땀과 피곤함은 어찌할 수 없다. 숲속을 걸어가자 길 옆에 작은 돌로 화단을 만든 것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한다. 설명하기를 비가 많이 와서 수량이 여기까지 물이 차는데 위험하여 들어가지 말라는 표식이란다. 이 숲에 까지 물이 찼다면 빅토리아 폭포의 위력은 엄청 컸을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거기서 나와 첫 다리까지 가는 길은 오르락 내리락 계단이 있고 깎아지른 절별이 양쪽에 나타난다, 폭포란다. 지금은 물이 없어 군데군데 몇 군데만 작은 물줄기가 내려 폭포를 이룬다. 자세히 보니 아래 두 명이 여자들이 수영을 하는 강심장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말만 나온다. 비가 오지 않아서 언덕위의 나뭇잎이 마르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가 문제라 생각된다 이 가뭄이 더 계속되면 빅토리아 폭포의 위기가 다가올 상상이 되고 그렇게 되면 관광객이 올 필요도 없으며 폐허의 들판이 될 것은 뻔하다. 과연 이것은 비행장에 들어가며서 확신을 시켜주었다. 비행장에 들어가자 손님도 없고 종업원도 몇 명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방을 들어주는 젊은 포터들이 대여섯명이 우리가 짐을 가지고 내려도 되는 것을 우루루 몰려들어 홀 안으로 가지고 간다. 물론 우리보고 팁을 달라고 할 거리가 아닌데 우리 가이드가 나중에 팁을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비행장 안이 비어 있는 경우는 볼수 없었단다. 그런데 몇 년 안에 이런 텅 빈 비행장이 된 것을 가이드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한 대도 없는 공항, 쇼핑하는 가게에 흑인 아가씨가 앉아서 손님을 기다려도 손님 하나 오지 않고 쇼핑하는 여러개의 점포에서는 악세서리가 똑 같은 그런 가게. 다른 상점이 있었으면 주전부리라도 해야 할 우리들이었지만 세 시간을 그냥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승객들의 불편함, 공항 관계자도 보이지 않고 출국하는 대기실도 하나 밖에 없다. 예전에 폭포가 인기였던 때는 나이로비 공항보다 훨씬 손님이 많았다는 가이드도 연신 이상하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이 되면서 우리가 탈 비행기가 도착하였다. 이것의 광경은 더 볼만하였다. 우리가 가지고 갈 짐을 비행기에 싣는 장면이었다. 짐을 나르는 승무원이 짐을 한 개씩 벨트에 올려 놓으면 한 사람이 짐을 놓을 화물칸에서 짐을 받아 올린다 그러다가 벨드가 고장이 났다. 여럿이 올라가 겨우 고치고 싣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 옮긴 짐칸의 문이 잠기지 않는다. 여럿이 매달려 닫으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걸어서 비행기에 오르니 이번 비행기 않의 좌석은 좌우로 두 명씩 앉는다. 네 명이 한 줄이니 우리는 편하기는 하다. 자리가 여럿이면 화장실에 가려면 창가에 앉은 사람은 일어나기가 불편한데 여기는 너무 좋았다. 더구나 아내와 내가 한자리에 앉아서 나이로비 공항까지 간다는 것이 좋았다. 나이로비 공한은 불이 환하다. 손님이 많고 도시가 발달했다는 증거다. 공항에 내려 수속도 쉽에 나올 수 있었다. 가이드는 37년동안 나이로비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이면서 나이로비 가이드 대표였다. 작은 미니버스에 올랐고 우리 화물은 따고 작은 차에 싣고 스텐이 호텔에 입숙한다. 호텔은 나이로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란다. 하나님 영화같은 케냐에 오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빅토리아 폴스 18:05 KQ793 빅토리아 폴스 출발 나이로비 22:20 나이로비 공항 도착 케냐에 대한 공부를 해 본다. 케냐 케냐 공화국(Republic of Kenya) 또는 케냐는 동아프리카의 공화국이다. 인도양에 면해 있으며 북동쪽으로 소말리아, 북쪽으로 에티오피아와 남수단, 서쪽으로 우간다, 남쪽으로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닿고 있다. 수도는 나이로비이며 공용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이다. 케냐의 주요 종족은 키쿠유족, 루히아족, 루오족, 칼렌진족, 캄바족, 키시족, 메루족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화석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이 2백만 년 전 이 지역에서 살았다고 한다. 투르카나호 근처에서의 최근 발굴에 따르면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호미니드인이 260만 년 전 이 나라 땅에 있었다. 1963년 12월 12일 케냐는 독립을 선포했다. 1년 후 케냐타는 케냐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78년 케냐타 사망 이후 부통령이었던 대니얼 아랍 모이가 예상을 깨고 권력 암투에서 승리해 케냐의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케냐의 면적은 582,646 Km2이며, 케냐는 마다카스카르 다음으로 세계에서 46위로 면적이 넓다. 인도양 해변측은 낮은 평지가 있으며 내륙에는 고지대 산맥과 고원이 있다. 내륙에 위치한 고지대는 거대한 단층 계곡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 서쪽에는 기름진 고원이 있다. 인도양의 해안을 끼고 있으며 중앙 고원 지대 사이에 저평원이 나타나기도 한다. 케냐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일부인 케냐 열곡에 의해 양분되며 이 열곡대에 의해 지진이 활발하다. 케냐-탄자니아 국경 지방에 킬리만자로 산이 있기 때문에 그 일대는 서늘하다. 케냐는 남반구에 있기 때문에 북반구 나라들과 여름과 겨울의 날씨가 바뀌어서 나타난다. 6-8월은 겨울이다. 케냐의 겨울은 동북아시아의 겨울과 매우 다른 풍경이다. 눈이 내리지 않으며 날씨 또한 영하로 거의 떨어지는 일이 없다. 단지 일교차가 매우 심해 새벽과 밤에는 매우 쌀쌀하게 느껴지며, 낮에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정도이다. 케냐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다.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직접 선거를 통해 뽑는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위해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 것은 물론 케냐의 7개 주 중 적어도 5개 주에서 표의 25% 이상을 얻어야 한단다. 나이로비 나이로비는 케냐의 수도다. 시원한 물을 뜻하는 마사이어 '에와소 니이로비' 또는 '엥카레나이로비'에서 현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나이로비의 인구는 4,397,073명으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다. 해발 1700m로 이 지역에서 가장 고지대에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1899년 몸바사와 캄팔라를 잇는 우간다 철도 건설을 위한 조달 기지로 세워진 것이 유래가 되어 20세기 초 전염병과 화재 이후 완전히 재건되어 오늘날의 대도시에 이르고 있다. 1907년 영국령 동아프리카 보호령의 수도가 되었고 1963년 케냐의 독립과 함께 케냐의 수도가 되었다. 8일차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맑음 나이로비-암보세리 호텔 조식 후 3대의 짚차에 오른다. 6명씩 한 조가 된다. 아침에는 비가 내려 짐에서 우산을 꺼내었지만 차가 네 시간 운행하는 동안에 비는 그치고 하늘에 흰 구름이 파란 하늘을 가리고 있다가 얼굴은 내민다. 시내에서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킬키리만자로가 보이는 세렝게이로 출발하는 것이다. 네 시간 가는 동안 아직 싹이 덜 난 초원을 지나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지난다. 간간이 만나는 동물들이 지나가는 광경이 보인다. 길 옆으로는 양과 염소와 가축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보이는데 여기 사는 부시맨의 마사이족이 기르는 동물들이다. 이들은 부시멘에서 우리들과 익숙한 사람들이다. 양과 소와 염소 기린동네, 얼룩말 무리들, 엠팔로, 타조들이 가는곳마다 풀숲에서 나온다. 곳곳에 흰개미 집이 황토흙을 쌓아놓은 양 여러곳에 발견된다. 길가의 옆에는 물이 흘러 흙이 패진 웅덩이도 보인다. 이처럼 비가 와 주기에 나무들과 풀이 자라고 돌물들의 왕국이 된 것 같다. 우리들은 네 시간만에 호텔에 도착하여 64변 방을 배정받고 바로 점심을 먹는다. Serena Hotels. 은 암보세리 공원의 중간에 위치한다. 정원이 크고 넓고 울창한 나무들이 정원을 채운다. 정원에 들어서 식당으로 통하는 로비에서 잠시 쉬었다가 식사를 한다. 음식은 호텔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특히 맘에 드는 것은 싱싱한 과일들인데 여기는 각종 야채를 볶아서 스파게티는 평소 좋아하지 않던 음식인데 볶은 야채와 익신 스파게티가 정말 맛있게 먹은 역사적 식사가 되어 기쁘다. 잠시 쉬는 동안에 사진과 엠보세리 공원에 들어서면서 찍은 동물들의 생생한 일들을 일기에 기록하기도 하였다. 오후 네 시에 우리는 다시 짚에 올랐다. 