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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여사(逝者如斯)
가는 것은 이와 같다는 뜻으로, 세월 가는 것은 저 흐르는 물과 같다는 의미로, 세월은 흘러가는데 헛되이 늙어만 가는 자신을 한탄하는 말이다.
逝 : 갈 서(辶/7)
者 : 놈 자(耂/4)
如 : 같을 여(女/3)
斯 : 이 사(斤/8)
출전 :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 16章
이 성어는 공자(孔子)가 시냇가에서 말했다는 논어(論語) 자한(子罕)편 16장에 나온다.
子在川上, 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孔子)께서 냇가에 계실 때 이르시기를 '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문장가 소식(蘇軾)도 적벽부(赤壁賦)에서 “떠난 사람은 이와 같다”며 서자여사(逝者如斯)를 읊었다.
올 한 해에도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많다. 1924년생 두 거물이 동과 서에서 한 달 터울로 떠났다. 필명 진융(金庸)으로 익숙한 무협소설가 겸 신문인 자량융(査良鏞)과 조지 HW 부시 41대 전 미국 대통령이다.
둘은 생전에 자식을 먼저 보냈다. 자량융의 장남 자촨샤(査傳俠)는 1979년 미국 유학 중 목숨을 끊었다.
훗날 의천도룡기 후기에 “장취산이 목숨을 끊는 모습을 본 장삼풍의 비통함과 사손이장무기의 부고를 들었을 때의 상심을 너무 가벼이 적었다. 인생은 실로 그렇지 않은데 내가 당시 몰랐을 뿐”이라고 했다.
아들을 보낸 뒤 삶과 죽음의 이치를 찾아 불경에 심취했다. “한바탕 떠들썩한 뒤 조용히 떠날 뿐(大閙一場, 悄然離去).” 이후 인생 물음에 자량융의 답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 역시 딸 로빈을 네 살 때 백혈병으로 보냈다. 부인과 함께 구름 위에서 딸을 만나는 추모 만평이 세계인의 심금(心琴)을 울렸다. 그는 2012년 삭발을 했다. 백혈병 투병 중인 재직시절 경호원의 아들을 위해서다.
자량융은 소설가보다 신문쟁이였다. 1946년 항저우의 동남일보(東南日報)를 시작으로 92년 홍콩 명보(明報)를 매각할 때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사설 7000여 편, 국제칼럼 명창소찰(明窗小札), 연재 무협소설까지 매일 3건을 출고했다.
2008년 인터뷰에서 찰스 스콧 영국 가디언 편집장의 의견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가 나의 신조라던 언론인이다. 문장론도 흥미롭다. 신문은 섹션이라며 명보부간(明報副刊)을 창간하며 오자진언(五字眞言)을 내놨다.
단(短), 문장은 짧고 간결해야 한다. 경전 인용과 어려운 문자는 피했다. 취(趣), 신기하고 재미있으며 가볍고 활달해야 한다. 근(近), 시간과 공간이 가까우면서 새롭고 문화적으로도 독자와 친근해야 한다. 물(物), 말에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言之有物). 많건 적건 얻는 바가 있어야 한다. 도(圖), 그림이다. 사진과 삽화는 물론 생동감 넘치는 글도 광의의 그림이다.
新奇有趣首先, 事實勝于雄辯.
不喜長吁短嘆, 自吹吹人投籃.
신기함과 재미가 우선, 사실이 웅변을 이긴다. 한탄 조는 금물, 자화자찬은 내다 버려라는 24자결(廿四字訣)도 덧붙였다.
자량융은 홍콩·대만·중국, 양안삼지(两岸三地)는 물론 세계 화교의 자랑이었다. 남북과 해외 한민족 고루 사랑받는 작가를 찾기 어려운 우리에겐 부러운 인물이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
가는 것은 이와 같다는 뜻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을 감탄한 말이다. 도를 닦는 일도 또한 이러해야 할 것임을 은유한 말이다.
이 성어는 논어(論語) 자한(子罕) 17장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께서 냇가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
子在川上曰 :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孔子)가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 탄식하며, '가는 것이 이와 같아서 낮과 밤을 쉬지 않는구나'라고 말했다.
천지의 조화가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계속돼 한순간의 멈춤도 없으니 곧 도체의 본이 그러하다. 그러나 가리킬 수 있고 보기 쉬운 것은 내의 흐름과 같은 것이 없다. 고로 여기에 드러내어 사람에게 보이고 배우는 자로 하여금 때때로 성찰해 터럭만한 간단도 없게 하고자 함이다.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에서 이 문구를 인용, '그대 또한 저 달과 물을 알듯이, 가는 것들은 다 이와 같지만, 아주 가버린 것은 아니며, 달이 차고 저렇게 기울더라도, 사라지거나 커지지 않았다네'라고 노래했다.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천류불식연징취영(川流不息淵澄取映)
냇물은 흘러서 쉬지 않고, 깊은 못의 물은 맑디 맑아서 속까지 비쳐 보인다.
