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경수 - 갑진년 새해맞이 산행계획 언제 : 2024. 1. 10(수)~11(목) 이틀간 어디를 : 남도... | Facebook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산 전문가가 오봉단맥을 걷겠다고 연락을 하란다.
메신저로 득량역이 가까우니 혹시 마중나갈 수 있다고만 해 놓고 구체적인 소통을 못했다.
10일 아침에 후다닥 바보에게 점심을 부탁한다.
어둑한 7시에 집을 나서 득량역에 가니 막 무궁화호 기차가 들어온다.
대합실에 서 있으니 배낭을 맨 나이 지긋한 남자 둘이 나오고 한 키 작은 남자는 뒤에 따라온다.
반인사를 조심스레 하며 신경수 선생님이시냐고 물으니 키 큰 남자가 뒷 분을 가리킨다.
신 선생님은 나오실 줄 몰랐다며 대부님이라 하고 나머지 분들도 놀라신다.
세분의 배낭을 승용차에 넣고 고리재로 간다.
들어본 적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하느냐니 정흥리 쪽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득량면과 회천면의 경계 능선을 걷는 산행이다.
7시 반이 조금 지나 도착해ㅐ 차를 밭가는 길 옆에 올려두고 시작한다.
봉화산 줄기로 난 농로를 먼저 오르는데 무덤 앞에서 부르신다.
폰을 보시며 산줄기를 보더니 묘지로 올라간다.
묘지 뒤의 길은 없다.
난 길도 모르면서 이 나간 낫을 휘두르며 앞장선더,
키가 크신 분은 신선생보다 나이가 더 많고, 한분은 나와 같은 쥐띠란다.
산줄기를 보며 맹감나무와 진달래인지 철쭉 등을 찍어 누르며 오른다.
길 없는 산을 낫질하며 미끌리며 오르니 금방 땀이 난다.
능선을 만나 오래 전이지만 사람이 다니 흔적을 만난다.
나뭇가지들이 더러 끊어져 있다.
낫질을 덜 해도 된다.
능선을 한참 올라 먼저 봉화산 줄기 등산로에 닿는다.
그 분들은 이제 고속도로라고 한다.
봉화산은 오른쪽으로 작은 봉우리 뒤에 있어 가려는데 그 분들은
송신탑 몇개가 있는 왼쪽으로 가자신다.
난 왔다갔다 하다가 그 분들이 서 있는 삼각점과 벤치가 있는 작은 봉우리로 간다.
배낭에서 난 소주를 꺼내고 호 선생이 잭 다니얼을 꺼낸다.
신 선생은 하늘타리가 있다고 한다.
술을 나눠 마시고 다시 내려온다.
봉화산을 들먹이고 싶은데 급분들에겐 의미가 없나 보다.
내려오는 길은 조금 더 편하다.
능선을 따라 내려오니 신선생은 올라왔던 길을 잡아 내려가고 있다.
조망을 두고 다시 거친 길을 따라 내려와 고리재 도로를 건넌다..
임도를 따라 걷는다.
뒤에서 신 선생님이 능선으로 올라가자고 할 것 만 같아 불안하다.
구비를 돌아 작은 고개에 이르자 왼쪽으로 산줄기기ㅏ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임도 곁으로
너른 감밭이 나타난다.
과수원은 임도 내내 이어지며 매실과 비파 등 다른 나무들도 보이다가 단풍 묘목도 보인다.
신선생님은 세개의 봉우리를 접어 왔다하시는데 그 산길을 걷지 못하는데 무슨 반칙인 것처럼 여기는 눈치시지만
앞서가는 난 이 길이 편하고 좋다.
임도가 끝나는 작은 고개에서 잠깐 쉬고 또 길없는 산길을 오른다.
낫은 꺼내지 않고 돌 사이를 나무 잡고 오른다.
앞장 서 작은 꼭대기에 오르니 호선생이 다가와 바위에 앉는다.
1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자고 하니 조금 더 가 건너 봉우리에서 먹자한다.