오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멀리 구름에 덮인 만년설의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며 사파리 여행을 떠난다. 오던 길에서 보던 것보다 더 많은 동물들이 생생하게 보인다. 가사는 얼버무리는 영어로 좋은 경치와 동물들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며 사진 찍을 시간을 준다. 자동차 윗 뚜껑을 연 것은 일어서서 좌우에 보이는 광경을 잘 보고 사진도 찍으라는 배려도 보였다. 구름이 케냐-탄자니아 국경에 걸쳐있는 킬리만자로 산을 덮었다. 볼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구름이 살짝 빗겨가고 드디어 산의 꼭대기가 조금 만년설의 귀퉁이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기대가 큰 만큼 우리들은 산이 다 보이기를 바라며 천천히 움직이고 감탄하고를 반복하였다. 저녁이 다가올수록 동물들의 수가 많아지고 가지수도 늘어난다. 이 시간에는 다른 여행팀들의 차도 우리처럼 광활한 동물의 왕국을 누비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인다. 한참만에 거의 킬리만자로 산의 모습이 보였다. 기사는 가장 좋은 위치에 차를 세우고 우리들의 사진 찍는 것을 도와준다. 아프리카 특유의 나무는 긴 주간 위에 우산처럼 잎이 퍼져있는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거기에 의자를 놓고 동네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인 것도 멋진 장면이었다. 해가 지는 들판은 더 아름답다. 구름이 장막을 거둘 때면 붉은 하늘이 미소를 띠며 우리 마음에 포근한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준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세계다. 찬송이 절로 나온다. 감사의 찬송이다. ============= 공부한 내용을 엡문서로 정리를 해 보았다.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에 거주하는 유목민족이다.. 인종은 나일로트계 흑인종이다.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마사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모두 합친 평균 키는 177㎝로 매우 장신을 자랑하며 원래는 나일사하라어족의 샤리나일어군에 속하는 동수단어를 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언어학 용어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것이 부족명으로 굳혀진 케이스다. 몇몇 부족이 뭉쳐서 1개의 집단을 이루며 생활한다. 소똥으로 만든 반원형의 지붕이 낮은 집을 짓고 가시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치며 생활하는데, 그레이트리프트밸리 지역에는 가시나무가 굉장히 많아 구하기 쉽고 가시가 달려 동물로 인한 피해에 방어하기 유용하기 때문이다. 잠시 머무는 의미가 강해 규모가 크고 웅장한 느낌이 아닌 조그마한 창고같은 느낌을 준다. 이 집에 4~5가구가 같이 생활한다. 우기에는 진흙이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동물 가죽을 지붕 위에 씌운다. 남자는 송아지나 염소 가죽으로 된 케이프를 걸치고, 여자는 케이프나 스커트를 착용하며, 머리는 붉은 흙으로 굳힌 특이한 모양의 헤어 스타일로 꾸민다. 남성 중심의 사회이며 모든 씨족은 남자들이 우선권, 결정권을 가지고 움직인다. 또한 일부다처제로써 씨족 외혼이 이루어지며 같은 연령 집단에 속한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려져있지 않은데,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아내를 빌려주는 것은 동기간에만 한정된다. 이 풍습 때문에 에이즈가 돌기도 한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다르며, 성별과 나이에 따라 정해진 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이들 사회는 은근히 평등해서 노예가 없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해서 노예가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해 자살하면 했지, 노예로 잡혀가 굴욕적으로 살아가는 걸 혐오한다. 이 때문에 마사이족은 노예로 끌려간 적이 없으며 백인이나 아랍인 등 다른 부족의 노예사냥에도 죽어라 덤벼들어 침략자도 장사나 겨우 하려다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그나마 잡은 애들이 반란 일으키고 분하면 자살하고 하니 손해만 본 탓에 결국 학을 떼며 완전히 물러서야 했다고 한다. 부시맨 1980년에 보츠와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합작으로 제이미 유이스 감독이 만든 코미디 영화. 원제는 The Gods Must Be Crazy(신은 미친 것이 틀림없다). 실제 부시맨족인 니카우가 주연을 맡았다. 칼라하리 사막 상공을 날고 있는 한 경비행기가 있다. 이 경비행기 조종사는 콜라를 마신 뒤 아무데나 버렸다. 그 빈 콜라병이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부시맨족 마을에 떨어지게 된다. 난생 처음 보는 물건에 부시맨들은 그걸 신의 물건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서 평화롭던 마을에서 분쟁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에 주인공 부시맨족 자이는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콜라병을 세상의 끝에 가져가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백인 동물학자와 기자를 만나면서 문명인들을 접하게 되고 또한 아프리카 정부군과 반군과의 충돌이 벌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이 주 내용이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배가 고파 마침 발견한 염소를 잡았는데, 염소 주인이 경찰을 데리고 와서 항의하니까 가축은 남의 소유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사냥감을 빼앗으려는 줄 알고 그럼 너 먹으라고 "양보"하고 다른 염소에게 활을 겨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는 걸 깨달은 경찰관이 권총으로 주인공의 다리를 쏴서 제압하고 경찰서로 데려가 유치장에 집어넣는, 씁쓸한 결말이 나오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콜라병을 버리긴 한다. 이 소동 저 소동을 겪은 끝에 빅토리아 폭포에 도착해서, 그 장대한 광경에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확신하고 콜라병을 폭포 속에 던지면서 여정은 끝을 맺는다. 킬리만자로 산 킬리만자로산은 탄자니아 북동부에 있는 성층 화산이다. 정상인 우후루 피크의 높이는 5,895m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으며, 지형학에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돌출된 산이다. 킬리만자로의 뜻은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혹은 하얀 산이다.[1] 케냐와의 국경 가까이에 있으며, 중앙의 키보 화산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 신생대 제3기 때 일어난 단층운동과 연관이 있는 이 산은 동아프리카 지구대 남쪽 160km에 있다. 이 산과의 동서간 거리는 약 80km이며, 3개의 주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최근에 형성된 키보 화산에는 분화구가 있으며, 여기서 안부를 따라 11km 떨어진 곳에는 이보다 오래된 마웬시 화산(5,254m)이 있다. 옛 분화구의 잔해인 시라 산(3,778m)은 이제 산마루로 변했다. 키보 산의 정상은 눈에 덮인 둥근 지붕처럼 보이지만 분화구에는 너비 1.9km, 최고수심 300m(남쪽 가장자리)의 칼데라 호가 있다. 함몰지대 안에는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화산재가 남아 있다. 키보산의 분화구 안에는 얼음덩어리가 따로 떨어져 녹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서쪽 가장자리에는 빙하가 있다. 그 빙하는 남서쪽으로 4,167m나 내려와 있지만 북쪽으로는 정상에서 약간밖에 내려오지 않았다. 마웬시산은 키보산과 대조적으로 침식을 많이 받아 들쭉날쭉하며 깎아지른 듯 험준한데 동쪽과 서쪽은 바란코스 협곡이다. 이 산에는 만년설이 없고 눈에 덮인 곳도 거의 없다. 남쪽 및 동쪽 기슭의 하천은 팡가니 강, 차보 강, 지페 호로 이어진다. 킬리만자로에는 산 밑에서 정상까지 식물대가 계속 이어져 있어 고원의 반(半)건조성 관목지대, 물이 많고 경작지로 쓰이는 남쪽 기슭, 짙은 숲, 탁 트인 광야, 이끼 군서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사냥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은 케냐 카지아도 카운티의 로이톡톡 지역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케냐-탄자니아 국경을 가로질러 퍼져 있는 8,000㎢ 생태계의 핵심 크기는 39,206ha다. 