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심(天心)과 김태호 총리 후보자>
주일 예배를 위해 집을 나섰다가 잠시 세탁소에 들렀다.
마침 TV를 통해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기자회견 모습이 보인다.
화면 우측 상단에 적힌 문구, “총리직 사퇴”.
세탁비를 지불하고 교회로 걸어가는데 오늘 설교 제목이 생각난다.
‘겸손’
만 49세(실제 나이).
서울대학교 농경과 학사.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서울대학교 교육학 박사.
최연소 군수.
최연소 도지사.
40대 총리 후보, 김태호(이하 존칭 생략).
학벌=최고,
행정력=충분,
외모=영화배우급(?)
프로필만 보면 총리감인 분이 돌연 사퇴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악화된 국민여론 때문에 여당도 대통령도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했다고 한다.
8월 8일 총리임명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컸다.
“40대의 참신하고 유능한 행정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처럼 우리도 젊고 유능하고 게다가 잘 생긴 지도자 하나쯤 두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여론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여론의 호의적 태도는 청문회 직후 갑자기 ‘총리불가’ 쪽으로 유턴했다.
불과 며칠 사이의 일이다.
여론이 왜 급속히 악화되었을까?
총리불가의 이유는 무엇인가?
위장전입?
대한민국 국민 중 위장전입의 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몇이나 될까?
권력형 불법대출?
크건 작건 간에, 혈연 학연 지연 빽 의지해서 이득 한번쯤 보지 않은 사람, 몇이나 될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적어도 영남지역 고위 인사들 중,
정관계 할 것 없이 전 방위 로비를 한 그 정도의 마당발 기업인과 골프 한번,
사진 한 컷 찍지 않은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전도유망한 총리 후보자의 낙마 이유가 이것뿐인가?
하늘 아래 흠 없는 사람 누구인가?
이런 식으로 하면 초야에 묻혀 사는 도사들로 행정부를 채워야 하는가라는 탄식이 들린다.
소위 김태호 저격수로 격찬을 받은 청문회 의원은 무결점 인간일까?
그를 향해 등을 돌린 국민들은 정녕 이 만큼의 흠결도 없는 이들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김태호를 낙마시켰는가?
억울함으로 분루를 삼키고 있는 아내에게 사과하라고 청문회 의원에게 요구하던
그 당당한 기세가 무엇 때문에 꺾였는가?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금언을 잠시 인용해 보자.
급변한 민심은 어떤 천심을 담고 있을까?
잘 알려진 성서의 사건 한 대목(요한복음 8장 1절~11절)이 떠오른다.
한 여자가 간음 현행범으로 붙잡혀 예수께로 끌려 왔다.
그 여자를 끌고 온 사람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유대사회의 법에 따르면 간음죄는 교수형이나 돌팔매형에 처해지는 중죄다.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돌을 던져 법의 단호함을 보여줄 태세다.
그들을 향해 예수께서 한 마디 던지신다.
“여러분들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
잠시 머뭇거리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돌을 버리고 하나씩 하나씩 사라진다.
이번에는 여자를 향해 몇 마디 하신다.
“너를 정죄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여기서 잠깐, 독자들의 생각을 집중해 줄 대목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에 의해 죽음을 면하고 살아난 사실을 주목한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이 가능해진 이유다.
법의 정당한 규정에 따라 간음한 여자를 죽일 기세였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돌변했을까?
가녀린 새끼 양을 삼킬 버릴 듯 으르렁 거리는 굶주린 사자와 같던 그들이
겁먹은 하이에나처럼 꽁무니를 빼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를 곤경에 몰아넣을 한 건 잡은 기세등등함(3-5절).
그런데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꽁무니를 감춤(9절).
도대체 이 두 장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성서의 기록(6절부터 8절까지)을 보자.
6절: 예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고 있다.
7절: 군중들이 계속해서 예수께 대답을 종용한다.
이 때 예수께서 말씀한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8절: 다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쓴다.
이것이 전부다.
7절의 예수의 말씀 앞 뒤로 땅에 글을 쓰신 장면 밖에 다른 상황 묘사는 없다.
성난 맹수 같던 군중들이 순한 양으로 돌변한 원인을 찾기에는 상황이 너무 간단하다.
다시 본문을 보자.
7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에서 “마지 아니하는지라”는 헬라어 ‘에피메노’라는 동사다. 이 단어는 네 개 복음서에서 여기만 등장하는데 그 의미는 “(수 일 또는 수 개월) 동안 지속하다”이다. 즉, 유대교 지도자들이 여자의 처벌문제를 예수께 상당 시간 계속 캐물었다는 말이 된다. 이 사건의 시간적 배경이 하루를 넘긴 상황이 아님을 감안하면, 7절에서 예수님의 대답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 장면을 다시 정리해 보자.