앞 능선을 보고 걸어간다. 키 큰 이교수님이 따라 오신다.
뒤돌아보며 일행을 살피는데 뒤에서 되돌아오라고 한다.
괜히 알지 못하는 길을 앞장 서며 이교수님을 따라오게 하다 되돌아오니 머쓱하다.
신선생은 폰을 보면서 오른쪽으로 길없는 길을 내려간다.
작은 능선길이고 앞에는 우뚝 솟은 봉우리가 서 있다,
다시 오르막을 거칠게 오르니 능선에서 회천면의 바다가 열린다.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한낮의 해가 바다를 밝게 비추고 있다.
바위에 서서 점심을 먹자하고 싶은데 계속 간다.
난 바위를 오르며 조망을 얻기도 하지만 그들은 무조건 길을 걷는다.
바위를 힘들게 오르며 바위 사이르르 아슬하게 내려오며 나 혼자 앞서간다.
나와 그분들의 산길이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건방지다.
2시가 지나 바위 끝에서 바람을 피해 앉는다.
난 바보가 싸 준 밥에 김치 계란말이 같은 것도 있찌만 그 분들은 김밥과 약밥, 컵라면 등이 점심이다.
신선생니은 아침을 먹지 않고도 산을 걸을 만하다고 하신다.
남은 하늘타리 한병에 내 배낭의 맥주 한캔의 점심 술은 한참 모자라다.
난, 산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마지막 술도 없이 햄까지 우겨넣고 일어나며 남은 밥을 멀리 버린다.
천포쪽에서 올라오는 흔적이 보이더니 능선 위에 사라 다닌 흔적이 보인다.
난 먼저 내려가 택시 불러 차를 가져와 득량남초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혼자 걷는다.
건너 백바위가 보이는 바위에 서서 사진을 찍으며 아래 바위에 선 두 분을 보고 간다.
신선생님은 보이지 않는다.
부지런히 오르막을 올라 봉우리에 오니 조타봉이고 양쪽으로 이정표가 서 있다.
난 용추봉이라 여겼는데 아니다. 백바위까지 부지런히 간다.
백바위에 들어가 끝까지 걸어보고 돌아오며 바위 위의 소나무도 찍어본다.
소릴 질러 나의 위치를 확인해 드려도 능선에서는 대답이 없다.
득량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가는 길을 생각해 보니 6시가 조금 지나면 될 것 같다.
염치없지만 바보의 퇴근길에 와 달라고 전화를 한다.
이제 마음이 바쁘다.
백바위에서 오봉산 정상에 오니 벌써 4시 40분이 지난다.
오봉산 정상석은 나무 옆에 자빠져 있다.
4km가 넘는 득량남초까지 6시까지 가기 힘들겠다.
걸음을 재촉한다. 다행이 다리에 아직 힘이 붙어 있다.
칼바위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바로 뒷길로 걷는다.
앞봉우리를 오르며 뒤돌아보니 해는 백바위 쪽으로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랜턴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6시까지만 가면 될 것이다.
봉우리는 가파르고 건너 예당벌판과 장선포 앞 바다는 뿌옇게 보이지 않는다.
해평저수지로 가는 삼거리에 이르니 6시가 지난다.
어둠 속에서 봉우리를 오르다가 돌이 흔들리곤 해 스마트폰ㄴ의 손전등을 켠다.
배에 대고 불빛에 의지해 걷는 길은 이제 손이 시리다.
손을 바꿔가며 주머니에 넣으며 북풍을 맞으며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니 6시 35분을 지난다.
시동을 켜고 빨간 불을 켠 바보의 차가 기다리고 있다.
미안하다며 내가 운전해 고리재로 가 차를 가져 온다.
철길건널목을 걸으며 보니 주변 식당에 불이 켜져 여기서 저녁을 먹고 보성에 모셔드리고 얼른 오라고 바보는 당부와 염려를 한다.
바보에게 조심해 가라며 다시 득량남초로 와 전화를 한다.
이제 칼바위를 넘었댄다.
나와 한시간 정도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했으니 7시 반이면 올줄 알았는데 어려울 듯하다.