곳에는 펠리컨, 물총새, 가랑이, 망치머리황새와 같은 물새와 47종의 맹금류를 포함해 400종의 새가 서식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주로 마사이인이다. 이 공원은 5개의 주요 늪 중 2개를 보호하며 말라버린 플라이스토세 호수와 반건조 식물을 포함하고 있다. 9일차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맑음 암보세리-아루샤-세렝게티가 오늘 일정이다. 암보세리 롯지숙소 64룸에서 나와 정원에 나가본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떠오르기 전인 이 시간에는 이름모를 새들이 정원에 가득히 울리고 커다란 나무 위에는 흰머리 독수리들이 활개를 치기도 하고 앉아서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산책을 더 하다가 보니 화원보다 더 많은 다유기들이 곳곳마다 화단을 메우고 선인장은 소나무처럼 굵은 줄기에 많은 가지를 자랑하는 손인장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아내에게 사진을 찍자고 인증을 하여두었다.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도 어제와 메누가 거의 같지만 맛이 좋아 되도록 양에 맞게 먹어두자, 나와서 짚에 오른다. 어제 선두에 있던 일가족이 오늘도 거기에 타려고 하자 가이드는 조를 바꾸어 타라고 한다. 우리가 2조 차에 타고 보니 어제의 3호차보다 훨씬 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루고루 배치하여 골고루 경험하게 하는 가이드가 옳다고 보았다. 숲지를 지나 아루사로 이동하는 길에 오른다. 풀숲을 지나자는 길 옆에는 물이 고인 호수가 보인다. 이게 웬일? 하얀 홍학의 무리가 묽은 목을 자랑하며 가득하지 않은가? 여지껏 그리 많은 홍학을 본 적이 없었다. 반대편 호수에는 물소들이 있고 거기에는 검은색의 가마우지같은 오리 종류가 무리를 지어 떠 다닌다. 그리고 나서 사파리는 끝이 난다. 풀숲과 호수가 끝나는가 싶더니 눈앞이 넓은 사막으로 변한다. 붉은 사막이다. 모래 언덕의 사막처럼 작은 언덕도 없는 평편한 사막을 달리는 것은 또한 매력적이다. 굳이 찻길이 없다. 갑자기 운전자가 사막을 한 가운데 아무 길도 없는 곳을 달린다. 조금 가다가 보니 엄청 큰 코끼리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여긴 먹을 것도 없고 쉴 곳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 아닌가? 가이드가 이것은 무리에서 쫒겨난 늙은 코끼리란다. 이렇게 힘이 약한 노인 코끼리는 무리에서 다른 힘센 코끼리에게 밀려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하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황량한 붉은 사막을 지나 우리는 케야와 탄자니아 국경에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야산이고 간이 쉼터나 초소에서는 탄자니아에 거주하는 마사이족의 여인들이 악세서리를 손과 머리와 어깨에 가득 걸치고 만나는 손님마다 사라고 권하고 있다. 거의 비슷한 물건이고 또 가지고다니기도 어려운 것들이어서 우리는 그저 노하고 손사레만 친다. 사주고 싶어도 되도록 짐을 가볍게 하여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거침거리만 된다. 다시 차는 탄자니아 국경을 지나면서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어제와 같은 자연 환경이 나타나고 길은 포장이 잘 된 고속도로여서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중간에 잠깐 쉬는데 청도에서 온 우리 일행이 불 한 병을 구입하려고 물어보니 3$이라고 한다. 우리 화폐로는 4,200원이 되는데 작은병 한 박스의 값과 맞먹는 액수다. 사지 않아서 차에 오른 다음에 내가 배낭에 있던 한국에서 가지고 온 삼다수 한 병을 드렸다. 3시간을 달리고 중간휴게소에서 잠시 쉰 다음 한 시간을 달려야 아루사 중간 부분이다. 길 옆으로 가축 떼가 지나간다. 여기 가축들은 양떼가 많고 혹은 소떼 그리고 특이하게 낙타 떼가 눈에 뜨인다. 많은 양이 나타나면 꼭 한쪽 구석에 소나 양을 지키는 꼬마들이 있다. 가축 농장이나 마찬가지다. 흰불개미 집들도 자주 나타난다. 여기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마사이 족이라고 하고 가이드는 거기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하고 있다. 목가적인 풍경이 나오는데 조금 가니 낙타가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길까지 큰 낙타들이 나와 이게 웬 횡제냐고 차 안에서 사진을 찍자 몇 명의 관리하는 청년들이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래도 좋은 장면 찾아 몇 카트를 찍어 두었다. 거기 한참 지나가니 황토 길가 잡목사이에 선인장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잡풀처럼 많은 선인장 무리는 처음 본다. 기르는 것도 아닌 한 두 채 보이는 마사이족의 울타리에도 선인장이 자라는 것을 보니 선인장 천국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작은 선인장이 길따라 무더기로 자라는 것은 여기 풍경이다. 하기사 모로코를 여행 했을 때는 고속도로 가로수가 선인장이었던 것을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기린 동네는 기린들이 많고 얼룩말 무리가 있는 곳도 있다. 마사이족이 고주하는 야산에는 임펠라들이 뛰어 논다. 누런 소떼가 지나간다. 길을 점거하고 가다가 우리가 지나가면 조금 길을 터주기도 한다. 두 시간을 달려 여권을 심사하는 검문소에 이른다. 여기서 황열병 접종증면서를 제공해야 한다. 50$을 개인마다 지불한다. 차에서 내려 차 운전수에게 개인당 5$을 준다. 밖에 나와서 경비행잔까지 가는 봉고차를 기다린다. 물건을 파는 마사이 여인들이 있어서 잠깐 구경을 하는데 한 아기 엄마가 아기 옆에 앉아서 조금 있는 목걸이를 팔고 있었다. 움직이기도 힘든 모습을 보고 우리 아기 키우던 아내 생각이 떠오른다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는 위대하고 숭고하다. 다만 하는 일은 우리 눈에는 평범하지 못한 거처럼 보여도 그 모습은 위대하다. 나오다가 다가가서 2불은 아기 손에 쥐어준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 우리 기사 이름은 찰스라고 한다. 근데 구분이 자기 소개하기를 한국 이름은 철수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이곳 사람들이 재치는 놀랍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말을 금방 배우고 또 잘 활용하기도 한다. 뾰족한 봉우리가 보이는 산을 역기서는 롱기스 산이라고 한다. 롱기스 창과 비슷하다는 이름에서 나온 산이란다. 롱기스 창은 그리스도교 성유물의 하나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롱기누스가 그의 옆구리를 찌르는 데 쓰인 창. 일반적으로는 성창이라 불린다. 유다인들은 안식일까지 시체를 십자가 위에 두지 않기 위해 신속히 예수와 다른 두 죄수를 처리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고, 이에 군사들이 예수와 함께 못 박힌 2명의 다리를 부러뜨려 강제로 죽였으나, 그때 이미 예수는 사망한 상태였으므로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고자 창으로 옆구리만 찔러본 것이다. 구약에서 파스카 축제 때 예수의 예표가 되는 희생 제물인 어린양의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먹는 전통과 연결되어 예수가 자기 자신을 제물 삼아 성부에게 바침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했다는 것을 뜻하고, 예수가 단순히 죽음을 위장했거나 가사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활 이전에 참으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롱기누스 항목에 설명되었듯이 가톨릭 성전에서는 위와 같이 예수를 찌른 병사의 이름을 롱기누스라고 하며 시력을 잃었다가,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쏟아져 흐르는 피를 눈에 바르자 다시 시력을 찾을 수 있었고 이에 크게 감동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성 론지노로 공경받는다. 이에 하느님의 피를 묻혔다 하여 성창이라 부르거나, 카롤루스 대제가 소지했다거나 아서왕 전설에도 어부왕의 창으로 등장하거나 하는 등 여러모로 유서 깊다. 나중에는 켈트 신화나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창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주변 일대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거나 초토화시키는 파괴력과 성스러운 치유 능력을 가진 무기로 통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의 뜻을 마사이족들은 뾰족한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데 이것은 또 호신용 지팡이가 되기도 한다. 점심을 정원이 있는 롯지 식당에서 한다. 