사람들이 여자를 둘러 서서 돌을 들고 던질 태세다.
그 여자는 이제 율법에 의해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빠져 나올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예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땅에 글을 쓰신다.
여자의 간음죄를 향한 성난 무리들의 정죄의 아우성들.
예수를 걸어 쓰러뜨리려 대답을 종용하는 올가미의 아우성들.
이 아우성의 시간이 한동안 흐르고 있다.
사람들의 아우성과 정죄는 계속되고 여자의 공포는 극에 달한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입을 여시는 예수.
여기서 잠시 어리석은 항의 한 마디:
“아니 기왕 살려 주실 거, 좀 빨리 살려주시지 왜 시간 끄실까?
그러다가 여자에게 돌이라도 던지면 어쩌시려고....“
일리 있는 항의 아닌가!
군중 심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한 사람이 돌을 던지면 다 따라하게 되는 법.
왜 예수님은 상당 시간 딴 짓(?)을 하셨을까?
성난 무리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물러난 배경을 6절부터 8절까지의 장면에서 유추해 보자.
첫째,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이 한 마디는 수면 밑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죄악의 근성을 단숨에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돌을 버리고 물러가는 사람들의 양심의 소리: ‘내 죄가 다 드러나고 보니 저 여자나 우리나 다를 게 없네!’
둘째,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예수께서 땅에 글을 쓰고 있던 그 상당 시간 동안 여자의 죄가 온 동네에 낱낱이 드러났다.
율법의 정죄를 다 받은 것이다. 살기등등한 정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정죄를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과 복음의 요체를 잘 보여준다.
첫째, 율법을 범한 자는 율법의 정죄를 받아야 한다. 이 여자는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시는 상당시간 동안 율법의 정죄를 받았다.
둘째, 율법이 나의 죄를 모두 드러내게 해야 한다. 정죄를 끝내는 길은 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다. 인정하는 것이다. 여자의 죄는 낱낱이 공개되었다. 간음죄가 다 드러나고 말았다. 항의할 이유도, 부인할 방법도 없다. 부끄럽더라도 정죄를 받아야 한다. 다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살 길이다.
죄는 숨길수록 커지고 인정할수록 작아진다.
죄를 은폐할 때 정죄는 극렬해지고
죄를 인정할 때 정죄는 사라진다.
이것이 천지의 원리이다.
이것이 천심이다.
이 천심이 민심을 통해 말한다.
“너를 정죄하는 그들도 너와 다르지 않다.
그들 앞에서 너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들의 양심은 더 이상 너를 정죄하지 못한다.
너를 겨누었던 저격수의 총도 거두어질 것이다.
정직하게 인정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라.
이것이 네가 살 길이다.
이것이 겸손이다.“
김태호 후보자는 이 천심을 읽지 못했다.
청문회 기간동안 그의 행적, 실수, 허물이 다 드러났다.
다 까발려졌다.
고생만 시킨 아내의 행적도,
장모, 형수 등 친인척들의 사생활도 매스컴을 통해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다 드러났다.
정죄의 화살이 비오듯 퍼부었다.
그때,
피하지 말고 온 몸으로 맞았어야 했다.
인정할 건 겸손하게 인정했어야 했다.
정죄를 받았어야 했다.
이천년 전 그 여인처럼.
그리했으면 살 수 있었다.
이것이 천심이었다.
수십 년 단축 공정과 압축 성장의 세월을 지나며 묻은 흙탕물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해와 용서를 구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면
청문회라는 협곡을 건널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한 언론인의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8:14)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다 인정하면 살 수 있었다는 말은 총리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씀이신지요 아무리 무한 사람은 없기에 타인을 함부로 정죄할 수 없다해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총리가 될 수 있다고 후보로 올린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전 가난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불법대출이나 위장전입 등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산답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으로서의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록 지나간 일이라도 그건 안된다고 봅니다만은...
'함께있음좋은사람'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이번 총리 후보자 사퇴건에 관하여 찬반 양론이 분분합니다. 본 글은 어느 한 쪽의 의견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율법과 복음의 융합(또는 연합)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모두가 대차(大差)없는 죄인이라는 것이 성서의 진단입니다. 이천년 전 당시 간음한 여자가 율법과 복음의 융합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났듯이, 오늘날도 그와 같은 역사와 능력이 동일하게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글입니다.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