다시 전화를 해 중간에 해평저수지로 가는 탈출로가 있으니 그리 오라 하고 차를 서서히 옮긴다.
저 멀리 산봉우리에서 하얀 불빛이 움직이는 것도 같다.
해평저수지에서 식당까지 차를 끌고 들어간다.
차 안에서 전화를 하니 해평제 보고 내려오는데 거의 다 왔는데 사방이 절벽인 바위를 만나 헤매고 계신단다.
우마차길을 어느 여름에 내려왔을 때 거칠긴 해도 내려왔지만 조금 불안하다.
8시가 넘어도 전화가 없다.
차에 시동을 끄고 바람과 어둠 속으로 올라간다.
스마트폰 불을 밝히고 능선까지만 마중을 나가보자고 한다.
골짜기를 오르며 바람에 날리지 않을 거라고 여기며 소릴 지른다. 불빛도 안 보이고 소리답도 없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금방 능선에 올라왓다. 건너 봉우리를 보아도 불빛이 안 보인다.
허리를 몇 번 굽히며 어둔 바다를 내려다보다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기남봉을 지나도 조새바위를 지나도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망설이다 전화를 하니 다시 올라와 이제 능선에 들어섰다고 하신다.
뒤로 돌아 칼바위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시라 하지만 그냥 오시겠단다.
바위봉을 오르고 올라 거의 칼바위가 작게 보이는 봉우리 앞까지 가니 건너 봉우리에서 불빛이 보인다.
마음이 놓인다.
신선생님이 다리를 절며 앞서 오시고 뒤에 두 분은 여유가 있다.
콧물에 손이 추우신 신선생님은 후레시를 비추며 메모하신다.
9시다. 아직 10시가 안 되었으니 다행이라 하신다.
내가 불빛을 밝히며 앞장선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나 혼자 가고 있다.
바람 자는 사이에서 쉬며 허리를 굽히며 운동을 한다.
엉치뼈가 내려앉는 듯하다.
내 걸음으로 걷다보면 또 어느 새 불ㄹ빛이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허리 운동응ㄹ 하다가 불빛이 다가오면 다시 불을 켠다.
해평제 내려가는 곳에서 한참을 쉬고 그들이 다가오자 알려주고 내려간다.
어둠 속에 낙엽깔린 길은 신선생께는 많이 위험하게 보인다.
몇 번 불빛을 보여주다가 먼저 내려간다 불빛은 아에 보이지 않는다.
차로 돌아와 시동을 켠다.
옆집은 불이 다 꺼졌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조금이라도 덜 걷게 하자고 차를 움직인다.
후진을 해 올라가려다가 돌이 불안해 차를 돌려 올라간다.
구들장 야적장까지 올라가 차를 돌려오려해도 공간이 좁다.
후진해 등산로 쪽으로 꼬리를 넣으려는 차에 불빛이 다가온다.
11시가 넘었다. 보성읍은 조용하지만 몇 군데 맥주집에 불이 켜졌다.
호선생이 확인해둔 보성역앞의 모텔은 불이 다 꺼졌다.
역앞을 지나가니 동광모텔 사우나에 불이 켜졌다.
세분이 6만원ㄴ에 방을 정했다고 하신다.
다시 포차맥주집으로 가 저녁을 주문한다.
12시가 다 되어간다.
나의 저녁과 기다림을 염려하며 치밥을 주문해 주신다.
맥주와 소주를 마시며 오뎅탕과 조개국도 시킨다.
난 술을 마시고 싶지만 참는다.
여유가 있는 신선생님은 이제 뒷풀이에 열중이시다.
이교수님이나 호선생이 나의 갈길을 염려하며 제지하려 하시지만 또 소주 하녕을 더 시킨다.
자정을 넘어 1시가 지나고 있다.
득량에서 출발하며 바보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기에 전화않고 집으로 온다.
같이 잠자고 내일 그 분들의 활성단맥인지 관주단맥인지를 같이 걸을 자신 없는 나의 도망이다.