입구부터 큰 나무들이 우리 눈을 의심하게 하고 들어가보면 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구석에서 점심을 먹는다. 고기 스테이크가 맛이 있어서 중간 익힌 고기를 여섯 점이나 먹었다. 그리고 커피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온다. 커피 파는 곳이 있다하여 가보니 작은 상점이다.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값도 비싸서 구경만 하고 돌아온다. 여기서 비행장으로 이동하는데 10여분 거리이다. 좌석 표식도 없고 검사는 신발까지 벗고 혁대도 풀어 검사하지만 시늉만 한다. 티켓 대신 노란 판과 파란 판을 준다. 이것이 비행기표라고 한다. 집을 부칠 때도 고무 밴드로 우리 화물에 부착하는데 너무 허술해서 웃음이 나온다. 여기 아루사 비행장은 1년 전에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라고 하지만 안은 직행버스 터미널보다 못하다. 그러나 직원들은 매우 친절하다. 화물을 직접 자기들이 들어다가 옮기고 비행장에 올리는 것도 손수레에 실어 나른다. 여기 아루샤 비행장은 그러나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엄청 많다. 주로 탄자니아 비행기인데 우리가 타는 경비행기는 그런 비행기보다 전광판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여하튼 우린 노란 티켓을 승무원에게 주고 비행기에 오른다. 프로펠러가 움직이면서 고도를 낮게 하여 우린 세렝게트로 나르기 시작한다. 모래 사막을 거쳐서 산들이 나오는 숲지를 날아 한 시간만에 세렝게티 비행장에 착륙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활주로가 포장이 아닌 운동장이라는 점이다. 거기서 내려 비가 온 뒤의 질퍽거리는 땅을 밞으면서 공항 입구에 이른다. 여기 아무 조사도 하지 않는다. 그냥 웃고 나오면 된다. 별난 비행장도 다 보았다. 비가 조금 내리려는 세렝게이 비행장에서 다시 짚차를 타고 우린 숙소로 향한다. 저녁 시간에 달리는 거리는 어제 본 암보새리를 연장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좋다. 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생생한 동물의 세계를 보게 된다. 기사도 연신 아프리카 멋있다. 아프리카 멋있다 라고 하며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우리와 함께 공유한다. 하마와 사자, 기린과 들소들이 나타나는데 너무 생생하기만 하다. 기린은 우리 앞에서 달리기를 하는데 너무 빨라 사진기가 따라잡지 못한다. 사자가 엉금엉금 우리 앞으로 다가온다. 차 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물까 봐서 겁을 내기도 한다. 앞에는 짝꿍인 수사자가 엄청 큰 덩치를 자랑하며 이것은 5미터 정도 왔다가 겁만 주고 어슬렁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기린들은 숲속의 높은 가지 잎을 따서 입에 물고 검은 독수리가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죽은 나무를 장식한다. 얼룩말 떼가 숲속을 비집고 다니는 것 등을 우린 동물의 세계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어 세렝기에 첫 날을 장식한다. 기사는 조금이라고 더 보여주고 싶어 오던 길을 되짚어 다시 돌아 가기를 반복한다. 기사의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열중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 일행의 차가 보이지 않고 사방이 어두워진다. 그 때야 비로소 우리 차도 정신울 가다듬고 숙소로 향하기 시작한다. 늪지대를 지날 때는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불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기를 빠져 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는데 거기서 산길을 접어들면서 우리는 십년 감수하는 경험은 하게 된다. 차자 진흙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때도 여러 번 있었지만 기사가 노력하여 이기를 면하기도 했다. 긴 시간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우린 산속의 숙소에 도착하였고 43번 방 배정을 받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공연이고 음악이고 방에 돌아와 쉬기로 하여싸. 방이 식당과 카운에서 멀고 밖으로 나오는 길이라서 종업원 하나가 후레시를 가지고 친절하게 방에 안내를 해 준다. 고맙다. 동물의 세계보다 어려운 세계를 경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공부한 내용=== 아루샤 아루샤는 탄자니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아루샤 주의 중심이다.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중심지이며 동아프리카 공동체 본부가 위치해 있다. 아루샤는 케냐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초원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기후는 건조기후에 속해 있다. 역사적으로 아루샤는 1993년 8월에 르완다 정부와 RPF 반군사이에서 르완다 내전을 종결지은 아루샤 협정이 체결되었다. 또한,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수도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곳에 속해 있다. 아루샤는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 나트론 호수, 세렝게티 국립공원(마사이마라)이 위치해 있다. 2020년 현재 아루샤의 인구는 약 40만여명이다. 여담으로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동아프리카 연방이 생기게 되면 동아프리카 연방의 중심지이자 수도가 될 가능성이 큰 곳이란다. 아루샤에는 코이카 단원 6명이 파견나와 현지주민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세렝게티 1981년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면적은 약 14,760㎢. 대한민국의 충청북도의 2배 정도 되는 넓이이다. 이름은 마사이족 의 언어로 '끝없는 초원'이란 뜻이다. 이름의 유래에서 보듯 어마어마하게 넓다. 북동쪽으로는 탄자니아-케냐 국경으로 구분되는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세렝게티-마사이마라 지역은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야생동물의 서식지 중 하나로, 수백만 마리의 초식동물이 매년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는 장대한 대이동이 펼쳐진다. 이 대이동은 주로 누, 얼룩말, 가젤 등으로 이루어지며, 이들의 뒤를 쫓아 사자, 치타, 표범 같은 육식동물도 함께 이동한다. 세렝게티의 기후는 주로 건조하지만, 3월부터 5월까지의 우기와 10월부터 11월까지의 짧은 비로 인해 초목이 잠시 무성해진다. 이곳의 독특한 생태계는 식물, 초식동물, 육식동물이 상호 연결된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세렝게티는 1951년 탄자니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지역은 탄자니아 관광 산업의 핵심이며, 야생 보호 구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탄자니아의 또 다른 세계유산인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이 남동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프리카에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초식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150만 마리가 넘는 검은꼬리누 떼가 이곳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20만 마리의 얼룩말과 8천 마리의 코끼리, 30만 마리가 넘는 톰슨가젤 및 그랜트가젤들이 살고 있다. 육식동물의 경우 3,000마리가 넘는 사자, 1,000마리의 표범, 3,500마리의 점박이하이에나, 300마리의 치타, 그리고 그 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포식자들이 서식하고 있다. 다만 코뿔소의 경우 흰코뿔소는 전혀 없고 검은코뿔소는 2019년 기준 31마리 밖에 없으니 볼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이곳만의 특징은 누 떼의 대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백만 마리가 넘는 누 떼들이 신선한 풀을 찾아 대이동을 하는데 이 때문에 방문 해야 할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특히 남부의 경우는 나무도, 마르지 않는 샘도 별로 없으므로 누 떼가 한번 쓸고 지나가면 가젤 새끼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남부는 아루샤에서 출발했다면 이곳을 통해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곳의 토양은 화산재 때문에 단단해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풀의 바다는 이곳이지만 시기를 잘못 맞추면 흙먼지만 날리는 모습만 보게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자. 