공자(孔子)는 냇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을 볼 때마다 “물이로다” 하고 탄식했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흘러가는 냇물을 보며 인간이 저렇게 수양을 한다면 성인이 될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탄식했을 것이다.
작은 물줄기가 졸졸 흐르지만 쉬지 않고 흘러가므로 마침내 큰 강에 이르고 또 대해(大海)로 들어가는 것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 “가는 것은 이와 같겠지,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逝者如斯夫 不舍晝夜)”를 다시 쓴 말이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말이 주역(周易)에 있다. 곧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강불식에서 천류불식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를 유추할 수 있다.
천류불식은 높은 덕을 이루기 위한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이며, 천류불식과 같이 행한다면 인간은 연징취영의 상태에 도달한다. 사람이 덕을 닦는 데 게을리 하지 않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기를 쉬지 않는다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자의 천상탄(川上嘆)
공자가 어느 날 강가에 서서 도도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인가, 밤낮으로 멈출 때가 없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하고 탄식했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천상탄(川上嘆)에 나타난 공자의 언행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무척 특이한 울림을 지닌다.
논어 전편을 통해서 공자가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단순하게 인간 주변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주 드문 일이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언어가 아닌 비유적이고 암시적인 언어로 자기 의사를 전달하고자 한 예도 그리 흔하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
거의 시에 가까운 이 장(章)의 구절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아주 상반된 해석이 나와 있다.
원래 논어는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기록되거나 편성된 저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나 여러 집단에 의하여 뿔뿔이 기록 전승되어 오던 것들을 공자가 사망한 후, 가장 빠르게 보면 300년, 느리게 보면 800년 후의 사람들이 모여서 긴 세월을 두고 하나 하나 논의를 거쳐 골라서 집대성한 책이다.
따라서 책이 성립되었을 때는 공자 생존 시대의 옛일이나 옛말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 책을 읽고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주석서가 필요했다.
주석서는 주로 후한(後漢)부터 남조(南朝) 양(梁) 시대에 걸쳐 저술된 것을 고주(古注)라고 하고, 그 뒤 남송의 주희(朱熹)에 의하여 혁신적인 해석의 논어집주가 나왔는데 이를 신주(新注)라고 한다.
고주는 대체로 '천상탄'을 '지나가는 것은 모두 이 강물과 같은 것인가, 낮이나 밤이나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라져간다. 인간의 생명도 역사도 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변해간다' 하고 비관적으로 해석했다.
같은 자한편에 '천하에 도(道)가 실현된다는 전조인 봉황새는 오지 않고 황하에서 그림도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이 났구나(鳳凰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하고 공자가 비탄을 하는 장(章)이 나오는 것과 연결해서 세월은 흘러가는데 헛되이 늙어만 가는 자신을 한탄하는 뜻으로 본 것이다.
반면에 신주에서는 주자(朱子)도 정자(程子)도 이 말에 심원한 철학적인 뜻을 부여했다. “하늘과 땅의 조화는 가는 것은 가고, 오는 것은 오는 것으로 이어져서 한 순간의 그침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도체(道體)의 본래 모습이다. 도(道)는 형태가 없는 것이지만, 어떤 현상을 보면 도의 본체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한 현상을 도체라고 하는데, 흐르는 물이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배우는 자는 이 물의 흐름을 보고 때때로 성찰하여 스스로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하고 공자가 배우는 자들을 격려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신주가 나왔을 때는 공자가 성인으로, 소왕(素王)으로 높이 추앙을 받을 때였고, 사람의 끝없는 진보를 믿는 성리학이 왕성했던 시대이다. 낙관적인 해석이 앞설 수 밖에 없는 시대 상황이었다.
이 두 가지 해석 가운데 어느 한 쪽에만 반드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절충론도 나와 있다. 흐르는 물을 보고 흘러 가는 것에 대해 애석함도 느끼기도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삶을 더 향상시켜 나가야겠다는 맹렬한 의욕에 불타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논어를 관류하고 있는 사상에 비추어보면 고주 쪽이 공자가 애초에 지녔던 심정에 가까우리라고 생각한다.
소동파(蘇東坡) 적벽부(赤壁賦) 전편(前篇)에 ‘천상탄’의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지만(逝者如斯)”이란 구가 인용되어 있다.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지만, 아직 흘러가서 없어진 것은 없네.
盈虚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찼다가 기울어지는 것은 저 달과 같지만, 갑자기 없어졌다가 크게 되었다가 하는 것은 아니네.
蓋将自其変者而観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변화하는 것으로부터 이것을 보면, 이 천지도 한 순간이나마 같은 상태에 있을 수는 없네.
自其不変者而観之,
則物與我皆無尽也.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이것을 보면, 만물도 나도 모두 다하는 일이 없네.
而又何羨乎.
그렇거늘 이 이상 부러워할 것이 있을까.
고주에 가까운 해석을 하든 신주에 가까운 해석을 하든 그것은 후생들 각자의 몫이다.