중부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여기까지만 온 뒤 돌아간다. 풀밭밖에 없는 남부에 비해 중부는 초원, 나무, 관목, 강 그리고 바위 언덕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볼 수 있는 동물의 가짓수가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곳이다. 이곳의 세로네라 강은 표범을 보기 좋은 장소이며 모루 코피에서는 소수의 검은코뿔소들이 서식하고 있다. 북부는 마라강을 사이에 두고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과 마주한 지역. 중부에 비해서 나무가 우거져 기린, 임팔라 그리고 코끼리들에게 좋은 서식지를 제공한다. 마라 강을 건너는 누 떼를 보기 좋은 장소지만 이 지역은 나이로비 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대부분 인접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편이다. 동부는 식생은 남부와 비슷하고 롯지도 거의 없어서 사람들이 거의 없다. 다른 지역에 비해 톰슨가젤과 이를 먹이로 삼는 치타의 개체수가 많다. 특히 골 코피 근처는 아프리카에서 치타의 개체 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다. 서부는 북부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오려면 긴 시간 동안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인기는 없는 편이다. 그루메티 강을 따라서 숲이 나있어 다양한 종류의 원숭이들과 영양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문해 볼 만도 하다. 이곳은 한국 방송 역사에서 의미깊은 곳이기도 하다. MBC에서 2002년 창사 41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HD다큐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된 야생 자연 다큐멘터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단발성 자연 다큐멘터리 기획 자체는 1980년 TBC의 을숙도 다큐멘터리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긴 하지만 예산 5억원과 200여 일 간의 제작기간이 투입된 본격적 야생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세렝게티가 처음이다. 이와같이 인근 케냐의 마사이마라,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등과 이어져 있다. 그런데 세렝게티가 훨씬 넓고 큰 데다 인지도가 더 높기 때문에 입장료는 마사이마라의 거의 2배 넘게 비싸다고 한다. 문제는 굳이 비싼 입장료를 주고 세렝게티 쪽으로 방문한다고 해서 반드시 진귀한 동물들(흔히 빅 5라고 하는 사자, 아프리카코끼리, 아프리카물소, 아프리카표범, 코뿔소)을 볼 확률이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딱히 높은 것도 아니라는 것읻다. 1년 중 건기와 우기가 번갈아 오는 동안 동물떼들이 마사이마라에서 세렝게티로 혹은 응고롱고로 옮겨다니기 때문이다. 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들의 십중팔구는 누우 떼 아니면 영양류다. 사자 무리가 비교적 많이 목격되지만 대부분 떼지어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우리는 사자를 싱싱한 장면으로 볼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가이드가 말해 주었다. 원래는 들개도 서식했지만 1991년 이후 멸종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행히 한 마리씩 두 번이난 보는 행운을 얻었다. 2000년에 일부 개체들이 동쪽의 롤리온도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2004년에는 26마리, 4개의 무리가 자리를 잡았단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사이족의 가축을 습격하는 등 지역 사회와의 충돌이 있어 6개 무리의 66마리를 포획해 공원 서쪽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들개들은 공원 경계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하게 됐고 가축 피해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10일차 2024년 11월 15일 금요일 맑음 오늘 일정 - 세렝게티-옹고롱고로 세렝게티 롯지에서 아침에 일어나 산보를 하다. 베란다 문을 여니 문 바로 앞에 얼룩말 세 마리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그 위에 큰 나무에는 흰머리 독수리들이 말없이 가지에 걸터앉았다. 동물의 왕국이 아닌 동물의 천국처럼 느껴진다. 산책길 따라 조금 걸어가면 선인장 나무가 있는데 소나무만큼의 크기와 줄기가 있고 위에 퍼진 가지들은 틀림없는 선인장이다. 그럴수가 있을까? 아침식사에는 카가바 찐 음식을 먹었다. 고구마 찐 것처럼 맛이 있다. 오늘은 간단히 먹자고 결심하고 큰 한 접시에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 그리고 히비스키야 쥬스를 마신다. 상큼하고 시원하고 입맛에 딱 맞는다. 차에 오르기 전에 짐을 날라준 종업원에게 1불을 주니 반갑다 인사하고 한국말로 코리아 최고라고 외친다 나와서 다시 짚차에 오르는데 오늘은 차량을 1번으로 바꾸어 탄다. 오전에는 세렝게티 국립공원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를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빅5 관광으로 사자 코끼리 버팔로 표범 코뿔소를 보는 것이다. 어제 밤에 오던 길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였는데 길은 마찬가지로 구불거리고 진흙이 튀기기도 하고 물이 괸 웅덩이를 지나가기도 하지만 깊은 웅덩이는 돌아서 가기도 한다. 물이 고인 곳에는 하마와 물소가 머리만 내어 놓고 우리를 보라하니 누가 누군지 알길이 없다. 누우떼가 엄청 긴 행렬을 시작한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그 행령 차체다. 아 하는 감동의 말이 입속에서 자연히 흘러나온다. 누우떼가 지나가면 반드시 얼룩말의 무리가 지나간다. 서로 싸우지 않고 소 떼 다음에 얼룩말이 말없이 지나간다. 그 한참 뒤에는 엠팔들이 방정맞게 뛰어다니는데 어느 녀석 둘이 길가에서 머리의 뿔을 맞대고 싸움질을 한다. 뒤로 한 발 물러섰다가 냅다 머리들끼리 부딪히는 싸움인데 우서너번 싸움질을 하다나 힘이 부치는 녀석이 뒷걸음을 쳐서 도망하면 한 녀석이 이기는 것이고 이들은 다시 큰 무리속으로 들어간다. 너무 좋은 광경을 보았다. 누우떼는 5월과 11월에 대이동을 한단다. 먹이를 찾아 떠나는 그들의 지혜에 놀라지마 이동하는 동안에 만나는 천적들은 어찌할 수 없다. 사자나 표범, 치타, 그리고 강을 건널 때에 만나는 악어는 우리가 화면을 보아도안타깝기만 한데 여기는 사자가 덤빌 생각도 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는 호랑이를 만나러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여기 운전기사들은 수시로 무전으로 좋은 곳이 있으면 연락을 하고 좋은 광경이 있으면 짚차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몇 바퀴를 돌아도 호랑이는 나오지 않고 표범 한 마리가 수플에 누워 자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였다. 그러나 거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좋은 것을 발견하였다. 큰 나뭇가지에 사자 한 마리가 네 다리를 걸치고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한 차가 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고 우리가 두 번째였다. 그런데 자시히 다가가서 보니 그 나무 아래에는 사자 가족이 다섯 마리나 네다리를 뻗쳐대고 누워 있었다. 수컷 한 마리는 그중에 등을 대고 누워있고 암사자 한 마리가 나무위에서 망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누워있던 녀석 둘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본다. 위 나무위에서 자건 사자가 기지개를 켜더닌 일어나 두 다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걸어 내려온다. 사람보다 겁 없이 나무를 타는 사자를 10미터 안에서 보는 것도 행운이고 더구나 숫사자 보기는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는 두 번이나 보는 행운을 안았다. 그 외에도 세렝게티에는 치타, 버팔로, 누 등이 참으로 많은 개체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서다 가다를 반복한다. 이제는 조금 있는 것은 쉬지 말라고 오라잇 하고 기사에게 그냥 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기린이 있는 언덕은 더 화려하다. 간 목을 아래로 늘려 나무 위의 싹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한두마리가 아니고 동네를 이룬 모습 또한 장관이다. 뭉쳐 살면서 느릿거리는 걸음과 달릴 때는 달리기 선수처럼 목을 앞으로 길게 늘려 달리는데 속도가 대단하다. 점심은 도시락을 먹는다, 쉼터로 만든 곳에 여러곳을 쉬어 먹을 수 있는 의자와 탁자가 있고 여러 혀행객들이 모여 식사는 한다. 우리도 사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는다. 여러 가지 새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든다. 먹던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면 또 다른 새들까지 물러서 여러마리가 모인다. 쥐도 내가 질세라 합류하여 눈치를 보면서 자기들 점심을 먹는다. 화장실 앞에 나무가 있고 뿌리부근에 작은 물이 고인 웅던이가 있다. 파란 새 무리가 옹기종기 모여 놀더니 한 마리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목욕을 한다. 물속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머리를 흔들어 떨기도 한다. 멋진 장면은 사파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도중에 길 가운데 돌이 튀어나온 것을 기사가 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뒷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한다. 스피어 타이어를 교체하는 기사는 다른 기사가 도와주어 금방 고쳐 다시 떠난다. 세링게티 입구에서 쉬면서 표지판과 문 앞에 사진을 기념으로 남긴다. 아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몇 장을 찍었다. 그리고 출발하는데 넓을 초원에는 마사이 족들이 가축을 기르는 목장을 여러 곳 경험한다. 고도 2000미터 이상인 곳을 달린다. 앞에 보이는 산 아래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인 응고롱고로 자연보호구 란다. 우리는 을고롱고로 이동하며 다소 이른 시간에 SERANA HOTEL에 도착한다. 산 중턱에 돌로 장식한 고풍스런 호텔이다. 차 한잔과 따뜻한 수건으로 손을 닦으라고 호의를 베푼다. 호텔의 입구에 해발 2300M라고 표식을 해 두어서 높은 곳이라느 것을 알 수 있다. 11일차 2024년 11월 16일 토요일 맑음 옹고롱고로-아루샤의 일정을 소화하다. 옹고롱고로 Ngorgoro Serena Hotel 롯지 아침식사를 하다. 방 앞의 베란다에는 커다란 분지가 보이는에 오늘의 관광 일정을 이 분지 안에서 하게 되어 있다. 오전에는 옹고롱고로 국립공원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를 하고 여기서 점심을 먹고 아루샤로 3시간 30분을 집차로 이동하며 사파리 여행을 마무리한다, BIG FIVE 관광으로 어제 보지 못하였던 사자 코끼리 버팔로 표범 코뿔소를 보는 일정이 주요 업무다. 옹고롱고로는 탄자니아 북서부의 사바나, 숲, 계곡, 칼데라 등 다양한 지형을 모두 아우르는 약 8,100km2에 이르는 광범위한 복합 지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곳이다. 탄자니아의 또다른 명소이자 세계유산인 세렝게티 국립공원과도 맞닿아있어서 대개 이 지역을 여행할 때는 아루샤에서 출발하여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넘어 세렝게티 평원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이용하여 여행한다. 이곳에는 칼데라인 응고롱고로 분화구가 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지름이 약 15~20km에 달하며 솟아난 가장자리의 높이는 평균 500m 정도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칼데라인 천지와는 달리 물은 거의 고여있지 않다. 또한 지역 내에는 약 400만년 전 인간의 흔적이 발견되는 올두바이 협곡이 있다. 이 협곡에서 발굴한 많은 성과 때문에 본래 자연유산이었던 응고롱고로 보존지역은 2010년 항목이 확장되어 복합유산이 되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더불어 이 일대는 원래 마사이족의 주요 주거지였다. 탄자니아와 케냐 일대 곳곳에 흩어져 살던 마사이족들은 1900년대 초 식민지 확장을 벌이던 영국군에 밀려 케냐와 탄자니아의 좁은 지역에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러다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응고롱고 자연보존지역이 주요 관리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흩어져 있던 마사이족들은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으로 이주했고 대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지켜주기 위해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은 마사이족만 살 수 있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한편 마사이족은 가축을 방목하는 것으로 생활하므로 전 지역에 걸쳐서 야생동물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데 자연보존지역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마사이족이 이주해오거나, 방목의 규모가 커지거나, 경작지가 늘어나거나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다. 이에 따라 탄자니아 정부는 이곳을 야생보존지역으로 바꿔 마사이족을 점차 다른 지역으로 내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세렝게티와 인접한 만큼 이 분화구 안에도 검은꼬리누, 그랜트얼룩말, 아프리카코끼리, 검은코뿔소, 점박이하이에나 등 많은 수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다만 외부와 이어지기 쉽지 않은 고립된 환경이라서 분화구 내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행동 방식은 세렝게티-마사이마라 생태계 나머지에 서식하는 같은 종들과 다른 편이다. 그리고 기린과 임팔라, 토피영양 등은 분화구 내에서 볼 수 없다. 분화구 안에는 음두바땃쥐라는 고유종도 서식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는 해마다 누와 얼룩말들이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 탄자니아 - 케냐 경계를 왕복한다. 하지만 여기에 서식하는 누와 얼룩말들은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장소와 풀들이 있는 곳을 기억하고 있어 매일 분화구 내부를 이동하면서 풀과 물을 찾는다고 한다. 또한 분화구 밖에서는 많은 수의 사자가 살고 있는 반면 이곳에서 서식하는 사자의 수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게다가 응고릉고로의 사자들은 대부분의 근친교배로 태어났기에 개홍역 등의 각종 질병에 취약하며 기형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응고롱고로에 들어온 첫 사자 무리들이 정착한 이후 응고롱고로에 들어온 다른 사자 무리들을 전부 쫓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이가 풍부한 이곳에서 다른 사자 무리들을 쫓아버린 건 이점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다음 세대를 잇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분화구의 사자들은 사냥도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점박이하이에나가 사냥한 먹이를 빼앗거나 먹다 남은 먹이를 먹는다고 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운고로 분화구는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여기 새벽 기온은 싸늘한 만큼 다소 춥다. 호텔 안에 스팀을 조금 넣어주다가 밤이 되면 끄기 때문에 솜이불을 덮어도 땀이 나지 않는다. 전열기가 우리 전열기 코드와 맞지 않아서 로비에 가서 물었더니 종업원 하나가 와서 그 코드에 볼펜으로 비집어 넣고 억지로 맞추지만 코드를 뺄 때는 어거지로 빼기도 하였다. 옹고롱고로 가는 길에 출입관리소에 이른다. 산 위에는 안개가 자욱하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가운데 오늘은 출입허가가 일찍 나왔다고 가이드가 기뻐한다. 평소에는 이름 한자 한자를 개인별로 검사를 하고 보내는데 오늘은 안개로 인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나온 우리를 배려한 것 같다. 호텔에서 옹고롱고 아래까지는 약 600미터다. 급경사길과 커브길이 안개로 염려스럽지만 중턱에 내려가니 안개가 서서히 가시기 시작한다. 내리 쏟던 자동차가 잠시 머무른다. 기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작은 여우 같은 짐승이 수풀 사이에서 움직인다. 카라코라다 하고 가이드가 소리 친다. 당신도 1년 동안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행운이라고 우리를 칭찬한다. 바닥에 다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한참을 달린다. 