아름답고 멋진 늙음
공자도 냇가에 서서 흘러가는 시냇물을 보며 탄식했다 한다. ‘세월 가는 것은 저 흐르는 물과 같구나(逝者如斯)’로 늙음의 인생무상에 대해 탄식했다.
곧 100세 시대가 될 것이라 하지만 100여년 전만 해도 평균수명은 30~40세 수준이었다. 굶는 것이 예사였다. 옷도 여름 한 벌, 겨울 한 벌이었다 한다.
오늘날처럼 화장 등 예쁜 복장으로 치장하는 여유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정에 갖춰진 목욕탕, 화장실 등의 주거문화 시설도 불과 19세기 말 이후에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의 목욕은 명절 때나 하는 주요 연례행사의 하나였다. 몸에 때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지독한 몸 냄새는 공통사항이었다.
여름에 개울에서 목욕을 할 수 있을 뿐, 오늘날 같은 몸치장은 생각도 못했다. 칫솔과 치약이 없으니 입에서 악취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정말 멋지게 늙고 싶고, 정신적으로는 청소년처럼 한없이 젊게 살고 싶으나 희망일 뿐이다.
늙음은 필수적 과정이니 늙는 것도 삶의 소중한 부분에 속한다. 곱게 늙어 아름다운 죽음복을 누구나 원하지만 잘 안된다.
늙어가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결점을 고치는 일이지만 오히려 고집불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늙는 것은 각종 능력이 쇠하고 외형이 볼품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늙은이가 되지 않고 아름답고 멋진 늙은이가 돼야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 逝(갈 서)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折(절, 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逝(서)는 ①가다, 지나가다 ②죽다, 세상(世上)을 떠나다 ③날다 ④달리다, 뛰다 ⑤맹세(盟誓)하다 ⑥이에(발어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왕(往)이다. 용례로는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 감을 서거(逝去), 흘러가는 냇물 또 곧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함의 비유를 서천(逝川), 별세의 높임말을 서세(逝世), 죽은 사람을 서자(逝者), 임금이나 왕족이나 높은 귀족 등을 높이어 그의 죽음을 이르는 말을 훙서(薨逝), 갑자기 죽어서 세상을 떠남을 급서(急逝), 죽음을 슬퍼함을 상서(傷逝), 죽음을 빙 둘러서 이르는 말로 멀리 떠남을 장서(長逝), 죽어서 멀리 감을 졸서(卒逝), 애마 추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항우가 패공에게 포위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계략이 없어졌음을 이르는 말을 추불서(雛不逝), 초나라 항우의 애마인 오추마도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기세가 꺾이고 힘이 다 빠져 온갖 책략이 소용없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추불서(騅不逝), 가는 것은 이와 같다는 뜻으로 세월 가는 것은 저 흐르는 물과 같다는 의미로 세월은 흘러가는데 헛되이 늙어만 가는 자신을 한탄하는 말을 서자여사(逝者如斯)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 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者자는 ‘놈’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者자는 耂(늙을 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者자는 耂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노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者자의 갑골문을 보면 이파리가 뻗은 나무줄기 아래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탕수수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즙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탕수수’를 뜻했었다. 후에 者자는 ‘놈’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者(자)는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어떤 일에 관계되는 사람을 관계자(關係者), 물자를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勤勞者), 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被害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勞動者), 희생을 당한 사람을 희생자(犧牲者), 부부의 한 쪽에서 본 다른 쪽을 배우자(配偶者), 그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을 당사자(當事者), 권리를 가진 자 특히 선거권을 가진 자를 유권자(有權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斯(이 사/천할 사)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날 근(斤; 도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其(기, 사)로 이루어졌다. 斤(근; 도끼)으로 잘라 버리다의 뜻이 있다. 음(音)이 此(차)와 통하여, 지시대명사로 빌어 쓴다. ❷회의문자로 斯자는 ‘이’나 ‘이것’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斯자는 其(그 기)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其자는 대나무를 잘라 엮어 만든 바구니를 그린 것이다. 여기에 斤자가 더해진 斯자는 본래 대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만든다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후에 ‘이것’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斯(사)는 ①이, 이것 ②잠시(暫時), 잠깐 ③죄다, 모두 ④쪼개다, 가르다 ⑤떠나다, 떨어지다 ⑥희다, 하얗다 ⑦다하다 ⑧떨어지다 ⑨천(賤)하다 ⑩낮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떠한 일에 관계되는 그 사회를 사계(斯界), 이 세상을 사세(斯世), 이 백성을 사민(斯民), 이 사업 또는 그 일을 사업(斯業), 이 학문이나 그 학문을 사학(斯學), 빨리 또는 속히를 사속(斯速), 이러함을 여사(如斯), 이러 이러하게를 이르는 말을 여사여사(如斯如斯),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이라는 말을 어사지간(於斯之間), 그때를 한창으로 한다는 말을 어사위성(於斯爲盛),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을 어사족의(於斯足矣), 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풍사재하(風斯在下), 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사문난적(斯文亂賊), 난초같이 꽃다우니 군자의 지조를 비유한 말을 사란사형(似蘭斯馨)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