그러더니 망원경을 꺼내어 산마루 아래쪽을 주시하더니 코뿔소다 라고 외친다. 우리는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기사는 망원경을 우리에게 주면서 방향을 가리카지만 형체만 어른거리지 확실하지 않다. 언뜩 보면 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뭇가지 같기도 하다. 에라 그냥 지나칩시다. 우린 다른데로 가자고 하여 황학을 보러 간다. 옹고롱고로 호수는 분화구에 물이 고인 곳이고 이곳을 salt lake(소금호수)라고 부른단다. 분화구에 무슨 소금호수?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소금 거품이 일어나고 냇사 마른 곳에는 소금이 보인다. 홍학은 소금이 있는 호수에서 서식하는 것이 보통이다. 더구나 염분이 강할수록 붉은색이 진한 것인데 여기 홍학은 약간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염분이 조금 덜한 것 같다. 그 무리는 엄청나게 많아서 물가 한쪽을 물들인 것처럼 보였다. 거기를 지나 사자가 임펠라를 잡아놓고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누워있는 것은 수사자 같기도 하고 아기 사자는 정신없이 엄마 품에 붙어서 고기를 뜯어 먹는다. 진기한 장면을 한참 들여다보고 아까 보기에 애매했던 코뿔소를 다른 곳에서 보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조금 가까운 곳이라서 코뿔소의 앞으로 튀어나온 뿔과 고개를 돌리는 장면을 사진기에 담을수 있었다.‘ 보통은 여기서도 코뿔소는 보기에 힘들어서 아주 좋은 행운을 얻은 것 같다. 다시 가던 길을 되오면서 워터팍이라는 동물을 본다. 물을 잘 먹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아까 코뿔소가 일어서는 광경을 보기 위해 기다리기를 한참 한다. 우리보다 많은 짚들이 아까부터 길에 가득하였고 우리는 그들 앞에 조금 더 가서 비로소 코를 쳐들고 걸어가는 코뿔소를 확신하였다. 코뿔소는 희귀하여 이곳에 10여마리 밖에 없어서 구경을 하고 싶어도 때가 맞지 않으면 찾기 힘들고 정확한 마릿수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단다. 꿩 같은 새의 무리들도 보고 나무위의 펠리칸도 여러마리를 확인한다. 모두가 동물원에 가야 보는 희귀한 동물들을 여기서는 자유로이 동물의 천국에서 보는 느낌이 든다. 아주 커다란 동물원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우리 여행자들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 이에도 하마쿤 물새와 버파로 무리와 세비라캣이라고 하는 고양이처럼 생기기도 하고 표범같기도 한 동물이 우리 앞에서 땅에 머리를 박고 d]]무엇인가 찾아 먹고는 어슬렁거리며 우리 차 밑으로하여 저쪽 풀숲으로 사라진다. 사자와 하이에나를 본 것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다. 사자 한 마리가 작은 검은 멧돼지를 잡아 목을 물고 있었다. 흔들기도 하고 뜯기도 하는데 저쪽에서 하이에나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서 사자쪽으로 걸어간다. 위기를 느낀 사자가 벌떡 일어나 하이에나를 향하여 울부짖더니 쫓아가자 겁먹은 하이에나는 줄행랑을 친다. 무리가 많으면 사자가 꼼짝 못하지만 일대일에선 상대가 되지 않는가보다.. 사자는 의기양양하여 멧돼지를 물고 냇가 아래쪽에 앉아서 고기를 뜯고 있었다. 진귀한 장면을 우리가 본 것이다. 시크레드 흰 새의 무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페밀리라고 한다. 새의 가족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것 같다. 잠깐 화장실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여 십여분 쉰 뒤에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어제 숙소인 세레나 호텔로 돌아간다. 가면서 안개가 께끗이 젓겨진 분화구를 보면서 언덕을 올라간다. 마사이족의 마을을 지난다. 많으 가축의 무리들이 마사이족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이 있다. 그리고 호텔에 들러 식사는 하고 조금 쉰 뒤에는 모든 일정을 마친 뒤의 마음으로 아루샤로 향한다. 바람이 무척 시원하다. 몽고롱고 들어가는 입구에 대문이 있고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제라고 우리는 세렝게이와 몽고롱고에 갔었다는 인증샷이다. 두 시간을 달렸다. 중간에 다시 휴게소에 들렀는데 거기서 아프리카 목공 장인들이 신의 세계처럼 목각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작은 망치와 끌 하나를 가지고 늙은 고목나무 등걸을 가지고 조각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찌 같은 손으로 저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 사주고 싶어도 가지고 올 방법이 없다. 다시 우리는 두 시간을 들여서 아스팔트길을 달려 아루샤에 도착한다. 아루샤 시내는 정말 복잡하다. 상인들이 자기들이 생산한 각종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다. 붉은색의 바나나와 흰 색이 만이 섞인 파란 수박 그리고 아주 클고 긴 당근 고구마 토마토 등이 길바닥 시장에 가득하다. 거기를 지나 고급 호텔로 들어간다. 입구 정원에서는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 이들 부부가 결혼하여 아들딸 구별 말고 여럿을 낳아 줄어드는 인구 증가에 이바지하기를 기도한다. 저녁을 7시에 먹고 아침은 5시 반이라고 한다. 빠뜻한 일정이라 하루 대강을 정리하고 잠으로 들어간다. 아무 탈없이 남아프리카 여행을 아내와 같이 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12일차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맑음 아루샤-나이로비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지대인 나망가를 거쳐 공항으로 4시간 30분이동 나이로비 공항에서 16:45 EK720 나이로비 출발 두바이 향발 5시간 소요된다. 간밤에 비가 내렸다.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더니 아침 공기가 맑아지고 깨긋한 바람이 살갗에 닿는다. 마우너 메루 호텔은 궁전과 다름이 없었다. 정원이 유난히 크고 아름다워 혹시라도 궁궐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정도로 아름답고 규모있고 잘 다듬어진 호텔이었는데 내용은 조금 달랐다. 식당 메뉴가 여지껏 먹어본 음식중에 단순하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룸의 실내 조명도 어두워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침대 곁의 탁자위해서 작업을 하였다. 화상시설도 좋지 않은 편에 들어간다. 샤워를 하려면 손잡이가 달린 노즐이 있어야 하는데 천정에 달린 샤워기로 얼굴을 씻어야 하니 당화스러워 조심스럽게 몸만 씻는다. 여자들은 머리 때문에 어떻게 하나 더니 머리에 커버를 쓰고 한다고 하니 내가 몰랐다. 여하튼 사용하기에 부족한 점이 여러 호텔보다 더한 것 같다. 더구나 화장실에서 나와 풀입구 문을 보니 거기에 커다란 거울을 달아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무엇대문에 거울을 출입구에 달았을까? 어제 저녁 7시에 식사를 하였고 오늘은 아침 5시 반에 조식을 한다고 하여 나갔더니 가이드와 종업원이 언성을 높여 다투는 것 같았다; 내용인즉 아침 5시 반에 식사를 하기로 호텔측과 약속이 되어 잘 된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쥰바돤 것아 없으니 일정에 차질이 있는 것이다.] 호텔측이 시인하고 찬 빵과 음료와 적은 양의 과일이 있을 뿐이다. 가dlerk 우리에게 언성을 높여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였다. 그럴 일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는 빨리빨리 천천히 천천히라는 말이 있듯이 말은 빨리빨리 하고 행동은 느리게 한다는 말을 해석하는 듯하다. 여하튼 식사를 마치고 짐을 가지고 봉고차에 오른다. 오늘 하루는 봉고차로 아루사를 거쳐 나망가에서 국경 넘어가는 수속을 밟고 바로 나이로비로 간다. 차에 오르니 호텔 맞은편에 메루산이 보인다. 호텔 이름이 마운트 메루 호텔이라고 하는데 바로 앞산 이름인 메루산을 딴 이름이었다. 정원에 나와서 메루산을 보기 위해 거리로 가는 동안 문지기가 나와서 손짓으로 사진을 찍으로 가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니 자기가 찍어준단다. 고맙다고 하고 몇 카트 하고 돌아온다. 차안에서 가이드는 우리가 온 일정을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었다. 두 시간을 걸쳐서 나망가 국경에 도착한다. 여기서는 출국과 입국의 서류를 같은 공간에서 한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일일이 수기로 하니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뿐인 손님인고로 빨리 끝났다고 좋아들 한다. 주유소에서 가이드는 물과 콜라를 충분히 사서 우리들에게 나누어준다. 찬 물과 콜라를 마시지 정신이 든다. 다시 두 시간의 길은 거의 같은 한경이었다. 낮은 가시덤불 사이로 양과 소와 가축들이 모여 있고 거기에는 작은 소년 한 둘이 작대기를 들고 서 있다.양치기 목동인 셈이다. 소를 모는 사람은 마사이족 어른이다. 그리고 긴 길에는 한 두명이 바른걸음으로 걷는 장면이 나온다오딜 가나 마찬가지다. 이들 마사이족들은 산속 살린이라 병원을 가기 어렵기 때문에 병이 걸리지 ㅇ낳게 서로 조심하고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고 걷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마사이족 남녀는 살진 사람이 없이 날씬하다. 가다가 기사가 차를 세운다. 거기에는 독수리 비슷한 큰 새들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뭉쳐 있다. 자세히 보니 죽은 검은 소가 길 옆에 있었고 그 죽은 소를 세들이 뜯어먹고 있었다. 때로는 같은 부분 먹이로 서로 싸우는 것도 본디. 이 독수리같은 새가 마라부라고 한다. 상당히 많은 새인데 기르는 것이 아니고 먹을 것이 있으면 모인다고 한다. 시장이 선 것을 본다, 그리 크지 않은 동네인데 엄청 사람들이 발디딜 틈도없이 많이 모여 그래를 한다. 주로 신발과 스카프 그리고 과일종류와 다양한 것들이 팔린다. 사람과 차와 거리가 북적일 정도의 혼잡한 거리 시장인데 우리의 5알장과 비숫하다고 한다. 그런데 기사가 설명하기를 우리나라의 폐기된 쓰레기가 이곳으로 와서 조금 손을 대고 파는 대부분이 물건이라고 한다. 어찌 마음이 씁쓸하다. 좋은 것으로 주어야 하는데 폐기된 쓰레기를 여기로 가져와 이사람들이 생명의수단으로 거래된다니 마음이 아플 수 밖에..... 하나님!!!!!! 그 시장 이름을 알아보았더니 간판에 영어로 TUNAFIKU KINENGELA 우리말로 키텐벨라 시장이었다. 우리는 나망가를 거쳐서 나이로비 공항이 있는 건처의 호텔로 들어간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올 때 맞긴 큰 가방을 찾아 정리한다. 전체 가이드가 자리를 마련하여 주어서 편안히 짐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사를 하고 다시 차에 올라 5분거리도 안되는 공항에 들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기사와 가이드와 헤저질 시간이 된다. 아내와 나는 사방에 있던 물을 전부 버스기사에게 주었다. 공한 안으로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병이나 가지고 들어가던 모녀는 결국 화물 검사에서 직원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우린 공한 안의 라운지로 들어갔다. 비행기가 올때까지 편안히 기다리는 장소다. 좌석도 넓고 거기는 먹고싶은 음료나 과일 술 종류와 빵 등 식당에서나 먹을수 있는 물건들이 상당히 많아서 흡족한 쉼을 얻었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일어나서 출국장으로 들어선다. 시계와 신발까지 벗어서 레이저 검색으로 나가는데 나는 또 삐 소리와 함께 걸려 두 손을 들고 손으로 이리저리 살살 무엇이 있는지 검사를 하고 보내준다 예전보다 수속이 빠르고 간단하여진 것은 참으로 여행객에게는 도움이 된다, 김재구 가이드는 자기가 손님을 인솔할 때 한 손님의 가방에서 마약이 검출되어 혼난 적이 있음을 알고 거기 많은 노력을 하여 겨우 혐의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 손님이 가지고 있는 화물에 마악을 숨긴 사람은 누군지 모르지만 손님의 가방에 몰래 마약을 숨기고 공항에서 내릴 때에 그 사람에게서 화물이 잘못되어 당신 가방에 들어갔노라고 하며 자기의 물건을 빼가는 수법을 쓴다고 한다. 물로 혐의를 쓴 사람은 여려 절차를 거쳐서 동선을 파악하고 마나는 사람까지 전부 조사하여 많은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혐의를 푼 경우이고 어떤 경우는 아예 돌아오지 못하기도 한단다. 조심할 일이다. 기내는 더 편안하다. 비즈니스석은 내가 창 쪽에 아내가 통로쪽에 앉게 되어 여지껏의 여행중에 가장 쉼고 ᅟᅧᆫ리하게 배치가 되었다. 좌우에 두 좌석씩 그리고 가운데는 세 좌석씩 배정되므로 너무 편리하였다. 앉자마자 웃으면서 스튜어디스가 음료의 종류를 주문받는다. 그리고 바로 내가 선택한 음료가 나온다. 그리고 음료를 마시고 나면 메뉴가 적힌 표지판을 가지고 와서 주문을 받는다. 나와 아내는 비프로 써진 음식을 주문했는데 나중에 음식을 받고 보니 고기가 너무 익어서 입맛에 맞자 않아 남기고 말았다. 풍부함 속에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은 인간의 심리다. 다섯 시간 만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한다. 창밖으로 두바이의 야경이 들어온다, 그 나라의 문화는 밤에 알기 쉽다. 어둡고 한산한 을씨년스러운 도시는 죽은 도시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한창 경기가 살아난 90년대의 항공사진을 보면 북한은 검은 도시이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도시는 환한 불빛이 있어서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멋진 부자 나라로 인식을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렇듯이 두바이 공항 주변의 경치는 불빛이 환하게 비치는 아름다운 도시로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는 우리의 비즈니스석이 아닌 좌석이라서 나오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시 두바이 공항에도 라운지에 들어가서 넓은 자리에서 오늘 일정을 정리한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배가 불러 그냥 주는 서비스 음식을 손을 대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기내에 들어가면 또 음식이 나오니 배부른 것도 때로는 부담이 된다. 이제 오늘 밤을 지나고 내일 저녁에는 그리운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문자를 띄운다. 그래 하루 더 기다려라..... 22:45(현지시간) 두바이 국제공항 도착 후 연결편을 기다린다. 4시 30분에 보딩을 하고 4시 55분에 탑승한다. 내 좌석은 B구역 11B이다. 하나님 13일간의 일정을 순조롭게 소화하여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아내와 나, 떨어질 수 없는 가장 사랑하는 사이다. 물론 더 사랑하는 딸들이 있고 사위들이 있고 사랑하는 외손주도 나의 힘이 된다. 어번 남아프리카의 여행은 길고도 먼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준비부터 신중을 기하였다. 그리고 사전에 공부도 많이 하였다. 초등 사회과목에서 아프리카를 공부하면서 검은 대륙이라는 단어를 접하였고 탐험중에 남아프리카를 돌아가는 희망봉에 대한 이야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머릿속에 입력하여 왔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70의 중반에 들어선 어쩌면 노인의 축에 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은 청춘이라는 젊은 마음이 세대에 낄 수도 있은 시기에 조금은 긴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케이프 타운에 들어서면서 호텔에 종사하는 흑인 여성들의 활발한 움직임과 밝은 얼굴을 보면서 체격에 맞지 않는 거대한 몸집에 놀라기도 하였다. 체격이 크고 몸집이 거대하다는 것은 먹을 것을 잘 먹고 편하고 마음의 안정을 동반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반면 케냐나 탄자니아나 잠비아의 여성들은 껄쭉한 키에 바짝 마른 몸집에 먀냥 걷기를 일삼는 마사이족들은 몸집이 마르고 키가 크며 호적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태어난 나라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적당한 키에 아름다운 피부의 얼굴에 세련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본다. 이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더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나라가 안정되어 여야가 다툼이 없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으로 살아가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한다, 감사한 것은 2주일동안 건강하게 다녀온 아내와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생각하였다. 이제는 덤으로 사는 삶을 더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더 깊이 사랑하고 서로 존경하고 어려운 시련도 극복하면서 마음속에 신뢰를 다지며 살고싶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하며 긍정적인 생활을 하고 산다. 더 좋은 나라, 더 아름다운 나라 온 국민의 얼굴이 밝아지는 나라. 우리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우리가 너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이번 여행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돈 안들이고 아프리카 여행을 잘 한 기분입니다. 여행작가하셔도 될 만큼 훌륭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